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초부터 준비했던 고구려 답사를 떠나는 날이 마침내 다가왔다. 아침 4시 45분에 일어나 서둘러 준비를 하고 6시 45분경 공항에 도착했다. 황금연휴 첫날이라 공항에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답사 일행들과 만나 발권을 하고 짐을 부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길게 늘어선 줄로 인해 비행기 탑승 불과 30분 전쯤에야 게이트에 도착할 수 있었다. 9시 40분 비행기가 이륙하자 마음이 조금 놓였다. 대련공항에 내렸을 때 일행 중 한 분이 열이 있어서 조금 당황했다. 하지만 큰 문제는 없었고, 입국 수속도 쉬웠다.
여행의 첫 번째 고비를 넘겼다. 사드배치 문제로 중국행 여행을 우려하는 여론이 많았지만, 공항에 도착했을 때 염려했던 중국의 냉대가 전혀 없었다. 어떤 목적을 위해 여론을 의도적으로 조작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이번 여행에서 사드는 전혀 문제가 안 되었다. 친절한 중국인들을 만나 답사를 편히 했다.
공항에서 기다리던 현지 가이드를 만났다. 북한 평양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다니다가 중국에 건너와 대학을 나오고 중국어를 배운 한족출신 허금봉 가이드. 너무 경험이 풍부한 가이드는 여행객을 이용해 돈벌이를 어떻게 하는지에 너무 밝다. 하지만 허가이드는 경험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기본적인 서비스에 충실했고 여행 내내 우리 답사 일행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지금까지 많은 답사를 하면서 만난 가이드 가운데 가장 성실하고 친절한 가이드였다.
공항 주변 송도횟집에서 첫 점심을 먹었다. 된장국 외에는 생각나지 않는 부실한 점심이었지만, 공항 주변이라 이동시간을 아낄 수 있어서 좋았다. 이번 답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챙긴 것은 시간이었다. 재작년 심양 도선공항에서 내려서 환인으로 가야하는데, 여행사에서 예약한 식당이 정반대 방향이어서 2시간이나 시간을 낭비해 첫날 오녀산성 답사를 절반도 못하고 내려온 적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식당을 유적과의 거리를 고려해 예약하라고 여행사에 신신당부를 했고, 호텔의 위치도 점검했었다. 답사에서 반드시 챙겨야 할 것이 식당과 호텔의 위치, 이동 시간이다. 이번 답사에서는 비교적 이 부분이 잘 된 듯하다.
식사를 한 후, 곧장 공항 북쪽으로 약 1시간 쯤 가서 강상무덤을 보았다. 처음 답사에서 계획했던 려순감옥은 사정에 의해 답사 당일 휴관하는 탓에 답사 하루 전에 일정을 변경해 가게 된 곳이다. 강상무덤은 개인 소유의 집터에 있는 탓에 유적 관리가 너무 소홀했다. 접근하지 못하도록 가시나무로 통로를 막고, 담장으로 둘러쌓지만, 답사하는 우리에게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관리인이 없는 탓에 담장을 넘어 들어가 유적 사진을 찍는 경험을 했다. 기원전 7~8세기경 고조선시대 해상무역을 하는 지방세력가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강상무덤은 7호분을 중심으로 방사선 모양으로 23개 묘광이 배치된 적석다장묘다. 무덤에서 발굴된 인골만 140명, 비파형 동검과 거푸집, 장식품 등 20여종 87점의 유물이 출토된 계급이 발달한 청동기시대 사회상을 보여주는 무덤인 강상무덤은 1964년 누상무덤과 더불어 북한과 중국이 합동으로 발굴한 곳이다. 하지만 이후 북중관계의 악화로 더 이상 주변의 고조선 관련 무덤 발굴은 없었다. 그래서 강상무덤에 대한 추가적인 연구는 어려워졌다. 강상무덤 북쪽으로 바라본 두 개의 봉우리 뒤쪽에 발해만이 있다고 한다. 이 무덤의 주인공이 혹시 『관자』에 등장하는 고조선의 특산물인 문피(文皮) 교역의 주역은 아니었을까를 생각해보았다. 주변보다 높은 언덕 위에 있는 강상무덤을 보면서 고조선 시대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를 생각해보면서 차에 올랐다.
2시간 쯤 차를 달려 와방점시에 득리사산성(용담산성)에 갔다. 득리사산성은 1998년에 답사를 한 후 오랜만에 가보는 곳이다. 당시 답사에서는 시간이 부족해서 득리사산성 동문과 서문 주변을 아주 짧게 본 기억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약 2시간 정도 시간을 갖고 서문과 서벽을 꼼꼼히 볼 수 있었다. 성 내에서 가장 높은 북벽의 내성까지 볼 생각도 있었지만, 이번 답사 첫 성 답사에서 무리를 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서 북벽 가까운 곳에서 되돌아오는 것을 택했다. 그럼에도 좋은 사진을 많이 찍을 수 있었다. 특히 동벽을 두 번 쌓은 흔적을 발견하기도 했다. 마안형(馬鞍形), 또는 포곡식 형태의 성이라서 성 가운데에 넓은 저수지가 있다. 또 성내 주요 건물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곳에는 현재 도관이 들어서 있다. 장하 성산산성, 유하 나통산성, 대련 대흑산산성에서도 도관을 볼 수 있다. 심지어 오녀산성에서도 한때 옥황관이란 도교사원이 있었다. 도관 때문에 유적지의 원형을 알기 어렵다는 점은 있지만, 방문객이 많아 성에 접근하는 도로가 정비된 것은 답사하는 우리입장에서는 좋다고 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득리사산성이 기록상 드러나는 어떤 고구려성인지는 확정하기가 어렵지만, 서벽쪽에서 전투가 벌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645년 비사성을 점령한 당나라 장량의 군대가 당태종이 이끈 본진을 지원하기 위해 건안성으로 이동하는 도중에 이 성을 공격했을 가능성이 있겠다. 해안가가 멀기는 하지만, 요동반도를 방어하는 해양방어성의 역할을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당나라군이 이곳을 점령하지는 못했을 듯싶다. 그랬다면 중국측 기록에 남았을 것이다. 성에서 어떻게 싸웠을까를 생각하면서 성에서 내려왔다.
득리사산성 답사를 한 후, 약 1시간 반정도 차를 타고 영구시로 가서 저녁을 먹었다. 영구시에서 사업을 하시는 우리 카페 회원이신 홍찬수 선생님을 만나서 함께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낮과 달리 저녁 식사는 고구려 답사에서 흔히 만나게 되는 8~10종류 찬과 밥, 국이 나오는 현지식이다. 우리 입맛에 맞게 나온 음식이라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여전히 이해가 안 되는 것은 그렇게 한국인 관광객을 맞이하는 식당들이 왜 반찬(요리)부터 나오고 밥부터 나오지 않는 것이다. 이 점은 호텔 식사를 제외한 거의 모든 식당의 공통된 문제다.
호텔에 들어가서, 간단히 짐을 정리하고, 8시 10분경 호텔로비로 나왔다. 영구시 바위취안구의 금해만호텔 주변에는 넓은 공원이 있었다. 특히 천단을 모방한 조형물이 있는 공원이 기억난다. 신도시를 만들면서 엄청난 규모의 공원을 만든 중국인들의 스케일이 부럽다. 공원을 둘러본 후 홍 선생님이 사시는 동네로 가서, 10명이 함께 꼬치 술집에서 홍 선생님이 대접한 술과 안주를 마셨다. 11시경 호텔에 돌아와 첫날 일정을 마쳤다.
첫댓글 선생님 강의듣는 기분으로 여행후기 읽고있습니다..감사합니다
중국음식은 특유의 향 때문에 잘 못먹는 편인데...저 꼬치는 참 맛있어보여요.
살짝 숨어 있는 칭다오 맥주도....땡기네요..ㅎㅎ
중국에서 밥보다 반찬이 먼저 나오는 건
한국은 밥문화 중국은 요리문화이기 때문이라는 얘길 들었어요.
한국은 밥과 국을 주로 해서 반찬은 밑반찬이고
중국은 요리를 주로 해서 한 개 혹은 여러개의 요리로 밥을 먹는대요.
중국요리의 밥은 마무리 같은 느낌이었어요. 느끼함을 해결해 줄..
그런데 밥마저 볶음밥이라는게 함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