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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우리는 인간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누구는 허구의 동물이라니, 에덴 신이 만들어낸 창조물 중 하나라니, 혹은 지금도 어딘가 모르게 우리와 살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그들을 구원자라며 광적으로 믿고 따르는 광신도들도 존재한다. 웃기지 않는가?
그것들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보다 미개한 존재였지 않았을까?
-신문에 올라간 논평 중 발췌….-
8.
세라는 옷장 문을 닫고 방 안에 있던 지도들과 책들을 작은 가방에 중요한 것들만 욱여넣기 시작했다.
작은 나무문이 얼마나 버틸지는 모르는 상황속에 바삐 움직였다. 책상과 의자로 문을 막고 손에 작은 칼을 집어 들었다.
“문을 열어라! 이단자여!”
밖에서는 망치 같은 것으로 문을 부수는 소리가 들려왔다. 몇 번에 소리 이후 이내 문은 부서지고 바닥에서 엄청난 먼지들이 일어났다. 그 사이로 흐릿한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방안으로 많은 병사가 들어왔다. 그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거구가 천천히 걸어들어왔다.
깔끔한 갑옷을 입고 허리 주 춤에는 날이 서슬 퍼렇게 살아있는 칼을 반짝이고 있었다.
“여기 있었군, 이단자여”
“보부상…! 여길 어떻게 알고 왔지?”
“이 동네에는 유용한 연락책들이 많단 말이지.”
말이 끝나자 뒤에서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과일가게 아저씨였다.
“프레드릭! 아직 감은 안 죽었어?”
“내가 보부상 그만둔 지 4년 지 지나도 저런건 안 놓치거든”
“다가오지 마!”
세라가 작은 칼을 우두머리에게 내밀었다. 하지만 그는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읏하하하하! 발악하는 건가? 그 작은 칼로 뭘 어쩌겠다는 거지? 이제 순순히 따라와. 할 이야기가 많거든.”
“꺼져! 개 같은 소리 하지 마!”
“이거 말이 지나친 거 아냐? 날 보고 개라고 했어? 난 하찮은 개 따위가 아니란 말이다!”
단숨에 다가가 그녀의 목을 잡고 공중에 집어 들었다. 숨이 막히는지 쇳소리를 내며 우두머리를 노려보았다. 그는 그러고 있는 그녀가 가엽다는 듯 혀를 끌끌 차며 손아귀에 힘을 주자 더욱 바둥거리는 그녀였다. 이내 세라가 힘없이 몸이 쳐지자 바닥에 던졌다.
“말할 때 순순히 따라줬으면 서로 얼굴 안 붉히고 끝냈을 거 아냐? 참 미련하단 말이지.”
순간 그녀의 곁에서 작은 가방에 떨어진 것을 발견하고 집어 들어 안에 있는 것들을 바닥에 쏟아부었다. 몇몇 책들과 종이, 옛날 대륙의 지도들이 떨어졌다.
“이런 걸 아직도 가지고 있어?”
“아 안돼!”
그녀가 미처 말하기 전에 그 위로 횃불을 던졌다. 시뻘건 불꽃에 깡그리 불타버렸다. 그걸 본 그녀가 이를 악물고 그에게 달려들어 작은 칼을 복부에 찔렀다. 우두머리는 그녀가 갑작스레 달려들지 예상 못 했는지 그대로 찔렸다.
“이런 버러지 같
은 새끼가!”
세라를 발로 걷어차고 배에 꽂힌 작은 칼을 뽑아 바닥에 던졌다. 손바닥과 칼에는 피가 흥건했다. 화를 가라앉히지 못한 그는 군홧발로 쓰러진 그녀를 밟기 시작했다.
“내가! 너 같은! 버러지한테! 당할 거 같아?! 미개한 종 같은! 토끼 따위에게! 이런 쓰레기 새끼가! 감히!”
세라는 의식을 잃은 지 오래였지만 그의 군홧발은 계속되었다. 주변에 부하들도 말려야 되는 거 아니냐면서 술렁거렸다. 하지만 우두머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과 온몸이 피 칠갑이 될 정도가 되자 분이 풀렸는지 한숨을 쉬며 손등으로 얼굴에 맺힌 땀을 닦아냈다.
“가둬 놔, 그리고 여긴 깡그리 다 태워버려. 3일 뒤 여기를 떠난다!”
“예!”
그의 얼굴에 붉은 물방울들이 맺혀 있었다.
9.
통로는 어둡고 서늘했다. 홀로 덩그러니 밀려나 들어오게 되었다. 옷장 문을 다시 열려고 밀어 봐도 두드리고 소리쳐도 귀를 기울여보아도 변하는 건 없었다. 아무것도 들리지도 밀리지도 전달되지도 않는 완전한 벽과 같았다.
종일 여기서 족치고 있을 순 없기에 일단 올라가기로 했다. 계단을 하나하나 올라갈 때마다 저 멀리서 희미한 불빛이 커졌다.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머릿속에는 의문점으로 가득해졌다.
'날 보고 Hum이라고 했어... 그게 뭘까……? 그리고 본 대륙에 날 알고 있는 노믹이 존재한다는 것,
마지막으로 세라가 여기에 있는 목적, 그녀를 쫓는 보부상...... 혼란스럽다'
머리에 쥐가 날쯤 어느새 밖으로 나왔다. 항구에 버려져 있는 작은 창고로 이어져 있었다. 인적이 드문 창고라 눈에 보일 일도 없었다. 창고 문을 열고 나와 별일 없다는 듯 자연스레 누더기를 벗어 쓰레기 더미에 던져버렸다. 찌든 내가 몸에 밴 것 같아 불쾌하다.
지금으로써는 그녀를 쫓아온 보부상을 알아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들은 무조건 여기에 온다면 항구를 지나올 수박에 없고 그들의 특이한 모습과 화려한 배 덕분에 누구나 항구에 있다면 소식쯤은 알고 있을 것이다. 지나가는 선원 하나를 붙잡아 물었다.
“저기요. 오늘 항구에 보부상이 들어온다는 소식이 있었나요?”
“보부상? 가만 보자... 잘 모르겠는데? 마지막에 온 게 3년 전이지 않나?”
“아 그렇군요.”
선원은 바삐 제 갈 길을 갔다. 그의 말이 맞는다. 3년 전에 우리 집에서 운영하는 여관에서 묵었다. 그때 당시에 선발대뿐만 아니라 본대 후발대까지 리게아에서 가장 큰 보부상 집단 '철의 상인단'에서 왔기에 엄청난 관심이 쏠렸었다. 별 볼 일 없는 작은 섬에 그런 휘황찬란한 집단이 왔으니 말이다.
결론적으로는 보부상이 오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왜 세라는 보부상이라 확신하고 있는 건지 의문점이 생겨났다. 하나를 해결하려고 하면 여러 개의 의문점이 도리어 더 생겨버리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계속되었다.
더욱 확실한 정보를 위해서 항만 관리 사무소에 찾아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수많은 선원들이 관리인에게 고함을 지르며 싸우고 있었다.
“아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맞아! 우린 어떻게 하라고!”
“센톤 총리 불러와 빨리!”
“여러분 진정하세요! 센톤 총리의 권한이 아니라 부 정부의 권한으로 명이 떨어진 거에요!”
“그건 알 바 아니고 빨리! 어떻게 좀 해보라고! 우리 생계가 달려 있어!”
대화는 평행선을 달리는 듯했다. 키가 작은 선원에게 물었다.
“지금 무슨 심각한 문제라도 있나요?”
“여기 안토니움 항구를 3일간 앞으로 폐쇄한다고 하더라고”
“예?! 갑자기요?”
“내 말이! 이유라도 알면 잠자코 있겠는데 도무지 이야기해주지를 않으니...”
갑작스러운 폐쇄에 선원들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센톤에서 가장 활발하고 거대한 항구인 안토니움 항구가 폐쇄 된다는 건 센톤에 심각한 문제, 역병, 전쟁의 징후가 보일 때 혹은 귀빈이 섬을 방문할 때 종종 그러곤 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 그걸 설명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닫을 이유가 없는 항구가 갑작스레 폐쇄된다는 건 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필시 그녀와 연관이 되어 있는 것이 확실했다. 하지만 항구 사람들도 모르는 상황이니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세라는 무사 하려나...'
혼자 생각에 잠겨있다가 순간 번뜩 생각이 들었다.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다시 가보면 될 일이다.
정말 간단한 것이었다. 시끄러운 사무실을 뒤로 한 채 문을 열고 재빨리 시장으로 들어가 갔던 길들을 되돌아갔다.
골목으로 들어가면 바로 도착이다. 그때 누군가가 나를 불러 세웠다.
“이봐 거기 멈춰!”
“네? 저요?”
멈춰 세운이는 바로 과일 가게 아저씨였다.
“아저씨? 여기는 어쩐 일이세요?”
“너 지금 어디 가는 거니?”
“그야.....”
대답하려는 찰나에 그의 손에 검댕이와 붉은 자국들이 있는 것이 보였다. 심상치 않았다.
“아저씨는 여기서 뭐 하세요?”
“뭐? 그.. 그야...”
역으로 질문하자 도리어 당황한다. 잠시 말을 얼버무리다가 이내 다시 대답했다.
“잠시 산책 중이었단다.”
생뚱맞은 대답이다. 가게에 있어야 할 아저씨가 지금 여기까지 왔다는 건 앞뒤가 안 맞는 말이다.
“아 그렇군요. 이제 가게로 가시는 길이세요?”
“아 아니 오늘 오후에는 장사 안 하려고 집에 돌아가려고”
“왜요?”
“항구가 폐쇄 됐다는 소식 들었지?”
“아 그래요?”
놀라웠다. 항구에도 폐쇄 소식이 선원들 사이에서 이제 막 퍼져나가는 시점에서 시장에 있는 아저씨가 벌써 이 소식을 알아차린다는게 의문점을 더 키워 갔다. 뭔가 그녀와 연관 되어 있는게 분명해 보였다.
“너도 여기는 무슨일이니?”
“저... 저도 산책 중 이였어요.”
“그렇구나”
평소에 느낄 수 없는 아우라가 아저씨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간담이 서늘할 정도였다. 아무 말 없지 나를 바라보다 이내 다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 조심하렴”
“네...”
이내 다시 차갑게 얼굴이 변한 채로 내 옆을 지나갔다. 그 순간 그의 얼굴에서는 살의가 느껴졌다. 잠시 놀란 나로서는 한참 동안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잠시 후 그가 떠났는지 두리번거렸다. 다행히 돌아간 것 같았다.
이내 다시 세레가 있던 서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곧 부질없음이 드러났다. 멀리서부터 메케한 냄새가 올라오더니 이내 멀리 서점이 검게 불타 없어져 있었다. 남은 건 재와 부실하게 버티고 있는 벽, 기둥 뿐이었다. 허탈한 마음에 안쪽으로 들어가 봤으나 천장이 무너져 더는 들어가는 건 불가능했다.
서점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서지고 불타 있었다. 이 정도면 섬 주민들이 알법했지만 항구에 있던 나조차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였으니 주도면밀했다는 것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잿더미를 훑으며 뭔가 남아 있으리라 믿고 그녀의 흔적을 찾기 시작했다. 한참을 찾는 동안 내 몸은 검댕이가 여기저기 묻었고 손과 발은 검게 물들었다. 이내 뭔가 구석에서 반짝이는 게 보였다.
곧장 집어 들어 손등으로 문지르고 입으로 불자 모습이 드러났다.
안경이었다. 안경테를 자세히 살펴보니 '세라 H. 마리아'라고 적혀 있었다. 서점 입구 근처에 떨어져 있는 것으로 보면 나가면서 떨어뜨린 것으로 보였다. 일단 안경 상태가 괜찮은 것을 보면 불길에 휩싸이지 않은 것 같다.
안경을 품속에 집어넣고 일단 집으로 향했다.
몸이 만신창이였다. 전날에 밤을 새운 것도 모자라 뒤통수에 상처도 나고 온몸은 검댕이로 덮이고 이만저만이 아녔다.
일단 재정비를 하고 그녀를 찾아 나서야 할 것 같았다.
10.
여러분! 음식과 물을 챙기십시오!
가족들의 안전을 보호하십시오!
여러 칸톤의 국가 깃발을 준비하십시오!
그것만이 당신들이 살아남을 길입니다!
신의 자손 혹은 추종자가 보이면 바로 주변 제일 가까운 보부상이나 치안성에 연락하십시오!
혹은 당신이 직접 머리에 총으로 바람구멍을 내버릴 수도 있죠!
-2차 대륙전쟁 때 발간된 안전 지침서 중 일부….-
11.
집으로 돌아오자 어느덧 시간은 4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까치발로 천천히 들키지 않도록 움직였다. 하지만 철부지 동생들 덕분에 걸리고 말았다.
“형!! 엄마 형아 왔어!”
“야! 조용히 해! 쉿!”
“엄마! 형 엉망진창이야 씻어야 될 거 같아!”
“그만 하래도!”
“뭘 그만해! 너 지금 나간 지 몇 시간이 지났는데 이제 돌아오는 거니?!”
“어... 그…. 그게 말이지”
“심부름 보내 놓았더니 꼴이 그게 뭐니! 어휴 진짜 내가 못 살아...”
큰일 났다. 곧 십중팔구 엄마의 무시무시한 잔소리가 나를 괴롭힐 게 뻔했다.
눈을 질끈 감고 귀를 막으려는 찰나 예상외의 말이 나왔다.
“애휴... 됬다 어서 씻고 준비해서 내려와라.”
“에?”
“뭐해 귀먹었어?! 어서 씻고 오래도!”
“아 알아서 엄마.”
웬일인지 평화롭게 마무리되었다.
별의별 일이 다 있다고 하면서 빠르게 방으로 들어가
품속에 있던 세라의 안경과 검은 책을 침대 메트리스 밑 가장 구석에 넣어 두곤 바로 씻으러 갔다.
간단히 준비를 마치고 깔끔하게 차려입고 1층으로 내려갔다.
1층에서는 아빠와 엄마가 부지런하게 여관을 청소하고 있었다.
“엄마 오늘 누가 와?”
“오늘 아버지 친구 오시는 거 몰랐니? 하긴 종일 밖에 싸돌아다니니 그렇지!”
“아빠 친구?”
“너도 잘 알잖아. 리한이였나 이름이?”
“리한?....리한?! 그 아저씨가 왜 우리 집에 와요?!!”
“애휴 나도 잘 모르겠단다.... 네 형의 행방을 알려주러 오는 걸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랬으면 좋겠지만....”
리한... 이름만 들어도 치가 떨리고 짜증 나고 분노가 치솟는다.
그리고 그의 이름이 나오자마자 바로 하나를 깨달았다.
보부상이 왔다.
첫댓글 어딜가나 세작은 있기마련인가 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