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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질이 잘 된 정원 테라스에 나온 세라는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길고 곧게 뻗은 다리를 우아하게 꼬고는 앉아있다. 이른 아침이지만 공을 들여 화장을 한 얼굴이며 허벅지까지 틔여있는 흰 원피스가 금방 외출이라도 할 듯 하다. 세라는 도우미가 내어 온 커피 잔을 새끼 손가락을 살짝 들어올리며 최대한 우아함을 갖춰 들었다. 그렇게 커피를 한모음 마신 세라는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 휴대폰을 들어 통화 버튼을 눌렀다. 몇번의 신호름이 울리고도 상대편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자 초조한듯 붉게 메니큐어한 손톱을 잘근잘근 씹어댔다. 이윽고 휴대폰 저편에서 아직 잠에 취한듯한 상대편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전화 좀 빨리 받아!!"
<누구? 세라니? 새벽부터 뭔 일이야?>
"무슨 새벽이야! 10시가 넘었구만."
<망할년! 이 생활 접은지 얼마나 됐다구....야 이년아, 너도 이 바닥에 있었으면서 알잖아! 개구리 올챙이 시절 돌아서면 잊는다지만 그래도 우리 생활 리듬정도는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아~함.>
수화기 넘어로 들려오는 하품 소리에 세라는 잠시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하긴 장미에게 아침 10시는 한밤중과도 같을텐데, 자신 생각만하고 들볶은거 같아 미안하기도 했다.
"미안해! 잠깐 잊어버렸어. 알아봤어? 하연이 그 년 어디서 사는지? 왜 아무런 연락이 없는거야?"
<알아봤어. 건진게 없어서 보고 할 뭐도 아니더라.>
"뭐?"
< 근데 좀 의외더라. 서울에서 두어시간 정도 떨어진 시골 마을에 공방을 차려놓고 왠 기집얘 하나랑 같이 살고 있던데. 공주님이 살기엔 너무 초라한곳 아니니? 별장도 아니고, 그냥 농가를 개조해서 만든 집이던데.>
"농가? 기집애들끼리 산단말야?"
<내가 알아본 봐에 의하면 그래.>
세라는 하연이 살고있는 집에 대한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는지 단지 여자친구와 살고있다는 대답에만 잔뜩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듯 했다. 어디 정신나간 부잣집 도련놈이나 하나 꿰어차고 살림이라도 차렸을 걸 기대했는데 기대와는 다른 대답에 실망한 빛이 역력하다. 수화기 넘어로 부시럭 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네 '휴~우'하며 담배 연기를 뻑뻑 내뿜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세라는 잊었던 담배 한대가 간절히 떠올라 입맛을 다셨다. 그런 세라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연신 뻑뻑거리며 담배를 몇 모음 빨아대던 장미가 말을 이어갔다.
<그래. 같이 살고 있는 기집애, 알아봤는데 대학때 친구래. 3학년땐가 걔네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죽고 그러고 엄마는 어렸을때 죽고. 학교 졸업하고 니 의붓딸년이랑 둘이서 그릇 만드면서 사는건가봐. 집 명의도 그 년거던데.>
"그러니깐 뭐야, 겨우 그릇 쪼가리나 만들려구 집을 나갔단 말야?"
세라는 어이가 없다. 이 집에 들어온지 벌써 3년째, 처음엔 이런 대 저택에 들어와 살수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지덕지 했다. 절대로 2층에 올라가서는 안된다는 말을 들었을때도 고마운 마음에 고개를 끄덕였고, 가끔씩 집을 찾아오는 정 회장의 외동딸 하연을 볼때면 어떻게든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눈치를 보며 친절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형식적으로 자신을 대하는 하연이 집에 올때마다 이 집 주인은 여전히 하연이고, 이 집에 살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더부살이, 손님으로 머물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가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졌었다. 자신은 이 집의 안주인이며 여왕이었다.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이 드는 순간까지 이 넓은 저택에서 마음껏 산책을 즐기며 우아한 사모님으로 살수 있었다. 하연이 없는 시간에만.
그러다 1년 전쯤 호기심에 올라갔던 이층에서 죽었다던 정 회장의 전처의 물건들을 보게 되었다. 보석이며 옷가지들이 정성스럽게 보관되어 있었다. 화려하진 않았지만 하나같이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것들이었다. 일찌기 본 적 없는 우아한 디자인에 이끌러 한쌍의 귀걸이를 걸어보았던 세라는 마침 집을 찾았던 하연과 맞닥드리게 되었고, 그리고 뺨을 맞았다. 아직 나이도 어린 하연에게 단지 귀걸이를 한번 해봤다는 이유로 뺨을 맞은 것이다. 분하고 치가 떨렸지만 정 회장은 세라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오히려 2층을 올라간 세라에게 냉정하도록 차갑운 경고를 남겼을 뿐이었다.
그 일이 있은 후, 일하는 사람들의 시선조차 자신을 한낱 그렇고 그런 여자로 대하는 것 같아 참을 수가 없었다. 그 모든게 하연때문이라는 생각에 세라는 그렇게 하연과의 전쟁을 시작하였다.
무슨 꼬투리든 잡아보려고 사람을 붙여 하연의 뒤를 밟아도 보았고, 어디서 뭘하는지 캐보려 했지만 번번히 실패하고 있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사람을 붙여도 좀처럼 끝까지 따라붙지를 못하곤 했었다. 그런데 그런 노력과 수고를 아끼지않은 결과가 겨우 이런거라니, 이런 대궐같은 저택을 나가 겨우 그릇이나 만들고 산다는 소리를 들으니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다. 하긴 배가 고파 본 적이 없으니 그러겠지, 여지껏 오냐오냐하고 부족한거 하나없이 그렇게 자랐으니 고생을 몰라서 그런거겠지. 짜증스러운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빠른 걸음으로 테라스를 오가던 세라는 좀 떨어진 곳에서 나무를 손질하고 있는 정원사를 발견하고는 잔뜩 목소리를 낮추며 다시 의자에 앉았다.
<돈 있는 것들이 뭔들 못하겠냐? 그렇게 좀 놀다가 끼리끼리 만나서 시집장가 가는 거지. 안그래?>
"쓸데없는 소리 하지마. 그 년이 얼마나 독한 년인지 몰라서 그래."
<세라한테 맞설정도라면 독하기도 하겠지. 그래서 어떡할건데?>
"알아보라고 한건 알아봤어?"
<알아는 봤는데 쉽진 않겠어. 시간이 좀 걸릴거야. 어디 보통 일이여야지.>
"그래서 너한테 부탁하는거잖아. 돈은 상관없으니깐 시간을 두고 천천히 똑바로 일처리 할수 있는 사람으로 골라. 어중이 떠중이 무식한 놈들 말고, 말이 새나가지 않을 만한 사람으로 말이야.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지?"
<그게 얼마나 힘든일인지 아니? 세라야. 차라리 뜨내기가 낫지않을까? 보수도 적당한 선에서 해결해버리고, 일이 끝나면 다시는 서울바닥에 나타나지 않는 조건을 걸면 되잖아.>
"안돼!! 우리가 그런 놈들 한두번 봤니? "
돈 좀 생기면 앞뒤 생각없이 술이나 퍼 마시고 그러다 돈 떨어지면 여기저기 아무일이나 닥치는 대로 해대고, 그런 뜨내기놈들 술에 취하면 무슨 무용담 들려주듯 아무대서나 주둥아리 나불거려댔었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서울 바닥이 아니라도 소문은 퍼지게 마련, 다 된 밥을 그런 놈들때문에 코 빠뜨릴순 없는 일이다. 옆에 두고 감시 할 수 있는 놈으로 골라야 한다. 입 무거운 놈으로. 그리고 평생 그 놈 입에 자갈을 물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세라야. 차라리 니가 그 영감탱이 아들을 하나 놔주는게 더 빠르지 않겠냐?>
"당연한걸 뭘 물어봐. 조만간 호적에 오를테니깐 두고 봐. 그리고 아들도 낳을거야."
<어련하시려구. 근데 그 영감 맹탕인거 아냐?>
"무슨 소리야?"
<아니 너 그 영감한테 간지가 3년이 다 됐는데 아직도 소식이 없잖아. 혹시.....>
"자꾸 쓸데없는 소리 할래! 아직 환갑도 안 지났어. 남자를 그렇게 모르니?"
<자~알 알지. 다 꼬꾸라지는 노친네도 여자라면 환장하고 덤비는게 남자라는 족속들인거. 아무튼 열심히 노력해봐. 아들 하나 낳아주면 그깟 딸년 아마 거들떠도 안볼거다. 안그래?>
"믿을만한 사람으로 구해놔. 너만 믿을께."
세라의 목소리가 점점 은밀하게 들려온다. 이에 맞춰 전화속의 목소리 역시 한껏 낮아져 더더욱 은밀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원래 이런 일은 사람을 믿는거 아니야. 돈을 믿는거지. 안 그래?>
"당연한 말을 해서 뭐해? 우리가 믿는게 그것밖에 더 있어? "
사내놈들 늙으나 젊으나 다 똑같다. 하나같이 단물 빼먹고나면 언제 그랬느냐 차갑게 등돌리는게 사내라는 것들이다. 몸뚱아리가 재산인 우리같은 년들이 믿을거라곤 그저 돈뿐이다. 돈은 절대 배신을 하지 않으니깐.
"그러니 넌 사람이나 잘 찾아놔. 먼저 함부로 움직이지말고, 때가 되면 내가 말할테니깐."
<알았어. 기집애 룸에서 술이나 따르던 년이 출세했다. 유일그룹 싸모님 자릴 넘보고.>
"근데 이년이.......싸모님은 첨 날때부터 싸모님이야!!! 왕후장성의 씨가 따로 있다든!!!"
<후후훗!!! 지당하신 말씀!!>
은근 조롱하는듯한 말투에 기분이 상한 세라는 약이 오른듯 다시 목소리의 톤이 높아지고 있었다.
"그래도!!!"
<뭘 그렇게 열을 내? 부러워서 그러는 건데. 아무튼 부럽다. 일 잘되면 약속한거 잊지마.>
"걱정마. 약속은 지킬거니깐."
전화를 내려놓는 세라의 얼굴에 사악한 미소가 번진다. 두고보라지. 기어이 호적에 오르고 말테니, 더구나 아들이라도 하나 낳아주면 그 길로 하연이 그 년은 끝나는 거다. 여지껏 그 년한테 당한걸 생각하면 아직도 치가 떨린다. 어린 것이 겁도 없이 이 김 세라를 너무 만만하게 본거지. 세라는 하연과 정 회장이 서재로 들어가 하는 얘기를 엿들었다. 지금이라도 하연이 이 집으로 돌아온다면 자신은 그야말로 닭 쫓던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된다. 3년이라는 시간을 이집에서 지냈는데 여기서 이렇게 맥없이 쫓겨날순 없다. 어떻게 해서 얻은 기횐데, 첨에야 뭣 모르고 술집에서 빠져 나올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더구나 손에 물한방울 안 묻히고 편안하게 살수 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좋았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3년이나 동거 했고, 그렇다고 본처가 있는 것도 아니고 딸년도 다 아는 사이인데 망설일 필요가 없다. 어떻해서든 정 회장의 호적에 올라가야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눈에 가시같은 딸년을 없애버릴것이다. 자식이라곤 딸년 하나뿐이기에 애지중지 하겠지만 아들만 하나 낳아줘도 그깟 말 안듣고 속만 썩히는 딸년따위는 금방 잊혀져버릴거다. 세라의 붉은 입술 사이로 낮은 웃음이 흘려나왔다.
"야! 여기야."
찬혁은 회사 로비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도현을 보곤 눈쌀을 찌푸렸다. 항상 약속장소를 따로 정해 만나곤 했지 회사까지 찾아온 적은 없었다. 딴은 급하긴 급했나보다. 그 사이를 못 참고 이곳까지 찾아온 걸 보면 한편으로 일말의 동정심이 일기도 하지만 그보단 참으로 대책없는 놈이란 생각이 먼저 든다. 밑에서 기다린다는 놈의 전화에 그렇찮아도 생각이 딴곳에 가 있던 찬혁은 그를 핑계삼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질책 아닌 질책의 뜻으로 눈쌀을 찌푸려보지만 실은 이곳까지 찾아와 재촉해 준 찬혁이 오히려 반갑고 감사하다. 하지만 그런 그의 마음을 들킬까 괜한 심통을 부려본다.
"넌 일 안하냐?"
"왜 안해? 내가 지난 일주일동안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데. 일주일 내내 클럽도 안가고 야근도 마다않고 죽어라 일만 했어."
"잘도 일 했겠다. 니 놈 머리속에 다른 생각으로 꽉 차있는 거 안봐도 다 아는데 그 정신으로 제대로 일이 됐겠다."
"하~ 새끼, 지놈도 마찬가지면서......아닌게 아니라 일주일 내내 거기가 생각나서 미치겠더라. 계속 멍하니 머리속을 맴돌아."
"같은 급으로 매도하지마라. 양심도 없는 새끼가 여지껏 침대에서 같이 딩군 여자만해도 나래비로 줄을 세워도 될 놈이 누굴 어디다 갖다붙여?"
"야~야~ 과장이 너무 심하다. 아주 아니라고는 말 못하지만 그 정도는 아니지. 그리고 지금 이 상황에서 그 얘기가 왜 나와? 내가 지금 얼마나 착실해졌는지 아냐? 우리 노친네 지금만 같으면 당장이라도 사장 자리 내놓겠다 그러더라."
"쯧쯧쯧......아버님이 니 머리속을 가득 채운게 뭔지 보셔야 할텐데...."
차에 오르며 혀를 끌끌차는 찬혁을 보자 도현은 잔뜩 인상을 써댔다. 시동을 걸던 도현이 문득 생각난듯 옆자리에 앉은 찬혁을 의아한듯 바라보았다. 찬혁은 당연한듯이 자신의 차 조수석에 올라타며 안전띠를 매고 있다.
"넌 차 안가져 갈거야?"
"너 혜진씨한테 가는 거 아냐? 그래서 나 기다린거잖아."
"맞긴 한데...........이 차만 가자구?"
"뭣하러 차를 두대씩이나 가져가. 같은 곳에 가면서. 빨리 출발해 내 차는 기름 떨어졌어."
느긋하게 안전밸트를 매고는 좌석 시트를 뒤로 젖히는 찬혁을 보자 도현은 기어이 울화통이 터진다. 독한 놈! 지 놈 차만 기름으로 가고 내 차는 물로 가는 줄 아나, 도끼 눈을 떠보지만 그래봤자 얻을게 없다. 저 놈이 혜진에게 쓸데없이 입을 놀린다면........느긋하게 등받이를 뒤로 제끼며 눈을 감는 찬을 보며 약이 오르면서도 이내 눈치를 살핀다. 힐끔 도현의 반응을 살피던 찬혁은 그를 놀리는 재미가 그리 나쁘지 않은거 같아 피식 웃음이 난다. 평소와는 다르게 반응이 무척이나 빠른것도 재미를 더해주는것 같다.
"이...이.....치사한 새끼.........너 설마 말할거 아니지?"
"그러니깐 운전해. 가다가 우리 아가씨들 군것질 거리도 좀 사구."
"나쁜 새끼, 너 입 조심해. 안그랬다간 죽는다."
도현이 시무룩하게 시동을 거는 모습에 찬혁은 기어이 피식하고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런 그를 못마땅한듯 쳐다보던 도현은 시내를 빠져나올때쯤 문득 생각 난듯 하연과의 연애에 대해 입을 열었다. 일주일 동안이지만 그 동안만이라도 둘 사이 좀더 진전이 있었던건지도 궁금했지만, 남 연애사에 감놔라 대추놔라 훈수두지말고 니놈 연애사업이나 신경쓰라는 찬혁의 핀잔만이 돌아올 뿐이었다. 하기사 맞는 말이다. 지금 남의 연애사에 관여할때가 아니다. 일주일 내내 혜진과 단 한차례도 통화를 하지못한 도현으로써는 코가 석자쯤 나왔다는 표현이 딱 맞을만큼 애가 타고 있었다. 평소와는 다르게 맥이 빠진 도현을 보며 찬혁은 길게 누워있던 의자 등받이를 바로 세웠다. 여지껏 보아온 도현의 연애 경험을 되집어볼때 지금 그의 반응은 사뭇 진지하기까지 해 보인다.
"전화를 받지도 않고 그렇다고 걸어오는 것도 아니고, 아주 미치겠다. 잠도 안오고 불면증이 다 생길거 같다."
"그렇게 좋으냐? 내가 듣던 니 이상형이랑은 좀 다른거 같은데.........."
"니 놈은 모른다. 순진하게 새끼 손가락 걸고 달 따줄까 별 따줄까 그런 소꼽장난같은게 사랑이 아니거든. 내 품에 안아야 되고 심장소릴 들어야되고 따스한 체온을 느껴야 되는 그런게 사랑이다 이 자식아. 근데 너 정말 하연씨랑은 아무일 없었냐?"
"어이구~ 짜식이, 세상 사람이 다 니 놈 같은줄 아냐?"
"아무일 없으면 됐구.........근데 너 하연씨에 대해 얼마나 아는거냐?"
"글쎄........차차 알아가는거지 첨부터 다 알고 시작하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구."
"그래? 내가 혜진씨한테 듣기로는 하연씨 집이 꽤 사는집 같던데............"
"들었어. 아버지가 작은 회사를 운영하신다고 하던데."
"어? 하연씨한테 들었어?"
"응."
"그럼 그 새 어머니랑 사이가 안 좋다는 말도 들었어?"
"새 어머니 아니야."
"그럼?"
"그냥 아버지랑 사는 여잔가봐."
도현이 정색을 하며 놀란 표정을 지어보인다. 뭐야, 그럼 동거란 말야? 노인네가 주책이다. 다 큰 딸내미랑 같이 살면서 여자랑 동거라니.........그러니깐 딸내미가 집을 나왔겠지.
"그게 아니라 하연이가 집을 나온 뒤에 들어온 여잔가봐. 하연인 차라리 아버지가 그 여자랑 재혼을 하셨으면 하더라구."
"뭐 그런 말도 안되는 희망사항이 있다니?"
"아버지가 하연이한테 바라는게 너무 많나봐. 하연이가 회사를 물려받기를 원하시는데 하연인 그럴 생각도 능력도 없다고 그러구 차라리 재혼하셔서 자식을 낳으시면 좋겠다고 그러더라구."
도현은 기가 차다. 도현으로써는 하연이 이해가 되지않았다. 아니 회사를 물려주겠다는데 왜 싫다는 건지, 그리고 새 어미니에 이복 동생까지 생기면 완전히 콩가루 집안 만들기 딱인데 뭔 그런 말도 안되는 희망사항을 토론하나싶다. 차라리 결혼해서 찬혁과 함께 그 회사를 물려받는것도 괜찮을성 싶다. 하지만 도현의 말에 찬혁은 펄쩍 뛰며 정색을 해보인다.
"미쳤어? 내가 그 회사를 왜 물려받아?"
"야. 남의 회사에서 뼈빠지게 일하는거 보다 좀 작아도 자기 회사에서 일하는게 좋지않냐?"
"쓸데없는 소리하지마. 난 내가 선택한 이 회사에서 내꿈을 이룰때까지 나갈 생각 없으니깐."
"아이구 어련하시려구. 니가 그 회사에서 아무리 충성을 다해도 기껏해야 계열사 사장이야. 그래봤자 월급쟁이 사장이라구."
"월급쟁이 사장이든 뭐든 내가 선택한 회사야."
"알았다 알았어. 독한 놈 그렇게 내가 오래도 안오고 버티더니 결국은 월급쟁이 사장하려구 그랬냐? "
"입 다물고 운전이나 똑바로 해라. 안그럼 확 혜진씨한테 다 불어버린다."
"이 자식이 협박을 해도 치사한 걸로 협박을 해. 그럼 나도 하연씨한테 불어버린다."
"뭘?"
"니놈 대학다닐때 따라다니던 그 여자들!!!"
"뭔 소리야? 무슨 여자?"
"너무하네. 걔네들이 너한테 준 선물만도 만만찮았으면서. 기억정도는 해줘야 되는거 아냐?"
"니 놈 덕택에 여자라면 아주 신물이 난다."
찬혁의 말에 도현은 이내 입을 다물었다. 할말이 없다. 통과 의례라 여기며 군 입대 전 찬혁에게 여자를 붙여 호텔로 넣어준 도현은 결벽증처럼 굳어져버린 여자에 대한 그의 편견에 그동안 내심 미안한 맘이 적잖았었다. 그러던 찬혁이 하연과 연애를 한다는 말이 얼마나 반갑게 느껴졌는지 우리속에 갇혀만 있던 말을 첨으로 세상밖으로 풀어놓는 것 같이 반가운 소식이었다.
"니 놈 여자 편력을 혜진씨가 안다면 과연 어떤 표정일까? 갑자기 혜진씨 표정이 궁금해지는데?"
"와~ 이 자식!!!!! 오~ 그래 강 찬혁! 너 두고보자."
도현은 빙글거리는 찬혁의 얼굴을 보며 울분을 삭히느라 씩씩대며 차를 몰았다.
첫댓글 세라의 전형적인 안방을 확실하게 차지해서 저만의 왕국을 구축하려는 의지력과
걸림돌은 무조건 처리하려는 은밀한 작전 ㅎㅎ ㅎ
찬혁과 도현의 굳은 친밀감
이야기가 점점 정점에 올라서고 있어 재미있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