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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M에서 런웨이 투어를 시작했다.
덩달아 바빠진 BH는 봄에 있는 웨딩을 소화해내느라 지혁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매번 달라지는 식장에 다른 플로리스트, 사회자가 준비 안 된 식장에는 적절한 사회자 및 신부를 도울 어시스트까지.
그 외에도 확인해야 할 것들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물론 겨울 내내 웨딩이 없었던 것도 아닐 뿐더러 없었다 해도 관리가 소홀히 되진 않았겠지만 혹시 모를 사항에 대비해 마지막으로 점검해두는 건 나쁜 일이 아니었으니.
KM과의 좋은 관계를 드러낸 이후 BH의 웨딩 드레스에도 많은 협찬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연예계에서도 드디어 발을 넓히고 있었지만 누리에게만큼은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또요?"
"응."
"…요즘 매일 야근하는 것 같은데."
"미안. 좀 바쁘네."
지혁은 우울한 표정을 하는 누리를 끌어안으며 어깨에 고개를 부볐다.
오히려 지혁이 더 어리광을 부리는 듯한 모습에 누리는 졌다는 듯 웃으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무 무리하지 말고, 힘들다 싶으면 얼른 퇴근해요."
"피곤한 건 당신이 풀어주나?"
"음…."
누리는 잠시 고민하더니 히죽 웃으며 그의 귓볼에 키스했다.
갑작스럽게 들어오는 자극에 저도 모르게 입술을 벌린 지혁은 곧장 고개를 들어 누리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눈빛속에 깃든 짙은 감정에 그의 심장이 두근두근, 반응했다.
"지혁 씨가 만족할 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녀의 웃음에 눈을 팔고 만 그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덩달아 웃음을 지었다.
바쁜 와중에도 이렇게나 아침이 행복하니 일할 맛이 나는 것 같았다.
"다녀올게."
"조심히 다녀와요."
"이따 점심때 봐."
누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지혁은 출근하는게 마음에 안 드는지 미간을 구긴 채 자꾸만 누리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누리는 단호하게 지혁을 출근시켰고 곧장 점심 준비를 위해 부엌으로 향했다.
하루하루 행복이 넘치는 날들이었다. 런웨이가 순조롭게 진행될 때 까지는.
*
*
"런웨이 취소요?"
"네. 갑작스럽게 취소됐다고 해요."
KM에서 세계를 돌며 진행하고 있는 런웨이가 갑작스럽게 취소 됐다는 소식에 누리는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취소될 이유가 뭐가 있지? 모델이 아프나? 그런 상황을 대비 못했을 리는 없는데.
"이유는?"
"알려주려고 하질 않아. 아니 정확히는 숨기고 있지."
"가지가지 하는군."
기사에서는 이런저런 억측을 써내려 갔지만 KM에서는 따로 입장 발표를 하지 않았다.
덕분에 억측들은 점점 커져가면서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불려지는 중이었다.
추측이 사실인 것마냥 써대는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니.
어떻게 수습하려고 이러는 거지?
"다해 씨한테는 연락해 봤나?"
"며칠 전에 해봤어. 그때까지는 순조롭게 잘 진행되고 있다고 했고."
"다시 해. 오늘. 무슨 일인지 물어보고 다 알아내."
"시간이 좀 걸릴거다. 시차가 달라서 답장이 바로 오진 않아."
"그래도 괜찮으니까 해. 그리고 기사는 우선 최대한 막지."
"알았다."
강산은 지혁이 지시한 일들을 처리하기 위해 사장실을 나갔다.
점심을 먹으러 왔다가 오히려 속이 얹힐 얘기만 잔뜩 들은 기분에 누리는 울상을 지었다.
그와 함께 맛있게 먹을 점심이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지.
한숨을 푹 쉬며 도시락을 차차 꺼내는 누리.
그런 그녀를 보며 지혁은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지혁 씨?"
"걱정하지 마."
"내가 뭘 걱정하는 줄 알고요?"
"글쎄…, KM은 아닐 것 같고."
"… …."
지혁이 짖궂게 웃으며 손등에 입을 맞췄다.
"아마도 바빠질 내 걱정인가?"
"…알고 있으면서 웃음이 나와요? 얄미워 진짜."
째려보는 누리의 눈길에도 뭐가 그렇게 좋은지 지혁은 실실 웃었다.
"얼른 점심부터 먹어요."
"응."
지혁은 그녀가 건네주는 숟가락을 받아들였다. 그리고는 천천히 도시락에 젓가락을 가져다대며 빠르게 음식을 비워갔다.
"천천히 먹어요. 체하겠다."
"맛있어서 그래."
"그래도."
지혁은 괜찮다는 듯 웃었고 누리는 맛있게 먹는 그의 모습을 보며 내심 흐뭇해했다.
이래서 아내들이 남편들한테 밥을 해주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부부들이 그러지 않을거라는 생각은 이미 어딘가로 사라져 버린 뒤였다.
지혁이 도시락을 깨끗이 비우자 누리는 곧장 통을 정리했다.
"언제까지 바빠요?"
"음…."
웨딩 스케줄을 생각하던 지혁이 갑작스레 표정을 확 구기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5월까지?"
"…2달이나 남았네?"
"설마 2달 내내 야근해야 되지는 않겠지. 너무 걱정하지 마."
누리를 만나기 전까지는 밥 먹듯이 했던 야근이었다.
2달 야근한다고 해서 몸이 망가지거나 하진 않을텐데도 누리는 뭐가 그렇게 걱정인지 지혁을 자꾸만 걱정했다.
"차라리 집에 와서 일을 해요."
"그럼 일을 못 할 텐데."
"왜요? 집에도 서재가 있는데 왜! 집이 더 편하잖아요. 편하게라도 일하는 게 좋지 않아요?"
"집 가면, 내가 서재로 갈 거 같아?"
의미심장한 말에 누리는 눈을 멀뚱히 떴다.
"당신두고?"
"… …."
그제서야 그가 한 말을 이해한 누리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회사에서 못 하는 소리가 없어요!"
"사실일텐데. 당신이랑 집에 있는 그 귀한 시간에 내가 일을 왜 해? "
"지혁 씨!"
"그런 소중한 시간에는 당신이랑 침…!"
"악! 조용, 조용!"
누리가 기어코 그의 입을 손바닥으로 막았다.
사장실인 만큼 방음은 완벽했겠지만 혹시나 누가 들었을까 조마조마한 눈으로 방문을 쳐다보았다.
다행히도 누군가 들어올 낌새가 보이지 않자 그제서야 지혁에게서 떨어진 누리는 그를 있는 힘껏 째려보았다.
"우리, 때와 장소는 좀 가리자고요!"
"아무도 못 들었어."
"들었을 수도 있잖아요!"
"못 들었다니까."
"지혁 씨가 어떻게 알아요?"
"여기 방음 좋거든."
"그래도 귀 좋은 누군가가 들었을 지도 모르잖아요."
"시험해 볼까?"
"뭘요?"
"듣는지 못 듣는지."
누리가 채 대답하기도 전에 지혁이 누리의 허리를 끌어당겨 자신의 무릎위에 앉혔다.
그리고는 무릎을 손가락으로 살살 쓸었다.
그 손길에 담긴 농밀한 메세지에 누리가 입을 꾹 다문채 경악했다. 그 와중에도 착실하게 볼은 붉게 달아올랐다.
지혁의 손가락이 점차 위쪽으로 향했고 기어코 허벅지 안쪽, 아슬아슬한 곳까지 닿았을 때 그의 옷을 꽉 움켜쥐며 애원했다.
"제발…."
"제발 뭐?"
"…해…요."
"뭐라고? 잘 안들려 누리야."
짖궂게 웃으며 지혁이 열심히 손가락을 놀리자 이를 악문 누리는 확 외쳤다.
"그만하라고요!!"
누리가 그의 어깨를 잡고 확 밀어냈지만 안타깝게도 밀린건 그녀 자신이었다.
덕분에 뒤로 휘청하는 그녀를 화들짝 놀라 두손을 받쳐내어 끌어당긴 지혁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거기서 그렇게 움직이면 어떻게 해. 위험하잖아."
"그러게 그만하라고 했잖아요!"
"알았어, 안 그럴게. 안 그럴테니까 위험한 짓 하지 마."
지혁이 잔뜩 화가 난 누리의 등을 토닥토닥 두들겼다.
그 손길이 또 부드러워서 더 화를 낼 수 없었던 누리는 별 수 없다는 듯, 뻣뻣하게 몸을 세웠던 힘을 풀고 그의 품에 편하게 안겼다.
그제서야 지혁 역시도 편하게 그녀를 끌어안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때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강산.
"사장님, 연락 됐…!"
지혁과 누리가 야시시한 상태로 빈틈없이 끌어안고 있는 걸 본 그가 조심스럽게 뒷걸음질 치며 나가려 하자 누리가 애타게 잡았다.
"아니요! 그런 거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니니까 제발 들어와요…."
"… …."
"지혁 씨도 이거 놓아주세요."
지혁은 아쉽다는 듯 그녀를 놓아주었고 누리가 옆 소파에 앉자마자 강산은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자마자 지혁이 묻기도 전에 본론을 꺼내는 강산.
"다해 씨랑 연락 됐어."
"이렇게 빨리?"
"응. 우리한테 연락 올 줄 알고 기다리고 있었나 봐."
"그래서?"
"사정 설명을 좀 들었는데."
KM에서 관리하던 BH웨딩 드레스가 찢어진 채로 발견되었다.
모든 런웨이 무대의 피날레를 장식하던 드레스를 못 입게 되었으니 런웨이를 취소했고, 급하게 재작업에 들어갔지만….
"여기서 만드는 것과 똑같이는 못 만든다고 하더라고."
"그렇겠지. 애초에 작업하는 사람들부터가 다른데."
BH의 웨딩은 조금 특별했다. 디자인이 완성되면 공장으로 디자인을 보내서 만들어 찍어내는 형식이 아니었다.
완성되고 나서의 첫 드레스는 무조건 디자인 팀에서 옷을 만들었다.
기계가 건들일 수 없는 세세한 부분들마저도 만지고 작업했다.
그 후에 완성품을 보고 공장에 보내 세세한 것들까지 신경써서 작업하게끔 주의를 했고 모든 드레스는 디자인팀이 확인한 후에 매장으로 보내는 형식이었다.
작업하는 사람마다 스타일이 다 다르므로 아무리 비슷하고 똑같이 작업을 하려 한다고 해도 그 미세한 부분들 마저도 따라할 순 없을 터였다.
"어떡해요?"
"글쎄…."
"다해 씨 말로는 웨딩 드레스가 완성 돼도 런웨이에는 못 올릴 거라던데."
"흐음."
지혁은 가만히 소파 팔걸이를 톡톡 두드리며 고민했다.
런웨이를 못 올린다라.
투자를 한 만큼의 돈을 뽑아주지 않으면 곤란하긴 했지만 투자금 회수를 못한다고 해서 BH는 크게 타격을 입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혁은 이 위기를 기회로 삼기로 했다.
"다해 씨한테 스카웃 제의 넣어."
"뭐? 지금?"
"어."
"오려고 하겠어? 런웨이 중인데?"
"오게 만들어야지."
지혁은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들을 정리하는 듯 잠깐 고민하는 듯 하더니 곧 말문을 트며 차례차례 생각하던 것들을 얘기했다.
"우리가 만든 드레스를 소홀히 관리했다는 이유로 투자금을 회수하는 거야."
"겨우 그 이유로? 사람들 인식이 굉장히 안 좋아질 텐데."
"마음이 좁다고 하겠지. 그러니까 그 드레스에 우리가 얼마나 시간을 소비하고 얼마만큼의 손길이 있었으며 얼만큼의 돈과 노력이 들어갔는지도 같이 적어야지."
"그래서?"
"KM은 투자금을 돌려주기 위해서 허덕이게 될 테고, 그럼 런웨이도 성공적으로 마치기는 어렵겠지."
"…흐음."
"결과적으로 KM은 런웨이를 성공적으로 마치기 어려울거야. 우리와 우호관계를 지키지 못하기도 했고."
"타격이 크겠지."
무엇보다 처음 KM은 BH에게 투자금을 돌려주며 거부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막상 BH의 투자금을 받아들이고 나서는 런웨이의 규모가 몇 배나 더 커졌다.
모두 BH의 투자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걸 지혁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 시기가 그에게 있어서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되었다.
"지금 당장 투자금 회수하라고 해도 결국 그들의 런웨이에는 타격이 없을거야."
"과연 그럴까. 투자금 회수가 기사화 되면서 BH와 KM의 관계가 무너졌다는 게 함께 밝혀지면?"
"… …."
"런웨이 준비는 이미 모든 것들을 마쳤으니까 소용없겠지. 그런데 그걸 본 관객들은 아직 준비되지 않았어."
"그런 이유만으로 런웨이를 안오려고 할까."
"물론이지. 그 최악의 상황에서 다해 씨만 제대로 우리편에 서준다면 말이야."
물론 이 모든 가정은 다해가 BH에 스카웃 돼어 이직을 할 때의 이야기였다.
KM에서 최고의 디자이너로 불린 다해는 런웨이때 입을 옷 대부분을 디자인 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어쩌면 런웨이의 대부분을 담당하고 감당하고 있을 디자이너가 그 시기에 이직을 한다?
사람들은 런웨이를 보러 오지 않을 것이다.
다해가 자신이 만들었던 모든 의상들을 갖고 이직해버리면 런웨이에 올라가지 못하게 되니까.
결국 KM은 모든 런웨이 일정을 취소하게 될 것이고 취소로 인해 발생되는 모든 문제들을 감당하기 위해 허덕이게 될 것이다.
그게 BH가 노리는 것이었다.
"다해 씨랑 지금 통화할 수 있나?"
"물어볼게."
지혁과 강산이 진지하게 회의하는 가운데에 낀 누리는 간략하게 말하는 그의 말만 듣고서는 모든 상황들이 이해 되기 힘들었기에, 그저 입을 다문채 듣기만 했다.
한가지만 알아들었다.
KM그룹은 무너질 것이다.
그리고, 김하나도 같이 무너지게 되겠지.
첫댓글 기업운영이 철저한 이익추구를 위해서 한다지만 그기에는 음모에 모략까지 함정을파서 기다리고있다가 기회가 왔을때 바로 덥석 잡아버리는 두뇌싸움이 치열한거네요 ^^~
잘 보고 가요
잘 보고 갑니다^^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