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계절은 낭요한 빛이 쏟아지며 꽃잎이 휘몰아 치는 장밋빛을 거부하고 주위가 짙은 곳만을 거닐고만 있으니 내게는 애초부터 봄이 없다.
내게 봄이라는 계절은 싱그러운 봄햇살에 비춰진 아름다운 백금색머리를 단번에 잘라버리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꽃과 태양이 함께 공존하는 것이 아닌 따뜻하다 못해 이 곳만을 쬐는 뜨거운 햇살엔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계절이니.
설령 그 곳에 네가 꽃을 피우더라도
그 꽃은아무런 향기도 간직하지 못한 채 쓸쓸히 죽어가는 쓸모없는 종이꽃일 뿐이다.
그래서인지,
이곳에는 나비가 단 한마리도 지나가지 않는다.
- 나비잠,
숨이 가빠져왔다. 또렷했던 초점이 점차 흐려지는 듯 하더니 눈커풀이 무거워져 버렸다.
그 사고는, 단지 순간적인 사고일 뿐이었다.
온 몸이 고통으로 뒤덮이는 듯한 강한 느낌을 마지막으로 나는 죽었다. 그 사고 회로를 멈춘 채, 궤도를 잃은 채로 한없이 빙빙 돌 듯이 나는 내 날개는 찢어져버렸다.
"…뭐라고요?"
그 여자의 한 마디로 내 안의 감각이모두 깨어나는 듯 싶었다. 나는 푹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이게… 이게, 어떻게 된 건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단순한 교통사고일 뿐인데……"
그 후로 어디서부턴가 기억이 없어져 버렸다. 혼곤한 머리 속 안에서 정신을 차려보니 내 손은 그 여자의 손에 의해 병원 밖으로 이끌려 나가고 있었다. 인생이라는 영화안에 필름이 끊겨서 출력된다. 그 끊긴 필름은 분명 내가 찍은 것인데 다신 들여다 볼 수 없다.
"앞으로 쭉, 병원에서 생활하도록 해. 내 인생에 발 들일 생각 하지 말고."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발을 서둘러 옮겼다. 나를 붙잡던 그 여자의 손이 떼어져 나가자마자 나는 곧 상황을 파악했다. 이제 혼자라는 생각에 내 심장은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날개가 찢겨진 나비라도 자신의 상황 쯤은 안다. 궤도 밖으로 나가버린 그 나비는 정신을 차렸을 때 자신이 혼자라는 것을 뒤늦게 알아버리니까. 필름이 끊긴 기억이지만 주름진 피부를 짙은 화장으로 덮어 버린 그 여자의 얼굴에서부터 풍겨오는 화장품 냄새가 왠지 모르게 생소하지 않았다.
그 여자가 떠난 뒤로 몇 분이 지났는지, 몇 시간이 지났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꽤나 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어떻게든 되겠다 싶었다. 눈이 자꾸만 감겨버리는 바람에 병원 입구 앞 벤치에 누운 채 맑은 하늘을 응시했다. 아직 따뜻한 오후였다. 몸은 전혀 추워하지 않았다.
"…이고, 앞으로 잘 부탁해요. 구헌제씨."
갑자기 들려오는 내 이름에 흐릿했던 눈에 갑작스럽게 초점이 맞춰졌다. 또 필름이 끊긴건가 싶었다. 고개를 드니 왠 갈색 머리 여자가 내 시야를 메우고 있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낯선 인물이었다.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누워있던 침대의 가장자리로 뒷걸음질 치자 왠지 모르게 옆에 놓여 있던 유리잔에게 시선이 가버렸다. 심장이 다시 미친듯이 뛰었다. 숨이 가빠지자 한 쪽손으로, 그것을 꽉 쥔 채로 그녀를 향해 던졌다. 그녀의 바로 앞에 그것이 부서져 내려 버렸고 바닥에 떨어진 유리잔은 산산조각이 났다.
나는 그제서야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꺼져."
그러나 그녀는 처음 내게 보였던 표정과 다를 바 없이 입꼬리를 올린 채로 다가왔다.
"…다가오지 마."
"으으음, 우리 인사부터 할까요?"
찢어진 날개를 소유한 채 낯선 궤도를 도는 나비는 다른 궤도를 도는 모든 나비들의 저 표정, 입꼬리 모양, 눈매 모두가 그저 낯설 뿐일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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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어린 나이로 감정을 잊어버린 구헌제와 담당 주치의 레지던트인 김정연의 이야기.
그리고 감정 하나씩, 하나씩 천천히 알아가며 성장하는 헌제의 이야기! 기대해주시고 댓글로도 많이 응원해주세요 ㅠㅠ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ヽ(•̀ω•́ )ゝ✧ (1화 아니구.. 아직 프롤로그에요..ㅠㅅ)
첫댓글 글 감사합니다
잘보겠습니당!!!
즐감해요
글 잘 읽었어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