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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부천개혁교회 교회 직분론 2강
말씀을 감독하는 자인 장로
이천우 목사
디도서 1장 5-9절 / 5내가 너를 그레데에 남겨 둔 이유는 남은 일을 정리하고 내가 명한 대로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 6책망할 것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이며 방탕하다는 비난을 받거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믿는 자녀를 둔 자라야 할지라 7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득을 탐하지 아니하며 8오직 나그네를 대접하며 선행을 좋아하며 신중하며 의로우며 거룩하며 절제하며 9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슬러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
디모데전서 3장 1-7절 / 1미쁘다 이 말이여, 곧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함은 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이라 함이로다 2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신중하며 단정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3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하지 아니하며 4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공손함으로 복종하게 하는 자라야 할지며 5(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리요) 6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7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
디모데전서 4장 11-16절 / 11너는 이것들을 명하고 가르치라. 12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13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 14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을 통하여 받은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며 15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16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살펴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교회 직분론’1강에서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워나가시는 것에서 교회에 주시는 은사가 있으니 곧 목사와 장로, 그리고 집사의 직임을 설명하였습니다. 이어지는 2강에서는 (1) 장로(목사를 포함)와 집사는 어떤 자들인지와 (2) 장로와 집사가 교회에서 맡은 일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알도록 합니다.
디도서 1:7-9절을 보면“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1) 책망할 것이 없고 (2)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3)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4)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5) 구타하지 아니하며 (6)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며 (7) 오직 나그네를 대접하며 (8) 선을 좋아하며 (9) 근신하며 (10) 의로우며 (11) 거룩하며 (12) 절제하며 (12)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스려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디모데전서 3장 1-7절에서는“미쁘다 이 말이여, 곧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함은 (1) 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이라 함이로다. 그러므로 감독은 (2) 책망할 것이 없으며 (3)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4) 절제하며 (5) 신중하며 (5) 단정하며 (6) 나그네를 대접하며 (7) 가르치기를 잘하며 (8)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9) 구타하지 아니하며 (10) 오직 관용하며 (11) 다투지 아니하며 (12) 돈을 사랑하지 아니하며 (13)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공손함으로 복종하게 하는 자라야 할지며(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리요) (14)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15) 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라고 하였습니다.
두 곳의 말씀에 보면 교회에서 장로는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의 장로는 감독이라는 용어와 병행적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말씀을 가르침에 있는 장로(목사)와 함께 그 말씀에 근거하여 다스림에 있는 장로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교회에서 목사를 세우고자 할 때나 장로를 세우고자 할 때 모두에 적용됩니다. 이 두 곳에서 바울이 디도에게, 그리고 디모데에게 해 주고 있는 권면은 같은 이야기를 해 주시고 있는 것으로, 교회에서는 장로의 자격 요건으로 가르쳐지고 있는데, 그럴 경우 이 앞에서 대개의 사람들은 손사래 치며“난 장로의 자격이 없습니다”라고 정중히 사양하며 거부합니다. 바울이 디도에게 보낸 편지에서“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합니다”란 말씀 앞에서는 더더욱 자신을 낮추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에서 성도들 중에서“누가 여기서 말씀해 주시고 있는 장로의 자격 요건을 충족하고 있는가? 그래서 누가 장로의 자격 요건을 갖추고 있어서 장로의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가?”라고 하며, 장로를 세우는 것에 기준을 통과할 맞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며, 장로를 세울 수 있는 적합한 사람이 있겠느냐는 부정적인 이야기를 해 주고 싶은 것일까요?
아닙니다. 이 모두는 장로의 자격 요건에 충족되는 리스트로 제공되고 있는 것에서 말씀해 주시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하나의 리스트로 점검하며 점수화하여서 자격 요건에 충족되는 사람을 장로로 선출하게 하는 것에서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세워진 교회가 그리스도께 가진 믿음의 정결함에 있는 사람에게서 보살펴질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에 바울은 감독(장로)가 되려는 자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를 열거하여 말함으로써 그리스도의 교회가 세워진 곳에 장로를 세워 그 교회를 공고히 해 나가도록 했습니다. 바울은 디도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자신이 이 일을 하고자 하였으나 이루지 못하고 그레데 섬을 떠나야 하게 되자 디도를 남겨 두고 자신이 하지 못한 일을 그가 마저 하도록 하였습니다. 바울은 그레데 섬에 남아 있는 디도가 할 일이 그리스도의 교회를 강하게 하는 데 온 힘을 기울이는 것에 있는 것임을 알게 해 주면서 그에게 전에 일러준 대로 각 도시마다 장로를 임명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디도와 함께 그레데 섬에 있을 때 믿는 자를 얻어 그들의 믿음이 예수께 견고히 붙어 있도록 하는 중에 그곳에 디도를 남겨 두고 떠나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하였었기에 그곳에서 다 하지 못한 일을 디도가 마저 하여 완성하고 디도에게 일러준 대로 도시마다 교회의 장로들을 임명하게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에게 장로를 임명할 때 신중을 기할 것을 권면하였습니다.“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며 오직 나그네를 대접하며 선을 좋아하며 근신하며 의로우며 거룩하며 절제하며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스려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입니다. 이 권면의 내용은 바울이 디모데에게 권면하는 것과 같습니다. 디모데전서에서는“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함은 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이라 함이로다”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여기서‘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에서의‘선한 일’은 장로(감독)의 직과 관련하여 볼 때“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행 20:28)라고 하신 것에서 보게 되는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신 것에서 있는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전파와 함께 감독의 기능을 염두에 두고서 한 말입니다. 교회는 성도를 살펴 이 선한 일에 사모함이 있는 자에게 장로의 일을 맡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사모함이 있다’는 것은‘열망한다’는 것인데 현재형으로 쓰이고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의 주로 받아들이고서 그의 마음에 일어난 열망이 지속되어와 현재에도 지속되고 있는데,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관련할 때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는 속에서와 이단들의 해악이 교회를 위협하는 속에서도 갖고 있는 열망으로 생명을 담보로 하는 사역이 장로의 직임에도 불구하고 그 열망을 계속해서 갖고 있음으로 주 예수께 대한 그의 믿음이 참으로 굳건하다는 것을 나타내 줍니다. 교회는 그러한 자를 장로로 세울 것을 바울은 권면하였습니다. 그리고 또한‘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장로를 세울 것을 말씀하시는 것은 인격과 삶에 흠이나 잘못이 없는 결점이 없어야 한다는 것에서가 아니라 그러한 그의 믿음은 책망할 것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에서입니다. 즉,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평판에서 무시되는 흠 잡힘에 있지 않다는 것이니,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그의 믿음을 보는 사람들에게서 칭찬이 자자하다는 것입니다. 스트라스부르크의 종교개혁자 마틴 부써는 그의 책『참된 영혼의 돌봄』에서 장로직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내가 장로들에게 책망할 것이 없기를 요구하는 이유는 이 장로들은 감독들, 즉 일반적인 감독자들과 그리스도인들의 목자들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감독의 직무는 매우 중요하기에 그들은 책망 받을 것이 없어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다른 사람들이 흠이 없고 거룩한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서는 봉사하는 사람들은 그 어떤 다른 사람들 이상으로 더 거룩하고, 흠이 없고, 모든 책망으로부터 벗어난 사람이 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으로부터 사도가 장로라는 말을 통해서 의도하는 바는 그들이 감독이 될 장로들로서 적당한 감독자들이며, 영혼들의 보호자들이며, 그리스도의 양떼들의 목자들이라는 사실이 분명하다. 이와 같이 각 교회는 모든 목자들과 감독들 뿐 아니라, 영혼의 돌봄과 봉사직을 수행할 여러 장로들을 세워야만 한다는 것은 바로 이것이 성령의 질서이기 때문이다.”마틴 부써의 말처럼 장로는 치리를 위해 책망 받을 것이 없어야 하고, 또한 책망할 수 있어야 합니다.1) 그러한 그는 한 아내의 남편으로서 가정생활을 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함에서 보는 내적 자제력, 곧 자신을 잘 다스리는 자기 통제력에 있는 사람이니, 그는 나그네를 용납하여 그에게 있는 하나님의 자비를 따라 대접하는 일을 잘 하는 사람이며, 복음의 근본과 기초를 무너뜨림에 있는 율법주의적 유대주의자들이나 영지주의자들의 침투에 의한 이단적 사상에 맞서 대항하여 복음의 진리를 바르게 가르치는 일을 잘하며, 술을 즐기지 않으며 구타하지 않으며 오직 관용하고 다투지 않으며 돈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공손함으로 복종하게 하는 자이니 이러함은 하나님의 교회에서도 그대로 일 것입니다. 새로 입교한 사람에게서 장로를 세우는 것에 주의를 갖는 것은 그가 봉사의 일을 할 수 있는 준비된 사람이 되기까지에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무시하고 새로 입교한 사람을 장로로 세우면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 염려가 충분히 있습니다. 또한 교회 안의 성도들에게서만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를 장로로 세울 것이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비방과 마귀가 쳐 놓은 올무(덫)에 빠질까 염려해서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이야기를 해 주는 것을 통해서 성령의 내주하심에 의한 복음의 강한 열망에 있음이 육체의 소욕을 통제(억제)함에 있음을 말해주고자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의 주로 받기 전인 옛사람의 상태에서는 육체의 생각에 따라 육체의 일을 도모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만,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 된 새사람에게서는 그가 알게 된 영의 생각을 따르며 영의 일을 도모함에 있는 것이 그의 마음에 품는 바가 되었습니다. 그는 말이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신 주 예수께 가진 열망을 주의 뜻을 따름에 의해서 계속해서 가져나갈 것입니다. 어떻게 말인지요. 이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는 것이 디도서 1장 9구절인“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슬러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입니다. 이는 장로의 중요한 직무입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장로’인 목사와 함께 같은 장로이지만 그가 하는 역할이 목사와는 구별되는 직무에 의해서‘치리하는 장로’로 불리는 장로의 직분이 교회에 필요한 것은 예배의 직무와 관련해서입니다. 치리자 장로는 공예배에서 목사의 설교에 의해 가르침을 받은 신실한 말씀에 견고히 붙잡힘에 있으면서“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스려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는”것에 있습니다. 여기서‘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는 반드시 장로가 성도에게 하는 것에만 해당되지는 않습니다. 장로는 목사와 함께 감독자입니다. 이는 단순히 감시자라는 말에서가 아니라 치리자라는 말을 포함합니다.2) 목사는‘말씀을 가르치는 자’인 것이며, 장로는‘말씀을 감독하는 자’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감독하는 직무에 있는 장로의 직무에서 첫 번째는‘목사의 설교를 책임 있게 감독한다’는 것입니다. 장로는 목사와 함께‘당회’를 구성하고 정기적인 모임을 통해서 가져나갑니다. 이때 장로는 감독자, 곧 치리자로서의 장로의 역할을 해 나가야 하니다. 목사가 설교한 성경 본문의 해석과 설명이 올바른지를 점검을 하며 목사가 자의적으로 설교하지 않도록 합니다. 만일 올바르지 못했을 시에는 권면하여 말씀이 신실하게 선포되도록 하여야 합니다. 장로가 이 직무를 온전히 감당하기 위해서는 복음의 진리 지식에 목사와 버금가는 이해에 있어야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장로는 성경을 부단히 공부해야 하며 또한 신학적 이해도 가져나가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한 것에서 목사가 되고자 하는 자가 신학을 공부하듯이 장로에게도 신학을 공부할 것을 권합니다.
장로의 직무 가운데 중요한 또 하나의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도들을 심방하는 일입니다. 대체적으로는 장로의 심방을 병약한 자와 초상자 등 슬픔을 당한 자를 찾아 위로하는 것에 무게를 두고 있는 형편이나, 이러한 경우에 장로가 심방하는 것 외에 성도의 신앙을 살피고 위하여 기도하며 도리 오해나 도덕상 부패를 방지하는 것에 중요함이 있습니다. 이는 장로의 직무에서 두 번째가‘말씀에 따르며 살아가는 성도들을 사랑으로 감독한다’인 것에서입니다. 장로는 성도의 가정을 심방하여 성도가 주일에 선포된 말씀을 올바르게 잘 이해하고 있는지를 살피며, 그렇지 못한 자나 말씀 선포에도 불구하고 그릇되이 잘못 알고 있으면 잘 설명하며 가르쳐 주어 주 예수께 대한 믿음을 반듯하게 잘 가져나가도록 도우며, 다행스럽게도 말씀을 잘 이해하고 있다면 말씀에 따르며 잘 살아가도록 권면하며 그럴 수 있도록 사랑으로 감독하며 그들의 믿음을 위하여 기도하여야 합니다. 이 외에도 기독교의 도리 오해나 도덕상 부패에 있지 않도록 감독함으로써 방지에도 있어야 합니다. 장로의 이 직무는 성도의 가정을 심방하는 것에서 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장로의 직무에서 심방은 장로의 직무인 말씀을 감독하는 자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습니다. 심방의 기초는 목사를 통해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이니,3) 그리스도께 가진 성도의 믿음이 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굳건히 서 나감에 있도록 하여야 합니다. 이 일을 잘하는 자를 성도는 알아주어야 하며 존경하여 따라야 합니다.
이상에 보는 장로의 직무에 따른 역할을 잘하면 교회는 말씀에 있는 바른 진리에 의해 올바르게 잘 서나갈 것이며, 성도는 말씀에 입각한 신앙으로 말미암아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은 더욱 그리스도께 뿌리를 깊이 내려 견고히 잘 서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온 교회는 그리스도와 하나 된 몸으로 온전할 것이니, 교회에 큰 유익을 가져다주는 것이 교회 직분인 장로입니다.
교회에 이처럼 필요하고 교회에 이처럼 유익을 주는 장로의 직분을 적지 않은 성도들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은 왜 인지요? 이는 그동안 한국교회가 장로의 직분을 잘못 가져온데 따른 것입니다. 장로는 권위직인지요. 장로는 명예직인지요. 장로는 부유한 사람의 전유물인지요. 장로는 교회 부서의 책임을 맡는 장을 위한 자리인지요. 아닙니다. 그런데 이러한 장로로 있어왔습니다. 이것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회의적인 마음에 있어왔기에 이러한 장로 체제가 될 것에 우려를 갖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장로로 교회가 세워져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그리고 교회에 장로가 있어야 함에도 장로가 없는 교회에 있지 않기 위해서 장로를 세우며, 그럼으로써 장로의 역할이 목사의 역할과 함께 잘 병합하며 조화를 이룸으로써, 그리고 또한 목사와 그리고 집사의 역할과도 서로 도움으로써 교회가 말씀에 든든히 잘 서나가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이광호 목사는 교회 직분에 대하여 이런 말을 했습니다.“직분은 교회를 지탱하는 뼈대와 같다. 직분이 없으면 아무리 순수한 성도들이라 할지라도 제각기 자기 마음에 따라 행하려고 하는 인간의 본성으로 인해 온전히 교회를 세워나갈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교회를 온전히 세우기 위한 방편으로 직분을 은사로 허락하셨다. 우리 시대 교회가 세속화 되고 허물어져 가는 저변에는 직분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적용이 없기 때문이다. 즉 직분이 허물어지고 직분자들이 교회로부터 부여받은 직분을 잘못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작금에 이르러 제기되고 있는 불건전한 평신도운동은 자칫 직분 제도 자체를 인정하지 않거나 무시하는 경향으로 나아가기 쉽다. 그러기에 성경적 직분에 대한 이해는 중요하다.”
한국교회는 항존직인 목사, 장로, 집사가 있으며, 여기에다가 임시직인 전도사, 전도인, 권사, 서리집사까지 두고 있음에도 뼈대 없는 몸, 허물어진 직분에 있어왔습니다. 교회는 여러 직분이 다양하게 많이 있다고 해서 제대로 된 교회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제시해 주시고 있는 삼직인 목사, 장로, 집사가 각각 존재하면서 이 직분들이 서로 합력하여 조력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 나간다면, 그래서 보우만(H. Bowman)이 말한 바“모든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자비를 배우며, 그리스도의 뜻을 돕기 위하여 자비를 행해야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특수한 의미에서 교회에 긍휼의 직분을 세우셨다. 그리스도께서 불완전한 사람들을 통해서라도 목사직을 통하여 가르치시고, 치리장로를 통하여 다스리시고, 집사직을 통하여 긍휼의 왕국을 보여주신다.”에 있는다고 하면 그 교회는 비록 이 땅에 있으나 주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하나님의 백성으로 채우심의 충만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로 있어갈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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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손재호, 창원한결교회, “2017년 가을학기 직분론 특강 :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라.”
2) 이광호, 실로암교회
3) 위의 글
첫댓글 한국교회는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의 직분을 회복해야 합니다. 성경에서도 없는 직분을 만든 것은 정말 어이없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