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하문명 #진국 #삼한
동이와 구이, 예.맥.한으로 기록된 우리의 원 겨레는 BC8000년경 요하문명을 꽃피우며 동아시아의 시원문화를 창조해 내었다.
*범엽은 후한서 동이열전 서문에서 이(夷)는 뿌리로써 만물의 근본이요. 생명의 기반이라고 말하면서 동아시아 문화의 기원이 군자-불사지국 "구이"에 있음을 밝히고 있다.
서기전4000년경 홍산문화가 만개하던 시점에 우리의 원 조상들인 태호복희씨와 소호금천씨를 이은 현도씨 치우가 나타나 구이를 통합하고 화하족과 대결하며 천하에 군림하였다.
치우현왕은 중국 역대 왕조에서 "군신(軍神)"으로 "승리의 화신"으로 숭배되었다. 후대 유가의 존화양이론에 의해 치우는 폄하되어 악인으로 패자로 왜곡되었던 것이다.
*치우가 다스린 나라이름(혹은 족명)이 중국고대문헌 속에서는 여국(黎國), 구려국(九黎國), 현도국(玄都國) 등으로 나타난다. 심백강의 연구에 의하면 모두 "밝다" "환하다"는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서기전2333년경에 이르러 구이에 새로운 구심점이 대두되었는데 환웅과 웅녀의 아들 단군은 요서의 "하가점하층문화"에 기반하여 평양(현. 대전자)에 도읍하고 왕검조선을 창건하며 한국의 첫 고대국가를 성립시킨다.
BC14세기경 환경적 정치적 이유로 중심지를 현 요동일대로 옮기며 세력권을 더욱 확대하게 되는데 이때로부터 후조선의 진국체제가 구축된다.
진국(辰國)은 세개의 칸국 즉 삼한으로 나뉘어 통치되었는데 왕검계 진한세력이 진왕을 배출하여 진국을 주도한다. 이때로부터 신정정치에서 벗어나 제정분리의 사회가 형성되어 진왕과는 다른, 사제의 기능만을 전담하는 소도 천군의 존재가 확인된다.
*전기진국의 (북)삼한은 요서의 발조선(=번한), 요동의 진한, 한반도의 마한을 의미한다.
*연의 장수 진개가 발조선을 침입하여 1천여리를 잠식했고 번한까지 이르렀다고 했으니 이것은 발조선의 거점지를 번한이라 했고 그 통치자를 또한 번한이라 했던 것이다. 위략에 등장하는 "만번한(滿番汗)"은 오역이다. '至滿番汗爲界(지만번한위계)'는 "번한까지 이르러 경계를 삼았다"라고 해석해야 한다. 한때 발조선이 자리하던 고대요동에 요동군 번한현이라는 지명이 있는 것만 보아도 만번한이 아니라 "번한"인 것이다.
후한서에서 삼한은 옛진국이며, 삼국지에서는 진한만을 옛진국이라 한다. 진국 진왕 진한은 모두 '진'자가 공통적으로 들어가는걸 보면 진한이 진국을 주도하던 시절이 있었던 것을 능히 유추할 수 있다. 마한이 진왕을 배출하여 진국을 주도하기 이전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다.
국내외 사서에 진한은 북방에서 남하한 세력이라 했으니 진한이 진국을 주도한 시점은 경상도로 남하 하기 이전이였던 것이 분명하다.
또한 진한유민을 "조선유민"이라고도 하는걸 보면 진국은 조선의 후신이거나 조선의 또 다른 국호였던 것이다. 윤내현은 진국을 조선연방의 주도국으로 이해하고 정인보는 조선을 국호가 아닌 "통치하는 관경"으로 해석했다.
요서의 위만조선 우거왕과 갈등을 빚던 조선상 역계경이 동쪽 진국으로 갔다는 기록이 있고, 중국 한나라와 교류하려는 진국을 위만조선이 가로막았다 했으니 진국은 분명 위만조선의 동쪽 즉 현 요동일대에 위치했던 것이다.
진국의 세력권은 매우 넓어 만주와 한반도였는데 삼국지와 후한서에선 면적이 "방4천리"라고 기록하고 있다. 고인돌과 비파형동검, 팔주령을 비롯하여 공통의 복식장신구와 생활도구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현 요서일대는 상유민의 이동과 함께 발조선 그리고 위만조선에 이어 한군현(낙랑군)이 세워진다.
요서의 위만조선이 현 요동일대로 팽창하고, 한나라의 침략으로 위만조선이 멸망하는 정세 변동 등으로 유이민이 급증하자 진국을 주도하던 진한세력은 요동에서 평양으로 중심지를 옮겼고, 그 후 약화 붕괴되어 마한의 양해 하에 경상도일대로 남하하여 진한6국을 형성하고, 평양일대에 일부 잔류한 진한세력들은 최씨낙랑국으로 발전하게 된다.
진한이 쇠퇴하자 마한의 월지국이 진왕을 배출하여 후기진국(=한국)을 주도하게 되고, 경상도의 진한6국은 혁거세를 거서간으로 옹립하여 신라를 건국하게 된다.
*신라의 기원이 되는 진한6촌 선주민들을 삼국사기는 "조선유민"이라 밝히고 있다. 신라의 초기왕호와 인명들에서 순우리말식 표현이 많고, 홍산문화에서 발견되는 편두 풍습이나, 선인왕검의 선교와 연결되는 풍류-화랑도와 같은 여러 문화요소들이 나타나는 점을 고려할때 여기서 '조선유민'은 다름아닌 왕검조선(북진한)을 구성했던 유이민들이다. 후에 위만조선유민 그리고 혼란을 피해 넘어온 진나라 이주민들도 일부 있었다.
*삼국사기에 "진한6촌"은 원래 진한6국이였는데 훗날 "국"이 "촌"으로 편재되면서 소급되어 촌으로 기록된 것이다. 이병도의 견해인 사로6촌은 사서에 전혀 등장하지 않는 신조어이다. 경상도 일대에 산재한 진한6국으로 보는 것이 역사적 사실에 근접한다. 혁거세가 거서간으로 즉위한 이후부터 사서에 등장하는 진한은 곧 신라이다.
신라의 삼한일통의식은 바로 옛진국의 영광을 회복하려는 진한세력의 의지의 표현이였던 것이다.
*신채호 정인보 리지린 심백강 윤내현 교수 및 서의식 서울대 역사교육학과 교수 학설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