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우리의 빛!
살다보면 특별하게 기억되는 날들이 있습니다.
처음으로 뭔가 시작한 날이라던가, 개인적인 기념일이라던가, 충격적인 일이 있었던 날이라던가...
전례력으로 마지막 주!
올 한해가 이렇게 저물어 가며 저에게도 특별하게 기억되는 몇몇 날들이 있네요.
오늘도 그 중의 하루입니다.
저와 친분이 있으신 분은 올 한해 저와 제 가족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아시겠지만...
1년전 이맘때 매일 저녁 아산병원에 입원하신 엄마를 만나러 갔습니다.
연속극에서나 보던 상황.
가족이 갑자기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는데 의사가 보호자만 부릅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사진들을 보여주며 담담히 말합니다.
'말기암입니다. 너무 많이 전이되서 수술 불가능합니다. 6개월 사신다고 생각하세요.'
한걸음 떨어져서 보던 드라마 속 주인공이 내가 되었구나,
레지던트는 이렇게 심각한 이야기를 참 무미건조하게 전달하는구나 하던 그 날의 느낌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아무 의미 없는 날에 불과하던 11월 25일은(어느새 1년이 지나 오늘이 되었네요.)
엄마가 과연 6개월 후인 5월 25일까지 버티실 수 있을까 하는 기준점이 되었고
5월 25일 이후의 삶은 이 선물이 언제까지 계속될까 감사하면서도 노심초사하는 하루하루였네요.
막바지에 이르러 엄마는 큰 딸인 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로 표현은 못하시면서
온 존재로 그 사랑을 표현하시려고 제 생일을 함께 해주시고 다음날 아침 하느님 품에 안기셨어요.
생일날이면 의례껏 먹던 생일 케익조차 생각할 겨를 없는 상황이었지만,
엄마가 저한테 생일축하한다는 한마디 못 해주셨지만,
수녀원에 들어온 이후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엄마와 함께 보낸 제 생애 가장 기억에 남는 생일이 되었네요.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내고 나니 각자 자기 자리를 지키며 하루하루 산다는 것은
결코 평범함이 아닌 기적이라는 말을 실감합니다.
늘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이 갑자기 그 삶의 자리에서 벗어나게 되는 건
상상만으로도 왠지 가슴 한켠이 서늘해지는 느낌이에요.
그래서 대놓고 이야기는 못하고
누군가를 떠올릴때마다, 카톡에 연결된 사람들을 볼때마다
'거기 그 자리에서 건강하게 잘 있어줘요, 하느님 지켜 주세요.' 하고 기도하게 됩니다.
저 또한 누군가의 기도와 하느님 은총에 힘입어 이렇게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거겠지요.
전례력으로는 곧 새해.
달력으로는 아직 한달이 더 남긴 했지만 이래저래 슬슬 한해 정리를 할 때가 되었네요.
'광대한 우주 그리고 무한한 시간. 이 속에서 같은 행성, 같은 시대를 당신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기뻐합니다.'
제 메일에 서명으로 따라가는 글입니다.
저와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든 없든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올해도 지금 그 자리에서 잘 있어줘서 참 고맙습니다.
새해에도 그 삶의 자리에서 건강하게, 하느님과 함께 그 여정 계속 걸어나가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