남편의 성공을 바라면서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가정을 꾸려나가는 아내 최씨의 절절함이 묻어져 있다. 정도전은 답을 보낸다.
“그대의 말이 참으로 온당하오. 나에게도 친구가 있어서 형제보다 그 정이 깊었소. 그러나 내가 패했으니 뜬 구름처럼 흩어졌소. 그들이 나를 근심하지 않는 것은 본래 권세로 맺어지고 은혜로서 맺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오. 부부의 인연은 평생 변하지 않은 법이오. 그대가 나를 꾸짖는 것은 사랑해서이지 미워해서가 아닐 것이오. 아내가 남편을 섬기는 것은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것과 같은 것이오. 이러한 이치는 허망하지 않은 것이오. 모두 다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것이오. 그대는 가정을 근심하고 나는 나라를 근심하는 것 외에 어찌 다른 뜻이 있겠소. 각각 그 맡은 바 임무를 다할 뿐이오. 영광과 욕됨, 얻는 것과 잃는 것 이 모두는 하늘에 달려 있고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닌데 그 무엇을 불쌍하다고 하겠소.”
정도전 유배지 (전남 나주시) : 정도전은 유배지서 황연의 집에 세 들어 살면서 소재동기(消災洞記)를 썼다. 그 곳 사람들과 보낸 순박한 일상과 후한 인심에 대한 감사를 남겼다. 사진=네이버이미지
둘째, 정도전은 농부로부터 공직의 엄숙함과 처세의 도리를 가르침 받는다. 정도전이 거처하는 유배지의 집은 낮고 좁고 쓰러질 듯 했다.
그는 마음이 울적하면 들에 나가 바람을 쐬다가 농부를 만났다. 농부는 백발에 눈썹이 길고 손에는 호미를 들고 김을 매고 있었다. 정도전은 ‘농부에 답하다’는 제목을 달았다. 편집을 했다http://www.issuegate.com/news/view.php?idx=8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