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도련님
하지만 구미의 심장은 튼튼했다.
미처 유신의 손이 닿기도 전에 재빨리 능숙하게 안전벨트를 잡아당겨 맸다.
군더더기 없는 동작으로 한번에.
“했어요. 출발 하시죠.”
차가 골목을 빠져나가는 동안 구미는 별다른 대화소재를 찾지 못해 창 밖만 바라보았다.
무슨 얘기라도 해야할 것 같은데 잘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 문뜩 구미는 옥탑방의 남자에 대해 물어보고 싶어졌다.
“저..근데 형, 그러니까 옥탑방에 사시는 그 분은 원래 그렇게 좀 이상, 아니...독특하신가요?”
“저희 형을 본 적 있으세요? 형이 남 앞에 잘 안 나서는데.”
“예. 그게 옥상에 올라갔다 우연히. 근데 혹시....어디 아프신 건가요?”
구미는 물어보고도 괜한 소리를 한 것 같아 후회했다. 진짜 아픈 거라면 별로 얘기하고 싶지 않을 텐데.
마음속으로 자신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구미는 유신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유신은 아까부터 그렇듯 개의치 않고 담담하게 대답했다.
“....글쎄요. 저도 자세한 이유는 몰라요. 그냥 오래 전부터 거기서 지냈어요. 밖에 잘 나오지도 않고, 사람도 안 만나고.”
“아...그렇구나.”
유신의 말을 종합해보니 그는 소위 ‘은둔형 외톨이’ 였다.
그런 사람들이 종종 있다는 걸 여기저기서 들어만 봤지 실제로 본 적은 없었는데.
유신의 말을 들으니 그의 특이한 외모와 행동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그런데 무슨 일 때문에 그런 생활을 하는걸까. 아니, 그보다 왜 자꾸 그에게 관심이 가는 걸까.
자신도 모르게 관심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자 고갤 저어 그 단어를 황급히 지워냈다.
그냥 호기심 같은 거라고, 요상한 사람 찾아 다니는 방송을 보며 왜 그렇게 사는지 궁금한 마음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그렇게 혼자 별별 생각을 다 하던 차에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고 차는 세워졌다.
“태워주셔서 감사해요.”
“아니에요. 저야말로 저희 할머니랑 같이 계셔주셔서 감사해요.”
“에이, 뭘요.”
“그럼,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네. 유신씨두요.”
차가 떠나고 구미는 한참이나 길가에 서서 떠나간 차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자신의 입에서 남자의 이름이 누구누구 씨라고 불려진 게 얼마만인지.
많은 이야기를 나눈 건 아니지만 분명 그는 좋은 사람같았다.
그 때 멀리서 누군가 구미를 불렀다.
“야! 고구미!!!”
밖에서 구미의 이름을 이렇게나 앙칼지고 얄밉게 부를 인간은 하나밖에 없었다.
구미의 언니, 고유미.
어디서 나타난 건지 어느새 옆으로 달려온 유미는 한껏 신난 얼굴로 구미의 팔을 툭툭 건드렸다.
주변 사람들이 의식될 정도로 촐싹거려 모르는 사이인 것처럼 눈 한 번 안 마주치고 무시했지만 그는 끈질기게 달라붙어 방금 전 상황을 캐물었다.
“야, 너 뭐냐. 방금 누구 차를 얻어탄거야? 혹시 냠~자~친~규?”
“아냐, 그런 거.”
“그럼? 그럼?”
“내가 자주 가는 그 가게, 주인 할머니 손주분이셔.”
“아, 전에 말하던 그 가게? 근데 그 할머니 손주가 널 왜 태워줘?”
“아, 있어. 복잡한 사정이! 오늘따라 왜 이렇게 나한테 관심을 가지냐. 언제부터 동생한테 이렇게 관심이 많았어!”
“뭐래, 이게. 야, 근데 너 이 시간에 왜 이러고 있냐? 일 안 갔냐? 아, 드디어 짤렸구나?”
짤렸으면 춤이라 출 기세로 신난 유미를 보며 구미는 혀를 찼다.
“이거 봐. 내가 어제 사장 놈 도망갔다고. 내 삼개월치 월급 떼먹고 날랐다고 몇 번을 말했는데 그건 관심 없었지?”
“아 정말? 어제 그런 얘길 했어? 나한테? 왜? 야, 그건 지금도 별로 안 궁금하다.”
“어유, 됐어. 말을 말자.”
하지만 구미는 그 후로 집에 올 때까지 집요한 질문공세에 시달려야 했다.
차가 비싸 보이던데 뭐 하는 사람인지, 몇 살인지, 생긴 건 어떤지. 별별 소리를 다 늘어놨다.
하지만 구미는 그 수많은 질문에 묵비권을 행사했다.
오늘 처음 본 사이라 아는 게 없기도 했지만 동생일보다 남에게 더 관심이 많은 유미에게 가르쳐 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컸다.
그렇게 구미는 입에 자물쇠를 매단 듯 꾹 다문 채 집까지 앞만 보고 걸어갔다.
구미의 집은 할머니 식당에서 조금 떨어진 동네의 오래된 작은 빌라였다.
본가에서 나와 언니와 단둘이 지내고 있었다.
사실 언니에게 얹혀산다는 표현이 더 적절했다. 언니와 같이 사는 건 무척이나 싫었지만 이리저리 일 하는 식당을 자주 바꿔 고정수입이 없었던 터라 별 수 없었다.
부모님의 집에서 나오며 행복한 독립생활을 꿈꿨지만 세상의 풍파를 꼼꼼하게 얻어맞고 언니의 품으로 나가떨어졌다.
쓸데없는 소리에 귀가 따가워진 구미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씻고 컴퓨터 책상 앞에 앉았다.
유튜브 조회수도 확인하고 구직 사이트를 켜 이리저리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다닐 셈이었다.
그런데 문뜩 침대 위에 아무렇게나 던져둔 옥탑방 남자 옷이 떠올랐다.
깨끗이 빨아서 돌려주기로 했는데 막상 무언가 하려니 영 힘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소중한 옷이라고 했으니, 또 그 지랄 맞은 성격에 괜히 더 휩쓸리고 싶지 않아(이게 더 큰 이유다) 구미는 옷을 들고 세탁실로 향했다.
통돌이 세탁기는 이미 유미가 돌린 건지 소란스럽게 돌아가고 있었다.
같이 넣고 돌리면 되겠지 싶어 구미는 뚜껑을 열고 티셔츠를 집어넣었다.
지금 돌려서 내일까지 마를까 싶었지만 안되면 그 집 옥상에 널어 말릴 심산이었다.
그리고 곧장 구미는 컴퓨터를 그대로 켜둔 채 침대로 가 벌러덩 누웠다.
할 일은 많은데 피곤해서 한번 누우니 일어나기 힘들었다.
탈수가 된 옷을 널고 자야 했지만 생각과 달리 몸이 너무 무거웠다.
그래, 눈만 감고 있어야지. 그렇게 마음 먹었다.
.....
“으오아아악!!!!”
끝없이 이어진 좁은 골목길에서 사나운 개에게 쫓기다 결국 다리를 물리며 잠에서 깼다.
완전히 개꿈이었다. 식은 땀까지 흘릴 정도로 사실적인 꿈 때문에 구미는 잠에서 깨고도 한참이나 정신이 멍한 피곤에 시달려야 했다.
찜찜한 기분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 때 방문이 열리고 유미가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야, 고구미.”
“...어? 왜?”
“너 이거 뭐냐? 네가 세탁기에 넣어놨냐?”
유미가 이상한 걸레를 흔들어 구미에게 보여줬다.
뭘 흔들고 있는 거지?
구미는 마치 최면에 걸리는 사람처럼 눈을 가늘게 뜨고 뭔가 싶어 바라봤다.
“....아니, 그게 뭐야?”
“나야 모르지. 처음 보는 옷인데? 남자 꺼 아닌가?”
남자 꺼?
그 순간 구미의 머리 속에 전기가 튀었다.
그리고 이내 유미가 들고 있는 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바로 할머니께 빌린 옥탑방 남자 옷이었다.
첫댓글 4,5화 조회수가 폭발적이네요 ㅎㅎ 검색어라도 걸렸나??? 암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 많이 달아주세용
구미와 할머니 손주들과의 인연이 시작되어가는 순간인것 같아요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어가려는지 점점 궁금증이 일어나는건 나만의 현상일지~~~
잘 보고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