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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너 여자 생겼지?"
주말 밤늦게야 집으로 들어오는 도현을 잡고 도현의 엄마 김 여사가 다짜고짜 여자가 생겼냐고 묻는다. 하여튼 귀신을 속이는게 쉽지 김여사의 레이더 망을 속이기는 쉽지가 않다.
"여자는 무슨........."
일단은 부정하며 대답을 얼버무리는 아들을 따라 방까지 들어온 김 여사는 쉽사리 도현을 놓아줄 생각이 없는듯 하다. 양복 저고리를 벗고 넥타이를 풀고 있는 아들을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훑어내린다. 조그만 꼬투리라도 놓칠새라 그 눈길이 아주 꼼꼼하다.
"근데 왜 걸핏하면 외박이야? 너 아버지 말씀 벌써 잊은건 아니겠지?"
"아~ 진짜......찬혁이랑 같이 있었어. 그 자식 오피스텔에서 술 한잔 하다가 그냥 잔거야."
"증말이야? 증말 찬혁이 오피스텔에 같이 있었어?"
김 여사는 별로 믿음이 가지않는다는 표정을 해보인다. 그도 그럴것이 오피스텔에 있었다기에는 도현의 양복이 심하게 주름 져 있다. 자세히 살펴보니 와이셔츠에 뿌연 얼룩도 보인다. 김 여사의 눈길을 따라 자신의 옷에 묻은 얼룩을 본 도현은 서둘러 와이셔츠의 얼룩을 손으로 탁탁 털어내고는 이게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하지만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한 그의 태도에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 김 여사를 보며 기어이 불만어린 투정을 내뱉었다.
"이래서 내가 스트레스가 쌓이는 거야. 회사에선 아버지 들볶아대지, 집에 오면 엄마가 들볶지, 내가 무슨 멸치도 아니고.......내가 집에 있었으면 주말 내내 엄마가 날 얼마나 들볶아 댔을까? 그나마 오피스텔엔 잔소리 할 사람도 없고, 찬혁이 자식이랑 시원하게 맥주 한잔하고 속 편하게 쉴수 있어서 얼마나 좋은 줄 알아? 이 참에 확 독립해 버릴까보다."
적반하장이라더니, 외박하고 온 주제에 도리어 큰소리 탕탕치는 아들의 투정에 김 여사는 철썩 등짝을 후려치며 눈을 흘긴다.
"아얏!!!!!"
들볶아? 여지껏 하는 행동을 봐서는 들볶는게 아니라 어디가서 파 묻어버려도 시원찮다. 대학 졸업하고부터 이 여자, 저 여자, 한번은 미팅에서 만나고, 또 한번은 나이트에서 만나고, 즐기는 것도 젊어서 한때다 싶어 놔뒀더니 장가 갈 생각은 않고 걸핏하면 외박이다. 하룻밤 데리고 자는 여자얘들은 그 정도면 충분하다 생각된다. 이제 슬슬 제대로 된 집안의 여자를 만나 결혼시켜야 하는데 독립이라니, 늙은 호박에 이도 안 들어갈 소리하고 있다. 독립하기 전에 아버지한테 쫓겨나는게 먼저일거다.
"알아. 아버지가 올해 안에 결혼 안하면 호적에서 파버리시겠다고 한 말 나도 기억해."
"그럼 됐어. 다음 주말에 시간 비워둬."
"에? 또?"
도현은 설마하는 눈빛으로 엄마를 본다.
"뭐가 또야? 너 올해 안에 결혼하란 말 어디로 들은거야."
"아~ 진짜, 내가 알아서 해. 올해 안에 장가 갈거라구."
"그래 장가 가. 선 봐서 장가 가. 누가 말린데?"
"엄마........."
"씻고 자. 주말에 시간비워두는거 잊지말고."
"엄마!!! 잠깐만!!!"
"뭐 할말있어?"
불만스럽게 퉁퉁거리던 도현이 갑자기 태도를 바꿔 방을 나가려는 김 여사의 팔을 잡아당겨 침대 모서리에 앉혔다. 의자를 당겨 그 곁으로 살갑게 바짝 다가앉은 도현이었지만 쉽사리 말을 꺼낼수가 없어 망설여진다. 망설이며 제법 심각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도현을 보자 김 여사는 턱을 치켜들었다.
"쉽게 말 못할거라면 꺼내지 마."
"아...아니. 말할게."
도현의 엄마가 일어서려다 다시 주저앉으며 아들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본다.
"실은.......여자가 있어. 정말 사랑해."
도현은 얼른 사랑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곧이어 김 여사의 입에서 나올 말들이 예상이 되었기에 굳이 사랑한다는 말을 강조했는지도 모른다. 아니나 다를까 김여사는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는 아들의 말에 그럴줄 알았다는듯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뉘집 딸이며 만나지 얼마나 됐는지부터 물어왔다.
"그게........만난건 한달 좀 넘었고, 아버지가 초등학교 교사셨어."
"헛! 초등학교 교사? 아니 지금 너 그걸 말이라고..........근데 '셨어'는 뭐야? 왜 과거형이야?"
"그게........3년 전 쯤에 돌아가셨다는데......."
말투에 다분히 실망스러움이 묻어있다. 어이없다는 표정까지 짓는 김 여사에게 도현은 매도 먼저 맞는게 낳다는 심정으로 이미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도현의 말에 헛웃음까지 터트리는 김 여사는 더 들어 볼 것도 없다는 듯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됐어. 이번 주말 시간 비워놔."
"엄마!!!!!"
"결혼을 하라고는 했지만 아무하고나 하라고는 안했어.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여자 탐탁치않아. 게다가 초등학교 교사가 뭐야. 그럼 지금은 뭘 먹고 사는거야? 그 애 어머니는 직업이 뭐야?"
도현은 점점 기가 죽어 목소리가 기어들어간다. 초등학교 교사라는 직업이 김 여사의 허영심을 채워주기엔 턱없이 부족하기만 한데 더구나 돌아가셨다는 말에 기 막혀 죽겠다는 듯한 그녀의 표정이 절망적이다. 거기에 한술 더 떠 혜진의 어머니가 어릴적에 돌아가셨다는 말까지 보태야하는 도현의 심정은 참담하다.
"어머니는...........어릴때 돌아가셨다고............."
"헉!!!! 홀어머니도 아니고 고아야."
"엄마~ 혜진이가 고아가 되고싶어서 된거 아니잖아. 그리고 나이가 26살인데 무슨 고아야. 그냥 양친이 좀 일찍 돌아가신거 뿐인데. 어차피 부모님들은 다들 먼저 돌아가시잖아. 저도 엄마 아버지 돌아가시면 고안데....."
"너!!!"
도끼눈을 뜨는 김 여사를 보며 도현은 자신의 말 실수에 아차했다. 해서는 안되는 말이 자신도 모르게 나와버렸다. 미안하고 죄송스러운 마음에 금새 눈을 내리깔고 고개를 푹 숙이고는 연신 죄송하다 사죄를 했다.
"혜진이? 그 얘 이름이 혜진이야? 나이는 26살이구. 하는 일은 뭐야?"
"고........공방....."
"공방? 공방이 뭐야?"
"그거 있잖아. 도자기 만드는거........미대 나와서 도자기 만들어. 솜씨도 좋구........."
"흙덩이나 주무르는 얘가 우리 진성 산업 안주인이 된다는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니? 아서라. 아버지 앞에선 입도 뻥긋하지마."
"엄마~"
"엄마 아무리 불러도 소용없어. 들이대도 정도껏 들이대야지. 어디서.........."
"엄마 그러지 말고 혜진이 한번만 만나봐."
"한달 정도면 얼마든지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야. 뭔 정이 들었다구. 정 니가 정리하기 힘들면 엄마가 해줄께."
"엄마!!!! 그런거 아니야."
"아버지 아시는 날엔 무사하지 못할거다. 그 아가씨."
"엄마!!!!"
문을 탁 닫고 나가는 엄마를 보며 도현은 허탈하게 침대에 주저앉는다. 예상은 했지만 바늘 하나 들어갈 구멍도 없이 막아버리는 엄마를 보며 답답한 마음을 감출수가 없다. 그래도 일단은 혜진의 존재를 알렸다. 하지만.......문득 도현은 불안해졌다.
아버지가 아시는 날이 오기도 전에 어머니인 김 여사가 먼저 혜진을 찾아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해온다. 찬혁의 말에 오기가 생겨 선뜻 혜진의 존재를 알리긴 했지만 뒷 감당을 어찌해야할지 난감하기만 하다. 찬혁의 말처럼 한번은 거쳐야할 일이긴 하지만 안개속을 헤매는것처럼 어지럽기만 하다. 어떡하든 이 난관을 극복할 방법을 찾아야하는데 마땅한 대안이 생각나지 않는다. 침대에 벌러덩 누워버린 도현은 천장으로 그려지는 혜진의 얼굴이 벌써 그리워진다.
"혜진아.......어쩌면 좋니?"
"하연이 왔어?"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세라의 웃는 얼굴이 하연을 반긴다. 뜻밖으로 웃으며 자신을 반기는 세라와 눈이 마주친 하연은 어색한듯 표정없이 고개를 숙이곤 집안으로 들어갔다. 하연의 옆에서 상냥한 미소를 띄며 곁을 떠나지않던 세라가 이층으로 가려는 그녀를 잡았다.
"저기.......하연아."
하연이 고개를 돌려 세라를 보자 세라가 어색한 미소를 띄여 하연의 곁으로 다가왔다.
"저번엔 미안했어. 내가 그냥 호기심에..........회장님이 자꾸 들어가지 말라고 하니깐 나도 모르게 궁금하고, 그래서 몇번 들어갔던거야. 그리고 그 목걸이 너무 예뻐서..........그래선 안된다는거 알았는데 그냥 하연이가 없다는 생각에..........내가 미안해. 다시는 전 사모님이나 니 물건에 손대지 않을거야."
갑작스런 세라의 저자세에 하연은 의아한 생각이 들었지만 먼저 사과를 하는 세라를 보자 지난번 자신이 한일이 떠올라 내심 미안해졌다. 그래도 어른이고 아버지를 모시고 있는 사람인데 자신이 너무한 감이 있다 생각들었다. 세라와 말을 섞는 것이 썩 내키는 것은 아니지만, 어렵사리 말을 걸어오는 그녀를 보며 야멸차게 무시 할수만은 없어 하연 역시 저번 일에 대해 사과를 했다.
"...........저도 죄송했어요. 엄마 물건만 아니었어도...........그래도 아버지 모시고 계신분인데 죄송했어요."
"그래? 아니야. 내가 먼저 잘못을 했지. 그날 회장님께서도 많이 서운해 하셨어. 생신이신데 하연이가 그렇게 가버려서. 오늘은 저녁 먹고 갈거지? 온다는 연락받고 해물탕 해 놨어. 하연이가 좋아한다고 회장님이 그러시더라구."
하연은 세라의 상냥한 미소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자신이 괜한 심술을 부린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한식구가 될지도 모르는 사람인데, 싫으나 좋으나 아버지가 곁에 두고 있는 사람인데, 아버지에게 여자가 있다는 걸 알고선 굳이 집으로 데려와라 먼저 말을 한 것도 자신이면서 이렇게 불편한 관계를 만들어 놓았다. 에고이스트! 필요해선 데려다놓고 이제와서 싫은 내색을 하다니, 단지 호기심에 물건을 만질수도 있는건데 말이다. 저녁 시간 오랜만에 같이 식탁에 앉은 하연을 본 정 회장은 특별한 말은 없었지만 흐뭇한 기분이 드는지 연신 얼굴에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그런 아버지 옆에서 식사 시간 내내 시중을 드는 세라 역시 연신 웃는 얼굴이다. 어쩌면 말로는 재혼하시라, 늦지않았으니 동생을 가져라 했지만 정작 세라에게 엄마의 자리를 내줄까봐 전전긍긍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딸의 눈치를 보며 아버지의 결정을 미루게 만든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주 좀 오거라. 이제 나도 예전같지가 않아. 자식이라곤 너 하나뿐인데 그나마 시집가기 전에 얼굴 좀 보고 살자꾸나."
"아직 정정하세요. 환갑도 안 지났는데 무슨.......... 요즘은 나이 육십은 청년이래요."
"그래? 빈말이라도 듣기는 좋구나. 아무튼 자주 들러.
하연은 아버지의 희끗거리는 머리카락을 보며 괜시리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렇게 식사를 끝낸 하연은 아버지와 서재에 마주 앉았다. 세라가 차를 들고 서재로 들어와 하연과 정 회장 앞에 차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아버지 정회장에게 생일 선물로 준 머그잔을 내려놓던 세라가 하연의 눈치를 보며 상냥스럽게 미소지어 보인다.
"이거 하연이가 만든거지? 정말 너무 예쁘더라. 회장님께서 요즘은 이 잔만 쓰시잖아. 나중에 나도 하나 만들어 줘."
"좀 나가 있어."
세라의 말을 중간에서 뚝 잘라버린 정 회장이 자리에 앉으려는 세라에게 나가있으라 말하자 세라는 머쓱한 표정이 되어 밖으로 나갔다. 하연은 그런 아버지를 보며 세라가 내 온 커피잔을 집어들었다. 그렇게 세라가 나가고 나서도 한참의 침묵이 흘렸다. 말없이 커피를 마시던 정 회장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니?"
"잘 지내요. 공방도 이젠 자리를 잡아서 주문량도 계속 늘어가고 혜진이랑 지내는거 좋아요."
"그래? 만나는 사람은 없니?"
흠짓한 하연은 이내 아버지가 찬혁에 대해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천천히 커피를 마시곤 아무렇지도 않은듯 대답했다.
"뭐 시골이니깐."
"그렇지. 그런 시골에서 사람 만나기 쉽지 않지. 너도 벌써 26살인데 연애도 좀 해야되지 않겠니?"
"제가 연애를 하면 아버지 허락하실거예요?"
"글쎄다. 니가 너 혼자의 몸이 아니라는 걸 생각한다면 아무나와 연애를 하지 않을거라 생각한다."
"아버지는 아직 그대로시네요. 빨리 포기하시면 좋을텐데..........."
"자식을 포기하는 부모는 없다. 더구나 넌 유일그룹의 유일한 상속녀야."
하연은 정 회장의 말이 어깨를 짖누르는거 같아 가슴이 답답해졌다. 마시던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그만 갈께요."
"자고 가는거 아니냐? 너무 늦은거 같은데."
"혜진이가 기다려요. 주문량을 맞춰줘야 하거든요."
"적당히 해라. 손이 너무 엉망이구나."
푸석하니 거칠어진 하연의 손을 보며 정 회장의 얼굴이 찌푸려진다. 자리에서 일어나던 하연은 자신의 거칠어진 손등에 머문 아버지의 시선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고집을 부려 어쩔수없이 한 허락이라는걸 알고 있었지만,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아버지는 자신의 일을 인정하고 있지 않는듯하다.
"흙쟁이들 손은 다 그래요."
"취미로 족하다고 생각한다. 적당히 했으면 자기 자리를 찾아야지."
"밖에 계시는 저 분...........이제 자리 내주세요. 혹시 알아요. 아버지에게 아들을 낳아줄지."
정 회장은 그런 하연의 말을 무안한듯 헛기침으로 무마해버린다. 아무리 알거 다 아는 나이라 해도 다 큰 딸자식에게서 그런 말을 듣는다는 건 아무래도 무안한 일이었다. 서재를 나서는 하연의 뒷 모습을 보며 정 회장은 다시한번 세라를 집으로 들인 일에 대해 후회가 들었다.
첫댓글 아 도현이는 이제부터 부모님과의 사투를 벌여야 할것 같네요 내배우자도 내가 선택하지못하는 가정에서 ㅡㅡㅡ 그져 온실속에 화초처럼 자란 도현이 과연 엄마의 입김을 이겨낼수있을련지 하연은 하연대로 생각이 깊어지고 ㅎㅎ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가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