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우선 안시성 정상에 보니, 서쪽으로 보이는 산이 높다. 서쪽 산에서 안시성 내부가 다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곳이 고구려 성이 아닌 것은 아니다. 서문 옆에 토축 흔적의 너무 분명하며, 앞쪽에 보이는 곳보다 더 성의 위치상 적합하다. 도리어 안시성을 구원하러 온 고구려군이 이곳을 장악해, 안시성의 방어력을 높여주었을 가능성도 크다.
문제는 기록에 등장하는 안시성 전투 기록이다.
만약 영성자산성을 안시성이 확실하다고 가정하고 옛 기록과 해석해보자.
645년 6월 20일 당군은 안시성 북쪽에 진영을 펼쳤고, 21일(음력)에는 당나라군은 고구려 고연수군과 싸우기 위해, 안시성 밖 40리(16㎞)까지 나아갔다. 우리 답사단이 머물렀던 해성시 호텔에서 영성자성까지 거리가 약 16㎞ 정도가 된다. 그렇다면 안시성 북쪽 해성시 일대가 주필산 전투가 벌어진 곳일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당군은 고연수군을 격파한 후에도, 더 진격하지 못한다.
당군은 7월 5일 안시성 동쪽으로 이동했고, 10일에는 안시성 남쪽으로 진영을 옮겼다. 그런데 이세적이 말하기를 “건안성은 남쪽에 있고, 안시성은 북쪽에 있는데, 우리의 군량은 전부 요동에 있다. 안시성을 지나 건안성을 공격하면, 우리의 군량 수송로가 차단당한다. 먼저 안시성을 함락시키면, 건안성도 빼앗을 수 있다.”고 했다.
또한 당나라 신하들이 “장량(수군사령관)의 병사가 비사성에 있으니, 그를 부르면 2일이면 올 수 있다고 했다.”는 기록을 보면, 645년 8월 이후에는 당군이 해성시 보다 남쪽인 대석교시(다스차오시) 인근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세민은 여기서 건안성과 신성의 10만 군대가 무서워, 오골성(봉성시)로 가는 것을 포기하고, 안시성 공격에 매진한다.
그런데 당군이 안시성 동남쪽에 토산을 60일간 쌓았지만, 도리어 토산을 빼앗기고, 마침내 안시성 공격을 포기하고 9월 18일 전군 철군 명령을 내려, 북쪽인 요동성을 향해 도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