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형제의 난
...
그곳에 할머니가 정신을 잃은 채 쓰러져 있었다.
너무 놀라 들고 있던 전화기마저 떨어뜨렸다. 구미는 서둘러 할머니를 흔들어 깨웠다.
“할머니!! 할머니!!!”
몇 번이고 불러봐도 할머니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너무나 갑작스레 일어난 일이라 정신이 없어진 구미는 한참이나 허둥댔다.
119에 신고부터 해야 하나. 그 전에 할머니를 집 안으로 옮겨야 할까? 아님 심폐소생술 같은 거라도 해야 하나. 할 줄 모르는데.
순식간에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그 순간 구미는 바닥에 떨어진 휴대전화에서 자신을 다급하게 부르는 목소리를 들었다.
서둘러 전화를 집어 든 구미는 떨리는 목소리로 울먹이며 다급히 말했다.
“하, 할머니가, 할머니가 쓰러지셨어요. 어떡해요, 어떡해...”
“네? 뭐라구요?”
“방금 집 밖에, 나, 나와 보니까 할머니가, 계, 계단 앞에 쓰러져계세요. 어떡하죠? 어떡해요.”
“제가 지금 갈게요.”
그 말을 끝으로 전화가 끊어졌다. 지금 온다고 해도 한참이나 걸릴 텐데.
이미 얼굴이 눈물, 콧물 범벅이 된 구미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두 눈을 질끈 감고 입술을 깨물었다.
정신차려, 고구미!
거칠었던 호흡이 조금 가라앉자 후들거리는 손으로 간신히 휴대전화를 붙잡고 119에 전화를 걸었다.
목소리가 울렁거려 제대로 말하기가 어려웠지만 어떻게든 해야만 했다.
“거기 119죠. 도와주세요. 여기..할머니가...할머니가..”
.....
“연세도 있으신데 이만하길 다행입니다. 외상도 크게 없으시구요.”
응급실에서 유신이 의사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구미는 병원 대기실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심각한 건 아니라는 말을 간단히 전해듣긴 했지만 여전히 할머니가 쓰러져 있던 때가 떠올라 심장이 두근거렸다.
신고 통화를 끊고 나서 구미는 다시 한번 할머니를 살폈다. 다행히 숨은 쉬고 있었다. 어서 빨리 누군가 와주기를 바라며 그 자리에서 계속 상태를 지켜봤다.
그렇게 구급차가 도착했고 구급 대원들이 할머니를 들것에 실어 옮겼다.
유신은 막 구급차가 골목을 떠나려던 차에 도착했고 곧바로 뒤따라 병원으로 향했다.
사이렌 소리가 온 동네에 울렸다.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달리는 응급차 안에서 구미는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았다.
잠시 후, 응급실 밖으로 나온 유신을 발견한 구미는 서둘러 일어나 할머니 상태를 물었다.
“할머니는 괜찮으신 거에요?”
“네. 괜찮으세요.”
“하아..다행이네요.”
그제야 온몸에 힘이 풀린 구미는 아무 의자에 걸터앉았다.
“진짜 다행이에요. 근데 갑자기 왜 쓰러지신 거래요?”
“....원래 몸이 좀 편찮으셨어요. 약을 제때 드셔야 되는데 요즘 들어 자주 잊으신 거 같아요.”
구미는 좀처럼 그 말이 와 닿지 않았다. 요 근래 함께 일을 하며 본 할머니는 늘 쾌활하고 정정했다.
해본 적 없는 것에 도전하며 의욕적으로 배워나가던 그 눈빛과 목소리가 떠올라 편찮으셨다는 그 말이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다 문뜩 어제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어지러워 휘청거리며 파스타 접시를 떨어뜨렸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저 연세가 많으신데 갑자기 무리해서 그런 거라 생각했었는데. 다시금 걱정이 밀려왔다.
“많이 안 좋으신 거에요?”
“네. 연세가 있으셔서 수술 대신 약으로 치료 중이세요.”
“전 전혀 몰랐어요. 분명히 요리하는 거 힘드셨을 텐데. 전 그냥 할머니께서 좋아하시니까...”
“그건 할머니께서 원해서 하신 거잖아요. 구미씨가 마음 쓰지 않으셔도 되요.”
“그치만...”
“....할머니는 그 식당...포기하지 못하세요. 아버지도 할머니를 집으로 모셔 오려고 애쓰셨는데 잘 안됐죠.”
망하기 전에 뭐든 해보고 싶다고 말씀하시던 할머니였다.
장사가 잘 되고 안 되고는 신경 쓰지 말고 그냥 해보자고. 그게 할머니가 남은 시간 동안 식당에서 머물 수 있는 방법이었다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괜히 응급실 문을 바라보던 구미에게 유신이 자기 명함을 건넸다.
“이런 부탁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할머니께 또 무슨 일이 생기면 저한테 연락해주실 수 있나요?”
“물론이죠. 그리구...제가 할머니 잘 보살펴드릴게요. 약 드시는 것도 꼭 챙기구.”
“고마워요. 구미씨.”
“뭘요.”
손사래를 치며 구미는 얼른 명함을 받아 주머니에 넣었다.
손주라는 사람이 할머니를 잘 챙기는 것 같아 다행이면서 또 한편으로 이런 일로 그에게 연락하게 될까 겁났다.
아프지 않으셨으면. 구미는 다시 조용히 응급실 문만 응시했다.
.....
세 시간 후 할머니가 깨어났다. 말 없이 병원 침대에 앉아계신 모습이 평소와 달리 수척해 보였다.
퇴원을 하고 식당으로 가는 내내 할머니는 유신에게 신신당부했다.
“아범한테 아무 얘기하지 말어. 큰 일도 아닌데. 걱정 끼치기 싫다.”
“그래도 아셔야..”
“네가 얘기하믄 또 집으로 들어오라고 난리 나. 그러니까 아무 말 말어.”
“...네.”
“그보다 우리 구미가 많이 놀라서 어째?”
조수석에 앉아있던 할머니가 뒤를 돌아보며 구미를 걱정했다.
“전 괜찮아요....근데 왜 저한테 아무 말씀 안 하셨어요. 미리 말씀해주셨으면...”
“어유, 뭘. 늙으믄 다 이래. 동네방네 나 환자라구 말하고 다닐 게 뭐야. 뭐 자랑이라구.”
“그래두요. 오랫동안 서서 불 앞에서 요리하구 이것저것 옮기고 나르고. 다 힘드셨을텐데.”
“안 힘들어. 평생 그러구 살았는데 이제 와서 뭘.”
자꾸만 괜찮다고 말하는 할머니때문에 구미는 더 속상했다.
할머니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시작한 일인데 괜히 병을 더 키우는 게 아닌가 싶은 걱정도 들었다.
가는 내내 할머니의 하얗게 샌 뒷머리를 바라보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답답하기만 했다.
차가 식당이 있는 골목길에 세워졌다.
구미는 할머니를 부축해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누구도 불을 켠 적이 없는데 식당 안은 이미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눈에 보인 건 다름아닌 부신이었다.
의자에 걸터앉아 상당히 지친 얼굴로 들어오는 세 사람을 응시했다.
“뭐야, 어디 갔다 오는 거야?”
낮게 떨리는 목소리에서 그가 화가 났음을 알 수 있었다.
언제부터 저렇게 기다린 걸까. 운 것처럼 빨개진 그의 두 눈이 무섭게 느껴졌다.
하지만 할머니는 아무렇지 않은 듯 평소처럼 대꾸했다.
“잠깐 밖에. 밥은? 먹었어?”
“어디 갔었냐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부신은 불같이 화를 내며 식당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할머니가 아닌 구미와 유신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살벌한 그 눈빛에 괜히 움찔한 구미는 눈치를 살피며 유신 뒤로 슬금슬금 몸을 숨겼다.
“아, 왜 소릴 질러. 병원에 갔었어.”
“병원? 병원에 왜!”
“병원에 왜 가긴. 아프니까 갔겠지.”
“아파?! 또 아픈 거야?!”
“나중에 다 애기해 줄게. 오늘은 피곤하니까 다 돌아가. 구미도 오늘 고마웠어. 유신아, 안 바쁘면 구미 좀 태워다 줄래?”
여전히 피곤한 듯 할머니는 그렇게 말하고서 대답도 듣지 않은 채 그대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러자 식당 안은 곧 쥐 죽은 듯이 적막해졌다.
무언가 단단히 심사가 뒤틀린 듯 씩씩거리는 부신과 우두커니 선 유신 사이에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벌어질 듯 위태로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먼저 입을 연 건 부신이었다.
“무슨 일 있었던 거야!”
“집 앞에서 쓰러지셨어. 다행히 구미씨가 발견해서 병원에 연락했고.”
흥분한 부신과 달리 유신은 차분하고 침착하게 대답했다.
“왜 나한테 말 안 했어.”
“형한테 무슨 수로 말해. 연락할 방법이 없잖아.”
“그럼!!! 거기 너, 너는 뭐했어! 가게에서 그런 거면 나한테 말했어야지!!!”
난데없이 불똥이 튀어 부신에게 손가락질을 당한 구미는 뭐라 할 말이 없어 괜히 침만 삼켰다.
분명 그가 옥탑방에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막상 그 상황에선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단지 할머니만 생각했고 위급했을 뿐인데 부신에게 혼이 나자 조금 억울했다.
그 때 유신이 나서서 구미를 두둔했다.
“정신 없는 상황이었어. 구미씨는 할머니를 위해 최선을 다 했고.”
“뭐?”
“그리고 설령 구미씨가 형한테 말했다 한들....형이 뭘 할 수 있는데?”
“.....”
“저 대문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못 나가잖아. 그런 형이 뭘 할 수 있냐고.”
자신을 대하던 때와는 전혀 다른 냉정한 유신이 구미는 낯설게 느껴졌다. 마치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싸늘한 눈빛과 상처를 입히기 위해 내뱉는 예리한 말들에 구미는 오히려 부신을 살폈다.
그런데 부신은 가만히 듣고 있지 않았다. 곧장 달려와 두 손으로 유신의 멱살을 틀어 쥐었다.
첫댓글 부신과 유신은 형제이면서도 의견이 다른가봅니다 부신이 아무래도 집안에 불만이커서 옥탑방에서 은둔생활을 하고있는듯 싶어요 과연 부신과 유신 둘중에 구미는 누구와 좋은관계로 발절하려
는지 귀추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