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설화, 가야건국신화 그리고 불교
우리나라의 옛 전설에는 고대 각국의 시조가 알에서 태어났다고 하는 卵生說話가 많다. 이에 대하여 일본학자 白鳥庫吉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林泰輔씨는 <인류학회잡지> 제8권87호에 ‘朝鮮古代諸王 난생전설’이라는 글을 싣고 조선에만 유독 난생전설이 있는 것은 어디에 유래하는가? 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그 후 <사학잡지> 제5편3호에 실린 ‘가야의 기원’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林氏는 <賢愚因緣經> <法苑殊林> <당서> <대월사기> <대명일통지> <후한서> 등을 인용하여 난생전설의 예를 열거했다. 나는 여기에 <智度論>과 <몽고원류>를 추가하고자 한다. 林氏는 일찍이 <사학회잡지>제25호에 ‘가야의 기원’이라는 제목 하에 伽耶, 伽羅 등의 문자 佛書 중에 많이 나온다는 것과 <가락국기>에 실린 천축 아유타국의 왕녀 허씨 등을 근거로 하여 加羅는 인도인들이 이민하여 개척한 곳이라고 논하였다. 그리고 다시 난생전설을 佛典에서 발견함에 이르러 점점 自說을 확신하게 된 것 같다. 그렇지만 나는 林氏가 사용한 재료에 의하여 同氏가 귀납 단정한 내용에는 전혀 동의할 수 없다. 왜냐하면 林氏는 승려들이 지어낸 가짜 이야기를 진짜 口碑라고 오해한 것이기 때문이다.
원래 신라. 임나는 韓族으로서 반도의 남부에 할거하고 있었고, 백제. 고구려는 부여에서 나와 북방에 건국하여, 그 종족, 특색, 역사를 달리함은 역사상 역연하다. 그런데 난생전설에서만은 그것이 공통인 점 기괴하다고 함은 愚問이다. 난생전설은 인도 고유의 것으로, 佛書에 실린 것을 그 나라들(신라/임나/백제/고구려)의 승려들이 자국의 始祖를 찬미하기 위한 재료로 빌려와 그 武勇을 장식한 것에 불과하다. 이런 예는 한반도국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몽고의 옛 전설에도 있음은 <몽고원류>에서 보는 바와 같다. <원류> 제1권 같은 것은 거의 佛說을 그대로 옮겨 적은 것 같은 개소가 매우 많다. 林氏의 논법으로 이것을 推論하면 몽고도 인도인들이 진출하여 개척한 곳이라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조선의 기록 중 난생전설의 가장 오랜 것은 호태왕비문에 있는 다음의 구절이다.
惟昔始祖鄒牟王之創基也, 出自北夫餘, 天帝之子, 母河伯女郞, 剖卵降出生子 (고구려는 옛날 시조 추모왕이 창업하였다. 추모왕의 出自는 북부여로, 천제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하백의 딸이다. 그녀가 낳은 아들은 알을 깨고 나왔다)
이 비의 건립은 장수왕 2년이고 불법의 고구려 전래는 소수림왕 2년으로, 그동안 이미 42년을 경과하였으므로 이 전설에 佛說의 영향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 증거로 이 비문 이전의 기록에는 전혀 난생전설이 없다는 것이다. <위략>에 실려 있는 주몽의 전설은 조금 이와 유사한 점은 있지만 잘 숙독해보면 전혀 그 의미가 다르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삼국지> 위지 권30의 注에
魏略曰, 舊志又言, 昔北方有高離之國者, 其王者侍婢有身, 王欲殺之, 婢云有氣如雞子來下我, 故有身, 後生子 云云 (위략에 말하기를 옛글에 의하면 옛날 북방에 고리국이 있었는데 그 왕의 시녀가 임신을 했다. 왕이 죽이려하자 시녀는 달걀 모양의 기운이 내 몸 안에 들어와 임신을 했다고 말했다. 뒤에 아들을 낳았다. 운운)
라고 있는 것과 같이 여기에는 단지 달걀과 같은 모양으로 내려온 기운을 삼켜 임신하고 보통의 아기를 분만하였다고 되어있다. 佛說에 따라 이것을 말하면 四生 중의 胎生으로, 卵生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이 전설은 고구려의 고대로부터 구전되어온 진짜 口碑인 것을 불법 도래 후 승려들이 이를 인도의 난생설로 바꾸어버린 것이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주몽전에 있는 금와의 재상 아란불 및 동해의 가섭원은 명백히 불설에서 나온 명칭이다. 아란불은 <智度論>에 나오는 阿蘭若의 若을 弗로 바꾸어 인명으로 한 것이고, 가섭원은 마하가섭을 지명으로 한 것이다. 또 주몽이 모돈곡에서 해후하는 3인이 麻衣, 衲衣, 水藻衣를 입었다는 것은 승려 仙客의 분장과 같다. 그 이름을 보면 黙居, 再思 등 모두 승려가 생각해낸 우화적 명칭이다.
<가락국기>에 기재되어있는 김수로왕의 전설도 佛說에 의탁한 상상임을 간파하기 어렵지 않다. 전설 중에 김수로왕을 위시하여 5가야의 왕 및 탈해가 卵生이라고 한 것은 佛說에서 왔다는 것, 주몽의 예와 같다. 단 김수로. 탈해는 과연 주몽과 같이 口碑로서 전해 내려온 인물인지 아닌지 당장 단언하기 어렵다. 하지만 김수로의 이름은 금 달걀 속에서 머리를 내밀고 나온 것에서 따온 것이고 탈해는 달걀껍질을 깨뜨리고 나온 것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면 오히려 이것을 가공인물로 보는 것이 온당할 것이다. 또 김수로와 탈해가 매와 독수리, 참새와 새매가되어 서로 秘術을 겨루어 싸운다는 이야기는 순전히 佛典 중에 있는 비유담이라는 것, 佛書를 펼치는 자의 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김수로왕이 인도의 아유타국에서 황후 허씨를 맞아들여 아내로 삼는다는 것에 이르러서는 가공의 진면목을 露呈하여 감출 수 없는 것이다.
원래 조선의 문화는 불교의 東進에 起因하는 것이므로, 上代의 기록에는 승려의 손으로 된 것이 많다. 그러므로 그 용어들은 불전 중에서 구하거나 생각해낸 것이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삼국지> 위지에 狗邪國(구야국)이라고 있는 것을 후세에 伽耶. 加羅 라고 쓰고, 甘路를 甘露 라고 쓰고, 孺留. 類利 라고 해야 할 것을 瑠璃明王이라고 한 것 등이다. 옛날 대가야가 있던 곳의 지명을 高靈이라고 한 것도 佛說에 기초한 명칭이라고 생각된다.
첫댓글 이 역시 단군신화에 대한 시라토리의 주장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시라토리는 기본적으로 한국의 신화를 후대에 불교 승려가 조작한 망설 정도로 인식하고 있지요. 제일 아래 문단에 '조선의 문화는 불교의 동진에 기인하는 것으로....' 라는 말은 불교 이전에는 우리나라에 문화라는 게 없었다는 의미입니다. (기자 동래 이전에는 조선에 문화가 없었다고 본 중국인이나 중화주의자의 견해와 다를 바 없지요) 이게 바로 시라토리의 인식이자 '조선 = 미개' 라 보는 오리엔탈리즘의 한 잔재지요.
특히 종교라는 것은 도입된 지 몇십년만에 그렇게 후다닥 전파되고 한 사회의 근본으로 안착되는 것이 아닙니다. 광개토대왕비가 불교 전래 42년 밖에 안 되었는데, 그 기간 사이에 불교의 영향으로 난생설화가 고구려 건국신화에 삽입되었다고 말하는 건 억지스럽기 이를 데 없는 주장입니다.
우리가 알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당연한 표현입니다. '알'의 우리말 어원은 '해/태양'입니다. 이 알은 문자의 사용초기에는 ○로 표현하고 있으며 이는 토템으로 샤용된 것입니다. 또한 고대문자에서도 ○은 오늘날의 한자인 '日, 즉 해'가 됩니다. 우리말의 알과 같은 의미인데다 ○은 족칭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즉, 자연계의 단순한 해가 아니라, 사람 혹은 소속족단을 표현하는데 쓰인 것으로 보아서 알 수 있는 것이지요. 우리 한민족은 바로 이 ○을 씨칭이나 족단으로 삼는 민족의 후손이라는 뜻이 됩니다. 그러기에 한민족 선조의 무덤에는 ○을 상징하는 새알이 무덤에서 출토되는 것입니다. 특히 신라의 왕릉에서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