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선용 시인!
2015년 우리시를 통하여 등단했다. 현재 월간 “우리시” 주간을 맡고 있다.
전업시인이다. 첫 시집 “ 뭔 말인지 알제” 이후 이번에 두 번째 시집이
나왔다. 전편 72편의 시편이 수록되었다.
「지금, 환승 중입니다 / 도서출판 움 2019」
2)
시집을 열면 때는 봄, 벚꽃이 활짝 피었다가 어느새 “버찌”가 되어 떨어지고
있습니다. 달콤한 "버찌"가 이후 시편을 밝고 긍정적으로 이끌어 줍니다
“버찌”는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시인의 메시지입니다.
“벚꽃이 낙하하고 얼마 뒤 버찌가 떨어졌다// 말하자면 벚꽃은 전조증상/
팔랑개비 같은 꽃잎은 쓸려갔지만/ 버찌는 콘크리트 바닥에 할 말을 거뭇
거뭇 남겼다// 그들만의 언어로 보도블록에 눌러앉은 종족의 유서들 /
스타카토같이 찍힌 무성한 말 줄임/ 대를 잇는 증표다// 잘 살아라, //
아버지가 남긴 호흡도 / 내게 거뭇거뭇 남았다. (“버찌” 전문)
사업에 실패하고 일용노동자로 사는 시인은 “잘 살아라”는 아버지의 유언
을 생각하며 지난 삶을 성찰하며 삽니다 그것은 한때 뜬구름처럼 살았던
때에 연유합니다.
“ 한때 꿈을 즐겨 먹던 때가 있었다 / 과녁을 벗어난 화살이 구름을 관통
하면서/ 산재된 죄들이 유성으로 진다// 구름의 부작용은 그을음, / 검정
은 비참하거나 비겁한 색깔이므로 / 별이 없는 하늘은 우울했다/ 검정을
박피하는데 걸린 오류의 시간들/ 철들지 않은 무엄한 구름은 구름일뿐/
움켜쥐지는 못했다.” (“뜬구름” 부분)
사업상 제출했던 “백지수표” 그 수표 한 장이 자신의 목을 겨누고 있습니다.
“백지 한 장의 무게가 천근만근인 것을, / 남자가 함부로 내돌리지 말아야
할 것은/ 아랫도리만 아닌 것을, / 백지에 배설한 서명이 핏대 올릴 때/
소변금지 가위는 내게 목을 겨누었다(“백지수표”부분)
하여 그는 별달린 전과자가 됩니다.
“ 별이 소낙비처럼 내리는 꿈을 꿉니다/ 파장이 클수록 정열적인 빛은 기가
급/ 똥별 몇 개를 단 나는 / 別달린 전과자입니다. ” (“전과자” 부분)
수감생활을 끝낸 그의 인생은 “이제 상종칠 일만 남았다고,/ 겨울이 너무 길
다고 속옷을 껴입을 때/ 죄의 신열은 우상향했다// 이자를 내기만 했지 붙기는
처음 / 바닥을 쳐 본 사람만 아는 영치금 계좌에서 / 별일이 생겼다.” (“우상향”
부분) 며 바닥까지 떨어졌던 삶에서 새로운 희망을 가져봅니다. 그때의 마음이
그를 시인으로 이끌었나 봅니다.
시인은 지난 삶을 반성하면서 자신을 용서하고 가난한 이와 연대하며 기도를
바침니다.
“ 노곤한 전철이 한강을 건널 때/ 승객 머리가 인형처럼 흔들렸다/ 합정역에서
한 무리 졸음이 쓸려나가고 미쳐/ 빠져나가지 못한 잠들은 회개의 강을 건넌다/
/ 집도 날리고 풍비박산 난 살림/못 잤던 잠을 잘게 토막 내고 있는 수면, /
조곤조곤 밟고 지나가는 외판원 호객이 /현처럼 들리는데, 자면서도 깨어 있는
생각/ 반성은 큰 소릴로 외쳐야 하는구나,/ 죽비처럼 내리치는 쇠바퀴 소음/
레일에 버무려지는 용서가 귓불에 쌓여간다/ 기도도 더 웅숭깊어지고 있다.”
(“반성의 계절” 부분)
그는 몸뚱이가 유일한 재산, 새벽 일력시장에서 하루를 팔아서 호구를 책임지는
일용노동자지만 시인에게는 일터와 힘든 노동이 시의 원천이 됩니다.
" 별이 석류알처럼 흩어지는 새벽은 도때기시장이다/ 역기 같은 오늘이 바닥
으로 가라앉을 때 나는 / 너무 가벼워서 구름처럼 떠다녔다.//죄인도 아니면서
고개 떨군 반성의 시간 // 인력사무소에서 호명하는 이름 사이에/ 싸늘한
눈치가 허공을 빠져나가고 / 흑싸리껍질 무등록 이름, /묵직해졌다. / 타인에게
불리는 이름이 닻 같아서 / 머리 숙이고 개처럼 정박하고 있는 것이다.
( "호명" 부분)
그러나 시인의 삶은 늘 긍정입니다. 시인은 힘든 세상을 바꿔 타고 아름다운 세상
으로의 “환승”을 꿈꿉니다. “우상향” 되는 희망이 있는 한 그의 길은 이제
순탄할 뿐입니다.
“ 암울한 시간이 동굴처럼 막막해서 / 시계부속이 오류를 일으키어 째깍거립
니다 //나는 가고 너는 오는 다리 위에서 / 고독이야말로 죽기 좋은 명분/ 가장
어둡고 밝은 교차로 0시/ 도시가 벚꽃처럼 집니다 // 밝아올 아침은 흐드러진
꽃 따위와 상관없어/ 어제까지 막장 드라마를 보았고/ 클라이맥스가 뻔해서
슬프게 웃었습니다// 소주 둬 병을 들이켠 민낯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기척 없이
다가온 호명에 고개를 숙입니다/ 안온한 죽음을 부르는 꽃비가 계절을 덮을 때
// 짐승이던 내가 / 비로소 사람 말을 합니다 / 나는 이젠, / 순탄할 뿐입니다.“
(""환승" 전문)
이제 시인은 백석을 그리며 한층 더 높은 “별別이 빛나는” 사랑을 꿈꿉니다.
“ 나타샤를 태운 흰 당나귀는 길상사로 갔고 나는/ 백석역에서 전철을 기다리다가/
자야같은 그대를 그리다가/ 뜨문뜨문 한숨을 풀어놓다가 / 못내 벌건 대낮에
술잔을 듭니다 // 사랑이 무슨 죄랴 / 술잔에 찰랑대는 별무리/ 오지않을 자야
같은 그대라서/ 백석역에서 마지막 전철을 기다리다가 / 처음처럼 외로움을
곱씹다가 // 괜찮다, 괜찮다 하는데도 / 코끝은 자꾸 찡해집니다
(“별別이 빛나는” 부분)
시인은 원래부터 따뜻한 사람이었습니다. 남을 배려하며 사는게 몸에 밴 사람이었
습니다. 그것은 “정화수를 놓고 빌어주고”( "뜬구름") , “이렇게 살다가면 된다“고
흔들리는 자신을 꼭 잡아주는 바지랑대 어머니 (" 봄날의 옥상" ) 가 계시고,
푹신하고 따뜻한 아버지와의 추억에서 연유합니다. ("오리털 외투")
“ 뭉텅이 눈이 골목길을 지우고 있다 / 어머니가 드나들다 미끄러질까 봐
현관을 쓸고 나니/ 이층 주인집 계단이 눈에 밟힌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쓸고 돌아서니 / 옆집 독거 할머니가 눈에 밟혀/ 대문까지 길을
낸다/ 눈은 계속 내려 쓸었던 길을 지우고 / 술 한잔하고 귀가하는
홀아비가 눈에 밟혀/ 골목 입구까지 쓴다 / 무작정 내리는 눈은 내 배려를
지우고 / 내 눈은 다시 엄마를 밟고 이층집 주인을 밟고 / 독거할머니를
밟고 홀아비를 밟는다/ 밟고 돌아서면 없어지는 길/ 눈에 밟히는 것들은
눈 시리고 / 길을 지우는 눈은 하염없이 나를 / 밟고 있다. ”
( “눈을 밟거나 눈에 밟히거나” 전문)
남을 배려하는 마음은 고통받는 사람들을 결코 외면하지 못합니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시 “ 늙은 소녀”를 쓰며 그분들과 마음으로
연대합니다.
“ 기억의 파편에 맞은 소녀가 죽었다/ 골절된 수줍음, / 봄이 오기도 전,
동백처럼 떨어진 유언은/ 눈처럼 녹아내리고 소녀 젖가슴을 할퀴던
섬나라 이빨에 대해 / 결빙된 사무침은 게놈으로 남았다/ 반성은 없고
변명만 늘어놓은 섬의 족적/ 지우려야 지울 수 없는 치욕은/ 결빙된
상여가로 구전될 것이다/ 몇 남지 않은 소녀가 풀피리처럼 울고/ 구천을
헤메는 소녀는 지금, / 섬을 주저앉히기 위해/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늙은 소녀“ 부분)
시인은 "우리" 라는 편협함을 넘어서 인류 보편적 인권으로 시야를 넓힙니다.
위안부할머니와 베트남 전쟁에서 우리나라 군인들이 저질렀던 반인권적
사건을 연계하며 "월남쌀국수" 에서 우리나라의 책임문제를 거론합니다.
“ 살이 타들어 간 한 그릇 쌀국수에/ 덤으로 강간의 시절을 포장해 왔다/
육수에서 풍기는 고수 향기가 향수만은 아닐 듯/ 매운 핏물에 학살이 올려진
고명/ 한 그릇의 국수가 이렇게 뜨거울 수가,/ 늙은 소녀가 죽었다는 뉴스가
냅킨처럼 뽑혀 나간다.“ ( ”월남쌀국수“부분)
시가 서정성만 표현하여 아름답기만 하다면 감동이 지속 되겠습니까?
서정성 있는 시가 사람을 행복하게 하듯이 세상의 부조리와 불평등에 대한
비판, 그리고 따뜻한 연대가 시의 또 다른 역할이며 그것이 시와 시인이
존재하는 이유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에필로그에서는 전선용시인의 시론을 읽을 수 있습니다. 시에 대한 시인의
생각이 뚜렷합니다.
「“시란 무엇인가”에 대해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첫째, 詩는 經이다.
"詩자를 분해하면 말씀 ‘言’과 절 ‘寺’ 자로 나뉜다. 그렇다면 시는 절에서
나오는 말로 해석할 수 있는데 이는 곧 經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詩를 쓰는 시인은 구도자라고 명명해도 될 법한 이유가
되겠다." 구도자인 시인은 언제나 글과 행동이 일치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 詩는 발명품이다.
"사물에 대하여 새로운 존재 가치를 부여하는 작업, 시인이 발명가 일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예술가는 기본적으로 혁명가적 기질을 타고 난다.
이유는 모든 예술 행위는 창조이므로 현실을 타파하는데 그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 “에필로그” 부분)
3)
요즘 세태에서 시 쓰기를 직업으로 삼고 사는 전업 시인들을 나는 세상에
보물 같은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하루 벌어 하루를 살기 힘든 현실에서도
오직 시에 투신하며 사는 전업 시인, 그를 청빈낙도를 사는 현대의 선비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요?
내가 기억하는 전업 시인들, 박남준, 이문재, 함민복, 송경동, 이원규,
황인숙, 김신용, 등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시와 삶이 하나인 사람들입니다.
전선용 시인! 그도 전업 시인 입니다. 그에게 시는 經이요 철학이며 혁명이
됩니다. 하여 그는 시와 삶이 일치함을 지향합니다. 그의 삶이 진정한 시인의
여정이기를 기원합니다.
무엇보다도 이 시집을 읽고 많은 독자들이 위안을 받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은 내가 사서 읽는 한 권의 시집이 시인에게도 큰 격려가 되기
때문입니다!!
첫댓글 진선용 시가 그립네요
오늘 서점에 나가봐야 될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시집 한 권이 시인에게는 큰 힘이 됩니다.
@예인 늘 긴장하고 살아야하는 사회에서 따뜻하고 착한 가슴을 가진 시인은 그런 시를 쓰시겠지요
예인님, 서늘한 가을 날씨네요
오늘 남은 하루 행복하세요
떨어져 밟힌 버찌처럼 거뭇거뭇한 날들입니다모셔가서 공유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