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은 얼마나 진실에 가까운가?
해로(偕老), 죽음이 그들을 갈라놓기까지 부부가 평생을 함께 한다는 축복의 의미로 쓰이는 이 말이 사실은, 결혼의 약속을 저버린 배신남(背信男)을 원망하는 어느 여인의 한 맺힌 노래에서 유래했음을 아는 이는 얼마나 될까? 거꾸로 금실이 좋지 않아 이혼지경에 이르렀음을 뜻하는 파경(破鏡)은 사실, 잉꼬부부가 난리 통에 어쩔 수 없이 서로 헤어지게 되자 기필코 다시 만날 것을 언약했던 징표였다니. 원래의 본뜻과는 상관없이, 아니, 아예 정반대로 쓰이는 말들은 어디 여기에서 언급한 해로(偕老)와 파경(破鏡) 뿐이랴. 그러나 어떤 낱말이 원래의 뜻과 달리 쓰인다 해서 사회적으로 해로울 게 없기에, 그리고 언어와 용법은 사회적 관습이기에 굳이 이들을 바로잡는 수고를 할 필요는 없을 터이다.
그러나 우리가 참이라 믿는 일반상식이 사실은 진실과는 거리가 먼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어떨까? 우리는 이미 역사적 경험을 통해 거짓 상식 또는 사회에 널리 유포된 거짓 지식이 사회 전반에 끼쳤던 엄청난 파장과 해악을 익히 알고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볼까? ‘피타고라스 정리’로 유명하고 수학(數學)의 아버지로 불리는 피타고라스는 ‘모든 자연현상은 유리수(정수와 분수)로 표현된다’는 철학을 너무도 확신했기에 오늘날에는 중학생도 아는 무리수(無理數)의 존재를 아예 인정하지 않았으며, 를 가지고 놀던(?) 자신의 제자 히파소스(Hippasus)를 물속에 던져 익살시켰다 하니 놀랍기만 하다. 그리고 이미들 알고 있듯이 서양의 중세시대에는 지구가 둥글고 태양 주변을 도는 여러 행성 중의 하나라고 말하는 것은 당대 최고 지성인들이라 할 성직자들에게 목숨을 그냥 내주는 모험이었다. (그런데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말은 우리의 상식과 달리 갈릴레오가 전혀 한 적이 없다)
지능지수가 높고 가방끈 길이가 길면 잘못된 상식의 오류에 빠질 가능성이 낮을까? 그렇지 않다. 어떤 면에서 보면, 문제의 본질은 오류가 존재한다는 사실 보다는 놀라울 정도로 오랫동안 오류들이 사라지지 않고 널리 확산되어 있다는 점인데, 그 이면에는 어떤 이유에서든 지식인, 사회지도층의 역할이 작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위에서 적시한 사례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다양한 대중접근수단을 보유하고 있으면서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식인, 법률가, 정치가들의 ‘구태의연한 지혜(conventional wisdom)’는 그래서 사회적으로 더욱 위험하다. 이들은 자신들의 주장과 믿음을 ‘상식’으로 포장하여 널리 유포하는데 적극적이고, 때로는 자기들 ‘코드’와 다른 의견에 대해 흑백논리적 공격을 서슴지 않기도 하며, 결과적으로는 자신이 속한 사회의 문명과 역사적 발전을 가로막는 역할을 자임하기도 하니 말이다.
대표적 사례는 유럽에서 있었던 ‘마녀사냥’의 광풍이다. 마녀사냥은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달리 중세 암흑기(Dark Age)의 창작품이 아니다. 1487년 계몽시대의 시작과 거의 동시에 도미니크 수도회 소속의 수도사가 마녀에 대해 쓴 책이 나오면서 마녀의 존재는 과학적인 사실처럼 받아들여져 전 유럽으로 확산되었으며, 중세가 끝난 지 100년이 지난 시점에서 마녀화형은 국가의 과제이자 시민의 의무로 승화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사실은 마녀박해를 적극 주장한 사람들은 맹신자나 얼간이가 아니라 과학자, 대학교수, 명망 높은 신학자, 철학자, 법률가들이었다는 사실이다.
이 모두가 옛날 일, 지나간 일이라고? 開明天地 民主化의 지금 시대에 그런 일은 결단코 재발하지 않을 거라고? 지식시장이 효율적이라서 오류, 거짓 지식은 금방 도태, 퇴출될 거라고? 글쎄, 인터넷이 보편화됨에 따라 엄청난 양의 지식과 정보를 쉽고 빠르고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기에 그렇게 이야기 할 수도 있겠다. 맞습니다, 맞고요 - 하지만 인터넷의 바다에 떠도는 정보들이 어디 참 정보, 참 지식뿐이랴. 지식, 정보의 홍수 속에 眞僞區別이 더욱 어려운 게 오늘의 시대모습이 아닐까? 그래서였을까? 요즈음 나는 참 지식, 사실을 알리기 위해 출간된 책들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된다. 오늘 소개하는 책-『상식의 오류 사전』 외에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이재운 편저, 책이 있는 마을),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열린 책들) 등이 그러한 서적들이다.
이 중에서 전부 3권으로 엮어진 『상식의 오류 사전』은 일독을 권할 만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각자 ‘나는 상식의 오류로부터 얼마만큼 자유로운가’를 자가진단해보는 것도 재미있는 독서법일 게다. 이 책은 여러 가지 장점이 있다. 몇 가지를 지적하면 첫째, 이 책은 남녀노소, 전문분야, 가방끈 길이와 관계없이 읽는 이의 흥미를 흡인할 만한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굳이 예를 들자면,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은 특히 중소기업에 의해 이루어진다, 19세기는 자유무역의 전성시대였다, 경제성장은 환경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이나 믿음 등이 오류임을 지적하는 대목은 우리 경제학자들의 눈길을 끄는 부분이다. 둘째, 이 책은 다양한 주제를 조금씩 다루는 일종의 다품종소량 생산방식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주제별 깊이가 염려될 수 있으나 이 책은 일반적인 서적과 달리 주제마다 참고문헌을 충실히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독자가 추가적인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면 오류를 주장하는 이 책의 내용이 외려 오류일 가능성은 없을까를 스스로 검증해볼 수 있으리라. 그리고 셋째, 이 책은 권당 300쪽이 넘지만 약 3시간이면 독파가 가능하다. 따라서 경제적인 독서를 즐기는 이들은 굳이 지갑을 열어 책을 구입하지 않고도 도서관에서 대출해서 읽기에 충분하므로 (출판사 이익을 희생시키면서) 독서의 효용을 더욱더 높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끝으로 혹시나 나의 이 평론 때문에 『상식의 오류 사전』을 읽는 분이 있다면 장난삼아 문제 하나를 드리고 싶다. 앞서 몇 가지 사례를 들었는데, 이 중에서 『상식의 오류 사전』을 끝까지 읽어도 나오지 않는 이야기는? 아니, 거꾸로 하는 편이 쉽겠다. ‘위 사례 중 책에서 퍼온 이야기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