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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명 |
Yrs |
Season |
Gms |
비고 |
Mark Strickland |
4 |
97-00 |
1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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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lik Allen |
4 |
02-05 |
1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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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rence Weatherspoon |
2 |
99-00 |
1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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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phonso Ellis |
2 |
02-03 |
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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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rt Thomas |
2 |
96-97 |
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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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마이너 랭킹(10위 ~ 6위)
10위
#8, 30 Michael Beasley (6-9, 235lbs, Kansas State)
어떻게 하면 수비를 잘 할 수 있을까요?
4시즌(09-10/14-15), 238경기(100주전), 23.8분 12.3점(야투 46.4%, 3점 33.2%, FT 78.3%), 5리바운드, 1.1어시스트, 0.7스틸, 0.5블락 / NBA All-Rookie 1st Team(08)
대학시절 빅 12를 평정한 정말 대단한 기록(26.2점 12.4리바, 1.6블락 / FG% 53.2%, 3점 37.9%)을 보여줬던 마이클 비즐리는 2008년 이전 시즌을 부상으로 말아먹은 히트에 의해 데릭 로즈에 이은 2008년 드래프트 2번으로 뽑힙니다. 히트 역사상 가장 높은 픽으로 드래프트 된 비즐리는 언론과 팬들의 엄청난 기대 속에 프로생활을 합니다. 이후 주전을 보장받으며 충분한 기회를 받았지만, 그 기회를 살리지 못했고(더 안타까운 건 플레이오프만 가면 더 못했던 점이죠), 빅3 결성으로 인해 미네소타로 트레이드 됐다가 우여곡절 끝에 빅3 시대의 마지막 해에 합류해서 지난 시즌까지 뛰었지만, 결과가 좋지 못해 지금은 중국에서 중국리그를 씹어먹고 있습니다.
B-easy라는 별명처럼 공격에서의 비즐리는 굉장한 능력을 보여줬습니다. 마치 불알친구 듀란트처럼 그의 슈팅은 그의 하드웨어에 비해 굉장히 정확했고, 페이스업에서 보여준 퀵니스와 공격의 다양성은 그의 공격의 클래스를 보여줬죠. 하지만 이렇게 장점을 가졌던 공격에서도 항상 셀렉션에서 문제를 보여줬고, 이렇게 수비를 못하는 선수는 처음일 정도로 “수비바보”였습니다. 여기에 대학을 씹어먹던 보드장악력은 대학용이었다는 것도 프리시즌에 증명되기도 했고요. 게다가 코트 외적으로 팀이 정한 여러 규칙들을 밥 먹듯이 어겨 언론에 따가운 눈총을 받기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히트뿐만 아니라 NBA 역사상 실패한 2번픽 중 하나로 (아직까지는) 여겨지고 있습니다.
9위
#22 John Salley (6-11, 230lbs, Georgia Tech)
인생은 존 샐리처럼..
3시즌(93-95), 202게임(129주전), 7.7득점(야투 49.1%, 3점-없음 FT 75%), 5.2리바운드, 1.7어시스트, 0.7스틸, 1.2블락 / 5th BPG
80년대 후반 피스톤즈 배드보이스의 에너자이저였던 존 샐리는 92-93시즌을 앞두고 프론트 코트 강화를 염두에 둔 히트가 트레이드를 통해 사우스 비치로 오게 됩니다. 이미 피스톤즈에서 2번의 우승을 경험했던 샐리는 로니 세이컬리와 그랜트 롱이라는 젊고 재능 있는 프론트 코트를 백업하면서 이 둘에게 부족했던 경험을 더하는 한편 이들이 부상으로 빠질 경우 그 빈자리를 메꾸는 롤을 받았습니다.
별명이 스파이더인 샐리는 공격보다는 수비에서 발군의 기량을 보인 선수였습니다. 타고난 하드웨어와 운동능력, 그리고 그에 못지않은 집중력으로 마크하는 선수를 항상 괴롭혔죠. 거기에 당시 히트의 어떤 빅맨들보다도 탁월했던 블락능력은 안 그래도 세이컬리 외에는 블락이 별로였던 히트 수비에 활력을 불어 넣었습니다. 하지만, 공격에서는 대부분의 마무리가 6ft 안에서 이루어지는 전형적인 덩커였기 때문에 그가 20점을 넘기는 건 쉽사리 보지 못하는 장면이었죠. 지금 공격 못한다 못한다 하는 화사보다 더 못한 공격력을 보였다고 하면 이해가 쉬울까요?
3시즌 간 주전과 백업을 오가면서 나름 솔리드한 활약을 보인 샐리지만, 전술한 95년 익스팬션 드래프트로 랩터스로 떠나면서 히트와의 인연을 마감합니다. 하지만, 그의 커리어는 나름 잘 풀려서 랩터스로 간 그 해 우승팀인 불스로 가게 되 커리어에 반지 하나를 더하고 말년에 레이커스로 가서 또 하나의 반지를 더하면서 커리어 동안 4번의 우승을 경험(서로 다른 3 Decade에 우승을 경험한 두 선수 중 한 명)한 운 좋은 사나이로 선수생활을 마무리합니다. 지금은 방송일과 함께 베지테리언으로 유명한 존 샐리가 이번 랭킹의 9위였습니다.
8위
#8 / Antoine Walker (6-8, 224bs, Kentucky)
2시즌(06-07), 160경기(34주전), 25.1분, 10.4점(야투 41.3%, 3점 32.1%, FT 54.3%), 4.8리바운드, 1.9어시스트 / 1-time NBA Champion(06)
치명적인 나의 매력을 받아라!!
지금은 ‘슛 셀렉션 바보이자 난사의 달인’으로 여겨지는 앤트완 워커는 셀틱스에서의 영광의 나날들을 뒤로하고 샤크-플레시 Era의 우승의 마지막 퍼즐로 트레이드를 통해 포지, 제이덥과 함께 히트에 합류하게 됩니다. 워커는 팀의 제 3공격 옵션이자 벤치 에이스로서 역할을 부여 받아 히트가 48분 내내 강한 공격력을 지속하는 데 공헌할 거라는 기대 속에서 05-06시즌을 시작했습니다. 우승 시즌이자 워커의 첫 시즌인 06년도엔 이전보다 못한 효율은 보여주었지만, 그래도 벤치 에이스로서 히트를 이끄는 두 슈퍼스타를 나름 잘 보필하면서 히트 첫 우승에 일조했습니다. 그러나 디펜딩 챔프 시즌에 워커는 이보다 최악일 수 없는 모습을 보이면서 디펜딩 챔피언의 1라운드 탈락을 주도하죠.
히트에서의 워커는 모든 이가 기대했던 공격에서의 역할보다는 수비에서의 역할이 그나마 나았습니다. 화려함 뒤에 감춰졌던 보물이라고 할까요? 그간 보여줬던 전천후 공격수의 모습보다는 리그 내에 어떤 4번과 매치업이 되어도 페인트존이든 어디서든 솔리드한 수비력을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강철 같은 체력 역시 워커가 히트에서 보여준 장점이었죠. 하지만, 본래 기대했던 공격에서 다재다능함은 우승 시즌 필요할 때만 조금씩 보여주고는 더 이상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3점이 가능한 레인지 및 다양한 공격 스킬과 넓은 시야가 그 시절에도 존재했지만, 정말 효율면에서 너무 별로였고, 기존의 난사기질에 가끔 블랙홀까지 되면서 공격에서 발암유발자가 되곤 했죠. 그래도 우승시즌엔 타고난 재능과 이전 시즌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집중력으로 중요한 순간에 역할을 해줬습니다만, 이미 이미 히트로 올 당시에도 올스타시절의 몸상태와는 백만 킬로미터 떨어져 있던 몸상태가 계속 안좋아지면서 결국 전성기를 구가할 나이에 히트와의 인연은 물론 커리어까지 마감하게 되었습니다. 이른 은퇴 후에는 여러 구설수에 오르내리다 결국 1억달러가 넘는 돈을 다 까먹고 파산했다는 소식으로 팬들을 여러 가지로 놀래키고 있습니다.
7위
#42 Kevin Willis (7-0, 220lbs, Michigan State)
2시즌(95-96), 112경기(103주전), 32.7분, 14.2득점(야투 47%, 3점 15.8%, FT 69.8%), 10리바운드, 1어시스트, 0.7스틸 / 2nd RPG
정말 힘들게 구한 사진ㅠㅠ
이미 80년대 중반부터 옆 동네 호크스에서 솔리드한 빅맨으로 소문난 케빈 윌리스는 94-95시즌 2게임만 뛰고는 충격적인 소식을 받습니다. 바로 이전 시즌 플옵에서 주먹이 오간 상대인 히트로의 트레이드 소식이었죠. 오래된 히트 팬들에게는 두고두고 욕을 먹고, 애리슨 패밀리가 팻 라일리를 데리고 오게끔 만든 ‘케빈 윌리스 (+ 1라운드 픽) ↔ 스티브 스미스 + 그랜트 롱’의 트레이드로 히트에 합류한 윌리스는 (다시 트레이드 되기 전까지) 프로답게 히트에서 좋은 모습을 보입니다.
케빈 윌리스는 지금으로 치자면, 다운그레이드 버전의 드와이트 하워드라고 생각하는데요. 엄청난 운동능력과 하드웨어에 맞지 않는 빠르기(하지만, 짧은 윙스팬은 다르죠- 허슬 플레이어님과 Penny from Heaven~~님 감사드립니다.), 거기에 하워드와 유사한 공격스킬 세팅까지.. 그래도 하워드보다는 미드레인지 슈팅이 좋아 그를 통한 미드레인지 게임도 가능했죠. 하지만, 하워드보다 수비 커버리지와 리바운드 능력 및 블락 능력이 많이 떨어지는 게 케빈 윌리스였습니다. 히트에서의 첫 시즌엔 프론트 코트 파트너인 존 샐리와 키우던 맷 가이거를 센터 파트너로 두고 4번에서 플레이를 했고, 다음 시즌엔 새로 합류한 모닝의 4번 파트너로서 솔리드한 모습을 보입니다. 하지만, 히트는 당시 매물로 나온 팀 하더웨이 영입을 위해 케빈 윌리스를 선택했고, 이 트레이드로 히트와의 인연을 마무리합니다. 이후에는 저니맨의 여정을 걷지만 스퍼스에서 우승을 맛보고, 44세까지 NBA에서 뛰며 노익장을 과시하며 나름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6위
# 14 故 Anthony Mason (6-7, 250lbs, Tennessee State)
가드의 볼핸들링을 보여주면서 센터를 막을 수 있었던 사나이
1시즌(01), 80경기(모두 주전), 40.7분, 16.1득점(야투 48.2%, 3점-없음, FT 78.1%), 9.6리바운드, 3.1어시스트, 1스틸 / 1-time All Star(01)
지금은 고인이 된 앤서니 메이슨은 00년 호네츠와 이루어진 또 한 번의 빅딜을 통해 히트에 합류했습니다. 이미 90년대 초반 Beast of East 시절 닉스에서 팻 라일리 밑에서 식스맨으로 중용을 받았던 메이슨은 트레이드로 히트에 같이 온 에디 존스와 FA로 합류한 브라이언 그랜트와 함께 기존의 모닝-하더웨이와 좋은 조합이 될 것으로 기대됐습니다. 하지만, 모닝의 신장병으로 인해 히트 전체 플랜이 나가리 되면서 시즌 전체에 불안감이 있었지만, 모닝의 빈자리를 메이슨이 150% 충족시키면서 정규시즌 히트의 순항을 주도했습니다.
메이슨은 16~20ft 지점에서 볼을 잡은 뒤 선수들의 동선을 체크하면서 오픈이 된 선수에게 킬 패스를 주거나 해당 지점에서 슈팅 아니면 포스트 업으로 밀고 들어간 뒤 페인트 존에서 마무리 혹은 또 다시 패싱으로 기회를 봐주는 것으로 히트의 공격을 주도했습니다. 또한 파워포워드라고는 절대 믿기지 않을 볼 핸들링과 키핑으로 정말 느리디 느린 페이스 속에서 기계처럼 정확한 공격을 수행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한편 수비에서는 전성기적 모습에서 느려진 풋워크를 제외하면 여전히 자기보다 훨씬 큰 포워드나 센터를 훌륭히 방어하고 빠른 가드를 제어하는 모습을 여전히 보여줬습니다. 6-7의 신장이지만 누구보다 힘이 좋았고, 윙스팬이 길었고 90년대 포워드 중 가장 경쾌한 풋워크를 가진 선수인데다가 리바운드에도 강점을 보였던 것이 메이슨이었습니다.
이렇게 00-01정규시즌 히트의 주축선수로서 팀을 이끌어 생애 최초이자 해당 시즌 팀의 유일한 올스타 선정까지 된 메이슨이지만, 플레이오프에서 만난 트레이드 파트너, 호네츠와의 승부, 정확히 말하자면 PJ브라운과의 승부에서 철저하게 눌려버립니다. 모닝이 우여곡절 끝에 복귀했으나 신장병을 겪은 모닝은 이미 모닝이 아니었고, 팀의 공격을 주도하는 건 다름아닌 메이슨이었는데, 메이슨이 막혀버리니 팀은 톱니바퀴에 이물질이 낀 기계처럼 아무것도 못하고, 호네츠에게 관광당하며 한 시대를 마무리하게 됩니다. 플레이오프 당시의 한계를 느낀 히트는 만기계약이던 메이슨을 잡지 않고, 메이슨은 벅스와 계약을 하며 히트와의 좋았던 시절을 마감하게 됩니다.
3. 메이저 랭킹(5위 ~ 1위)
5위
#7 Lamar Odom (6-10, 220lbs, Rhodes Island)
이렇게 좋을 수가~
1시즌(04), 80경기(모두 주전), 37.5분, 17.1득점(야투 43%, 3점 29.8%, FT 74.2%), 9.7리바운드, 4.1어시스트, 1,1스틸, 0.9블락
일찍이 팻 라일리에게 “왼손잡이 매직 존슨”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왕년의 ‘Total Package” 라마 오돔은 자신이 원하는 도시(LA)에서 원하지 않는 팀(Clippers)에게 드래프트되어 첫 FA를 맞습니다. 당시 RFA였던 오돔은 클립스가 타팀의 오퍼에 절대 매치하지 않기를 바랬고, 히트는 엘튼 브랜드를 놓친 뒤 바로 오돔에게 오퍼를 합니다. 인터뷰를 통해 눈물로 호소한 게 먹혔는지, 브랜드에게는 매치한 클립스는 오돔에게는 매치하지 않으면서 오돔의 사우스 비치 생활이 시작됩니다. 이전 두 시즌 연속으로 부상으로 인해 부진한 오돔이기에 히트의 영입을 매우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있었지만, 오돔과 히트는 그런 우려를 씻어내고 2시즌 만에 플레이오프에 나가는 쾌거를 연출합니다. 플옵에서도 호네츠와 페이서스를 맞아 명승부를 벌였고, 그 중심에는 오돔이 있었습니다.
오돔의 플레이는 다재다능하다는 측면에서 앞서 언급했던 메이슨이나 워커와 유사하지만, 오돔은 매우 부드럽게 플레이를 했습니다. 가드 이상의 볼핸들링과 게임 메이킹 및 어시스트능력(당시 신인이긴 했지만, 가드인 웨이드보다 오돔의 게임메이킹 능력이 한 수 위였으니 말 다했죠.)을 가진 가운데 코트 어디에서든 득점이 가능한 다양한 공격 스킬이 있었습니다. 수비에서도 데뷔 후, 아니 커리어 중 가장 열심히 수비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수비에서 장족의 발전을 보였습니다. 퍼리미터에서든 페인트 존에서든 의욕이 있는 오돔의 수비는 클립스에서의 자동문과는 큰 차이가 있었고 이는 수치로 나타났습니다. 여기에 잠재된 수비리바운드 능력이 꽃봉오리를 피기 시작하면서 리바운드에서 강점을 보였습니다.
이병 웨이드와 오상병
이렇게 팀에게도 본인에게도 엄청난 성공을 가져다 준 03-04시즌을 마치고 더 나은 시즌을 기대하고 있었지만, 오돔과 히트의 인연은 이 한 시즌으로 끝나버립니다. 당시 트레이드 시장에 나온 리그를 지배하는 남자를 영입하기 위해 보스가 팀의 중심이었던 오돔과 3년차가 될 버틀러, 그리고 소나무 같았던 브라이언 그랜트에 1라운드 픽을 언저서 레이커스에서 붕 떠버린 샤크를 데려오는 정말 어마어마한 베팅을 했기 때문이죠. 모두가 놀란 트레이드였지만, 오돔이 가장 좋아한 팀인 노랑과 보라색의 팀으로 간 것이기에 팬들과 오돔도 아쉬움이 덜했다고 보고요, 그 팀에서 우승까지 했기에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근래에는 농구보다는 사건 사고로 더 많이 알려지고, 목숨까지 잃을 뻔했기에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오돔.. 코트에서 다시 볼 수 있을까요?
4위
#43 Grant Long (6-8, 225lbs, Eastern Michigan)
무섭게 생겼으나 마음은 착하답니다.
7시즌(89-95), 472경기(375주전), 31.5분, 11.6점(야투 47.8%, 3점 20.6%, FT 76.8%), 7리바운드, 2.1어시스트, 1.4스틸, 0.5블락 / 7th Gs, 4th MP, 10th FGM, 10th FGA, 4th ORs, 6th DRs, 5th Total Rebounds, 3rd Steals, 10th Points, 8th SPG
히트가 창단 후 첫 드래프트의 3번째(2라운드 8번)로 픽업 되어 프로선수 생활을 시작한 그랜트 롱은 로니 세이컬리와 함께 신생팀 히트의 대들보로서 많은 역할을 합니다. 트레이드 되기 전까지 히트에서의 커리어 내내 팀의 필요에 의해 주전과 벤치를 오가면서도 본인이 맡은 역할에 충실한 모습과 신생팀의 실질적인 분위기 메이커이자 라커룸 리더로서의 모습, 그리고 경기 중 동료가 해코지라도 당하면 가장 먼저 덤비는 Enforcer의 모습이 “휴먼 비타민”으로 알려진 긴 형님의 일관된 모습이라고 하겠습니다.
일단 롱은 이름과 달리 공격에서 그렇게 긴 슛거리를 가지지 못했습니다. 16ft 정도의 거리에서 슈팅은 가능하지만, 그 이상의 거리에서의 슛은 무의미하다고 할 정도로 슈팅에서의 롱은 별로였습니다. 하지만, 베이스라인에서 페이크 후 스텝을 밟은 뒤의 덩크와 스핀무브 후의 마무리는 괜찮은 무기였죠. 이외에도 활발한 운동량에 기댄 백도어 컷 등으로 득점을 올리고 준수한 자유투 능력을 가졌지만, 1:1로 공격을 맡기기에는 어려운 수준의 공격력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수비에서의 롱은 공격에서와 달리 큰 존재감을 보였습니다. 일단 공격자 파울을 유도하는 부분이 정말 기가 막힌 수준이었고, 공격리바운드에서의 포지셔닝과 포스트업 수비도 좋았죠. 게다가 돌파를 막는 수비와 상대의 볼을 낚아채는 스틸 능력도 좋았습니다. 다만 자신의 리바운드 능력에 비해 약한 수비리바운드와 블락에 약점이 있었죠.
초창기 히트를 대변하는 산 증인인 그랜트 롱이었지만, 변화의 바람이 불던 90년대 중반을 피해갈 수는 없었습니다. 이미 94-95시즌 전 팀의 중심인 세이컬리를 팔아버린 히트가 다움 수순으로 최고의 유망주였던 스미스와 전성기에 접어드는 롱을 케빈 윌리스와 바꿔버린 거죠. 이로 인해 6시즌간 지속된 롱의 히트 생활은 마감되었고, 이후 롱은 여러 팀을 전전하다가 보스턴에서 커리어를 마무리하게 됩니다.
3위
#42 P. J. Brown (6-11, 225lbs, Louisiana Tech)
모닝과 페인트존 지옥을 보여준 사나이
4시즌(97-00), 284게임(275주전), 31.2분, 9.9득점(야투 47.2%, 3점-없음, FT 75.5%), 7.9리바운드, 1.4어시스트, 0.9스틸, 1.1블락 / 2-time NBA All Defensive Team(2nd – 97, 99) – 9th Total Rebounds, 7th Blocks, 6th RPG, 7th BPG,
96년 시즌 종료 후 FA로 히트에 오게 된 P. J. 브라운은 다음 시즌 영입된 자말 매쉬번과 함께 90년대 로드 워리어의 그림을 완성한 선수입니다. 이미 대학과 네츠 시절 끈끈하고 솔리드한 수비로 이름이 높았던 브라운은 수비와 팀 퍼스트 마인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보스가 좋아하는 동시에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선수였죠. 이전 시즌 모닝과 티미라는 내외곽의 코어를 찾은 히트에게 브라운은 모닝의 보디가드이자 팀내 수위를 다투는 디펜더로서 팀에 큰 보탬이 됐습니다.
브라운에게 공격을 그렇게 친근한 부분이 아니었습니다. 미드레인지 슈팅은 있으나 정말 샷클락에 쫓기거나 반경 5피트 내에 수비가 없을 때만 쏠 정도로 극히 아끼는 편이었고, 대부분의 득점은 풋백과 어시스트에 의해 받아먹는 것 이외에는 공격에서 역할이 적었습니다. 그래도 80%에 육박하는 파울 슈터였고, 패스를 할 줄 아는 선수였기에 공격에서 문제를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또한 공격 시에는 당시 빅맨 동료들인 모닝, 오스틴과 함께 한 스크린을 하는 선수였기 때문에 이를 이용한 티미와의 픽앤롤도 왕왕 나왔습니다.(개인적으로 히트 역사상 최고의 스크리너를 꼽자면 브라운을 뽑고 싶네요) 한편 수비에서는 정말 뚜렷한 존재감을 보여줬습니다. 당시 팀에서 모닝에 이은 두 번째 리바운더이자 샷블락커였으며 팀 수비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존재인데다가 어떤 빅맨을 붙여놔도 쉽게 지지 않는 수비를 보였습니다. 수비에서 브라운의 가치는 팀뿐만 아니라 리그에서도 알아보면서 자연스럽게 리그 수비팀에 두 번이나 오르는 기염을 토하죠.
히트에서 나름 개인적인 영달과 팀의 중흥을 본 브라운이지만, 결과적으로 진 전쟁인 컷스로드 시리즈로 인해 히트와의 인연이 4시즌으로 마감되게 됩니다.(플레이오프 생산성이 정규시즌보다 못했던 부분은 있지만, 그 이유가 닉스와의 전쟁이었음을 감안한다면 사실 좀 성급한 결정이 아니었나 싶었는데요. 왜냐면 그 시리즈에서 정규시즌보다 잘하는 선수는 닉스와 히트 통틀어 누구도 없었기 때문이었죠.) 어쨌든 3시즌 연속으로 트윈테러에 당한 히트로서는 브라운을 희생해서라도 퍼리미터에 공수겸장 가드와 함께 하고 싶었고, 브라운이 없더라도 보험(그랜트와 메이슨)이 있었기 때문에 00년도 시즌 후 브라운과 매쉬번을 메이슨과 존스와 바꿨고, 브라운은 (매쉬번과 함께) 그 대가를 톡톡히 치루게 만듭니다. 이후 브라운은 호네츠에서 솔리드한 커리어를 이어나가다가 커리어 막바지에 빅3 셀틱스에서 우승을 한 뒤 은퇴합니다.
2위
#40 Udonis Haslem (6-8, 235lbs, Florida)
2인자(명수형 아님)
13시즌(03-현재), 802경기(498주전), 26.4분, 8.0득점(야투 49.2%, 3점 10%, FT 75.8%), 7리바운드, 0.9어시스트 0.5스틸 / 3-time NBA Champion(06. 12. 13), NBA All-Rookie 2nd Team (04) - 2nd Gs, 4th MP, 5th FGM, 6th FGA, 1st ORs, 1st DRs, 1st Total Rebounds, 9th Blocks, 10th Steals, 7th Points, 10th FG%, 10th RPG
대학시절에는 말도 못하는 돼지였던 유도니스 하슬렘은 나름 솔리드한 대학생활을 보냈지만, 02년도 드래프트에서 어떤 팀의 선택도 받지 못합니다. 이후 하슬렘은 프랑스 리그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하고 300파운드가 넘었던 몸무게를 70파운드 이상 쏙 빼고 돌아와 03년도 히트 섬머리그에서 두각을 나타냅니다. 이런 활약 끝에 03-04시즌 라마 오덤의 백업 선수로서 커리어를 시작한 뒤 샤크-flash시절과 웨이드 almighty시절, 그리고 빅3 시절에 주전과 백업을 오가면서 2016년까지 13시즌 동안 웨이드와 함께 히트의 리빙 레전드이자 라커룸 보컬 리더로서의 역할을 계속 수행하고 있습니다.
한창 때의 하슬렘은 좋은 운동능력과 강철 같은 몸, 그리고 끝을 알 수 없는 투지를 가진 수비 괴물이었습니다. 리바운드 경합이 펼쳐지거나 루즈볼이 생기면 항상 먼저 보는 게 하슬렘이었고, 퍼리미터에서 상대의 돌파가 이뤄지는 경우 누구보다 용감하게 공격자 파울을 유도하는 게 하슬렘이었습니다. 키는 작아도 생각보다 더 좋은 리바운더였고, 가드를 제외한 전 포지션에 디펜스가 가능했으며 탁월한 픽앤롤 수비수였습니다. 물론 페인트존 수비력 대비 그렇게 좋은 샷블락커는 아니지만, 언제나 모닝과 동부센터, 그리고 조엘 앤서니 같은 샷블락커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기는 하고요. 한창 때 대단했던 수비와는 달리 한창 때에도 공격은 그렇게 좋은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브라운처럼 공격을 만들어서 할 수 있는 능력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주요 공격루트가 10-16피트에서 던지는 미드레인지 점퍼였기에 점퍼가 말을 안 듣기 시작한 14시즌 전까지는 나름 히트 스페이싱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빅맨으로서 75%를 상회하는 자유투 성공률을 가지고 있었죠. 한편 슈팅과 별개로 하슬렘의 스크린은 브라운과 함께 히트 역사상 최고 수준의 스크린 세팅을 보여주곤 했죠.
내 안에 너 있다
웨이드와 함께 팀 내 유이한 3회 우승자로서, 팀과 팬에게 충성과 의리가 무엇인지를 커리어 내내 보여준 하슬렘은 이제 줄어든 운동능력과 고장나기 시작한 몸으로 인해 냉정히 말해 NBA에서 뛸 수 있을만한 몸 상태는 아니라고 판단됩니다. 하지만, 몸에 플로리다를 품고 사는, 마이애미 토박이이자 지역 팬들이 가장 사랑하는 선수이며, 팀 내에서 가장 믿음직스러운 고참이라는 점은 그에게 투자되는 연봉이 아깝지 않을 정도입니다. 커리어의 황혼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리더십은 리그 최고의 모습을 보이는 하슬렘이 히트 파워포워드 순위 2위입니다.
1위
#6 LeBron James (6-8, 250lbs, St. Vincent-St. Mary(HS))
진정 괴물은 바로 나지..(고맙다 같은 편이어서^^)
4시즌(11-14), 294경기(모두 주전), 38분, 26.9득점(야투 54.3%, 3점 36.9%, FT 75.8%) 7.6리바운드 6.7어시스트. 1.7스틸, 0.7블락 / 2-time NBA Champion(12, 13), 2-time NBA MVP(12, 13) 4-time All Star(11, 12, 13, 14), 2-time NBA Final MVP(12, 13), 4-time All NBA Team(1st - 11, 12, 13, 14), 4-time All NBA Defensive Team(1st – 11, 12, 13, 2nd – 14)
4th FGM, 5th FGA, 8th 3PM, 8th 3PA, 4th FTM, 4th FTA, 7th DRs, 10th Total Rebounds, 4th Assists, 8th Blocks, 8th Steals, 4th Points, 3rd FG%, 1st MPG, 1st PPG, 7th RPG, 4th APG, 3rd SPG
지금도 논란이 되고 있는 “The Decision”으로 합류하게 된 르브론 제임스는 자기의 별명인 “킹”처럼 히트와 함께 한 4시즌 동안 왕으로서 리그를 호령합니다. 르브론에 대해 저보다 훨씬 더 많이 아시는 팬과 고수들이 많아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 격이지만, 간단히 히트에서의 르브론을 언급하자면, 4년 연속 파이널에 진출해 2번의 우승을 거머쥐고, 4시즌 동안 2번의 MVP를 타는 동시에 4시즌 내내 NBA팀과 수비팀을 거르지 않으면서 역대 2위 연승 기록인 27연승 기록을 써 나갔으며 12년도 동부 결승 6차전과 13년도 파이널 4, 6차전, 14년도 61점 게임 등 셀 수 없이 화려한 퍼포먼스로 히트와 자신이 리그에서 가장 빛나도록 만들었습니다.
빅3 Era의 아이덴티티이자 스포의 아이덴티티인 스몰라인업이 공식적으로는 11-12년도 단축시즌부터 시작됐다고 하지만, 매버릭스에게 파이널에서 일격을 당한 그 시즌부터 르브론은 심심치 않게 4번으로 나와 경기를 운영했습니다. 히트에서 4번으로 컨버젼한 르브론은 상대에게 공수에서 항상 악몽으로 다가왔습니다. 리그 그 어떤 4번보다도 튼튼한 몸과 엄청난 운동능력, 최고 수준의 BQ와 스스로를 “퍼리미터 가이”라고 생각할 만큼 페이스 업에서의 다양한 공격 스킬을 가진 가운데 ‘포스트업’을 추가한 르브론은 당시 바클리의 말처럼 “지구상에서 농구를 제일 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포스트업을 이용한 확률 높은 공격의 비중이 높아졌지만 커리어 중에서 가장 높은 3점 성공률을 보였던 시기도 히트 시절이었습니다. 또한 저러한 슈팅이 안 먹히는 날에는 포인트 가드 뺨 세 번 정도 치는 플레이 메이킹 능력과 패스를 통해 자기만큼 공격할 수 있는 웨이드와 보쉬의 공격을 보좌하거나 포스트 업으로 스페이싱으 구축되면 외곽에서 기다리는 앨런, 밀러, 존스, 베티에, 챨머스에게 꿀 패스를 날려 3점으로 팀을 두 발자국 앞서 나가게 만들었던 것도 르브론이었습니다. 이런 공격과 함께 팀에서 가장 수비를 잘하는 선수이자 진지하게 리그 수비왕을 논하는 데 심심치 않게 이름이 올라올 정도로 르브론은 수비 능력과 수비할 때의 집중력이 엄청났습니다. 그리고 웨이드, 챨머스와 함께 엄청난 백코트 압박을 보여줬고요. 여하튼 당시 르브론은 히트 팬으로서 르브론이 히트 저지를 입고 있던 것이 감사하게 여겨졌을 만큼 대단하고 무서운 농구 선수였습니다.
14년도 파이널에서 무기력한 패배 후 고향으로 돌아간 르브론의 행보와 그 후 업다운이 일상화된 히트의 모습을 보면 빅3 시대가 그립습니다. 물론 1승의 의미가 이렇게 크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는 지금도 나름의 재미가 있지만, 그래도 우승이 손에 잡힐 듯한 거리에 있고 패배보다는 승리가 쉬운 팀이 좋은 건 인지상정이겠죠? 여하튼 다른 선수들은 커리어 내내 해도 못할 걸 4년 만에 다 이룬 르브론이 히트 파워포워드의 정상을 차지했습니다.
◎ 파워포워드 탑 10 성적 정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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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PJ브라운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네요.
모든게 좋았지만 슛이 안좋았던...ㅎㅎ
PJ브라운은 10~20피트 사이에 미드레인지 슈팅이 좋았던 선수죠. 오히려 페이스 업 스킬이 떨어지다보니 골밑에서 어이없는 실수할 때도 있었고요
@mourning33 당시 미디어 평가를 인용했습니다.
@라인하르트97 요새 슛이 좋은 빅맨들이 워낙 많지만 PJ 브라운 정도면 당시에 슛거리는 그리 길지 않았지만 16피트 정도에서 슛터치는 상당히 좋았죠. 덕분에 저유투도 빅맨치고 준수한 편이었구요. 오히려 단점으로 친다면 공격 스킬 부분이죠. 핸들링이 투박하고 포스트에서 유연한 움직임도 부족한 편이라 1:1로 득점하는 능력이 떨어졌고 본인도 이를 잘 알았기에 철저히 수비 마인드를 앞세우고 공격에 욕심내지 않았죠.
고생 많으셨습니다. 파포 포지션에서는 굵직굵직한 선수들이 참 많네요. 빅-이지는 정말 아쉽습니다. 키는 작아도 대학 무대에서 워낙에 골밑을 씹어먹었던 클래스가 있어서 마인드 좀 안좋은 엘튼 브랜드 급 정도를 기대했었는데 애매하게 트위너로 전락해 이리 빨리 느바를 떠날줄은 몰랐네요 ㅠㅠ 수비력, 집중력에서 비슷한 문제를 지녔던 드류 구든도 나름 가늘고 길게 커리어는 이어가고 있는데 말이죠. 아 그리고 케빈 윌리스는 드와잇 하워드에 비한다면야 당연 떨어지지만 전반적으로 리바운드 능력은 준수한 편이었습니다. 애틀 시절에 평균 15리바 잡은 시즌도 있었습니다. (약간은 플루크성이었지만...) 이 선수의 단점이라면 짧은
팔로 인해 7풋 신장에도 딸리는 블록 높이도 있었지만 뭣보다 참 블랙홀이었습니다. 포스트에서 자리잡으면 앵간하면 패스 안하고 들이대던... 물론 위력적인 포스트 득점원이었고 명품 훅슛을 지녔지만 공만 잡으면 동료들을 보지 않던 부족한 패싱 마인드가 아쉬웠죠.
케빈 윌리스.. 어떻게 보면 모닝과 참 잘 어울리는 페인트존 파트너처럼 보였었는데.. 지금 보쉬와 화사처럼 저 둘도 그렇게 시나지가 안났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리고 어떻게 제가 보는 족족 삽을 푸는지.. 그리고 글에 실수를 했네요ㅠㅜ 윌리스에게 길다란 윙스팬이라니ㅜㅜ 한편 비즐리는.. 지금도 아쉬운 선수라 봅니다. 아싸리 히트가 아닌 토대부터 다시 리빌딩하는 팀이었다면 좀 더 낫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했었는데.. 울브스에서의 플레이를 보면 그것도 아니더라고요.. 친구이자 라이벌이고, 오히려 얇은 프레임 때문에 의문부호를 단 전문가도 있었던 듀랭이는 승승장구하고 비즐리는 이렇게 된 거 보면.. 참 농구 몰라요^^
@mourning33 길다란 윙스팬은 저는 못봤네요 ㅋ 윌리스가 파포로는 참 장신인데(요즘에는 훨 큰 포르징기스도 있지만...) 그놈의 짧은 팔때문에 림프로텍팅이 안되는게 좀 아쉬웠죠. 그래도 그 숏팔 때문인지 다른 선수들과는 다른 궤도와 폼으로 연마한 베이비 훅샷은 참 개성있고 멋졌습니다. 역대 최고의 베이비 훅샷은 단연 샤크겠지만 웬지 그 기술이 시그내쳐 무브로 더 어울리는 선수는 윌리스였죠.
@허슬 플레이어 하워드와 비슷했다는 점을 부각시키려다 큰 잘못을 한 셈이죠..ㅋㅋ 퇴고를 반드시 해야겠어요^^ 윌리스의 공격은 참 임팰트가 있어서 뇌리에 남는 것 같습니다. 다만.. 기록지를 보면 임팩트만큼 득점이 올라와 있는 건 아니었던 게 함정이죠.ㅎㅎ 대신 리바운드는 "어 이 사람 언제 이렇게 많이 잡았지?"라고 생각이 들 만큼 참 잘 잡던 게 윌리스였다고 봅니다.
좋은글 잘봤습니다 ^^
PJ브라운은 정말 반갑네요
센터편도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UD님 응원 참 많은 힘이 되네요^^
좋은글 잘봤습니다^^ b-easy는 대학시절 하이라이트 영상보고 정말 기대가 컸던 선수인데 영 못커줬네요. 역시 PF엔 그분이...
그렇죠. 킹 외에 저 자리에 오른 선수가 없죠^^
잘 읽었습니다! 저도 한가지 케빈 윌리스를 드와잇 하워드랑 비교하시면서 긴 윙스팬이라고 하셨는데 사실 케빈 윌리스의 가장 치명적인 단점이 짧은 팔이었죠. 오죽하면 T-rex Arm이라고 놀리는 사람들도 있었으니깐요. 짧은 팔로 인한 윙스팬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인 몸싸움으로 공간을 만들어서 던지는 훅슛은 나름 잘먹히는 공격 옵션이기도 했죠
감사합니다. 퇴고하지 않고 쓰다보니 윌리스의 윙스팬을 길다랗다고 해버렸네요. 티렉스 암.. 오랜만에 들어보는 별명이네요..ㅋㅋ 지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언넝 고치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비즐리는 정말 두고두고 아쉽네요 아직도 아쉬운선수..
비즐리는 히트 팬이라면 애증의 대상일 수 밖에 없죠. 신인으로서 가장 많은 기회를 받았지만, 그걸 허공에 날려버린 녀석.. 하지만, 때로는 엘리트 공격수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기에 기대를 놓을 수 없었던 녀석이 바로 비즐리인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