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문장을 그대로 옮기자면,
"현재까지 300여개의 봉토석실분이 조사되었다. 현재 상당수 파괴되거나 사라진 것들도 많으며 발견되지 않은 것들도 존재하여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다. 최근의 조사에 따르면 790여기에 달한다고 한다. 하지만 현지의 학자로부터 들은 정보에 따르 면 당초 분묘는 약 2,000기에 달했다고 한다.(중략) 특히 그 중에는 사람이 선 채로 들어갈 정도로 큰 고분도 있었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현지에서는 이를 고분으로 생각하기보다 실제 사람이 살던 주거지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데, 그 고분군의 시기는 기본적으로 백제 말기가 유력하지만, 수대에까지도 소급할 여지가 있다고 합니다. 통일신라 시기 백제 유민들의 것으로 이해하는 견해도 있지만, 공저자들의 입장은 정황상 사비성 도읍기에 무게를 기울고 있으며, 이를 백제의 대륙진출 기록과 연계해서 이해하기도 합니다.
관련 공부량도 거의 전무하고, 서점에서 짬내어 본거라 정독을 하지 못한 관계로 여기까지만 언급을 하겠습니다. 도서정가제할인 때문에 출혈이 커서 구매하지는 못했지만, 언젠가 사서 볼 생각입니다.
첫댓글 도서정가제할인때문에 출혈 ㅠㅠ 심히 공감됩니다...
아직도 수혈 중이네요.ㅋㅋ;;
그 300여개의 봉토석실분을 백제 것으로 본다는 건가요?? 사비기때라면 무령왕릉 같은 남조 고분을 말하는 것 같은데, 무령왕릉이랑 비슷한 고분이 수백기가 있다면, 백제 무령왕릉을 특이한 케이스로 봐야지, 남조측 고분들을 무령왕릉을 두고 백제계라고 하는건 좀 무리가 있을 듯 합니다. 그나저나 이도학 선생님과 영대가 같이 쓴거 같은데...어떤 내용인지 자뭇 궁금하긴 합니다.
중국학계와 우리나라 학계 둘 다 백제계 것으로 보는 데에는 이견이 없는 듯합니다. 시기(백제 말기~통일신라기)에 대해서는 차이가 있지만요.^^;
@明治好太王 중국에 있는 300여개의 봉토석실분을 백제 것으로 보는 것에, 우리나라 학계에 이견이 없다고요?? -_- 어떤 유적을 말씀하시는지 몰라서...책을 한번 봐야겠습니다. 어떤 유적을 말하는건지...
@麗輝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8&aid=0002125917
관련 기사입니다. 다시 보니 중국은 통일신라 것으로 보네요.^^;
@明治好太王 아...이거였군요. 이에 대해서 박순발 선생님이 2013년에「렌윈강(연운항) 봉토석실묘의 역사 성격」이라는 제목으로『백제연구』57(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에 논고를 발표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백제계로 보고, 중국에서는 통일기로 봤던 것 같은데...이거였군요. 개인적으로 이 기사 보면서 재당신라인의 유적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민족적 성격은 백제계, 정치적-대외적으로는 통일기 이후이므로 신라인). 그리고 이들 고분에 대한 조사가 자세히 이뤄져야 하겠지만, 만약 여기에서 왕릉급 고분 및 지방 수장층 수준의 고분이 나온다면, 재당신라인이 이후 남조 정권이 여럿 피고 지는데 있어 어떤 역할을 했을지 알 수 있을듯 합니다
우리나라 사학계에서 고대 중국의 영역과 국력을 지나치게 크게 보는 것은 아닐런지,
중국은 당대에 와서야 세계제국의 면모를 드러내는 수준으로 보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