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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위기?! 별거하는 부부!'
'다정하던 모습, 쇼윈도였나!'
일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계획을 세웠던 것 보다 훨씬 더 빠르게.
누리와 지혁은 데이트를 하는 듯 하면서도 냉랭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위 사람들을 긴장하게 만들었고, 카페 안에서는 기어코 언성을 높이며 싸움을 만들기도 했다.
주위 사람들을 속인다는 게 무척 어려운 일이란 것을 처음 알았다. 배우들이 새삼스럽게 대단해 보이기까지 할 정도이니.
"후우…."
오피스텔에 들어온 누리는 침대에 털썩 누워 눈 위로 팔을 올렸다.
혹시 모른다며 전화나 문자까지 포함해 연락을 끊고 집을 나온지 일주일 째였다.
그리고 그들이 거리로 나가 부부싸움을 보여준 지 이틀이 지나가고 있었다. 이제 기사가 터졌으니, 다음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누리는 몸을 모로 굴리며 웅크렸다. 어두운 방 안에 혼자 있으니 어쩐지 지혁이 더 보고싶었다.
"보고싶다…."
대체 왜 이런 수고까지 겪어야 하는가.
없을 이혼까지 만들어내며 남들의 눈을 속이고, 힘들게 외로움을 버텨가며….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해야할까.
이런 상황을 만든 사람들이 너무도 미웠지만 이미 벌어진 일, 원망해봤자 바뀌는 것은 없었다.
알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하잖아."
코를 훌쩍이며 알게 모르게 눈물 짓던 누리는 벌떡 일어나 겉옷을 챙겼다.
둘이 함께 살던 집보다는 작았지만 그럭저럭 혼자 살기에는 넓은 집 안에서 덩그러니 남겨져 있는건 누리의 외로움을 부추길 뿐이었다.
모든 상황을 알고 있는 하랑이나 다율이에게 가서 며칠 신세를 질 생각이었다.
그들과 함께 있으면 지혁의 생각이 조금이라도 덜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필요한 소지품들만 챙긴 누리는 집을 나와 금세 큰 길가로 나섰다.
택시를 잡기 전, 바람을 맞으며 걸어가던 누리는 멀리서 보이는 인영에 걸음을 멈추었다.
두 눈이 잘못 된 걸까.
괜히 눈을 비벼보았다. 그럼에도 뚜렷하게 보이는 한 사람.
볼을 꼬집었다. 그런데 그 환영은 사라지지 않는다.
멍하니 바라보던, 바라볼 수 밖에 없게 만들었떤 사람이 누리의 바로 앞에서 멈춰섰다.
누리는 입술을 꾹 깨물며 안기려는 듯 두 팔을 벌렸지만 지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제서야 주위 시선을 느낀 그녀는 더 서럽다는 표정으로 눈물까지 매달며 그에게서 멀어져야만 했다.
이게 뭐야, 대체. 뭐 때문에…. 내가 왜 이렇게까지….
서러움과 외로움이 복받쳐 올라 누리는 제자리에 주저앉아 무릎을 그러앉고 얼굴을 묻었다.
훌쩍이는 소리가 슬쩍 새어나가며 지혁의 표정이 굳어졌지만 확인할 수 없었던 누리는 그저 이러한 상황을 만들어버린 그 누군가를 원망했다.
한참을 울던 누리는 벌떡 일어났다.
두 눈가에 대롱대롱 달린 눈물을 보니 절로 손이 뻗어져 나갈 뻔한 것을 주먹을 꽉 쥐고 참아낸 지혁이 한숨을 토해냈다.
"하아."
그리고 그 한숨에 움찔한 누리는 새빨개진 눈을 강제로 표독스럽게 떴다.
그래봐야 얼마나 무섭겠냐마는….
"뭐에요? 왜 왔어요?"
투정과 짜증, 그리고 희미한 그리움을 담은 말이 톡, 튀어나왔다.
고작 말 하나가, 지혁의 마음에 스며들어 녹아내리고 있었다.
"길 가는데 당신이 보인거야."
"이 길을 왜 지나가는데? 이 근처에 내가 사는 집 있다는 거 알아서 일부로 지나가는 건 아니고?"
사실 맞는 말이었다.
누리가 이 근처에 사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왔던 것이다.
얼굴을 볼 수 없으니 근처라도 서성여야 숨이 트여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아무도 없는, 온기 없는 집에 들어가는 건 지혁 역시 달갑지 않았다.
늘 누리의 온기로 가득찼던 집은 어느덧 냉랭한 집으로 변해 있었다. 고작 일주일뿐인데.
그 사실이 지혁을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 결국 그는 며칠 전부터 이렇게 밤마다 그녀의 집 주위를 서성였다.
"그 정도 공주병이면 병원에 한 번 가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뭐…!"
연기인 걸 알지만 역시 지혁의 목소리로, 저런 차가운 말과 무관심의 표정을 보면 상처받을 수 밖에 없었다.
대체, 언제까지 해야하는 걸까. 이렇게 내 마음을 할퀴면서까지 내가 감당해야 하나?
무심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감당하고 싶지 않다고. 도망가고 싶다고.
편히 쉬고 싶다고. 그 누구도 올 수 없는 곳으로 훌쩍 떠나고 싶다고. 그러나 그럴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지혁만큼이나 누리는 그를 볼 수 없으면 살 수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렇다고해서 괜찮다는 건 아니었다. 결국 그의 말에 눈물을 펑펑 쏟던 누리는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을 그에게 던졌다.
퍽!
꽤나 둔탁한 소리와 함께 그의 가슴에 부딪힌 핸드폰은 가차없이 바닥에 떨어져 박살이 났다.
깜짝 놀란 그가 떨어진 핸드폰에서 그녀를 향해 고개를 들었지만 누리는 그저 씩씩 거리며 눈물만 떨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건 지혁에게도 고통이었다. 아무리 회사를 위해서라지만 서로에게 이렇게까지 상처를 줘야할까.
지금이라도 당장 그녀를 끌어안고 위로해주고 싶었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주며 사랑한다고 속삭이고 싶었다.
왜 그러지 못하는 걸까. 왜.
이를 악문 그는 떨어진 핸드폰을 주워 그녀의 주머니에 욱여넣었다. 그 손길은 꽤나 거칠고 화가난 듯 했다.
"그만하자. 서로 얼굴봐서 뭐 좋을 거 있다고."
잠깐이라도 얼굴 봐서 좋았네 그래도. 비록 넌 울었지만.
"집에 잘 들어가고."
다정한 듯 매정한 말에 누리는 결국 먼저 등을 돌려야만 했다.
사람들이 모이진 않았지만 힐끔힐끔 그들을 쳐다보는 시선이 적지 않았다. 연예인도 아닌 그들이 이렇게까지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이혼하는 부부들. 쇼윈도 부부. 지금도 존재하는 큰 기업들간의 정략결혼.
그 모든 키워드의 한 가운데에 있는 사람이 바로 누리와 지혁이었다. 그러니 관심이 쏠릴 수 밖에.
누리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지혁 역시 미련없다는 듯 걸음을 돌렸다. 보이는 얼굴에는 지겹다는 표정이 가득했지만 그 속마음은 그저 누리를 꼭 끌어안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다.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며 끌어안고, 온종일 함께 하고 싶었다. 종알종알 하루의 일과를 얘기하는 누리의 목소리가 듣고싶었다.
"하아…."
디자이너 한 명만 제대로 빼돌리면, 곧바로 그 새끼들을 기필코 짓밟아 버리리라.
다시금 다짐하며 지혁은 누리와 함께 했었던 집으로 향했다.
*
*
바닥에 떨어진 핸드폰이 고장이 났는지 전원조차 켜지지 않은 걸 뒤늦게 확인한 누리는 픽 웃었다.
고쳐도 의미가 없었다. 어차피 고쳐봐야 지혁과는 연락할 수 없을 테니까.
그에게서 연락이 올 일도 없을테고. 그러니 고치는 건 언제든지 뒤로 미룰 수 있었다.
산책하듯 근처 공원을 걷던 누리는 해가 넘어가며 노을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언제나 예쁘던 노을이, 오늘따라 회색빛깔로 보였다. 반짝이며 청명한 하늘이, 그저 칙칙하게만 보였다.
단지, 한 사람이 없을 뿐인데.
"어라?"
"… …."
고개를 돌린 누리는 금세 미간을 찌푸렸다.
"맞네요. 한누리 씨."
"… …."
금세 아는 척 하며 다가오는 이 남자. 은결은 지혁이 처음부터 조심하라고 했던 남자였다.
그 말을 거스를 생각이 없었던 누리는 그대로 지나쳐 가려 했지만 그는 기어코 그녀를 졸졸 뒤따라왔다.
"어디가요?"
"… …."
대꾸 해봤자 이 남자의 페이스에 휘말리면 끝이라는 생각에 누리는 은결을 투명인간 취급하며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녀의 예상대로, 누리에게서 대답이 없자 금세 지친 은결은 혀를 차는 듯 했다.
"이혼한다던데."
"… …."
그 말에 걸음을 멈춘 누리는 뒤로 휙 돌아섰다. 그리고 다 부숴진 핸드폰을 꺼내 그를 향해 던졌다.
어김없이 그의 몸에 맞고 떨어진 핸드폰은 또 다시 박살이 났고 은결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지금…, 뭘."
"좋냐?"
"…하?"
여태껏 살면서 이런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었던 은결은 그저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
자신에게 설설 기는 사람들은 봐왔어도 자신을 때리고자 했던 사람은 없었다.
어떻게든 비위를 맞추기 위해 눈웃음을 치는 사람들은 있었어도, 이렇게 눈을 치켜 뜨며 물건을 던진 사람 역시 없었다.
실로 당황스러울만 했다.
"이혼하게 만드니까 좋냐고."
"…말이 짧네요."
"그래, 나 말 짧다. 어쩔래? 때릴래? 아니면 뭐, 납치라도 하시게?"
"하. 한누리 씨. 적당히 하시죠."
"적당히 못 한다 이 새끼야!"
결국 억누르고 억눌러왔던 서러움과 그리움, 외로움, 원망이 터져나오며 누리는 그의 멱살을 휘어잡고 울며 소리쳤다.
"좋냐? 이 꼴을 만들어놓으니까?"
"이봐요."
"멀쩡히 살던 한 가정 파탄내고, 뒤에서 수작질 하니까 좋냐고 이 나쁜새끼야!"
은결은 말 없이 자신의 멱살을 잡고 있는 여린 그녀의 팔목을 세게 움켜쥐어 떨어트렸다.
신음 한 번 없이 밀려났지만 누리는 그럼에도 날 선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무슨 소리 하는지 모르겠는데."
"아무렴. 모르시겠지 그쪽은. 머리에 그딴게 들어가겠어? 그저 한 가정 파탄내는 것 밖에 안 들어가있을텐데."
"말 조심 하시죠."
"말 조심? 웃기지마. 그건 너한테 해당되는 사항이 아니야. 내가 말 조심하길 원했으며 넌 행동을 조심했었어지."
하나와 은결이 뒤에서 손을 잡고 지혁을 공격했다는 걸 안다.
예전부터 둘은 소꿉친구로 친했다는 사실은 웬만한 부유한 집안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어쩌면 그들이 커서 결혼할지도 모른다는 얘기까지 암암리에 나오고 있었다. 그 소문을 누리 역시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작정하고 편을 먹어 자신들을 골탕먹인다는 건 지혁 덕분에 알게 됐다.
투자라는 대외적인 명목으로 만남을 가진 그들은 사실, 그 만남에서 누리와 지혁의 이혼 얘기를 하고 있었다.
은결은 누리가 탐나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는 지혁이 탐났다.
단지 그 이유 하나만으로 하나의 계획에 동참한 은결은, 누리의 반항적인 말투에 열이 오르고 있었다.
"갖고 싶은 걸 갖기 위해 수작질 좀 부리는 게 뭐가 나쁘지?"
"수작질? 그딴 건, 정정당당하게 얻을 수 없는 사람들이 부리는거야. 어쩌니, 그걸로 네 가치를 다 증명해 버렸네."
"보자보자 하니까."
은결은 뻗치는 화를 참지 못하고 손을 번쩍 들어올렸지만 누리는 냉큼 그의 정강이를 찼다.
"악!"
"어디다 손을 올려?"
울면서도 할 건 다 하는 누리는 이미 인내의 한계치를 넘어선지 오래였다.
종아리에서부터 퍼져오는 알싸한 고통에 미간을 찌푸린 은결은 누리에게 다시한 번 손을 올리려했다.
"거기, 지금 뭐하는 거지?"
첫댓글 누리의 옹골찬 대응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지네요
가진자들이 남의것을 탐하는걸 폭력으로라도 복수하고 싶어지는 생각에
한표를 던지고 싶어져요 ㅎㅎ
즐감해요
잘 읽었습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