칡 줄기 삼 형제
-안영식-
햇볕이 따뜻한 봄날, 깊은 산골 작은 절집 뒷산에 칡 뿌리에서 새싹 삼형제가 태어났어요.
부처님께서 새싹 삼형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아름다운 이 땅에 태어난 것을 축하한다. 세상 많은 풀들 중에서 너희들은 다른 풀보다 빨리 크고 튼튼하고 힘이 세단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힘이 세다고 남을 괴롭히지 말고 빨리 큰다고 남을 짓밟고 올라가지 말거라. 내 말을 명심하고 지킨다면 내년 봄에 다시 새싹으로 태어날 수 있도록 해 주겠다. 이제부터는 뿌리에서 멀리 떠나서 살아야 하니, 부디 다른 풀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쓸모 있는 줄기가 되거라."
"예! 알겠습니다."
새싹 삼형제는 줄기가 되어 뿌리를 떠났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이 가던 첫째가 말했어요.
"나는 힘도 세고 빨리크니까, 세상에서 제일 높은 곳으로 올라가서 살 거야. 그리고 나는 저 많은 풀 중에서 대장이 될 거야. 키 작은 풀들 하고는 놀지도 않을 거야. 높은 곳에 올라가서 나 보다 키가 작은 풀이나 나무들을 내려다보며 살 거야."
부처님의 말씀을 까맣게 잊어버린 첫째는 사방을 두리번 거리면서 높은 곳을 찾기 시작했어요.
둘째가 말했어요.
"나는 이 멋진 세상에 신나게 놀기만 할 거야. 내가 왜 남을 위해 살아야 돼? 놀기도 바쁜데."
둘째도 부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어요.
둘째는 놀이터를 찾아서 넝쿨이 되어 나무 위로 올라갔어요.
이 나무 저 나무 옮겨 다니면서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더 많은 놀이터를 만들어 매일매일 놀기만 했어요.
셋째가 말했어요
"나는 다른 풀들과 어울려 살 거야. 착한 일을 많이 하여 부처님 말씀처럼 내년 봄에 다시 태어나면, 못다한 착한 일을 하며 남을 위해 봉사하며 함께 살거야.
셋째는 좋은 일을 찾아서 양지바른 언덕으로 줄기를 뻗어 올라갔어요.
여름이 되었어요.
첫째는 높은 곳을 찾아다니다가, 어느 전봇대 옆에 까지 오게 되었어요.
전봇대를 잡고 있는 튼튼한 줄에는 벌써 나팔꽃 넝쿨이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야, 저리 비켜!"
첫째는 자기보다 약한 나팔꽃 넝쿨을 밀쳐내고 그 위로 넝쿨이 되어 올라가기 시작했어요.
전깃줄을 타고 가다가, 전깃줄에 몸을 칭칭 감고 아래를 내려다 보았어요.
모든 풀들이 부러운 듯이 쳐다보는 것 같았어요.
높은 곳을 쳐다보는 풀들에게 어깨를 으쓱 대면서 소리쳤어요.
"모두들 들어라! 내가 가장 높은 곳에 있으니 오늘부터 내가 대장이다!"
어느 날 첫째에게 고라니가 찾아왔어요.
"배가 무척 고픈데 칡 잎사귀 몇 개만 줄 수 없겠니?"
첫째는 자기 옆에 있는 나팔꽃 넝쿨을 가리키면서 말했어요.
"저것 뜯어먹어."
나팔꽃 넝쿨을 자기 몸 인양 가리켰어요.
얼마 뒤엔 산토끼가 찾아왔어요.
산토끼도 배가 고프니 칡 잎사귀 몇 개만 달라고 하였어요.
이번에는 자기 옆에서 성가시게 자라고 있는 싸리나무를 가리키면서,
"저것 갉아먹어. 내가 키우는 거야."
첫째는 누렇게 말라서 떨어지는 자기 잎사귀 한 잎도 주지 않았습니다.
나무 위에서 놀기만 하는 둘째는 매일매일이 즐거웠어요.
처음에는 나무들에게 조금 미안했지만 매일 놀다 보니 미안함도 사라졌어요.
놀이터가 되어버린 나무들을 괴롭혔어요.
목을 감아 우듬지를 깔고 앉기도 하고, 나무들을 줄기로 감아 더 넓은 놀이터를 만들어 갔어요.
하루도 나무들을 괴롭히지 않으면 심심해서 재미가 없었어요.
나무 밑에서 자라고 있는 작은 풀들은 괴로워했어요.
넓은 잎사귀로 햇님을 막아서, 낮에도 칡넝쿨 밑에는 밤처럼 캄캄해졌어요.
작은 풀들이 모두 둘째를 피해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어요.
둘째에게도 배가 고픈 고라니가 찾아왔지만, 노는데 정신이 없는 둘째는 고라니 말을 못 들은 척하고 놀기만 했어요.
배고픈 토끼가 찾아와도 본체 만체 놀기만 했어요.
언덕을 넘고 산비탈을 지나가던 셋째에게 고라니가 찾아왔어요.
"셋째야 배가 고픈데 먹을 것 좀 없니?"
셋째는 자신의 잎사귀를 고라니에게 주었어요.
고라니는 잎사귀를 먹고 고맙다면서 긴다리로 껑충껑충 뛰어갔어요.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어요.
고라니에게 잎사귀를 주고 나자 더 빨리 키가 커졌어요.
잠시 후 산토끼가 배가 고프다고 찾아왔어요.
고라니에게 잎을 다 내어준 셋째는 이번에는 연한 줄기를 줬어요.
산토끼는 연한 칡 줄기를 잘라먹고 깡총깡총 뛰어가며 사라졌어요.
셋째는 산토끼가 줄기를 잘라먹을 때, 아플까봐 겁이 나서 땅을 꼭 움켜잡고 있었어요.
그런데 더 이상한 일이 벌어졌어요.
산토끼가 잘라먹은 줄기에서 새로운 새싹이 두 개나 태어났어요.
땅을 꼭 잡았던 자리에서는 뿌리가 내렸어요.
이제는 외롭지 않게 되었어요.
새로 태어난 줄기는 더 빨리 자라고 뿌리는 땅속으로 깊이깊이 내려갔어요.
더 많은 잎과 줄기를 고라니와 산토끼에게 줄 수 있어 행복했어요.
찬바람부는 가을이 되었어요.
제일 높은 곳까지 올라간 첫째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었어요.
추워서 오들오들 떨면서 전봇대에서 내려가려 했지만, 올라가는 법만 배웠기에 내려갈 수가 없었어요.
겨울이 오면 높은 전봇대 위에서 벌벌 떨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후회해도 소용이 없었어요.
나무 위에서 놀기만 하던 둘째에게도 가을은 찾아왔어요.
단풍놀이를 나온 사람들이 나무를 휘감은 칡넝쿨을 보고 화가 났어요.
작년 가을에는 빨갛게 물들어 예쁘던 단풍나무가 칡넝쿨이 나무를 감아서 다 버려놓았다고
사람들은 낫으로 칡넝쿨을 베어버렸어요.
칡넝쿨을 벗은 나무들은 이제야 살았다고 환호성을 질렀어요.
여름내 고라니와 토끼에게 잎과 줄기를 내주던 셋째는 가을이 와도 걱정이 없었어요.
여름에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땅속의 따뜻한 온기를 온몸으로 느끼면서 흰 눈이 내리는 겨울이 찾아와도 걱정 없이 내년 봄을 맞이 할 수 있기 때문이었지요.
부처님 말씀을 새기면서 지내온 셋째는 포근한 겨울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