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탕,탕”
재판장 제림 의 뼈로만든 둔탁한 판사봉 소리는 하늘 높이 치솟은 거대한 동굴 재판소 안 을 무섭게 울려댔다.
“피고 악인 이노”
제림의 낮디 낮은 목소리는 아직 가시지 않은 판사봉 소리와 섞여 사방에 튕겨졌고 몇 악마들은 그 소리가
매우 듣기 거북 했던지 얼굴을 찡그리거나 몰래 귀를 막기도 했다.
제림의 말이 끝나자 재판장 뒤 끝쪽에서 거대한 철문이 쇳소리를 내며 둔탁하게 열렸고,
(그 소리를 들은 몇 악마들은 이제 대놓고 귀를 막고 있었다.) 팔과 다리에 묶인 불 붙은 쇠사슬 공을 질질 끌며
창백하다 못해 투명한 피부의이노가 아무런 표정없이 재판장 안쪽을 터덜 터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곧 재판장 안쪽은 판사봉 소리, 재판장 제림의 목소리, 거대한 철문의 소리, 그리고 이노가 움직일때마다 끌리는
거대한 불 붙은 쇠공의 소리가 동굴 재판장 벽을 타고 끝없이 치솟은 천장 위 까지 소용돌이를 그리며 울려 댔다.
이노는 피고인석 의자에 털석 앉으며 안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며 온 몸을 뒤져 라이터를 찾고 있었다.
제림은 그런 이노를 뚫어져라 바라 보며 말을 이어 나갔다.
“악인 이노는 인간 을 이용한 수명 거래를 한 죄목으로 이 자리에 섰다. 이를 인정 하는가?”
이노는 여전히 온몸을 뒤지며 대충 고개를 끄덕 거렸고 곧 자신의 발목에 묶인 불붙은 쇠공을 기쁘게 바라보며
몸을 숙여 쇠공에 불을 붙였다.
“악인 이노는 목소리로 답하라”
제림은 조금 언짢아 하는 듯 했지만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예, 재판장 님 제가 그랬죠”
이노는 담배연기를 한 껏 내뱉은 후 말을 이어 나갔다.
“솔직히 저는 인간도 아니고 악마도 아닌 데 악마의 법에 따라 처벌 받는게 부당하다 생각합니다.”
그는 제림의 붉은 눈을 바로 응시하며 답했다.재판장 내부는 곧 악마들의 수군대는 소리로 웅성였고
곧 파란 정장을 입은 한 악마가 벌떡 일어나 분노에 가득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재판장님 사후세계의 종말을 일으킨 악인 이노는 추방 당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디로? 천국으로? 아, 천국도 망했지! 그게 누구 때문이었더라?...어? 나 때문이네?”
이노는 한손에 담배를 든 채 배를 잡고 깔깔 웃어댔고 그 모습을 본 파란 정장의 악마는 숨을 가쁘게 몰아 쉬더니
곧 온몸이 갈라지며 붉고 묽은 용암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정장은 불에 타들어가 한 조각 한 조각 하늘위 재 로 흩어졌다.
“감히 인간 주제에! 어딜!!”
악마는 이제 몸집이 매우 커져 천장에 매달린 횃불을 건드릴 정도였다. 그 모습은 거대한 화산에 눈코입이 달려있는 듯한 모습이었고 뜨거운 용암이 계속해서 흘러나와 주변 악마들은 툴툴 거리며 자리를 피했다.
그는 매우 분노하며 손을 부들 부들 떨었지만 이노는 흘러내린 용암 쪽으로 담뱃재를 툭 털며
그 악마를 한참동안 바라보다 말을 꺼냈다.
“그러니까 원대한 계획서를 잘 간수 하셨어야죠, 하긴 누가 알았겠어요? 인간 수명과 생의 전체 계획이 씌어 있는
그 책을 바로 당사자인 인간이 훔칠 줄이야… 아! 생각해 보니까 원대한 계획서를 지키는 일이 너였구나 프로디?”
프로디는 괴성을 지르며 거대한 주먹으로 이노를 내려 치려 했지만 그는 재 빨리 옆으로 몸을 숨겼다.
“후, 주먹 한 번 거대하네”
이노는 신발 밑창에 달라 붙은용암을 떼어 내며 말했다.
“자! 악마 여러분 한 번 말씀해 보세요 거기 분홍 모자쓰신 여사님?”
그가 곱게 차려입은 한 땅딸맞은 노인을 지목하자 노인은 매우 당황한 듯 닦던 안경을 바닥으로 떨어트렸다.
“지옥에서 일을 할 때보다. 인간 세상에서 일하는 지금이 훨씬 편하지 않나요?”
노인은 더듬거리는 손으로 안경을 찾아 쓰며 말했다.
“예, 뭐 그렇다고는 할 수 있죠 하지만…”
“네! 그렇죠! 지평선 넘어 아무 것도 없는 지옥과는 달리 이곳은 건물도 있고, 공원도 있고 , 와! 심지어 맛있는 음식까지 먹을 수 있죠! 안 그런가요 여사님?”
“예, 그렇지만…”
“물론! 악마의 거대한 몸을 꾹꾹 눌러 담아 인간의 모습을 한 채로 살아가는게 조금은 힘이 들 순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모습으로 악마의 일을 수행하는게 훨씬 재밌지 않나요?!”
“탕,탕,탕”
제림의 둔탁한 재판봉 소리가 한 번 더 울려퍼졌고 말을 하기위해 수줍게 손을 들었던 노인은 조용히 손을 내리곤
다시 안경을 닦았다. 제림은 큰 한 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악인 이노는 자리에 앉으라”
이노는 아직 할 말이 남은 듯 배심원 쪽을 바라 보았지만 제림의 눈을 보곤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자리에 앉았다.
“피고인 이노는 원대한 계획서를 훔친 죄로 인간도 악마도 아닌 몸에 갇혀 평생을 보내야 한다.”
“정확히는 만년 동안이죠, 제 첫 번째 재판 기록을 보시면 알 수 있으실 겁니다…”
순간 제림의 눈이 번쩍 크게 뜨이자 이노는 하던 말을 멈추곤 벌린 입을 급히 다물었다.
“또한 인간에게 알려져서는 안될 일생의 계획을 천기누설한 죄 와 이로인해 사후세계 전체의 혼란을 야기시켜
천계에 가야할 인간이 악계 에 떨어진 일, 악계에 가야할 인간이 천계로 떨어진일…“
검은 양피지를 줄줄 읽어 내려가던 제롬은 순간 머리가 어지러운지 한숨을 한번 더 크게 내쉰 후 이어서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또한 악마와 천사에 대한 구체적 존재를 인간에게 확인 시켜 준 일로 제 수명을 다 채우지 못한 채 죽은 인간의
사례와…“
“사실 그 인간은 악계로 떨어져야 될 인물이었죠, 인간을 몇 명을 죽이고도 죽기 직전 회개 한 번으로 천국에 가다니요? 이건 말도 안되는….”
“조용!!”
결국 참지 못한 제롬은 자리에 벌떡 일어나 소리쳤고 그 소리에 놀란 몇몇 악마들은 의자 밑으로 숨으며 몸을 바들 바들 떨었다. 이노 또한 매우 놀라 자신의 심장 소리가 귀 옆쪽에서 쿵쾅 대는 듯 했다. 제롬의 소리는 메아리 치며 계속해서 울렸고 그건 마치 이노에게 최후의 경고를 하는 듯한 소리로 들려왔다.
“피고 이노는 이 자리에 죄인으로 섰다! 천국도, 지옥도 없어진 지금, 오직 환생의 기회만이 남은 이 시국을 이용하여, 저승사자의 모습으로 인간에게 다가가 수명 거래를 하다니! 환생 마저 사라진다면 인간세계는 죽지 않는 불사 만이 남게 되어, 그것이 가져 올 엄청난 혼란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것이냐!!”
제롬은 매우 화가난 목소리로 쏘아 붙이듯 쉬지 않고 말을 이어갔고,이노는 무언가 할말이 있지만 말을 하지 않는
쪽이 더 낫겠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제롬은 한 참 동안 이노의 얼굴을 바라보다 그의 큰 손으로 마른 세수를 했다.
잠깐의 정적이 흐른 뒤 그는 입을 열었다.
“최종 판결을 내리겠다. 피고 이노는 그 동안의 행실이 올바르지 못한 점 과 회복기를 가지고 있는 악계와 천계
모두를 다시 한 번 위험에 빠트렸음으로 그 죄질이 매우 나쁘다. 하여, 피고 이노 의 악마 자격을 박탁 하고, 원래의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가 만년의 생을 살 것이며, 그 동안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죽어가는 모습을 똑똑히 지켜보며 아파할 것이다. 또한 끝없이 이어지는 생에 무기력함을 느낄 것 이며, 피고 이노에 대한 마지막 판결은 만년 후 이곳에서
다시 집행 하도록 한다.“
“탕,탕,탕”
첫댓글 아호 정신없어 천계와 악마계가 부실해지고 인간으로 태어나 만년을 살라니 진쨔 정신이 핑핑 도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