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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물-치지-성의-정심’의 재해석과 그 교육학적 함의 - 목영해 (신라대학교)
<요 약>
‘수신의 연계망’이라 부를 수 있는 ‘격물-치지-성의-정심’의 관계를 해석하는 성리학의
전통적 견해는 완결 순차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수신 연계망의 완결 순차형 해석은 ‘수신의
반복 진술’이라는 문제점을 가져온다. 팔조목에 대한 주희의 진술을 분석하여 보면, 수신의
연계망은 완결 순차적 관계가 아닌, 누진적 관계를 가진다. 누진적 관계에서는 수신의 반복
진술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격물단계에서 사물 사건을 접한 후, 치지 단계에서 사물 사
건의 리를 인지하고, 성의의 단계에서 사람의 리를 인지 한 후, 정심 단계에서 전체 리의
네트윅을 알게 된 그 다음에 수신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누진적 관계로서 수신의 연계망을
해석할 때, 도덕교육에서 지식은 중요하다. 도덕적 실천은 도덕적 지식이 포함된 전체 지식
의 기반 위에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주제어 : 수신의 연계망, 격물ㆍ치지ㆍ성의ㆍ정심, 리의 네트윅
Ⅰ. 들어가는 말
‘유학의 르네상스기’라고 할 만큼 유학에 대한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
일본, 중국, 싱가포르 등 유교 문화권 국가들의 발전이 두드러지면서 유학에 대한 관
심이 높아진 것이다. 이것은 교육학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유학에 대한 교육학적 연구
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유학을 교육학적으로 접근함에 있어서 연구하지 않을 수 없는 이론은 격물치지론
교육사상연구 (제21권 제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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格物致知論)이다. 교육이란 학생으로 하여금 지식을 갖게 하는 일이기 때문에 인식론
은 교육학적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영역 중의 하나이며, 격물치지론은 성리학의 인식
론이기 때문이다.
격물치지론은 대학의 앞 부분에 있는 삼강령(三綱領), 팔조목(八條目)의 일부로서,
격물 - 치지는 성의(誠意) - 정심(正心) - 수신(修身) - 제가 - 치국 - 평천하와 결
합하여 성리학의 교육방법 원리라 할 수 있는 팔조목(김인회ㆍ정순목. 1979: 164)을
이룬다.
일반적으로 성리학의 맥락에서 성의ㆍ정심과 연계하여 격물ㆍ치지를 논의할 때에
는 격물치지를 궁리(窮理)라는 용어로 묶어 앎, 인식, 지식에 관한 일로 규정하고, 성
의ㆍ정심은 거경(居敬)이라는 용어로 묶어 행함, 실천에 관한 일로 규정한다.
대표적인 중국 철학자인 장기균(張起均)ㆍ오이(吳怡)(1984: 392) 및 대표적인 교육
철학자인 정순목(1981: 25)이 내리는 아래와 같은 진술들은 격물ㆍ치지와 성의ㆍ정심
간의 관계에 대한 정설이 되어있다.
그 전의 철학자들은 ‘성의정심’에만 주의를 집중하였지 ‘격물치지’에 대해선 그렇
게 많이 언급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주자는 성의ㆍ정심과 격물ㆍ치지를
둘로 나누었는데, 전자인 성의ㆍ정심은 거경의 공부로 도덕적 수양에 속하는 것이
고, 후자인 격물치지는 궁리의 공부로 지식의 탐구에 속하는 것이다.
거경은 ‘성의ㆍ정심’에 속하는 일이라면, 궁리는 ‘격물ㆍ치지’에 속한다. 전자는
위기치인(爲己治人)하는 길에 있어서 윤리실천적 접근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인식
론적 접근의 길이다.
그런데 격물ㆍ치지는 앎의 문제로서 이를 통하여 앎을 완성시킨 후, 이 앎을 실행
하는 것이 성의ㆍ정심이라는 견해에는 이론적 문제가 수반된다. 다시 말해 팔조목에
의하면 격물ㆍ치지, 성의ㆍ정심을 한 그 다음에 수신(修身)을 하도록 되어 있다. 성의
ㆍ정심은 수신이 아닌 수신 이전의 일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격물ㆍ치지는 앎
의 일, 그리고 성의ㆍ정심은 앎을 실행하는 일이라고 하면, 성의ㆍ정심하는 일 자체가
곧 수신하는 하는 일이 된다. 수신이란 바른 삶에 대한 앎을 실천하는 일이 때문에
성의ㆍ정심은 수신 하는 일이 되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성의ㆍ정심이라는 수신을 하
고 난 다음에 또 다시 수신을 하여야 하는 수신 반복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팔조목에 있어서 수신 반복 진술을 가져오는 이유는 격물-치지-성의-정심의 관계
에 대한 설명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판단된다. 격물ㆍ치지는 앎을 완성하는 일이
고, 성의ㆍ정심은 이 앎을 실천하는 일이라는 이분법적 해석이 성의ㆍ정심이라는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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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한 후, 수신을 다시 하여야 한다는 이론적 문제에 직면하게 한 것이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격물ㆍ치지는 앎을 완성하는 일이고, 성의ㆍ정심은 이 앎을 실
천하는 일이라는 성리학의 전통적인 이분법적 해석에 문제가 있다는 전제 아래, 격물
- 치지 - 성의 - 정심하는 일의 내용과 그 관계를 새롭게 해석하고자 한다.
Ⅱ. 격물-치지-성의-정심
‘격물-치지-성의-정심’이 진술되어 있는 곳은 성리학 텍스트인『대학(大學)』의 <팔
조목>항으로, 그 원문 및 그에 대한 주희(朱熹)의 주해는 다음과 같다.
(원문) 예전에 명덕을 천하에 밝히려고 하는 자는 그에 앞서 나라를 다스려야
하고, 그 나라를 다스리고자 하는 자는 그에 앞서 그 집안을 정돈하여야 하고, 그
집안을 정돈하고자 하는 자는 그에 앞서 그 몸가짐을 다듬어야 하여야 하며, 몸가
짐을 다듬고자 하는 자는 그에 앞서 마음을 바르게 하여야 하고, 마음을 바르게
하고자 하는 자는 그에 앞서 그 뜻을 성실하게 하여야 하며, 그 뜻을 성실하게 하
고자 하는 자는 그에 앞서 그 아는 바를 넓혀야 하는 바, 아는 바를 넓히는 일은
격물하는데 있다.
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 先治其國 欲治其國者 先齊其家 欲齊其家者 先修其身 欲修
其身者 先正其心 欲正其心者 先誠其意 欲誠其意者 先致其知 致知 在格物.
(주해) 명덕을 천하에 밝힌다 함은 천하의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그 명덕을 밝
히게 하는 것이다. 마음은 몸의 주인이다. 성은 실함이다. 뜻이란 마음이 발하는
것이다. 그 마음이 발하는 것을 실하게 함은 반드시 스스로 만족함으로 인하여 스
스로 속임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 치는 미루어 지극히 하는 것이다. 지는 인식하는
일과 같다. 나의 앎을 미루어 지극히 하는 일은 아는 것이 다하지 않음이 없게 하
는 것이다. 격은 다다름이다. 물은 일과 같다. 사물의 리를 궁구함에 있어 지극한
곳에 이르지 않음이 없게 하는 것이다. 이 여덟 가지는 대학의 조목이다.
明明德於天下者 使天下之人 皆有以明其明德也 心者 身之所主也 誠 實也 意者 心
之所發也 實其心之所發 欲其必自慊而無自欺也 致 推極也 知 猶識也 推極吾之知誠
欲其所知無不盡也 格 至也 物 猶事也 窮至事物之理 欲其極處 無不到也 此八者 大
學之條目也.
(원문) 물을 격한 뒤에야 앎에 이르고, 앎에 이른 후에야 뜻이 성실해지고, 뜻이
성실해진 후에야 마음이 바르게 되고, 마음이 바르게 된 후에야 몸가짐이 다듬어
지고, 몸가짐을 다듬고난 후에야 집이 정돈되고, 집이 정돈된 후에야 나라가 다스
려 지고, 나라가 다스려진 후에야 천하가 평하게 된다.
物格而后 知至 知至而后 意誠 意誠而后 心正 心正而后 身修 身修而后 家齊 家齊
而后 國治 國治而后 天下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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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해) 격물함이란 물리의 지극함에 이르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아는 것에 이
른다는 것은 내 마음이 아는 것을 다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아는 것을 다하면
곧 뜻을 성실하게 할 수 있고, 뜻을 성실하게 하면 마음은 바름을 얻을 수 있다.
수신 이상은 명덕을 밝히는 일이요, 제가 이하는 백성을 새롭게 하는 일이다. 물건
에 이르러 아는 것에 이르면 곧 그칠 바를 아는 것이다. 성 이하는 모두 머물러
터득하는 순서이다.
格物者 物理之極處 無不到也 知至者 吾心之所知 無不盡也 知旣盡 則意可得而實
矣 意旣實 則心可得而正矣 修身以上 明明德之事也 齊家以下 新民之事也 物格知至
則知所止矣 意誠以下 則皆得所止知序也.
주희의 해설에 따라 문자 그대로 해석을 하자면, ‘격물’은 사물을 접하여 그 사물의
리(理)를 탐구하는 것이고, ‘치지’는 내 마음을 아는 것이며, ‘성의’는 그 마음이 발하
는 바를 성실하게 하여 스스로 속임이 없는 것이고, ‘정심’은 뜻을 성실하게 한 결과
로서 이루어지는 마음의 상태를 말하다.
그런데, ‘격물-치지-성의-정심’은 논리적으로 보아 앞 단계를 기반으로 하여 뒷 단
계가 일어나는 ‘수신의 연계망’이라 이름을 할 수 있는 연계적 계열성을 가진다. 정심
은 성의가 이루어져야 그것을 바탕으로 이루어질 수 있고, 성의는 치지가 이루어져야
그것을 바탕으로 이루어질 수 있으며, 치지는 격물이 이루어져야 그것을 바탕으로
하여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Ⅲ. 수신 연계망의 재해석
1. 격물의 해석
위 수신의 연계망에 있어서 주희가 특히 강조한 것은 격물ㆍ치지이며, 그 중에서도
특히 격물이다. 그는 본래 『대학』고본(古本)에는 없던 <격물ㆍ치지>장을 보충하는
가 하면, ‘격물’ 두 글자가 『대학』의 핵심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朱子語類.14).
수신의 연계망 첫 단계인 격물은 학문적으로 - 궁극적으로 도덕적 수양을 지향하
지만 - 사물(物)을 대하는 일이다. 이때 주희가 말하는 지적 탐구의 대상으로서 사물
은 ‘소리, 색깔, 모양이 있는 천지에 가득찬 모든 것들이 물’이라는 그의 진술을 보아
감각할 수 있는 구체적 존재자 일체를 의미한다(김교빈, 1985:175).
그렇지만 주희에게 있어서 단순한 물체 덩어리 자체가 지적 탐구의 대상은 아니다.
주희가 말하는 물은 사람과 관련 없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물이 아니라 사람과 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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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관련성이 있는 물이다. 주희는 지적 탐구의 대상인 물을 인간과 관련된 여러 일들
을 의미하는 사와 결부시킨다. 그리고 물사(物事), 사물(事物), 사사물물(事事物物), 일
사일물(一事一物), 응사접물(應事接物), 우사접물(遇事接物), 즉사즉물(卽事卽物), 사지
물래(事至物來), 천하지사개위지물(天下之事皆謂之物), 물위사물(物謂事物) 등 주희가
사용한 어휘에서와 같이 주희는 일반적으로 물과 사를 구분 없이 쓰고 있기도 하다
(大濱浩, 1983:245).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희에게 있어서 지적 탐구대상인 물이 여러 인간사를 지칭하
는 사와 동일한 것은 아니다. 그는『대학장구』의 첫째 장에서 격물에 대한 주석를
달면서 ‘물은 사의 유사한 것’이라고 진술한다. 이것은 물이 곧 사라고 하면 지적 탐
구의 대상이 인간의 일에만 한정되어 여타 자연사물이 탐구의 대상에서 제외되므로
물과 사의 근사성만을 표현하여 지적 탐구의 대상으로서 물을 인간의 일에만 한정시
키지 않게 하기 위해서인 것이다(友枝龍太郞, 昭和 44:357).
이상의 논의를 정리하면, 주희에게 있어서 지적 탐구의 대상인 물은 단순한 물질
덩어리가 아니며 단순한 인간의 일만도 아니다. 그가 말하는 물은 인간의 삶과 직접
적 또는 간접적으로 관계가 있거나 있게 될 모든 물체(物)와 이 물체들 속에서 혹은
물체와 더불어 일어나는 모든 인간의 일(事)을 포괄하고 있는 개념이다.
그런데 주희에 의하면 지적 탐구의 대상인 사물을 격(格)한다 함은 단순하게 사물
의 외현면을 살피는 것이 아니다. 사물을 격한다 함은 사물의 내면, 다시 말해 사물에
내재하여 있는 사물의 리를 탐구하기 위하여 사물을 접하는 일을 말한다. 이에 주희
에 있어서 ‘격물이란 사물사물 마다에서 그 지극한 리를 구하는 일인 것’으로서, 사건
의 외면을 살피는 일은 접물(接物)에 지나지 않고 사건의 리를 추구할 때 비로소 격
물이 되는 것이다. 주희는 이점을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격물을 접물(接物)로서 설명하는 것은 극치에 이르도록 궁구하는 일에 부족한
점이 있다. 사람이 사물과 접하지 않을 수는 없으나 혹시 단지 접할 뿐 그 리를
추구하지 않거나 혹은 대강 구하여 극치에 이르도록 추구하지 않는 까닭에 비록
사물을 접하더라도 그 소이연 및 소당연인 리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訓格物以接物 則於究窮之功有所未明 人莫與接物 但或徒接而不求其理 或粗不究其
極 是以雖與接物 而不能之其理之所以然 與其所當然也(朱子大全 卷44 書答江德功).
2. 치지의 재해석
수신의 연계망에서 격물 다음 단계는 치지이다. 치지는 격물이 성공적으로 이루어
져야 가능하다. 주희는 격물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치지에 대하여 『대학장구』<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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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보전>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치지가 격물에 있다고 함은 나의 지식을 넓히기 위해서 사물에 나아가 그 리를
궁구하여야 함을 말함이다. 인심은 영명하여 알 수 없는 것이 없고, 천하의 사물은
리가 없는 것이 없다. 단지 리에 대하여 아직 궁구하지 않음이 있기 때문에 그 앎
에 부족한 점이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학의 첫 가르침이 학문하는 이가 반드시 천
하사물을 접하여 그 이미 알고 있는 리를 근거로 하여 더욱 궁구함으로써 앎이 지
극함에 이르지 않음이 없게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학의 첫 가르침은 필히 학자로
하여금 천하 만물을 즉하여 이미 그가 알아낸 리에 의거 그것을 더욱 궁구하여 그
지극함에 이르도록 구한다. 이렇게 힘써 사물의 리를 탐구함이 오래되면 어느 날
활연관통(豁然貫通)하게 되어 여러 사물의 안과 밖, 큰 테두리와 세밀한 것에 앎이
이르지 않음이 없게 되고 내 마음의 대체대용(大體大用)은 밝혀지지 않음이 없게
된다. 이것을 일러 격물이라 하고 앎의 지극함이라 한다.
所謂致知在格物者 言欲致吾之知 在卽物而窮其理也 蓋人心之靈 莫不有知 而天下
之物莫不有理 惟於理有未窮 故其知有不盡也 是以大學始敎 心使學者卽凡天下之物
莫不因其己知之理而益窮之以求知知有不盡也至於用力之久 而一旦豁然貫通焉 則衆物
之表裏精粗無不到 而吾心之全體大用無不明矣 此謂各物 此謂知之至也 (大學章句 格
物補傳).
주희의 위 설명을 순차적으로 분석하여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모든 사물에는 리가 있다.
둘째, 영명한 마음의 능력을 사용하여 사물을 탐구하면 그 리를 알 수 있다.
셋째, 개별적인 리를 탐구한 결과로 이루어진 개별 사물들의 리에 대한 앎이 축적
되면, 어느 순간에는 개별적인 리를 아우르는 리의 총체적 모습을 알게 된다.
넷째, 사람의 마음도 총체적 리의 일부분이므로, 총체적 리를 알게 되면 동시에 인
간의 리도 알게 된다.
결국, 위 설명에 의하며, 치지란 사람의 리를 포함한, 개별 리를 포괄 관통하는 총
체적 리에 대한 앎에 이르는 단계를 말한다.
사람의 리를 포함한 총체적 리를 알고 나면, 그 다음에 인간이 할 일은 이 리를 실
천하는 일이다. 다시 말해 일상생활에서 리를 실천하는 일, 예컨대 자신의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가정을 보살피고, 국가를 다스리고, 세계를 평온하게 하는 일이 남은 것
이다.
그런데 『대학』에 의하면, 총체적 리를 알고 난 이후에도 그 리를 생활에 실천하
기 전에 성의와 정심이라는 두 단계가 남아 있다. 총체적 리를 알았다고 하더라도 성
의 하는 일과 정심하는 일을 추가로 완수하여야 비로소 수신ㆍ치세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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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우리는 활연관통한 치지 이후에도 두 가지 단계가 더 필요한 이유에 대하
여 논의하지 않을 수 없으며, 그 이유로서 활연관통이 총체적인 리를 인식하는 단계
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활연관통이
란 부족함이 없는 앎의 상태를 말한다. 부족함이 있다면 활연관통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활연관통한 이후에도 두 가지 단계가 더 필요하게 된 다른 이유로 격물에 대한 주
희의 설명이 정밀하지 못함을 지적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주희는 격물ㆍ치지를 포괄
적으로 보아, 정심을 완수한 후에야 도달할 수 있는 차원까지 확장하여 격물ㆍ치지
부분에서 설명하였다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추론의 타당성을 검증하기 위해서는 치지 이후 단계인 성의와 정심에 대한 분
석이 필요하다.
3. 성의의 재해석
『대학집주』에서의 주희 해설에 의하면, 성의는 ‘마음이 발하는 바를 성실하게 하
여 스스로 속임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대학장구』<성의장>에서 다음과 같
은 진술로 이어진다.
그 뜻을 성실하게 하고자 하는 이는 악취를 싫어하고 예쁜 여자를 좋아 하듯이
스스로를 속이지 말아야 한다. 이를 자겸이라 한다. 고로 군자는 홀로 있을 때 삼
가 하여야 한다.
所謂誠其意者 毋自欺也 如惡惡臭 如好好色 此之謂自謙 故君子必身其獨也(大學章
句. 誠意章)
‘자기 스스로를 속이지 않음’을 성의’라고 하면, 성의 대한 설명은 비록 부족한 감이
든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로서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수신의 연계망 맥락에서 생각하여 보면 성의에 대한 위의 설명에는 문제가
있다. 수신의 연계망 맥락에서 보자면, 전 단계인 격물치지에서 인식한 리와 그 후의
단계인 성의의 관계가 반드시 설정되어야 한다. 리와 스스로를 속이지 않음으로서의
성의를 연결시킬 단서가 없는 것이다.
성의와 리 간의 관계 규명에 단서가 될 주희의 서술은 다음과 같다.
성은 리이다(誠是理; 朱子語類 6); 성은 리에 실함이 있음이다(誠者是實有此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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朱子語類 6); .(誠是理; 朱子語類 6); 성은 실함이 갖추어진 리이니 저절로 그리되
는 것이다(誠者實有之理; 朱子語類 6). 리는 하나이나, 실함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성이라 한다(理一也 以其實有故謂之誠; 朱子語類 6)
성에 대한 주희의 위 진술에 의하면, 성(誠)은 리이기는 하나, 치지 단계의 리보다
는 한 차원이 더 높은 리이다. 리에 실(實)함이 더한 것이 성이라는 것이다. 이를 수
신 계열망의 전단계인 격물ㆍ치지와 연결하여 설명하자면, 격물ㆍ치지를 통하여 리를
인지하고, 이 리에 실함을 더하면 실함 차원의 리인 성이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다시, ‘리에 실함을 더함’은 어떤 차원의 것인가에 대하여 생각해 보지 않
을 수 없다. ‘리에 실함을 더한다 함’은 두 종류의 가설이 있을 수 있다.
그 첫째는 인지한 리를 일상생활에 실천적으로 적용하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성은
마음 전체를 가지고 말하는 것이고, 충이란 그 마음이 일을 만나 사물에 접촉한 것으
로 말한 것이다(‘誠’字以心之全體而言 ‘忠’者以應事接物以言; 朱子語類 6)”라는 주희의
서술을 보면 이 가정은 옳지 않다. 이 진술에 의하면, 리를 일상생활에 적용하는 것은
성이 아닌 충이다. 성은 마음의 일인 것이다.
성과 리의 실함의 관계에 대한 두 번째 가설은 ‘격물치지 의하여 인지한 리는 불완
전한 것으로, 마음 차원의 리를 보충하여야 할 바가 있어 이를 보충한다’ 것이다. 다시
말해 격물ㆍ치지에 의하여 인지한 리는 격물한 사물의 리 일뿐으로, 이 사물의 리를
인간의 리로 발전시켜 그 격을 높인다는 것이다.
이 가설은 “성은 마음 전체를 가지고 말한 것”이라는 주희의 서술과 연결지어 보면
설득력이 있으며, 성이란 “스스로 속이지 않는 것”이란 주희의 해설을 근거로 보면 더
욱 설득력이 있다. 다시 말해, 성이란 스스로 속이지 않는 것이란 점에서 볼 때, 성 단
계에서는 공부의 방향이 인간 내면으로 향하였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이것은 격
물ㆍ치지에서는 공부 방향이 사물이라는 인간 외부로 향하여 있다는 점과 대비 된다.
격물ㆍ치지 단계에서 성의 단계로 넘어가는 일의 가장 큰 변화는 공부의 방향이
인간 외부에서 내부로 변하였다는 점이다. 이러한 방향 변화는 성의 단계에서 인간과
관련된 리 다시 말해 인간의 리가 본격적으로 탐구하기 시작함을 의미한다. 이 같이
성의 단계에서 공부의 방향이 바뀌어 마음과 관련된 공부가 시작되기에 주희는 『대
학장구』<성의장>에서 성의를 수신의 시작이라고 하였다. 아직은 본격적인 수신단계
라 할 수는 없지만, 그 시작이 되는 마음의 내면 탐색이 시작되어다는 것이다.
수신의 연계망에서는 성(誠)을 의(意)와 결합하여 ‘성의(誠意)’라고 하였다는 점에서
도 ‘격물치지 의하여 인지한 리는 불완전한 것으로, 마음 차원에 있어 리는 보충하여
야 할 바가 있어 이를 보충 한다’는 가설은 설득력이 있다.
격물-치지-성의-정심’의 재해석과 그 교육학적 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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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에서 ‘의’는 감성적 능력인 정(情)과 함께 인간 마음의 양대 발현 양태이다.
이 의를 주희는 여러 가지를 계산하고 비교하는 능력(意是去百般計較做底; 朱子語類
5)이라고 설명한다. 주희 성리학의 성실한 계승자인 퇴계는 주희의 이 견해를 더욱 발
전시켜 의는 의의 지속적 일관성을 말하는 지(志), 일념으로 무엇을 생각하는 협의의
의(意), 현재 순간의 생각인 염(念), 염으로 도모하는 바가 있음인 려(慮), 문자 의리에
대하여 세밀하게 논구하고 사물과 타인을 응대하는 사(思)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한
다(退溪全書 2. 答金而精), 의에 대한 주희와 퇴계의 견해를 정리하면, 성리학에 있어
서 의는 반성적 사고이다. 계측하고 분석하고, 비교하고, 따지는 일이 의인 것이다.
이 같은 반성적 사고로서의 의와 리로서의 성을 결합하자면, 성의는 격물치지의 결
과로서 인지한 리를 계측하고, 분석하고, 비교하고 따지고 하는 일이되, 그렇게 반성
적으로 사고하는 이유이자 사고하는 방향은 마음의 리에 대한 무엇을 이루는 차원이
다. 더욱 진전시켜 설명하자면, 격물치지를 통하여 인식한 사물들의 리를 인간의 마음
과 관련지어 비교하고, 분석하고, 계측하고 따지고 한 결과 인간의 리를 알게 되는 것
이 성의인 것이다.
이를 다시, ‘성은 스스로 속이지 않음’과 연결지어 설명하자면, 사물의 리를 준거로
하여 지금까지 자신의 언행을 비교하고, 분석하고, 계측하고 따지어 인간의 리를 인식
하게 되는 바, 사물의 리를 준거로 자신의 언행을 분석 반성함에 있어 그 어떤 속임
도 없어야 인간의 리를 알게 된다. 수신의 연계망에서 ‘스스로 속이지 않음’이란 인간
의 리를 인식하기 위한 철저한 자기 반성, 자기 비판을 뜻하는 것이다.
4. 정심의 재해석
수신 계열성에 있어 성의 다음 단계는 정심이다. 정심에 대하여 『대학장구』<정심
장>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수신이라 하는 것은 그 마음을 바로 함에 있는 바, 몸(身)이 화내는 바가 있으면
그 마음을 바르게 할 수 없고, 두려운 바가 있어도 그 마음을 바르게 할 수 없고,
근심하는 바가 있어도 그 마음을 바르게 할 수 없다....... 욕심이 동하고 감정이 융
성하는 그 발용의 소행으로 하여 혹 그 바름을 잃지 않을 수 없다.
所謂修身 在正其心者 身有所忿懥則不得其正 有所恐懼則不得其正 有所好樂則不得
其正 有所憂患則不得其正.....則欲動情勝 而其用之所行 或不能不失其正矣(大學章句
誠意章).
정심에 대한 주희의 위 해설은 마음의 바름을 잃을 수 있는 경우를 설명한 것이지.
교육사상연구 (제21권 제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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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바른 상태가 어떠한 상태인지에 대한 설명이 아니다. 욕심이나 감정으로 인하
여 마음은 바른 상태를 잃는다고 설명하고 있을 뿐이다.
주희는 마음이 바른 상태를 지칭할 때에는 정심보다는 도심(道心)이라는 단어를 쓴다.
인심도심설(人心道心說)의 한 축인 도심설은 ‘인심은 위태하고 도심은 미묘하니 정밀
하게 살피고 마음을 한곳으로 모아야 그 중을 잡을 수 있다(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
惟一 允執厥中)는 『서경(書經)』에 나타나 있는 순임금의 훈시에 그 근원을 둔다.
이 도심에 대하여 주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마음의 신령함에 있어서 그 지각이 리에 있는 것은 도심이요, 그 지각이 욕심에
있는 것은 인심이다.
此心之靈 其覺于理者 道心也 其覺于欲者 人心也(朱子文集 56).
지각이 귀와 눈의 욕구를 좇아가면 인심이 되고 지각이 의리를 좇아가면 곧 도
심이 된다.
知覺從耳目之欲上去 便是人心 知覺從義理上去 便是道心(朱子語類 78).
인심과 도심의 다름이 있다고 한 것은 그것이 혹은 형기의 사사로움에서 나오고
혹은 성명의 바름에서 생겨서 그 지각하는 바가 같지 않기 때문이다.
而以爲有人心道心之異者 則以其或生于形氣之私 或原于性命之正 而所以知覺者不
同(中庸章句 序).
주희의 위 진술에 의하면, 도심은 리를 중심으로, 리에 입각하여 발하는 마음의 상
태를 말한다. 다시 말해 인간의 마음은 리와 기로 구성되어 있는 바, 마음은 리를 중
심으로 발용 할 수도 있고, 기를 중심으로 발용할 수도 있다. 그리고 리가 마음의 주
도권을 쥐어, 리를 중심으로 발할 때에 마음은 인간의 리에 입각하여 발하고, 기가 마
음의 주도권을 쥐어 마음이 기를 중심으로 발할 때에 마음은 사적인 욕망이나 감정에
따라 발한다. 주희가 말하는 도심이란 마음이 리에 입각하여 리를 중심으로 발하는
상태를 말한다. 이 도심은 기가 사욕을 좇아서 발하는 마음상태인 인심과 대립한다.
사적인 욕망에 영향을 받지 않고, 리에 입각하여만 발하는 마음 상태인 도심이 곧
마음의 바른 상태 즉 정심이다. 도심과 정심은 동일한 마음 상태를 표현만 달리 한
것이다.
마음을 이루고 있는 리와 기 중에서 리가 마음의 주도권을 쥐고, 사람의 리에 입각
하여 발하기 위해서는 마음이 리를 철저하게 알아야 한다. 사람의 리뿐만 아니라, 사
물 사건의 리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의 리를 비롯하여 여러 사물 사건
각각의 리를 알아야 할 뿐만 아니라 이 리 전체를 포괄ㆍ관통하는 관계, 다시 말해
리의 전체 네트윅도 알아야 한다. 요컨대 주희가 말하는 ‘활연관통’이란 인간 및 사물
의 리를 포괄하는, 리 전체를 관통하여 아는 차원으로, 이 차원의 앎에 이르러야 도심
격물-치지-성의-정심’의 재해석과 그 교육학적 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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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태가 된다. 리에 대한 활연관통 차원의 앎이 아니면 마음이 리를 중심으로, 리에 입
각하여 발현할 수가 없는 것이다.
5. 수신 연계망의 재해석
앞 장에서 논의 한 바와 같이, 리에 대한 앎의 완성은 정심 단계에서 이루어진다.
격물 단계에서 사물을 접하고, 치지 단계에서 사물의 리를 알게 되고, 성의 단계에서
사람의 리를 알게 되고, 정심 단계에서 리의 총체적 관계를 알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논의의 결론은 격물ㆍ치지 단계에서 활연관통 차원의 앎이 이루어지고, 성
의ㆍ정심은 단지 이 앎을 실현하는 일이라는 기존의 견해와는 다르다. 성의ㆍ정심 단계
에서도 여전히 리에 대한 앎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공부는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성의ㆍ정심은 리를 실행만 하는 일이라는 견해는 격물에서 정심에 이르는 수신의
연계망을 누진적 관계가 아닌 완결 순차적 관계로 본 것에서 기인한다. 격물이 완성
되고 나면 치지가 시작되고, 치지가 완성되고 나면 성의가 시작되고, 성의가 완성되고
나면 정심이 시작된다고 보기 때문에 치지단계에서 리에 대한 인식이 완성된 후 성의
가 시작된다고 본 것이다.
격물에서 정심에 이르는 수신의 연계망은 완결 순차적 관계가 아니라 누진적 관계
이다. 격물을 기반으로 하여 치지가 이루어지고, 격물ㆍ치지를 기반으로 하여 성의가
이루어지며, 격물, 치지, 성의를 기반으로 하여 정심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격물에서 성의에 이르는 누진적 과정을 단계 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격물 단계 = 격물
치지 단계 = 격물 + 치지
성의 단계 = 격물 + 치지 + 성의
정심 단계 = 격물 + 치지 + 성의 + 정심
수신의 연계망을 위와 같은 누진적 관계로 본다면 성의 단계뿐만 아니라 활연관통
하는 정심 단계에서도 격물 활동이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다. 이에 주희는 “어느 날
활연관통 하게 되어....내 마음의 대체대용은 밝혀지지 않음이 없게 된다. 이것을 일러
격물이라” 한다고 하였다. 누적적 관계가 아닌 완결 순차적 관계라면 활연관통하는
단계를 격물이 아닌 치지라고 하여야 한다. 누진적 관계로 보자면, 활연관통이 일어나
는 단계는 그것이 치지 단계이든 정심 단계이든 간에 격물활동이 그 기반을 이루고
있다. 그러하기에 주희는 격물에서 활연관통이 일어난다고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수행의 연계망을 완결 순차적 관계로 보는 것과 누진적 관계로 보는 것 간에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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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적 전개가 달라진다.
완결 순차적 관계로 보아, 격물ㆍ치지는 앎의 일이고 성의ㆍ정심은 도덕적 실천을
하는 일로 나누어 보게 되면, 도덕적 실천에는 앎이 필수요건이 아닌 것이 된다. 도덕
적 실천에 지식이 전혀 무관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지식은 도덕적 실천에 있어 이
차적이거나, 보조적이거나, 부수적인 것에 지나지 않게 된다. 도덕 교육에서 지식은
중요치 않은 것이 되는 것이다.
이에 반해 누진적 관계로 보게 되면, 도덕적 실천에 있어서 지식은 중요한 것이 된
다. 도덕적 지식뿐만 아니라 과학적 지식 등 여타 지식에 기반을 두지 않는 도덕적
실천은 있을 수 없는 것이 된다. 지식을 갖게 하는 것에서 도덕교육의 시작되어야 하
는 것이다.
Ⅳ. 맺음말
팔조목의 전반 4개 조목인 ‘격물-치지-성의-정심’은 많은 교육학자들의 연구 주제
이었다. 교육이란 학습자로 하여금 무엇을 알게 하는 일이기 교육학자들은 성리학의
인식론에 해당하는 팔조목의 전반 4개 조목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수신의 연계망’이라 부를 수 있는 ‘격물-치지-성의-정심’의 관계를 해석하
는 전통적 견해는 완결 순차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수신 연계망의 완결 순차형 해석
은 ‘수신의 반복 진술’이라는 문제점을 가져온다. 도덕적 수양 행위가 되는 ‘성의-정
심’에 이어 ‘수신-제가-치국-평천하’ 가 이어지기 때문에 수신이 겹치게 되는 것이다.
수신의 반복 진술 문제는 수신의 연계망을 완결 순차적 관계의 것으로 해석한 것에
기인한다.
팔조목에 대한 주희의 진술을 분석하여 보면 수신의 연계망은 완결 순차적 관계가
아닌, 누진적 관계를 가진다. 격물을 기반으로 하여 치지가 이루어지고, 격물ㆍ치지를
기반으로 하여 성의가 이루어지며, 격물ㆍ치지ㆍ성의를 기반으로 하여 정심이 이루어
지는 것이다.
누진적 관계로서 수신의 연계망을 해석하면, 수신의 반복 진술 문제는 생기지 않는
다. 격물단계에서 사물 사건을 접한 후, 치지 단계에서 사물 사건의 리를 인지하고,
성의의 단계에서 사람의 리를 인지한 후, 정심 단계에서 전체 리의 네트윅을 알게 된
다음 수신이 이루어진다. 리에 대한 탐구는 정심 단계까지 이어지며, 정심 단계에 가
서야 리에 대한 활연관통 차원의 완전한 인식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격물-치지-성의-정심’의 재해석과 그 교육학적 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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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진적 관계로서 수신의 연계망을 해석하면, 수행의 연계망을 완결 순차적 관계로
해석할 때에 비하여 도덕교육에서 지식은 더욱 중요해진다. 도덕적 실천은 도덕적 지
식뿐만 아니라 일반적 지식도 포함된 전체 지식의 기반 위에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덕교육은 지식을 갖게 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교육사상연구 (제21권 제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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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大學章句.
大學集註.
朱子大全.
朱子文集.
朱子語類.
中庸章句.
退溪全書.
김교빈(1985). 본체론과 심성론을 통해 본 주자의 격물치지 이해, 동양철학 연구, 제6집.
김인회ㆍ정순목(1979). 교육의 역사적 기초. 서울 : 정익사.
정순목(1981). 성리학적 인간이해와 한국인의 교육적 전통. 한국교육학회 교육사ㆍ교
육철학 연구회. 현대교육철학의 제 문제. 서울 : 세영사.
大濱浩(1983). 朱子の哲學, 東京 : 東京大出版會.
友枝龍太郞(昭和44). 朱子の思想形成, 東京: 春秋社.
張起鈞ㆍ吳怡(1984). 中國哲學史. 송하경ㆍ오종일 역. 중국철학사. 서울 : 일지사.
□ 원고접수 : 2007년 11월 10일 / 수정완료 : 12월 13 / 게재승인 : 12월 16일
□ 목영해 : 신라대학교 교수. 연구관심 분야는 동양사상과 최근 교육사상을 접목한 새
교육 패러다임 창출. yhmok@silla.ac.kr
격물-치지-성의-정심’의 재해석과 그 교육학적 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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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Re-reading on the four categories of the
'Ta-hsueh(大學)'
and it'
s educational
implications
Mok, Young Hai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re-definition to the Four Categories of the
'Ta-hsueh(大學).
There is recently lots of educational study on the Four Categories, because the
Four Categories are practical principles of the neo-Confucianism education.
The old definitions of the Four Categories are as follows:
First half of the four categories, 'Ke wu chih chih(格物-致知)' is a theory for a
knowing. The investigation of things is a performance of reaching and study on a
matter, and the extension of knowledge is one of the recognizing on the Li of the
matter.
Second half of the Four Categories, 'Ch'eng ui cheng hsin(誠意-正心)' is a
theory for a doing. The Ch'eng ui cheng hsin is only an earnest performance of
the Li.
But the old definitions have big problem such as a double description in the
Eight Categories (八條目) of the Ta-hsueh .
The new definitions of the Four Categories are as follows:
The Ch'eng ui cheng hsin have not a no relation with a research into the Li,
but have a relation. The Ch'eng ui is a performance that based upon the results
of the Ke wu chih chih, and is a research into the Li of human. And the cheng
hsin is a accomplishment of the Great Knowing(豁然貫通). The Ch'eng ui cheng
hsin is a knowing centered activity.
key words : the Four Categories. Ke wu chih chih, Ch'eng ui cheng hs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