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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길님 댓글에 댓글을 달려고 하니 너무 지저분해질 것 같아서 이렇게 답글을 씁니다. 들어와서 보니 내용상 제 댓글에 반박하는 내용 같아서 다는데 그냥 지나치기엔 솔직히 말해서 '이건 아니다'란 생각이 들기에 말이죠.
그 첫번째로
신라가 당나라를 끌여들여 백제와 고구려를 병합 했다...역사기록엔 이렇죠...
하지만 역사는 해석의 문제이니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소국이 대국을 끌여들였다...과연 이럴 수 있을까요...대국이 소국을 군사적, 경제적, 외교적으로 끌여들였다는게 옳은 표현이죠.. 일시적으로 속여서 또는 외교를 잘해서 이용 할 수는 있어도 어떤 큰 사건에 대해선 소국이 대국을 끌여들였다는 표현은 너무 국수적인 표현에 불과합니다.
신라가 당나라의 행동에 적극적인 행동을 취해야 할 필요가 있냐는 문제입니다
님 말이 아주 틀린 건 아닙니다. 신라가 먼저 손을 내밀긴 했지만 당도 신라가 필요했기에 요구를 들어주었거든요. 그러나 처음부터 당을 끌어들인 건 아닙니다. 고구려에 연합작전을 요청했지만 연개소문이 죽령 이북을 할양해라는 신라입장에서는 도저히 들어줄 수 없는 요구를 하는 바람에 - 죽령 이북을 넘겨달라는 소리는 곧 한강 유역을 넘겨달라는 소리이고 신라입장에선 죽어라 고생하면서 얻고 지켜온 땅인데 말이 되나요. 그리고 한강 유역은 중국의 선진문물을 받아들일 수 있는 교통로 역활도 했기 때문에 한 마디로 '너님 내 알 봐 아니니 죽어라' 죠.- 그리고 김춘추 자신이 고구려에 가서 요청한 것이 악평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임명시켰다가 쫄닥 말아먹고 자기자신도 죽어버린 쓰레기 사위때문에 뒷수습할려고 간 측면이 강한 건 맞지만, 자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목숨걸고 갖다온 건 맞기에 책망할 순 없죠. 고구려의 도움이 절실하기도 했고 솔직히 한국역사보면 무책임한 지도층 덕분에 애꿎은 인민만 고생한 사례가 비일비재한 것이 현실이기에 빛을 발하는 면도 있고
그리고 당 입장에서 봤을 땐 신라라는 나라가 없었다면 고구려를 멸망시키는 것이 사실상 힘들었습니다. 당 태종의 1차 원정 때 요동성 점령 및 주필산 전투로 15만 고구려군을 전멸시키는 등 만만치 않은 성과를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안시성에서의 전투 및 고구려의 강력한 저항 덕분에 군대의 반을 잃고 당 태종 자신도 눈병을 앓아 애꾸눈이 되는 등 목표였던 고구려 복속엔 실패하고 만만치 않은 피해를 입은 후 무리한 원정으로 망한 수나라의 전철을 참고삼아 해마다 수 만명의 소규모(?!) 군으로 지속적으로 고구려에 점진적인 타격을 주는 식으로 공격 노선을 전환하여 고구려 요동 방어라인을 소모시키는 작전에 들어갔고 실제로 고구려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죠.
하지만 이런 식으로는 고구려 인민만 죽어날 뿐이고 수뇌부는 끄덕(ㅡㅡ;;)없는 데다가 당 입장에서도 막대한 보급물자 및 자국 군사만 축낼 뿐이지 궁국적인 목적인 고구려 멸망은 힘들었거든요. 고구려를 실질적으로 멸망시킬려면 평양성을 공격해야 했지만 수만명 군대가지고는 내륙 깊숙히 있는 평양성을 공격하는 건 무리이고 고수 전쟁 및 기존의 전쟁경험상 요동 방어선을 무시하고 평양성을 포위공격하면 막대한 피해만 입는다는 것을 잘 알았거든요. 실제로 당 태종은 임종 시 당 고종에게 더이상의 무의미한 고구려 원정은 하지 말라고 했지만 당 고종은 계속 했죠. 하지만 여전히 별 성과가 안 보이니 고종도 인내심의 한계에 다다라 중단시킵니다.
하지만 신라의 참정으로 인하여 이런 암울한(?? 당 입장에서 봤을 때 얘깁니다) 상황이 역전되는데 신라의 작전대로 일단 백제부터 멸망시킨 후 고구려를 점령하는 노선으로 전환한 후 659년 연합작전으로 백제를 멸망시킨 후 660년 35개 군 총 40만여명의 대군으로 대대적인 고구려 침공에 들어갔지만 같이 군사작전하기로 한 신라가 고구려 원정군을 백제 부흥군 진압에 동원하는 바람에 결국엔 단독작전을 하게 되는데, 이 때엔 요동 방어라인이 수십년간의 전쟁으로 약해질 대로 약해졌기에 한 달여만에 돌파 후 압록강에서 방어전을 펼치는 고구려 3만 군사를 물리치고 드디어 평양성 포위에 성공을 했지만 이는 소정방이 이끄는 부대 얘기였고 식량공급 및 주력군이었던 방효태가 이끄는 옥저도행군이 사수전투에서 연개소문이 직접 지휘한 고구려군에게 방효태 자신 및 같이 종군시켰던 13명 아들이 모두 죽는 말 그대로 '전멸'하는 바람에 전황이 다시 역전되고 평양성을 포위공격하고 있던 당군은 하마터면 천백여년 뒤 러시아 원정 때의 나폴레옹 군대 꼴 날 뻔했으나 김유신이 이끄는 신라군이 고구려군의 저항을 물리치고 식량공급 해준 덕분에 구사일생으로 귀환에 성공합니다.
이후 연개소문이 죽은 후 연개소문이 아들들 간에 분쟁이 일어나자 수십년간 잠잠했던 불만이 폭발, 고구려 내부가 소란스러워지자 당군과 신라는 연합작전을 펼쳐 667년 신성 함락, 668년 부여성 함락 등 서서히 압박하여 마침내 668년에 끝까지 저항하던 연남생을 배신자 승려 신성의 도움으로 잡아 고구려를 멸망시키죠.
즉 지금까지 써 온 내용을 정리하자면 당 혼자서 수십년간 고구려를 공격했지만 별 성과가 없었던 상황에서 신라의 도움으로 양면 전선을 형성하여 압박 후 멸망시키는 데 성공했으니 당 입장에서 봤을 땐 적대국이었고 강대한 세력이었던 고구려를 멸망켰으니 큰 이익이었고 신라도 적국이었던 백제*고구려를 당의 도움을 받아 병합에 성공했으니 일방적인 관계가 아닌 윈-윈 관계였습니다. 신라는 당에게서 도움을 받긴 했지만 당에게 좌지우지 되지 않고 어제의 동지였던 당이 약속을 파기하고 백제 땅을 점령하는 동시에 신라에 마수를 뻗치자 곧바로 당과의 전쟁에 돌입, 7년간의 전쟁 끝에 드디어 승리하죠. 이를 봤을 때 위급한 상황에서 기민한 외교술을 펼쳐 위기 극복 후 간섭을 물리친 신라의 행적은 지금 시점에서 봤을 때도 배울 것이 많습니다. 대한민국도 주변국들이란 것이 죄다 강대국밖에 없으니 말이죠.
그리고 두 번째로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의 일부땅을 병합한 사건을 통일신라. 대신라 라고 하는건 언어도단입니다.
신라는 병합을 원했고..그 이상의 제도적인 조치를 취하지도
신라가 병합하고 백제, 고구려유민들을 위한 어떠한 시스템정비도 없었는데...보덕국은 그야말로..이용의 극치였죠..그들을 강제적으로 동원하였고. 신라와 고구려유민들은 일차적으로 자신의 나라가 신라가 아닌 당나라에 망했다는 시각이 지배적인걸 신라는 이용만 했을 뿐입니다..그걸 대당투쟁에 적극지원이라뇨
후기 신라라는 용어가 실제로 있기는 하지만, 용어가 어색함과 동시에 이후에 한반도의 역사는 신라가 주도권을 잡았음은 분명하고 영토도 분명 두배 정도는 커졌고 고구려를 계승했다는 발해도 고려해야 하니 '대신라'라고 부르는 게 낫다는 게 제 주장입니다. 그리고 이용 어쩌고 저쩌고 신라가 이용만 했다 하는데, 약육강식과 이해득실만 존재하는 것이 원래 나라간 관계입니다. 신라입장에선 이들에게 어떤 은혜를 베풀 필요도 없었고, 솔직히 고구려 유민들도 자신의 힘만으로 안 된다는 것을 잘 알았기에 알면서도 자국 부활을 위해 협력했기에 100퍼센트 이용만 했다는 말 자체가 어폐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세번째
민족개념이 없었다..??....보이지 않은다고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죠....우리 일상생활에서 수학의 숫자와 공식이 보이지 않는다고 수학의 개념조차 부정할 수는 없는 거죠...이와 마찬가지로..역사에서 민족 이라는 개념없이 말할수는 없죠..
신라,가야가 비록 흉노제국 후손중에 한나라, 낙랑을 거쳐 앞선 선진기술, 선진행정을 가진 후손들이 신라의 지배세력으로 기록되었다고 해서 신라와 가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건 고조선 후손이었다는 점을 부인해선 안되죠..
지금도 민족개념은 추상적이고 주관적인 공동체의식입니다..그와 마찬가지로 그 당시도 추상적이고 주관적인 공동체의식은 존재하였다는 건 사서들에 흐릅니다
그 민족의식이라는 것이 19세기 말에 구체적으로 추상화 된 건 데 말입니다. 뭐 물론 동아시아에도 서구와는 다른 민족의식이 있었다는 말이 있고 아주 무시할 순 없지만 있다 하더라도 현대하고는 많이 틀렸다는 것이 학계의 대세적인 관점이구요.
그리고 그 민족의 정의라는 것이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학자마다 의견이 다르니깐요. 하지만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민족의 정의는
''일정한
첫댓글 민족이라는 의식이 19세기에 만들어 진 것 처럼 얘기 하시는데, 어떤 학자가 그렇게 주장 하는지 알려 주십시오.
아니면 그냥, 인터넷에 누가 그렇게 썼기 때문에 사실인가 보다 하고 그냥 쓰시는 건가요?
어느 역사 학자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한단 말입니까?
동서양을 막론 하고 역사가 집필된 2,000여년간의 기록만 보아도 여러 역사적 사건, 전쟁등이 민족과 직결 되 있는데, 역사학자나, 역사를 공부 하시는 분들 중에는 이런 주장 하시는 분은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