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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차에 탄 채 어디론가 가고 있다. 아무도 그 ‘어디론가’를 모르는 게 문제지만...
아까부터 계속 소리를 질러대던 전아라가 다시금 목청을 높였다.
“너 별 일 없었지?!”
“어~ 그 정도 먹고 취하겠냐?”
취했다. 단단히 취했었다...
난 너스레를 떨며 최대한 화제를 옮기려 했다...
“아무튼 야, 언니한테 절대 말하지 말고. 지금 우리 어디 가는데?”
“몰라.”
“나도 모르는데.”
모르면서 핸들을 그렇게 돌리고 있단 말이냐...
한여름은 이리 돌고 저리 돌다 입술을 달싹였다.
“다시 학교나 갈까?”
“야 미쳤냐? 나 잡히면 뒈져...”
“맞다, 너 도대체 왜 튄 건데?”
전아라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날 구해줬던 놈이 내가 자살을 하려 했다며 꼰질러서 그런 거라곤 절대, 저얼대 말 못 한다...!
난 잠시 머리를 굴리다, 이내 떠오른 멸치남의 잔상에 하이톤으로 외쳤다.
“어떤 멸치 같이 생긴 놈 팼거든!”
“얌마... 너 강전 당한 거야, 알어...?”
한여름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이것도 언니 귀에 들어가면 된통 혼날 거다...
“큭, 역시 백제원~!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아~”
전아라는 신나서 떠든다...
난 대충 무시하며 창밖에 시선을 두었다. 바깥 풍경이 계속 바뀌는 것이, 아직 어디로 갈지 못 정했나보다...
그렇게 생전 처음 보는 거리까지 빙빙 돌던 우리는 고깃집에 도착했다.
“야 이거 먹고 클럽 가자, 우리 이모네!”
이모가 클럽을 하는 한여름이 말했다.
좋다고 하려는 순간, 난 내 복장을 떠올렸다.
“야 나 교복 입었잖아...”
전아라와 한여름은 사복을 입고 있었다. 난 저 둘이 교복을 입은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괜찮아~! 우린 절대 안 쫓겨나!”
그래, 그렇겠지마는, 주변의 시선이라는 게 있잖아...!
어이 없다가도, 아무렴 상관 없나... 싶어진 생각 없는 나였다.
그렇게 우린 고깃집에서 한참동안 배를 채우다 클럽으로 향했다. 얼마나 멀리 온 건지 가는 데만 거의 한 시간이었다...
“대낮에 클럽이라니...”
“야 곧 있으면 저녁이야~”
다행히 오픈은 했다. 우린 관계자 전용 문으로 들어갔고, 경호원들에게 인사를 받았다.
이제 겨우 오픈 시간인데 사람이 수두룩하다... 여기 진짜 인기 많구나.
“야야! 1층? 2층?”
“1층, 바 가까운 곳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우린 바 바로 옆에 있는 커다란 테이블을 잡았다. 내가 원한 자리였는데, 전아라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왜 하필 여기지? 엉? 너 술 마시면 나한테 죽어, 진짜...”
“야 안 마셔~ 나 맨 정신으로도 잘 놀잖아.”
지금은 안 마실 생각이다만, 다음은 모른다. 나도 나를 모르기 때문에...
전아라는 술을 마시면 언니한테 모든 걸 일러바칠 것이라 협박하고는 스테이지로 나갔다.
한여름은 예쁘장한 남자 없나 눈동자를 사정 없이 굴리는 중이다......
난 뭐 할까, 하다 안주를 시켜먹었다. 그렇게 한참동안 안주만 집어먹었다... 아아, 술이 고프구나...
“야, 여름아.”
“어?”
한여름은 맞은 편 테이블의 남자와 눈빛을 주고 받느라 내 쪽은 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안 취할 정도만 마시면 되지 않을까?”
“어~”
아싸. 쟤 아마 내가 무슨 말 한지도 모를 거다.
난 주위에 전아라가 없나 살피며 바로 옆의 바로 향했다.
“위스키 먹던 걸로 한 잔 주세요...”
혹시나 한여름에게 들릴까 아주 작게 말했다.
이 클럽엔 정말 많이 왔기에 바텐더와도 안면이 있었다. 있기만 할까, 엄청 친했다.
“애들이 너 술 주지 말라고 했는데...”
“에이, 왜 이래? 내가 그거 한 잔 먹고 취할 위인이에요~?”
“...알았어.”
얼마 안 가 술이 나왔고,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잔을 들려 할 때......
“야 백제원!!!!!!”
아아, 젠장할... 걸려버렸다......
*
“아 씨, 깜짝이야...”
“뭔 소리야 이거?”
2층의 가장 큰 테이블. 그곳엔 반가온과 그의 친구인 서진혁, 이샘이 둘러 앉아있었다.
1층에서 난 큰 소리 때문에 진혁과 샘은 일어서 난간 쪽으로 갔다.
“어, 저거 전아라 아니야? 한여름도 있는데?”
둘은 바로 옆 학교이고, 이름 좀 날리기에 가온도 알고 있었다. 궁금증에 앉은 채로 고개를 돌린 그가 말했다.
“야, 뭔데?”
“와 쟤는 교복 입고 클럽을 왔네! 누구더라? 백제원?”
“뭐냐니까? 그게 누구야?”
“오늘 전학 온 애! 1교시부터 페라리 타고 튄 애 있잖아~”
페라리... 페라리...?
가온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난간으로 향했다. 아래에선 아라가 제원을 잡고 있었다.
“쟤다!!! 쟤야 쟤! 아까 내가 말한 애!!!”
“엉? 아~ 자살하려 했다는 애? 걔가 백제원이었어?”
“야 비켜, 비켜!”
이번에도 놓칠까보냐, 가온은 진혁과 샘을 밀치고는 빠른 속도로 계단을 내려갔다.
스테이지를 지나, 그들과 가까워지자...
“야!!!!!!”
가온이 소리쳤다. 그 큰소리에 고개를 돌린, 아라에게 손목을 붙잡힌 제원이 가온을 보더니 한껏 인상을 썼다.
*
“뭐야 쟨 또......”
아주... 미칠 노릇이다. 전아라에게 들켰으니 언니에게 꼰지르게 생겼고, 지금 여기로 오고 있는 저놈이 입 잘못 놀렸다간 아까의 일을 애들도 알게 될 터였다.
“되는 일이 없네...”
“쟤 반가온 아니야?! 백제원 너 쟤랑 알아?”
“반가온? 그게 쟤야?”
“야 지금 그게 중요해?! 백제원 니는 진짜 뒈—졌어...”
“아 놓고 말해!!! 응? 좀 놔봐!”
한여름은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반가온이라는 놈의 얼굴을 감상하느라 바빴다...
열을 내던 전아라는 끝끝내 내 손목을 놓았고, 놈이 내 앞에 서있었다.
“아 뭐... 안녕.”
“너 같으면 안녕하겠냐...?”
내 인사에 반가온이 얼굴을 구겼다. 뭐야 얘, 나한테 쌓인 거 있나...
“너 튀는 바람에 학주한테 내가 대신 혼났잖아!!!”
그 육중한 남선생이 학주였구나, 난 짜증을 내는 반가온에게 대답했다.
별것도 아닌 거 갖고...
“아 그래? 고맙다~”
“뭐?!”
“아, 뭘 바라는데 뭘.”
“허...!”
헛웃음을 치더니 제 머리칼을 거칠게 헤집는다. 입술을 달싹이며 구시렁대던 반가온이 날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손 한 번만 잡아보자.”
“...뭐래?”
아주 황당한 말에 고개를 틀어 전아라와 한여름에게 시선을 던졌다. 그러다 다시 반가온을 보니, 꽤나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다.
“너 나 좋아하냐?”
“뭐? 아니거든?! 사정이 있어서 그래!!!”
무슨 사정이길래 갑자기 손을 잡자고 그래?
난 대충 응해주고 보내자 싶어 탐탁지 않은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반가온이 그 위에 제 손을 올린다.
그렇게 한참을 말없이 있었다. 뗄 생각을 안 해 손을 쳐버렸다.
“아.”
아? 뭐야, 멍때리고 있던 건가.
말이 이어졌다.
“되네.”
“야 반가온! 뭐 해!”
뭐가 되냐고 물으려 했는데, 이쪽으로 걸어오는 두 남자의 목소리에 관뒀다.
반면에, 한여름은 예쁜 남자에 대한 플러팅을 관둘 생각이 없는 듯 반가온에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야! 나랑도 잡아보자~”
제게 다가오는 두 남자에게 뒀던 시선을 한여름에게로 옮긴 반가온이 잠시 고민을 하는 듯하더니 손을 뻗는다.
진짜로, 뭐 하는 건가 싶었다.
떨떠름하게 내밀어지던 반가온의 손을 한여름이 덥썩 잡았고, 이내.
“으아! 씨!”
반가온이 경악을 하며 손을 털었다.
“뭔 일이야! 야!”
“아니, 손 좀 잡았는데...”
“니가?! 니가 여자 손을?!”
“쟨 잡아도 괜찮더라고.”
유난을 떨어댄다. 다가온 두 놈들과 말이다.
옆을 보니 한여름이 얼빠진 얼굴로 털린 제 손을 바라보고 있고, 다시 앞을 보니, 날 응시하는 반가온.
“넌 왜 되지?”
“그러니까 뭐가?”
“아~ 얘 여자랑 접촉 못 하거든! 근데 넌 되나 보네? 왜지?”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러고 보니, 들은 거 같기도 하다. 사찬고 반가온이 여자를 끔찍이 싫어한다고.
그 이유에 대해 의문이 든 순간, 아까 내게 설명을 해줬던 놈이 다시금 말했다. 쟤 안다. 사찬고 서진혁. 한여름이 저가 찜했다며 사진을 보여준 적이 있다.
“트라우마 같은 거야! 이제 나으려나 본데?”
“낫기는... 쟤만 돼, 다른 건 그대로야.”
자꾸 특별한 취급을 받네. 난 머리를 스친 일련의 기억에 입을 열었다.
“너 아까 옥상에서도—”
옥상에서도, 거까지 내뱉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젠장, 그 일을 전아라나 한여름이 알게 되면 큰일이다.
난 내가 말해놓고 반가온의 입을 손으로 덮어 막았다. 놈의 미간이 찌그러져간다. 뭐냐는 눈으로 날 노려봤다마는, 이번에도 살이 닿았는데 아무렇지 않은 게 신기한 듯도 했다.
서진혁과 나머지 한 놈이 탄성을 내지를 정도이니.
난 손을 거뒀다. 전아라가 이상한 눈초리로 흘겨보고 있지만... 아무튼.
“뭔데?”
“말하지 마, 그냥 말하지 마.”
필터링을 거쳐 목적어가 빠졌으나, 알아들었겠지.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상황을 시전해주길 바랐다...
안 그래도 내가 술을 마신 사실을 언니에게 비밀로 해달라고 전아라에게 빌어야 하기에.
난 몸을 돌려 전아라와 마주봤다. 빌 시간이다.
“내가 잘못했어, 응? 제발 언니한테만은—”
“야.”
한창 말하고 있는데... 뒤에서 들려오는 부름에 얼굴을 팍 구기며 돌아봤다. 반가온이다. 이름 이상한 놈.
“도와줘.”
“뭐?”
목적어가 빠진 이해할 수 없는 말에 얼굴을 더 구겼다. 눈동자를 가만 못 두고 이리저리 굴리던 반가온이 끝내 날 쳐다보며 다시금 말했다.
“트라우마 고치는 거, 도와줘.”
“내가 왜?”
그런 귀찮은 일을 왜 맡아 해야 하는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며 물었다. 질문이 아니고 거절이지만.
“말해도 돼?”
“뭐?”
되물으니 놈이 야비하게 입꼬리를 비틀었다. 말이 이어진다.
“옥상에서 일, 말해도 되냐고.”
아, 개떡같이 말했더니만 찰떡같이 알아들었구나.
“...허.”
재수 없는 새끼, 반가온과 난 마주 웃었다. 한 놈은 즐겁고, 한 놈은 즐겁지 않다, 전혀.
절로 그려지는 미래에 욕을 읊조렸다.
“좆같네.”
/ 한 달만이네요 이 소설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고는 못 말함ㅎ... 얘네 온갖 범법행위 다 하는 거 같은데 소설이기에 가능...
첫댓글 무슨 일진애들같이 무지막지한 학생들이네요
그 시절 인소 클리셰를 답습했거든요 ㅋㅋㅋ
박진감 넘침 우힝힝 : ) 잘 읽구 감~
재미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