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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송승준은 자기관리가 철저한 투수로 꼽힌다. 아직 흔한 부상 한번 당하지 않았다 |
7월 14일 오전. 베이징올림픽에 출전할 야구대표팀 최종 엔트리 발표를 초조하게 기다리던 롯데 오른손투수 송승준(28)이 숨을 크게 내쉬었다. 명단에 자신이 포함돼 있다면 지금쯤 전화가 왔어야 할 시간이었다. 손으로 거칠게 얼굴을 쓸어내린 송승준은 주문이라도 외우듯 똑같은 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일은 내버려두자.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하자.’
1999년 경남고를 졸업하고 계약금 90만 달러에 보스턴 레드삭스 유니폼을 입은 뒤부터 송승준은 자신이 컨트롤할 수 없는 일들과 끊임없이 만나야 했다. 메이저리그 승격을 앞둔 시점마다 어김없이 나타났던 부상이 그랬고 사회적으로는 은밀하면서도 더그아웃에서는 공개적인 인종주의자였던 코칭스태프와의 만남이 그랬다.
결국 송승준은 2006시즌을 끝으로 마이너리그 FA(프리에이전트)가 된 뒤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토록 열망하던 메이저리그 마운드를 한 번도 밟지 못한 채.
“올림픽 대표팀 최종 엔트리에 포함되면 좋지만 그렇지 않아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보다 뛰어난 선수들이 많지 않은가.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럴 땐 그저 마음을 편하게 먹고 자신만의 스텝을 밟는 게 좋다.”
송승준이 자신만의 스텝을 밟고 있을 즈음. 드디어 대표팀 김경문(두산)감독이 최종 엔트리를 발표하기 위해 서울 도곡동 한국야구회관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송승준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승준아, 지금 KBO(한국야구위원회)에 확인을 했는데….” 상대는 롯데 프런트 직원. 말끝을 잇지 못하는 걸 봐선 이번에도 자신이 컨트롤할 수 없는 일과의 싸움에서 진 게 자명했다. ‘결국 이렇게 되는 것인가.’
“그게 아이고 니 이름이 들어 있다카드라. 축하한데이.”
7월 24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송승준을 만났을 때 그는 벌써부터 올림픽을 준비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시즌 중반 다소 부진했던 투구도 조금씩 활기를 찾아가고 있었다. 송승준은 자신의 발탁을 두고 항간의 말들이 많았던 것을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며 “결과로 모든 걸 말하겠다”며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지난 일이지만 최종 엔트리 발표 하루 전까지 대표팀 투수명단에는 송승준과 윤석민(KIA)의 이름이 나란히 적혀 있었다. 김 감독은 일찌감치 미국이나 캐나다전을 대비해 마이너리그 경험이 풍부한 송승준을 낙점한 상태였다. 그러니까 윤석민과 송승준이 경쟁을 벌였던 게 아니었다.
오히려 윤석민은 권혁(삼성)과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그리고 결국 김 감독은 왼손 불펜투수가 장원삼(우리 히어로즈)밖에 없어 왼손타자가 많은 강팀을 상대할 때 왼손 불펜이 더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권혁의 손을 들었다.
대표팀 발탁은 언제 알았나.
7월 14일 최종 엔트리 발표 바로 전에 구단으로부터 “발탁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눈을 크게 뜨며)의외였다. 실감이 나지 않아 인터넷을 통해 직접 확인했더니 정말 내 이름이 최종 엔트리 명단에 들어 있었다.
의외라, 전혀 예상하지 못했나.
워낙 좋은 투수들이 많아 마음을 비우고 있었다.
대표팀 김경문 감독은 당신의 마이너리그 경험을 높이 샀다. 메이저리그 경험만을 맹신하던 이전 대표팀 감독과는 다른 시각이었다.
8년 동안 마이너리그에서 뛰며 200경기(주:공식조회기록 167경기)가량 출전했다. 미국과 캐나다 혹은 중남미 선수들에 대해서는 어느 국내투수보다 많이 안다고 자부한다. 김 감독님의 시각이 옳았음을 반드시 실력으로 증명하고 싶다.
비장의 무기, 포크볼과 투심패스트볼
당신의 미국전 선발을 예상하는 이들이 많다. 미국도 최종 엔트리를 발표했는데 혹시 낯익은 선수라도 있나.
미국 대표팀 명단을 자세히 보지 못했다. 따라서 ‘누구’하고 짚어 말하기 힘들다. 다만 과거 마이너리그 시절 얼굴이 익었던 2, 3명의 선수가 이번 올림픽에 출전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주 젊은 선수들을 제외하곤 어느 정도 아는 얼굴들이 아닐까 싶다.
당신의 주요 구종인 포크볼과 투심패스트볼이 미국이나 캐나다전에서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미국 선수들은 포크볼을 정말 싫어한다. 그리고 그 만큼 싫어하는 게 몸쪽 투심패스트볼이다. 왜냐? 대개 미국선수들이 배트를 크게 휘두르는 통에 몸쪽으로 휘는 공에 약점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두 구종을 적절히 섞어 던지면 좋은 효과를 보리라 생각한다. 아로요 투수코치도 내 생각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로요 코치로부터 무슨 이야기라도 들은 게 있나.
음, 조언을 구하고 있다. 한 번은 올림픽에서 어떻게 던지면 좋겠느냐고 물었더니.
물었더니?
역시 몸쪽 빠른 공을 많이 던지라고 주문했다. 그래야 바깥쪽 공 위력이 살고 결정구로 던지는 포크볼도 더 효과를 낼 수 있다고 했다. 아로요 코치는 그렇게만 효과적으로 던진다면 아시아 선수들보다 오히려 서양 선수들을 상대하는 게 쉬울 것이라고 했다. 요즘은 매 경기를 올림픽 본선경기라 생각하고 포크볼과 투심패스트볼을 가다듬고 있다. 물론 한국에서 익힌 투구법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송승준의 포크볼과 투심패스트볼은 수준급이다. 국내 타자들보다 서양 타자들에게 더 효과적일 수 있다 |
한국에서 익힌 투구법이라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가.
확실히 한국은 미국에 비해 좌우 스트라이크 존이 좁다. 지난 시즌 미국 같으면 스트라이크가 될 공이 줄줄이 볼로 판정돼 어려움을 겪었다. 지금도 한국식 스트라이크 존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한 상태다. 그러다보니 타자를 윽박지르던 투구스타일에서 머리를 쓰는 야구로 변했다. 어쩌면 야구를 보는 시야가 더 넓어졌다고도 볼 수 있다.
스트라이크 존의 차이도 있지만 국내 타자들의 타격이 뛰어난 까닭도 있을 것이다. 많은 외국인투수들이 한국 타자들을 세계에서 가장 상대하기 까다로운 선수들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김)선우형이 그러더라. “국내 타자들은 종으로 떨어지는 공엔 배트가 잘 나오지 않는 것 같다”고. 나도 지난 시즌 그것 때문에 어려움을 겪어 “타자들을 유인하기보다 차라리 맞혀 잡는 게 낫다”고 조언했다. 사실이다. 무조건 힘으로만 밀어붙이면 정교한 국내타자들이 계속 공을 커트해 투구수만 늘어날 뿐이다. 확실히 국내 타자들은 콘택트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 그래서인가. 개인적으로 배트를 짧게 쥐고 치는 국내 타자들보다 배트를 길게 잡고 치는 외국인타자들을 상대하는 게 더 쉽다.
불안한 징조, 높은 피안타율과 무너진 투구 밸런스
글쎄, 올시즌 기록으로만 본다면 그 반대다. 당신의 외국인타자 상대 피안타율과 OPS(출루율+장타율)는 각각 3할8푼1리, 10할5푼1리로 리그 투수 가운데 최하위권이다.
(고개를 끄덕이며)나도 내가 외국인 타자에게 약하다는 기사를 봤다. 그러나 기록은 기록일 뿐이다. 투구내용을 활자가 아닌 영상을 통해 보면 생각이 바뀔 것이다. 내가 덕 클락(한화)이나 클리프 브룸바(우리 히어로즈)와 같은 외국인타자를 상대로 던졌을 때 제대로 맞은 안타가 있는지 살펴보라. (손을 좌우로 흔들며)없다. 거의 없다.
비단 외국인타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올시즌 당신의 피안타율은 2할9푼4리로 마티 맥클레리(전 롯데), 정민철(한화), 이상목(삼성)에 이어 가장 높다. 특히나 왼손타자 상대 피안타율은 무려 3할1푼6리다.
글쎄, 스스로 왼손타자에게 약하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다. 피안타율 2할9푼4리라면 오른손타자에게도 똑같이 약했다는 뜻이 아닌가. 아무래도 국내 타자 상대 경험이 부족한 게 가장 큰 이유인 것 같다. 보통 상대 타자를 모르면 피해 가거나 맞서 싸운 뒤 장·단점을 파악하게 마련이다. 난 후자를 선택했다. 야구 1, 2년할 것도 아니고 피해가는 것보다 승부를 벌이며 그 선수를 파악하는 게 낫지 싶어서였다. 지금도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한다. ‘지금은 네가 너희들에게 두들겨 맞지만 너희들의 장단점을 파악한 뒤 모든 준비를 끝마치면 결코 지지 않을 것’이라고.
경험도 경험이지만 투구패턴이 다른 팀 전력분석원에게 노출된 게 아닌가 싶다. 한 구단의 전력분석원은 당신의 퀵 모션이 커 도루 허용이 많고 투스트라이크 이후 결정구로 포크볼을 고집하는 걸 문제로 꼽았다.
나도 얼마 전 잘 아는 전력분석원에게 물은 적이 있다. 돌아온 말도 비슷했다. “송승준은 퀵 모션이 커 발 빠른 주자가 나가면 도루를 쉽게 내주고 그 뒤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러니 타자들은 치지 말고 기다려라. 여기다 왼손타자를 상대하거나 결정구를 던질 때는 포크볼을 주로 던지니 유의해라.” 약점을 스스로 잘 알고 상대 약점을 조금씩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본다.
과정도 과정이지만 하루라도 빨리 잃어버린 투구 밸런스를 찾는 게 관건이다. 7월 15일 사직 KIA전을 분석했더니 경기 초반 직구 위주의 투구를 했지만 투구 밸런스가 좋지 않아 회가 거듭될수록 직구는 높은쪽, 포크볼은 실투로 이어지게 마련이었다.
(한손으로 입술을 만지작거리다)그랬나. 현재 투구 밸런스가 좋지 않은 상태다. 몸과 팔이 따로 노는 느낌이 없지 않다. 하지만 20년 동안 야구를 한 투수라면 이런 엉성한 투구폼에서도 잘 던질 줄 알아야 한다. 투구 밸런스를 찾기 위해 노력중이니 만큼 조만간 제자리를 찾으리라 확신한다. 7월 중순부터 많이 좋아졌다.
송승준은 자신을 둘러싼 우려와 오해를 좋은 투구로 불식시키겠다는 다짐이다 |
2001년 마이너리그 올스타 퓨쳐스게임에 출전 때가 최전성기였다. 당시와 비교하면 지금은 어느 정도인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60%도 안 된다. 그때는 힘껏 던지지 않아도 직구가 시속 153, 155km까지 나왔으니까.
그런 날이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단호한 목소리로)가능하다. 내 몸을 잘 안다. 지금은 거의 팔로만 던지고 있다. 하체에 힘을 충분히 싣지 못하기 때문이다. 뭐랄까 최전성기 때 투구할 때는 스프링을 뒤로 당기다 놓았을 때처럼‘탕’하는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자전거의 기어를 변환할 때처럼 ‘딱딱’끊기는 느낌이다. 이 역시 조만간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한다.
송승준(사진 좌로부터), 아로요 코치, 로이스터 감독이 나란히 농구경기를 관전하고 있다(롯데) |
송승준은 윤석민의 대타가 아니었다
대표팀 발탁을 두고 말들이 많았다. 특히나 윤석민(KIA)의 탈락을 아쉬워하는 이들에겐 당신이 원성의 대상이었다.
나도 그런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그런 말을 들을 때면 꼭 이렇게 대답했다. “어떤 결정에도 소문과 추측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런 소문에 일일이 신경 쓰다보면 야구를 제대로 할 수 없다. 앞으로 살면서 이것보다 몇 배는 더 큰 오해를 받을 수 있는데 이 정도 일로 소심해진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내가 올림픽에서 잘 던지면 모든 오해가 수그러들 것이다.”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윤석민 대신에 뽑힌 것 같나.
음, 나는 손민한 선배가 양보해 뽑힌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내가 팀의 에이스를 제치고 (대표팀에)뽑힐 수 있었겠는가.
당신은 대표팀을 구성할 때부터 미국이나 캐나다전을 염두해 이미 낙점이 돼 있는 상태였다. 정작 윤석민은 다른 왼손 투수와 마지막까지 경쟁을 벌였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나서서 “윤석민의 대표팀 탈락과 전 무관합니다”하고 말할 입장이 아니었고 애써 그렇게 해서 오해를 풀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앞으로도 (손)민한 선배가 양보해 대표팀에 발탁된 것으로 믿을 것이다.
최종 엔트리 발표 다음날이었던 7월 15일 사직 KIA전 선발투수가 공교롭게도 윤석민이었다. 이 때문에 세간의 관심이 온통 사직구장으로 향했다.
그날 경기에 앞서 누군가로부터 “네가 못 던지면 윤석민을 대표팀에 발탁하고 너를 떨어뜨린다는 소문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늘 하던 대로 상대팀 투수가 누군지 상관없이 내 플레이에만 집중했다.
자기 플레이에만 집중한 까닭인가. 7이닝을 던져 9안타 1볼넷으로 3실점하는 준수한 성적으 기록했다. 그러나 윤석민이 7회까지 5안타 1볼넷을 기록하며 단 1실점으로 호투하는 바람에 패전의 멍에를 써야 했다.
비록 패전투수가 됐지만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하는 등 전체적으로 나쁘지 않았다. 다만 경기 내용이 만족스럽지 못한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국내리그에서 가장 뛰어난 오른손 투수 윤석민은 최종 엔트리에서 탈락했다. 올림픽 성적에 따라 한국야구사에 길이 남을 미스 캐스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
송승준의 한시적 마무리설
지난해는 25경기 가운데 17경기에서 선발 출전해 117이닝을 던졌다. 올시즌은 18경기 모두 선발투수로 나와 108이닝을 소화하고 있다. 이 기세대로 라면 2003년 마이너리그에서 147이닝을 던진 이후 가장 많은 이닝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다소 무리가 되지 않나 걱정하는 팬들이 있다.
간혹 오해하시는 팬들이 있는데 내가 마이너리그에서 오래 뛰며 미국식 야구를 익혔다지만 훈련량 만큼은 어느 한국선수들을 능가해 왔다. 실제로 오프시즌 기간 중 한국에 오면 안병환 전 경남상고 감독님의 도움을 받아 하루 250개씩 공을 던졌다. 유심히 보면 내가 1~3회보다 4~6회에 더 강하단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난 체질적으로 이닝이 진행될수록 투구 밸런스와 릴리스 포인트가 잡히는 투수이기 때문이다.
논외의 이야기지만 베이징올림픽이 끝난 뒤 팀 전력 극대화를 위해 당신이 한시적으로 마무리를 맡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아직 제리 로이스터 감독으로부터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내 스스로도 마무리에 관해 생각해본 적이 없다. 미국에 있을 때 마이너리그 플레이오프에서 몇 번 마무리를 맡은 적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과거의 일일 뿐이다.
“메이저리그 마운드에서 공 1개만 던져도 소원이 없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결국 꿈을 이루지 못했는데 후회는 없나.
아쉬웠던 적은 있지만 후회는 한 번도 안했다. (백)차승이나 (추)신수가 뛰는 걸 보면 이젠 즐거운 마음이다. 한국에서도 야구만 잘하면 과분한 대접을 받을 수 있지 않는가. 어디서든 야구만 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야구선수에겐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난 그런 의미에서 행복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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