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하는 십일조와 연보(헌금)는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인가?(8)
-신약에서의 십일조에 대하여 살핌 : 예수께서 신약 시대에서도 십일조를 드릴 것을 명령하였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
우리나라의 교회는 개신교로 자신들을 말합니다. 이는 개혁파 신교라는 것으로 개혁교회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개혁교회 됨을 구교[카톨릭]에 대항하고 구교의 잘못된 교리와 예배 의식을 개혁한 것에서 주로 찾습니다. 그러나 말입니다. 이는 바른 교리로 믿고 따르며 바른 예배 의식을 갖는다는 것인데 정작 역사적 전통을 잇는 신조와 교리를 따르지 않으며 여기에 근거하여서 예배 모범을 바르게 가져 나가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십일조도 그렇습니다. 앞서 벨직신앙고백서 제25장에서도 본 것입니다만 의식법의 폐기를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십일조 제도를 여전히 고집할까요? 그 첫째 되는 요인은 예수님께서 신약 시대에서도 십일조를 드릴 것을 명령하였다는 것을 듭니다. 과연 그럴까요? 마태복음 23장 23절입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이 구절은 누가복음 11장 42절에서도 기록되고 있습니다.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를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 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아니하여야 할지니라.”또 누가복음 18장 12절입니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이 세 구절은 단지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는 것 때문에, 그런가 하면 예수님 당시에 언급되고 있다는 것 때문에 예수님께서 신약 시대에서도 십일조를 할 것을 말씀하셨으며, 또한 신약 시대의 사람들은 십일조를 하면서 살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말입니다. 이 구절들은 십일조 제도를 교회가 계속해서 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말해 주고 있는 내용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여기에서 말씀하시고 있는 십일조 언급은 그리스도로서 십자가에서의 구속 사역을 통해서 옛언약을 성취하시기까지는 모든 율법을 준수하는 자의 위치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하실 당시 예수님은 아직은 구속 사역을 진행해 나가는 때에 있으므로 예수님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은 율법의 요구에 절대적으로 순종하여야 하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여전히 의식법들이 영향을 미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 자신도 친히 여러 절기들을 지키셨으며 또한 의식 규례를 따랐습니다. 그리고 율법 아래 있는 바리새인들에게 율법의 바른 준수를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들은 신명기 14장 22-23절에서 명령하고 있는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리는 데 곡식과 새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드렸으며, 거기에 그치지 않고 양념에 쓰이는 채소에 이를 만큼 십일조의 적용을 세세한 부분에까지 적용하여서 지켜나갔습니다. 그래서 박하 꿀풀과에 속하는 1m 크기의 다년초로 단맛을 내는 식물인데 줄기와 잎에서 향료를 채취한다. 유월절 축제 때 먹는 쓴 나물에 넣는 양념 중 하나이다]와 회향[미나리과의 식물로 운향이라고도 하는데 1-15m 크기의 다년초로 "궁궁이"라고도 불리우며 뿌리에서 향료를 채취하여 구충, 통경(通經) 등에 약재로 쓰기도 하고, 양념으로 쓰인다]과 근채[미나리과에 속하며 '구민초'라 불리움. 양념과 약재로 쓰인다]의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이러한 십일조 생활을 인정하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 자신이 그러하듯이 그들이 아직은 율법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해온 대로 그 모든 십일조를 드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데에는 단지 그러한 십일조를 하라고 하는 것에만 있지는 않았습니다.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율법에 따라 바치는 그들을 높이 사고 있습니다만, 그러나 이 율법의 준수는 그야말로 작은 일입니다. 이보다 더 크고 가장 중요한 율법의 준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의(정의)와 인(자비)과 신(믿음)을 행하는 것입니다. 설사 십일조만이 아니라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기까지 할지라도 말입니다. 그러니까 십일조보다 더 중요한 의와 인과 신을 무시하고 내버려두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가 하면 의와 인과 신을 행하여 나가는 참으로 큰 율법을 지켜 나가고 있는데 양념에 쓰이는 채소의 십일조를 하는 세세한 규정들도 무시하지 말라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예수님은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행하여야 한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여기에서 보는 대로 예수님의 십일조 언급은 자신이 십자가에서 이루실 구속 사역의 진행 과정에서 바리새인의 외식하는 믿음을 책망하는 데서 있는 일이었습니다. 따라서 종교 지도자의 외식을 지적하거나 그리스도 사역의 본질을 말하고자 해서이지 십일조 제도의 시행으로 기록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