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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해석』 - 최고의 번역본을 찾아라(제 2탄)
『꿈의 해석』,
김기태 옮김,
선영사, 2002. 115쪽~. 2
『꿈의 해석』,
김양순 옮김,
일신서적, 1993. 98쪽~. 5
『꿈의 해석』,
김인순 옮김,
열린책들, 2003. 134쪽~. 8
『꿈의 해석』,
서석연 옮김,
범우사, 2002. 137쪽~. 10
『꿈의 해석』,
장병길 옮김,
을유문화사, 2002. 87쪽~. 13
『꿈의 해석』,
조대경 옮김,
서울대학교출판부, 2003. 85쪽~. 16
2장에 대한 전체적인 검토를 하기 전에 우선 첫부분(약 4 쪽 분량)에 대한 정밀 검토를 할 생각이다. 그 이유는 몇 개의 번역본이 너무나 비슷하기 때문이다. 같은 텍스트를
번역했기 때문에 비슷한 것은 당연하겠지만 내가 의아해 하는 것은 좀 이상한 방식으로 비슷해서다.
아래에
6 개의 번역본과 나의 초벌번역을 인용했다.
성격 급하신 분들은 <정밀 검토 1 – 첫번째 문단>으로 건너 뛰시면 되겠다. 하지만 차분히 아래의 번역문을 읽어보는
것이 전체적인 가독성을 평가해 보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내가 이 장에 붙인 제목은 꿈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어떤 전통과 결부되어 있는가를 알려 줄 것이다. 나는 여기서 꿈이 해명되고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할 것이다. 지금까지 취급되어 온 꿈의 여러 문제 해명에 대한 기여가 나에게는 단지 내 본래의
과제를 해결할 때 얻어진 부산물로 생긴 것에 불과하다. 꿈이 해석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나는 곧 지배적인 꿈 이론, 아니 세르너의 설만 예외로 하고 모든
꿈 이론과 정면으로 맞서게 된다. 왜냐 하면 꿈을 ‘해석한다’는 것은 꿈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고, 또 꿈을 우리들의 심적 행위의 연쇄 속에 완전히 등등한 자격항으로 맺어주는 어떤 것과
바꾸어 놓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앞장에서 본 것과 같이 학문적인 꿈 이론은
꿈 해석의 문제를 조금도 개입시키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꿈이
학문적 꿈 이론으로 볼 때에는 어떠한 심적 행위도 아니며, 심적 장치에 나타나는 징조에 의해 알려지는
한낱 신체적 과정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반 사람들은 예로부터 이와는 다른 견해를 보여 왔다. 그들의 견해는 사물을 학문처럼 엄격하게 취급하지 않는다는 당연한 권리를 이용하고 있다. 그리고 꿈이 난해한 것이라고 인정하기는 해도 그렇다고 전혀 아무런 뜻도 없다고 단정할 결단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막연한 예감에 이끌리어 비록 감추어진 의미라 할지라도 어쨌든 꿈에는 의미가 있으며, 어떤 다른 사고 과정의 대용물이 될 의무가 있다.
그러므로 올바른 방법으로 이 대용물을 찾고
꿈의 감추어진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한 문제이다. 그래서 옛날부터 사람들은 꿈을 ‘해석하려고’ 애써 왔다. 그리하여
매우 상반되는 두 가지 방법을 사용했다. 그 첫째 방법은 꿈을 하나의 전체물로 파악하고, 이것을 비슷한 내용으로 바꾸어 보다 쉽게 만들려고 한다. 이것은
상징적인 꿈 해석 방법이다. 물론 이 방법은 이해하기도 어렵고, 혼란된
꿈에서는 처음부터 막혀 버린다. 그 일례는 《구약 성서》에 나오는 요셉이 파라오(이집트의 왕)의 꿈에 붙여준 해석이다.
그 꿈의 내용은 살찐 일곱 마리 소에게
다른 일곱 마리 소가 와서 살찐 소들을 잡아먹는다는 것인데, 이것은 이집트에 7년 동안 계속된 풍년으로 모아둔 풍성한 곡식을 그 다음의 7년 간의
흉년이 와서 다 먹어치운다는 것을 예언하는 상징적인 대용물이다. 시인들이 그려내는 인공적인 꿈의 대다수는
이러한 상징적인 해석을 예상한다. 왜냐 하면 이런 꿈은 시인들이 갖는 사상을 우리들이 경험으로 잘 알고
있는 꿈의 성격에 부합되도록 분장해서 묘사하기 때문이다.[1]
그리고 꿈은 미래를 내다보기 때문에 전적으로 미래의 일과 관계한다는 의견 – 일찍이 꿈에
대하여 승인되었던 예언적 의의의 잔재 – 은 상징적 해석에 의해서 발견된 꿈의 뜻을 ‘무엇무엇이 되리라’는 표현에 의해서 미래화시키게 된다.
그러면 그런 상징적 해석의 길은 어떻게
해서 발견되는가? 물론 거기에는 뚜렷한 방법이 없다. 성공은
지혜로운 아이디어와 순간적인 직관에 달려 있으므로, 상징에 의한 꿈 해석은 일종의 기술상의 재주를 연마하는
것과 같은 것이 되어 버리기 때문에 특수한 재능 없이는 불가능한 것으로 생각되었다.[2]
그런데 일반적으로 행해진 또 하나의 꿈 해석 방법은 그렇게 어렵지 않은 것이었다. 이 방법은
꿈을 일종의 암호문처럼 다루기 때문에 ‘해독법’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여기에는 정해진 해독의 열쇠가 있어서 그것을 사용하면 어떤 암호라도 해독 가능한 기호로
번역된다.
이를테면 내가 어떤 편지나 장례식의 꿈을
꾸었다고 하자. 그래서 나는 꿈 해석에 관한 책자를 찾아보고 ‘편지’꿈은 ‘불쾌한 일’이고, ‘장례식꿈’은 ‘약혼’으로 번역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는 이런 해답에서 하나의
관련을 찾아내야 한다. 순전히 기계적인 번역의 성격을 조금 수정 보완한 개정 해독법이라는 흥미 있는
방법이 알테미도로스의 꿈 해석을 기록한 달디스의 저서에 기록되어 있다.[3]
이 개정 해독법에서는 꿈 내용뿐만 아니라, 꿈꾸는 사람의 인물이나 생활 환경까지도 문제가
되는데, 동일한 요소라고 해도 그것이 부자·기혼자·웅변가에 대해 가지는 뜻과, 빈자·미혼자·상인에 대해 가지는 뜻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한다.[4]
이 방법에서 가장 중시되는 점은 해석 작업이
꿈 전체에 향해지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하나하나의 꿈 내용이 그것만으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점에 있다. 마치 꿈 속에서 하찮은 돌멩이 하나라도 특별한 의미의 조약돌이기를 바라는 것처럼. 이러한 해독법이 나온 동기는 분명히 어수선하고 불투명한 꿈을 어떻게든 해명해 내려 했기 때문이리라.[5]
내가 이 작은 논문에 준 표제는 내가 꿈을 해석함에 있어서 어떤 전통과 연결되고자 하는가를 알려 줄 것이다. 나는 꿈이 해명되고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고자 한다. 이때까지 취급된 꿈의 여러 문제 해명에 대한 기여가 나에게는 다만 내 본래의 과제를 해결할 때에 얻어진 부산물의 의미밖에 갖지 못할 것이다. 꿈은 해석될 수 있다는 전제를 근거로 하면, 나는 곧 지배적인 꿈 이론, 아니 세르너의 설만 예외로 하고 모든 꿈 이론과 정면으로 대립하게 된다. 왜냐하면 <꿈을 해석한다>는 것은 꿈에 <뜻>을 주는 것을 의미하고, 또 꿈을 우리들의 심적 행위의 연쇄 속에 완전한 동일 자격의 한 항으로서 맺어 주는 어떤 것과 바꾸어 놓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미 본 바와 같이 학문적인 꿈 이론은 꿈 해석의 문제를 전혀 건드리려 하지 않는다. 그것은, 꿈이 학문적 꿈 이론에서는 어떠한 심적 행위도 아니며, 심적 장치에 나타나는 징조에 의해 알려지는 한낱 신체적 과정일 따름이기 때문이다. 일반 사람들은 예부터 이와는 다르게 생각해왔다. 그들의 견해는 사물을 학문처럼 엄격하게 취하지 않는다는 당연한 권리를 이용하고 있다. 그리고 꿈이 이해할 수 없는 황당무계한 것이라고 인정은 하나, 그렇다고 꿈에는 아무 뜻도 없다고 단정할 만한 결심도 못 하고 있다. 막연한 예감에 이끌리어 비록 숨겨진 의미라 할지라도 좌우간 꿈에는 뜻이 있으며, 어떤 다른 사고 과정의 대용물이 될 사명이 있다, 그리고 꿈의 숨겨진 뜻을 찾아내려면 이 대용물을 어떻게 올바르게 발견하느냐가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예부터 사람들은 꿈을 <해석하려>고 애써왔다. 그리하여 근본적으로 다른 두 가지 방법을 사용했다. 첫째 방법은, 꿈 내용을 하나의 전체물로 파악하고, 이것을 다른 보다 알기 쉬운, 그리고 어떤 점에서도 그와 비슷한
내용에 의해 바꾸어 놓아 보려고 한다. 이것이 <상징적> 꿈 해석이다. 물론 이 방법은 이해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혼란된
꿈을 만나면 처음부터 좌절되어 버린다. 이를테면 구약 성서에 나오는 요셉이 파라오(이집트 왕)의 꿈에 준 해석 따위가 이 방법을 보여 주는 일례이다. 살찐 일곱 마리 소에게 마른 일곱 마리 소가 와서 살찐 소를 잡아먹어 버리는 꿈인데 이것은 이집트에 7년 동안 계속된 풍년으로 비축된 풍성한 물자를 다음의 7년간의 기근이
와서 먹어 버린다는 것을 예언하는 상징적인 대용물이다. 시인들이 그려내는 인공적인 꿈의 대다수는 이러한
상징적 해석을 예상한다. 왜냐하면 이런 꿈은 시인들이 갖는 사상을 우리들이 경험으로 잘 알고 있는 꿈의
성격에 알맞게 분장해서 묘사(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6] 꿈은
미래의 일과 관계되므로 미래가 어떻게 되는가를 예감하고 있다는 의견 – 일찍이 꿈에서 승인되었던 예언적 의의의
잔재 – 은 상징적 해석에 의해 발견된 꿈의 뜻을 『무엇무엇이 되라라』는 표현에 의해 미래 속으로 옮겨 놓는 계기가 된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그런 상징적 해석의
길을 찾아내는가? 여기에는 물론 이렇다 할 방법이 있을 리가 없다. 성공은
슬기로운 착상, 순간적인 직관에 달려 있으므로, 상징에 의한
꿈 해석은 일종의 기예 수업 같은 것이 되어 버리기 때문에 특수한 재능 없이는 못 할 것같이 보였다.[7]
그런데 일반적으로 행하여진 또 하나의 꿈 해석 방법은 그다지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이
방법은 <해독법>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꿈을 일종의 암호문같이 다루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정해진 해독의 열쇠가 있어서 그것을 사용하면 어떤 암호라도 뜻이 알려져 있는 다른 기호로 번역된다. 이를테면 내가 어떤 편지나 장례식의 꿈을 꾸었다고 하자. 그래서
나는 꿈 해석 책을 뒤져 보고 <편지> 꿈은 <불쾌한 일>, <장례식 꿈>은 <약혼>이라는
식으로 번역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럴 경우 이런 해답에서 하나의 관련, 역시 미래에 관한 관련을 만들어내는 것이 나의 일이 된다. 이 해독법의
순 기계적 번역이라는 성격을 다소 수정 완화한 개정 해독법이라는 재미있는 방법이 달디스의 아르테미도로스의 꿈 해석을 기록한 저서에 표시되어 있다.[8]
이 개정 해독법에서는 꿈 내용뿐만 아니라, 꿈꾸는 사람의 인물이나 생활 사정까지 고려되는데, 같은 꿈의 요소라도 그것이 부자·기혼자·웅변가에 대해 가지는 뜻과 가난한 사람·미혼자, 그리고 이를 테면 상인에 대해 가지는 뜻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고 한다.
이 방법의 가장 중요한 점은 해석 작업이
꿈 전체에 향해지는 것이 아니라, 마치 꿈이라는 것이 그 속에서 어떤 돌멩이도 하나의 특별한 뜻을 바라는
조약돌인 것과 같이, 꿈 내용의 하나하나가 그것만으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데 있다. 이 해독법이 만들어진 동기는 틀림없이 지리멸렬하고 혼란된 꿈을 어떻게 해서든지 해명해내려고 한 데서 나왔을
것이다.[9]
이 장(章)의 표제를 보면 내가 꿈-해석의 어떤 전통을 따르려는지 알 수 있다. 내 계획은 꿈을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다룬 꿈 문제들의 해명에 기여한 바가 있다면, 그것은 원래의 과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뜻밖에
얻은 부수적 소득에 지나지 않는다. 꿈이 해석될 수 있다는 나의 가정은 즉시 지배적인 꿈-이론, 아니 셰르너의 이론을 제외한 모든 꿈-이론과 정면으로 대립한다. <꿈을 해석한다>는 것은 꿈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 즉 기타 정신 활동들과 마찬가지로 동등하고 중요한 고리로서 우리 정신 활동의 사슬 속에
연결되어 있는 무엇으로 꿈을 대체하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바와 같이
학문적인 꿈-이론들은 꿈-해석의 문제에 전혀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그러한 이론들의 견지에서는 꿈은 결코 정신 활동이 아니라, 정신
기관에서의 징후를 통해 알려지는 일종의 신체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로부터 대중들은 그와 다르게
생각해 왔다. 사람들은 굳이 일관성 있게 행동할 필요가 없는 자신들의 당연한 권리를 누렸다. 그들은 꿈이 이해할 수 없는 부조리한 것이라고 시인하면서도, 꿈이
의미 없는 것이라고 선언할 결심은 하지 않는다. 그 대신 막연한 예감에 이끌려, 꿈에는 분명 숨어 있는 의미가 있으며 다른 사고 과정을 대신하는 사명을 띠고 있다고 추정하는 듯 보인다. 그러니 그들에게는 꿈의 숨어 있는 의미를 찾아내기 위해서 대용물이 무엇을 대체하고 있는지 올바르게 밝혀 내는
것이 문제이다.
이런 이유에서 대중들은 옛부터 꿈을 <해석하려고> 노력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근본적으로 판이한 두 가지 방법을 시도했다.
첫번째 방법은 전체로서의 꿈-내용에 주목하여, 어떤 관점에서 원본과 유사하면서 의미가 명료한 다른
내용으로 대체하고자 한다. 이것이 <상징적인> 꿈-해석이다. 물론
이 방법은 이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혼란스러운 꿈의 경우 처음부터 성공할 가능성이 없다. 이 방법의
좋은 실례는 구약 성서에 나오는 요셉의 파라오 해석 꿈이다. 일곱 마리의 마른 암소가 뒤쫓아 와 일곱
마리의 살찐 암소를 먹어 치운다. 이것은 이집트에서 7년간
이어진 풍년 끝에 7년에 걸친 기근이 찾아와 그동안 비축해 둔 풍요한 물자를 다 먹어 치운다는 예언을
상징적으로 대신한다. 시인들이 만들어 낸 인위적인 꿈들은 대부분 이러한 상징적 해석을 위한 것이다. 그것들은 시인들이 품고 있는 사상을 우리가 경험으로 알고 있는 꿈의 특성에 부합하도록 위장하여 묘사하기 때문이다.[10]
꿈이 주로 미래와 관계되어 앞날을 예감한다는 의견은 – 이것은 일찍이 꿈이 승인받았던 예언적
의미의 잔재이다 – 상징적 해석이 발견해 낸 꿈의 의미를 <그렇게
될 것이다>를 통해 미래로 옮겨 놓은 계기가 된다.
그런 상징적인 해석의 길을 어떻게 찾아낼
수 있을까. 여기에는 물론 이렇다 할 지침이 없다. 성공
여부는 재치 있는 착상, 순간적 직관에 달려 있다. 그 때문에
상징에 의한 꿈-해석은 특별한 재능을 필요로 하는 듯 보이는 기예(技藝)가 될 수 있었다.[11]
또 다른 대중적 꿈-해석 방법은 그러한 요구와는 거리가 멀다. 이 방법은 꿈을 일종의 암호 문서처럼 다루기 때문에, <암호
해독법>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암호 문서에서 모든
부호는 이미 정해져 있는 암호 해독의 열쇠에 따라 잘 알고 있는 의미의 다른 부호로 번역된다. 예를
들어 내가 편지와 장례식 등이 나오는 꿈을 꾸었다 치자. 『해몽서Traumbuch』를 찾아보면 <편지Brief>는 <불쾌감Verdruß>으로, <장례식Leichenbegängnis>은 <약혼Verlobung>으로 번역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게 남아 있는 일은 해독해 낸 중심 낱말들을 토대로 관계를 만들어 내 미래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달디스의 아르테미도로스[12]는
꿈-해석에 관한 글에서 이러한 암호 해독법을 흥미롭게 변화시켜 순전히 기계적인 번역으로서의 특성을 어느
정도 수정하고 있다.[13]
그는 꿈-내용뿐 아니라 꿈꾸는 사람의 인품이나 생활 환경까지도 고려한다. 따라서 동일한 꿈-요소라고 하더라도 부자, 기혼자, 연설가일 때와 가난한 자,
미혼자, 상인인 경우는 의미가 다르다. 이 방법의
근본적인 점은 해석 작업에서 꿈 전체가 아니라 꿈-내용의 각 부분 자체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그래서 꿈은 마치 특정한 사명을 요구하는 부분들의 집합체처럼 보인다. 물론
암호 해독법을 만들어 낸 원동력은 전후 관계없이 혼란스러운 꿈들이다.[14]
내가 이 소론(所論)에 붙인 제목은 내가 꿈의 해석함을 어떤 전통과 결부시키고자
하는지를 알려줄 것이다. 나는 꿈이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고자 한다. 지금까지 취급해 온 꿈의 여러 문제 해명에 대한 기여가 나에게는 단지 나의 본래의 과제를 해결할 때에 얻어진
부산물과 같은 의미밖에 갖지 못할 것이다. 꿈은 해석할 수 있음을 전제로 한다면, 나는 곧 지배적인 꿈 이론, 아니 셰르너의 설만 예외로 하고 모든
꿈 이론과 정면으로 맞서게 된다. 왜냐하면 “꿈을 해석한다”는 것은 꿈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고, 또 꿈을 우리들의 심적 행위의 연쇄 속에 완전한 동일 자격의 한 항으로 맺어주는 어떤
것과 바꾸어 놓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미 앞에서 본 바와 같이 학문적인
꿈 이론은 꿈 해석의 문제를 전혀 건드리려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꿈이 학문적 꿈 이론으로 볼 때에는
어떠한 심적 행위도 아니며, 심적 장치에 나타나는 징조에 의해 알려지는 한낱 신체적 과정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반 사람들은 예로부터 이와는 다르게 생각해 왔다.
그들의 사고방식은 사물을 학문처럼 엄격하게 취급하지 않는다. 그리고 꿈은 난해하고 황당무계한
것이라고 인정하기는 해도 전혀 아무런 뜻도 없다고 선뜻 단정도 못 내린다. 그들은 막연한 생각으로 숨겨진
의미건 무엇이건 어쨌든 꿈에는 의미가 있으며, 어떤 다른 사고 과정의 대용물이 될 사명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므로 꿈의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려면
이 대용물을 어떻게 올바르게 발견하느냐가 중요하다. 옛날부터 사람들은 꿈을 ‘해석하려고’ 애써왔다. 그리하여
근본적으로 상반되는 두 가지 방법을 사용했다. 그 첫째 방법은 꿈의 내용을 하나의 전체물로 파악하고
비슷한 내용으로 바꾸어 보다 쉽게 만들려고 한다. 이것이 ‘상징적’인 꿈 해석이다. 물론 이 방법은 이해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혼란에
부딪치면 처음부터 좌절해 버린다. 다시 말하자면 《구약성서》에 나오는 요셉이 파라오(이집트 왕의 존칭)의 꿈을 해석한 따위가 그 방법을 나타내는 예다. 살찐 소 일곱 마리가 있는 곳에 마른 소 일곱 마리가 와서 살찐 소들을 잡아먹는다는 꿈인데, 이것은 이집트에 7년 동안 계속된 풍년으로 비축된 풍성한 물자를
그 다음의 7년간의 흉년이 와서 다 먹어치운다는 것을 예언하는 상징적인 대용물이다. 시인들이 그려내는 인공적인 꿈의 대다수는 이러한 상징적인 해석을 예상한다. 왜냐하면
이런 꿈은 시인들이 갖는 상상을 우리가 경험으로 잘 알고 있는 꿈의 성격에 부합되도록 분장해서 재현(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15]
꿈은 미래의 일과 관계되므로 미래가 어떻게
되는가를 예감하고 있다는 의견 – 일찍이 꿈에서 승인되었던 예언적 의의의 잔재 – 은 상징적 해석에 의해 발견된 꿈의 뜻을 “무엇무엇이 되리라”는 표현에 의해서 미래 속으로 옮겨놓는 계기가 된다.
그러면 그런 상징적 해석의 길을 어떻게
찾아내는가? 여기에는 물론 이렇다 할 방법이 있을 리가 없다. 성공은
지혜로운 착상, 순간적인 직관에 달려 있으므로 상징에 의한 꿈 해석은 일종의 예능 수업과도 같은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이것은 특수한 재능 없이는 불가능한 것같이 보였다.[16]
그런데 일반적으로 또 하나의 꿈 해석 방법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이 방법은 ‘해독법’이라고 해도 좋을 것인데, 꿈을 일종의 암호문처럼 다루고 있다. 여기에는 정해진 해독의 열쇠가 있어서 그것을 사용하면 어떤 암호라도 뜻이 알려져 있는 다른 기호로 번역된다. 즉 내가 어떤 편지나 장례식의 꿈을 꾸었다고 하자. 그래서 나는
꿈 해석에 관한 책을 찾아보고 ‘편지’ 꿈은 ‘불쾌한 일’, ‘장례식’은
‘약혼’이라는 식으로 번역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럴 경우 이런 해답에서 하나의 관련, 역시 미래에 대한 관련을
만들어내는 것이 나의 일이 되는 셈이다. 이 해독법의 기계적 번역이라는 성격을 조금 수정 완화한 개정
해독법이라는 흥미있는 방법이 달디스의 아르테미도로스의 꿈 해석을 기록한 저서에 표시되어 있다.[17]
이 개정 해독법에서는 꿈의 내용뿐만 아니라
꿈꾸는 사람의 인물이나 생활 사정까지도 고려되는데, 같은 꿈의 요소라고 해도 그것이 부자·기혼자·웅변가에
대해 가지는 뜻과 가난한 사람·미혼자 그리고 상인에 대해 가지는 뜻은 차이가 있다고 한다.
이 방법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해석 작업이
꿈 전체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하나하나의 꿈 내용이 그것만으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꿈속에서 하찮은 돌멩이도 제각기 특별한 뜻을 바라는 조약돌인 것과 같이 꿈의 내용 하나하나가 그것만으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해독법이 만들어진 동기는 분명히 지리멸렬하고 혼란된 꿈을 어떻게든
해명하려고 한 데서 나왔을 것이다.[18]
내가 이 장에 붙인 표제는 꿈을 이해함에
있어서 내가 어떤 전통과 연결하는가를 알려 줄 것이다. 나는 꿈이 해명되고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볼 결심이다. 이때까지 취급된 꿈의 여러 문제에의 기여는 나에게는 다만 나의 본래의 과제를 해결할 때에
얻어진 부산물로 생긴 것이다. 꿈이 해결될 수 있다는 전제 아래 나는 바로 지배적 꿈 이론, 아니 셰르너 설을 제외하고 모든 꿈 이론에 정면으로 충돌하게 된다. 왜냐하면
‘꿈을 해석한다’ 함은 꿈에 ‘뜻’을 부여함을 뜻하고, 꿈을
우리들의 여러 심적 행위의 연쇄 속에 완전한 동일 자격의 일항(一項)으로서
맺어 주는 어떤 것과 바꾸어 놓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미 본 바와 같이 꿈에 관한 학문적
이론은 꿈 해석 문제에 대하여 빈 자리를 마련하고 있지 않다. 꿈이란 학문적 이론에 대한 어떤 심적
행위는 아니며, 어떤 방법을 써서 마음의 장치(裝置)에서 자신을 알리는 하나의 신체적 사상(事象)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반 사람들은 옛부터 다르게 생각했다. 그들의 생각은 사물을 학문과 같이 엄격히 취하지 않는다는 훌륭한 권리를 즐기며, 꿈이 이해할 수 없는 어리석은 것이라고 인정하더라도, 그들은 꿈의
뜻을 부인할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 그들이 승인하는 의견에 의하면, 어떤
희미한 예감에 끌려, 꿈은 분명하진 않지만 한 뜻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다른 사고 과정을 대신할 임무가 있다. 그러므로 올바른 방법으로 이 대용물을 찾고 꿈의 감추어진 뜻을
찾는 일이 중요한 문제이다.
옛부터 사람들은 꿈을 해석하려고 애썼다. 그때에 성질이 아주 다른 두 방법이 사용되었다. 첫째 방법은 이렇다. 꿈 내용을 하나의 전체로 파악하고, 그 내용을 다른 보다 알기 쉬운, 그리고 어떤 점에서는 그와 비슷한 내용과 바꾸어 본다는 것이다. 상징적
꿈 해석이다. 물론 이 방법은 이유를 모를 뿐 아니라, 내용이
혼잡한 꿈 앞에서는 애당초 소용이 없게 된다. 예컨대 구약 성경에 나오는 요셉이 파라오의 꿈에 준 설명이다. 살찐 일곱 마리의 소에게 야윈 소 일곱 마리가 와서 살찐 소를 먹어 버린다.
이것은 애급에서 칠 년 동안 해마다 만들어 낸 풍성한 물자를 칠 년간의 기근이 와서 다 먹어 버린다는 예언의 상징적 대용물이다. 시인들이 그리는 인공적인 꿈의 대다수는 이런 상징적 해석을 예상한다. 왜냐하면
이런 꿈은 시인의 사상을 경험해서 잘 알고 있는 우리들의 꿈의 여러 성격에 알맞게 분장해서 묘사하기 때문이다.[19]
그리고 꿈은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알고 있어서 전적으로 미래의 일과 관계한다는 의견 – 전에
꿈에 대하여 승인된 예언적 뜻의 잔재 – 은 상징적 해석에 의하여 발견된 꿈의 뜻을 “무엇 무엇이 되리라”는 표현에 의해서 미래의 것으로 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그런 상징적 해석의 길이 어떻게 발견되느냐에
관해서는 이렇다 할 시사(示唆)가 없다. 성공은 슬기로운 얕은 생각, 돌발적인 직관에 있으며, 따라서 상징에 의한 꿈 해석은 특수한 재능 없이는 할 수 없는 듯 보이는 하나의 기술·기예(技藝)와 같은 것이다.[20]
오래 전에 흔히 쓰여졌던 또 다른 꿈 해석은 그다지 힘든 것은 아니었다. 그 방법은 ‘해독법’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즉
꿈을 일종의 암호문과 같이 본다. 정해진 해독의 열쇠가 있어서 그것을 사용하면 그 꿈의 암호는 무난히
풀려서 진정한 뜻이 알려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내가 어떤 편지나 장례식의 꿈을 꾼다고 하자. 그러면 나는 열쇠가 씌어 있는 ‘꿈 해석’의 책을 뒤진다. ‘편지’는
‘성가신 사건’, ‘장례식’은
‘약혼’이라는 답이 생기는 따위이다. 이런 해답에서 하나의 관련, 더욱이 미래에 관한 어떤 사건을 조립하는
것이 나의 일이다. 이 해독법이 가진 순기계적 번역의 성격을 조금 완화·수정하는, 말하자면 개정 해독법이라란 재미있는 것이 있다. 달디스(Daldis)의 아르테미도로스(Artemidoros)[21]의
꿈 판독의 저서에 있는 것이 그것이다. 이 방법에서는 꿈 내용뿐 아니라 꿈을 보는 그 사람이나 그 사람의
생활 정신을 고려한다. 그래서 꿈에서 본 것이 같은 것이라도, 그것이
부자·기혼자·웅변가에 대하여 가지는 뜻과, 가난한 사람·미혼자, 그리고
상인에 대해 가지는 뜻 사이에 차이가 있다. 이 방법의 가장 중요한 것은 해석이 꿈의 전체 위에 향해지는
것이 아니라, 마치 꿈이란 그 속에서 어떤 돌멩이도 하나의 특별한 뜻을 바라는 역석(躒石)인 것과 같이 꿈 내용의 하나하나가 해석된다는 데에
있다. 그것은 확실히 지리멸렬하고 혼란한 꿈들이고, 이런
꿈들에서 해독법을 창조하려는 노력이 시작되었다.[22]
내가 나의 논문에 붙인 題目은 꿈의 理解에
있어서의 어떠한 전통에 내가 속하고자 하는가를 自明하게 한다. 내가 설정한 목적은 꿈이 해석될 수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며, 앞서 다룬 바 있는 꿈의 문제들의 해결에 공헌하는 바가 있다면 이는 나의 과제의 수행과정에서
생기는 부산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꿈이 해석될 수 있다는 전제는 나로 하여금
곧 지배적인 꿈에 관한 이론, 심지어 Scherner의 이론을 제외한 모든 꿈에 관한 이론들과는
반대되는 입장에 놓이게 하는데, 그 이유는 ‘꿈을 해석한다’는 것은 꿈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며 우리의 정신적인 활동의 연쇄 속에 중요하고 等價的인 부분으로 접합하는 그 무엇으로 꿈을 대체한다는 것을 뜻하는 까닭이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듯이 꿈에 관한 학문적인 이론들은 꿈의 해석에 관한 문제를 수용할 여지가 없는데, 왜냐하면 꿈이란 그들에게는 전혀 정신적 행위가 아니고, 신호를 통하여
정신적 장치에 통지를 해주는 신체적 과정이기 때문이다.
門外漢들의 의견은 언제나 이와는 달랐다. 일반의 이러한 의견은 일관성이 없게 행동하는 권리를
행사하여 왔으며, 꿈의 이해할 수 없고 불합리함을 인정하면서도 꿈에 아무러한 의미가 없다고 단언하지는
않았다.
희미한 豫感에 이끌려 이 의견은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모든 꿈은 감추어져 있기는 하나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또한 사고의 또 다른 과정을 대체하고
있는 것으로서 꿈의 감추어진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이 대체물을 올바르게 밝혀야 하는 것으로 보는 것 같다.
이리하여 문외한의 세계는 예전부터 꿈을
‘해석’하려 했으며, 이때
본질적으로 다른 두 가지 방법들을 사용했다.
이러한 방법 중의 하나는 꿈의 내용을 전체로
보고 이것을 다른 이해될 수 있고 또한 어떤 측면에서는 유사한 내용으로 대체하려 한다. 이것이 상징적인
꿈의 해석인데, 물론 이 과정은 이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혼란스럽게 보이는 꿈에서는 실패한다. 성경의 Josef가 Pharao의 꿈에 가한 해석이 이 과정의 한
예가 될 수 있다. 일곱 마리의 살찐 암소들을 따라 나타나서 이 일곱 마리를 잡아먹는 일곱 마리의 여윈
암소들, 이것은 7년간의 풍년이 가져온 것을 모두 소모하게
할 7년간의 흉년이 이집트에 올 것이라는 예언을 위한 상징적 대체이다.
상상적인 작가들이 만든 인위적인 꿈들의 대부분은 이러한 종류의 상징적인 해석을 위한 것들인데, 이들은
경험을 통하여 우리가 아는 우리들의 꿈의 특징들에 맞는 변장을 하여 저자가 지닌 생각을 재현한다.[23]
꿈이 주로 미래와 관련되며 미래의 모습을 꿈이 미리 안다는 의견 – 한때 꿈에 부여되었던
예언적 의미의 잔재인 – 이 꿈의 상징적 해석을 통하여 얻어지는 의미를 미래에 ‘될 것이다’로 바꾸는 동기가 된다.
이와 같은 상징적 해석에 도달하는 길에는 물론 指針이 있을 수 없다. 여기서의 성공이란
재치 있는 묘안, 직접적인 직감 등의 문제인 까닭에 상징성을 사용하는 꿈의 해석은 특별한 재능과 관계가
있어 보이는 예술적 활동으로까지 앙양될 수 있다.[24]
꿈을 해석하는 과정들 중의 다른 하나는 이와는 매우 거리가 멀다. 우리는 이를 ‘暗號法’이라 할 수 있겠는데, 그
이유는 이 과정이 꿈을 모든 징표가 확실한 열쇠를 따라 알려진 의미의 다른 징표로 번역되는 일종의 비밀 문자와도 같이 취급하는 까닭이다. 예로 내가 한 장의 편지와 장례식의 꿈과 같은 것들을 꾸었다고 하자. ‘해몽책’을 뒤지면 ‘편지’는 ‘골칫거리’로 그리고 ‘장례식’은 ‘약혼식’으로 번역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다음에 내가 할 것은 해독한 단어들을 연결하고, 다시금 미래와 결부시키는 일이다. 특징들의 기계적인 번역이 어느
정도 수정되는 암호방법의 흥미 있는 변형을 Daldis의 Artemidoros가
쓴 꿈의 해석에 관한 글이 보여주고 있다.[25]
이 방법은 꿈의 내용만을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꿈꾸는 사람 개인과 생활 환경도 고려하며, 이에
따라 부자, 기혼자, 웅변가 등의 같은 꿈의 요소가 빈곤한
사람, 독신자, 사업가에게는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이 방법의 본질은 해석의 작업이 꿈을 전체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평가를 하여야 하는, 여러 가지 돌들이 뭉친 암석과도 같이, 꿈의
내용의 모든 부분을 개별적으로 해석하는 데 있다. 연관성이 없고 혼란된 꿈들의 존재가 이 암호법을 자아내게
하였으리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26]
이 논문에 붙인 제목을 보면 내가 꿈을
이해함에 있어 어떤 전통을 따르려 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27]
나는 꿈이 해석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앞에서 다룬, 꿈과 관련된 문제들의 해명에 내가 기여하는 바가 있다면 그것은 나의 본래의 과업을 해결하면서 얻은 뜻밖의 부수입에
불과할 것이다. 꿈이 해석될 수 있다는 가정 때문에 나는 지배적인 꿈이론과 아니 쉐르너Scherner[28]의
이론을 제외한 모든 꿈이론과 곧장 충돌하게 된다. 왜냐하면 “꿈을 해석한다”는 것은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 즉 그것을 우리의 정신적 활동의 연쇄에서 하나의 동등하고 등가인 고리 역할을 하는 어떤
것으로 대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게 되었듯이 과학적 꿈이론들에서는 꿈해석의 문제 자체가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런 이론들에서는 꿈이 전혀 정신적 활동이 아니면 정신적 장치Apparat(apparatus)에서의 징후를 통해 자신을 알리는 신체적 과정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시대에 걸쳐 문외한들의 의견은 이와 달랐다. 그들은
일관성 없게 처신할 수 있는 그들의 당연한 권리를 누렸다. 그들은 꿈이 이해할 수 없는 부조리한 것이라고
인정하면서도 꿈에 어떤 의미도 없다고 선언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어렴풋한 느낌에 이끌려
꿈에는 숨겨져 있긴 하지만 의미가 있으며 꿈은 다른 사고 과정의 대체이며 꿈의 숨겨진 의미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이 대체를 제대로 드러내기만 하면
된다고 추측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문외한들은 옛날부터 꿈을 “해석”하려
애썼으며 그 과정에서 근본적으로 다른 두 가지 방법을 시도했었다. 이 중 첫 번째 방식에서는 꿈내용을
전체로서 보며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그리고 어떤 점에서는 [꿈내용과] 비슷한 다른 내용으로 대체하려 한다. 이것은 상징적인 꿈해석인데 이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뒤죽박죽인 꿈의 경우에는
물론 처음부터 실패하게 된다. 이 방식의 예는 성서의 요셉이 파라오의 꿈에 대해 제시한 설명에서 볼
수 있다. 일곱 마리의 살찐 암소들에 뒤이어 일곱 마리의 야윈 암소들이 등장하여 전자를 먹어치우는데
이것은 이집트 땅에서 7년의 기근이 7년의 풍년 동안에 생긴
잉여를 모두 먹어치운다는 예언의 상징적 대체인 것이다. 작가가 만들어낸 인위적 꿈 중 대다수는 이런
상징적 해석으로 풀리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그런 꿈은 작가가 품고 있는 생각을 우리가 경험으로 알고
있는 꿈의 특성과 부합하는 위장 속에서 재현하기 때문이다.[29]
꿈이 주로 미래와 관련되어 있으며 미래의 일을 미리 예견한다는 의견 - 이것은 옛날에 꿈에
예언적 의미가 있음을 인정했던 것의 잔재다 - 은 상징적 해석으로 발견한 꿈의 의미를 “~할 것이다es wird”를 이용해 미래 시제로 바꾸어 놓으려는 동기가
된다.
그런 상징적 해석에 이르는 길을 어떻게
찾을 것인지와 관련된 지침은 물론 있을 수 없다. 성공은 재치 있는 착상Einfall 또는 갑작스러운 직관의 문제가 된다. 따라서 상징성Symbolik(symbolism)을 이용한 꿈해석은 특별한 재능과 결부된 것으로 보이는 기예로 높여질 수 있었다.[30]
다른 통속적인 꿈해석의 방법은 [특별한 재능에 대한] 그런
요구와는 아주 거리가 멀다. 우리는 그것을 “암호해독법”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꿈을, 정해진 암호해독 열쇠에 따라 각각의 기호를 의미
있는 다른 기호로 번역할 수 있는 일종의 암호문처럼 다루기 때문이다. 예컨대 내가 편지, 장례식 등에 대한 꿈을 꾸었다 치자. 나는 이제 “해몽서”를 뒤져서
“편지”가 “불쾌한 일”로 “장례식”이 “약혼”으로 번역됨을 발견한다. 이제 해독으로 얻은 표제어들을
엮어서 하나의 맥락을 만들어낸 다음 미래형으로 바꾸는 것은 나의 몫이다. 순전히 기계적으로 번역하는
특성을 어느 정도 바로잡은, 이 암호해독 방식에 대한 흥미로운 개량을 달디스Daldis의 아르테미도로스Artemidoros[31]의
꿈해석에 대한 저작[32]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기에서는 꿈내용뿐 아니라 꿈꾼 사람의 인품과 생활 형편도 고려한다. 따라서 같은 꿈요소라 하더라도 부자, 기혼자, 연설가인지 아니면 가난한 자, 독신자, 상인인지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하여튼 이 방식의 본질은 해석
작업이 꿈 전체가 아니라 (마치 꿈이 역암礫岩Konglomerat(geological
conglomerate)[33]
- 역암의 각 암편岩片은 따로따로 조사해야 한다 - 이라도 되는 듯이) 꿈내용의 각 조각 자체를 겨냥한다는 점이다. 연관성이 없고 뒤죽박죽인
꿈이 암호해독법의 창조에 동인을 제공했음에 분명하다.[34]
원문이 프랑스어(트핑크지트Tfinkdjit로부터 인용한 내용)로 된 부분은 검토하지 않았다.
특별한 언급이 없는 부분은 번역에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 부분이다. 하지만 비교를 위해 모두 적어놓았다.
상당히 문제가 있는 번역일 경우 옮긴이
옆에 * 표를 붙였다.
GW - 『Die Traumdeutung, Gesammelte Werke, 2/3권』, Sigmund
Freud, Fischer 출판사.
SE -『The
Interpretation of Dreams, The Standard Edition of the Complete Psychological
Works of Sigmund Freud, 4권』, James Strachey 편집.
GW
100쪽 : Die Überschrift, die ich meiner Abhandlung gegeben habe, läßt
erkennen, an welche Tradition in der Auffassung der Träume ich anknüpfen möchte.
SE
96쪽 : The title that I have chosen for my work makes plain which of the
traditional approaches to the problem of dreams I am inclined to follow.
a.
b.
c. 결론적으로 이 문장을 제대로 번역한 것은
GW
100쪽 : Ich habe mir vorgesetzt zu zeigen, daß Träume einer Deutung fähig
sind, und Beiträge zur Klärung der eben behandelten Traumprobleme werden sich
mir nur als etwaiger Nebengewinn bei der Erledigung meiner eigentlichen Aufgabe
ergeben können.
SE
96쪽 : The aim which I have set before myself is to show that dreams are
capable of being interpreted; and any contributions I may be able to make
towards the solution of the problems dealt with in the last chapter will only
arise as by-products in the course of carrying out my proper task.
a.
b.
GW 100쪽 : Sie bedient sich ihres guten
Rechts, inkonsequent zu verfahren, und obwohl sie zugesteht, der Traum sei
unverständlich und absurd, kann sie sich doch nicht entschließen, dem Traume
jede Bedeutung abzusprechen.
SE 95쪽 : It has exercised its indefeasible
right to behave inconsistently; and, though admitting that dreams are
unintelligible and absurd, it cannot bring itself to declare that they have no
significance at all.
a.
‘inkonsequent zu verfahren(to behave inconsistently,
일관성 없게 처신할)’을 ‘사물을 학문처럼 엄격하게 취급하지 않을’로 번역한 것을 엄청난 오역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GW 101쪽 : Dies ist die symbolische Traumdeutung; sie scheitert natürlich von vornherein an
jenen Träumen, welche nicht bloß unverständlich, sondern auch verworren
erscheinen.
SE 97쪽 : This is ‘symbolic’ dream-interpreting; and it inevitably breaks down when
faced by dreams which are not merely unintelligible but also confused.
a.
a.
GW 101쪽 : In einer Novelle “Gradiva” des Dichters
W. Jensen entdeckte ich zufällig mehrere artifizielle Träume, die vollkommen korrekt gebildet
waren und sich
deuten ließen, als wären sie nicht erfunden, sondern von realen
Personen geträumt worden.
SE 97쪽 : I found by chance in Gradiva, a story written by Wilhelm
Jensen, a number of artificial dreams which were perfectly correctly
constructed and could be interpreted just as though they had not been invented
but had been dreamt by real people.
a.
b.
‘sich deuten ließen(could be interpreted)’을 ‘해석될 수 있었다’를 뜻한다. ‘해석’이 중요한 개념이기 때문에 제대로 번역해 주어야 하는데
GW 101쪽 : Der Dichter bestätigte auf Anfrage von meiner Seite,
daß ihm meine
Traumlehre fremd geblieben war.
SE 97쪽 : In reply to an enquiry, the
author confirmed the fact that he had no knowledge of my theory of dreams.
a.
a.
b.
a.
원문에 있는 논문 제목을
b.
a.
GW 102쪽 : Es bliebt mir dann überlassen,
aus den Schlagworten, die ich entziffert habe, einen Zusammenhang herzustellen
den ich wiederum als zukünftig hinhehme.
SE 98쪽 : It then remains for me to link
together the keywords which I have deciphered in this way and, once more, to
transpose the result into the future tense.
a.
b.
GW 102쪽 : Eine interessante Abänderung
dieses Chiffrierverfahrens, durch welche dessen Charakter als rein mechanische Übertragung
einigermaßen korrigiert wird, zeigt sich in der Schrift über Traumdeutung des Artemidoros aus Daldis.
SE 98쪽 : An interesting modification of
the process of decoding, which to some extent corrects the purly mechanical
character of its method of transposing, is to be found in the book written upon
the interpretation of dreams [Oneirocritica]
by Artemidorus of Daldis.
a.
GW 102쪽 : Artemidoros aus Daldis,
wahrscheinlich zu Anfang des zweiten Jahrhunderts unserer Zeitrechnung geboren,
hat uns die vollständigste und sorgfältigste Bearbeitung der Traumdeutung in der griechisch-römischen Welt überliefert.
SE 98쪽 : Artemidorus of Daldis, who
was probably born at the beginning of the second century A.D., has left us the
most complete and painstaking study of dream-interpretation as practised in the
Graeco-Roman world.
a.
b.
a.
b.
GW 102쪽 : Ein Traumding bedeutet
das, woran es erinnert. Wohlverstanden, woran es den Traumdeter erinnert!
SE 98쪽 : A thing in a dream means
what it recalls to the mind – to the dream-interpreter’s mind, it need hardly be said.
a.
b.
c.
a.
a.
GW 103쪽 : Das Wesentliche an diesem
Verfahren ist nun, daß die Deutungsarbeit nicht auf das Ganze des Traumes
gerichtet wird, sondern auf jedes Stück des Trauminhalts für sich, als ob der
Traum ein Konglomerat wäre, in dem jeder Brocken Gestein eine besondere
Bestimmung verlangt.
SE 99쪽 : The essence of the decoding
procedure, however, lies in the fact that the work of interpretation is not
brought to bear on the dream as a whole but on each portion of the dream’s
content indepentdently, as though the dream were a geological conglomerate in
which each fragment of rock required a separate assessment.
a.
GW 103쪽 : Dr. Alfred Robitsek macht mich darauf aufmerksam, daß die orientalischen
Traumbücher, von denen die unsrigen klägliche Abklatsche sind, die Deutung der
Traumelemente meist nach dem Gliechklang und der Ähnlichkeit der Worte
vornehmen.
SE 99쪽 : Dr. Alfred Robitsek has pointed
out to me that the oriental ‘dream-books’ (of which ours are wretched
imitations) base the greater number of their interpretations of dream-elements
upon similarity of sounds and resemblance between words.
a.
b.
GW 103쪽 : Da diese Verwandtschaften
bei der Übersetzung in unsere Sprache verloren gehen müssen, würde daher die Unbegreiflichkeit der
Ersetzungen in unseren populären “Traumbüchern” stammen.
SE 99쪽 : The fact that these
connections inevitably disappear in translation accounts for the
unintelligibility of the renderings in our own popular dream-books.
a.
어떤 번역본도 ‘Ersetzungen(대체)’를 제대로 번역하지 못했다.
b.
a.
b.
a.
<<그리스어 알파벳을 제대로 표기하지 못했다.>>
a.
각 번역자의 옆에 붙은 * 표(문제가 있는 번역을 가리킨다)를
세어 보았다.
James Strachey가 편집한 Standard Edition에서는 심각한 오역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을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 여러가지로 비판을 받고 있긴 하지만 역시 신뢰할 만한 번역본임을 보여주었다.
그나마
[1] W. 옌젠의 《그라디바에 있어서의 망상과 꿈》과, 내가 편찬한
《응용 심리학 연구 총서》 제1권, 전집 제7권 참조 – 옌젠의 소설 《그라디바에 있어서의 망상과 꿈》 속에서
나는 인공적인 몇 개의 꿈을 발견했다. 그것은 마치 상상이 아닌 실제의 꿈처럼 리얼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내가 옌젠에게 그런 뜻을 물었더니 그는 나의 꿈 이론을 전혀 모른다고 확인해 주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연구와 이 시인의 창작과의 사이에 맺어진 우연의 일치를 나의 꿈 해석이 옳다는 증거로 보고자
하는 것이다.
[2]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최고의 꿈 해석가는 유사성을 정확히 파악하는 사람이다. 왜냐 하면 꿈의 영상은 물에 비친 물건의 모습처럼 움직임에 따라 변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변해 보이는 모습 가운데서 진짜를 가려낼 수 있는 사람이 꿈을 가장 잘 해석하는 사람이다.”
[3] 《그리스 신화와 종교사》, p. 392
[4] 2세기 초엽의 사람으로 추정됨. 그리스·로마 시대에 가장 완전하고도 자세한 꿈 해석을 후세에 전한 사람. [각주의 위치도 잘못 되었을 뿐 아니라 여러 문장을 빼먹었다 –
[5] 알프레트 로비제크 박사는 동양의 꿈 해석 책이 꿈 요소의 해석을 대개 언어의 음의 동일성이나 유사성에 따라 해석하고 있다는 것을 내게 지적해 주었다. 그러나 이런 관련성을 유럽 언어로 번역하면 본래의 뜻이 사라지기 때문에 일종의 번역인 유럽의 통속적인 ‘꿈 해석 책’에 대한 불가해성이 생겼을 것이다. 고대 동양 문화권의 언어의 유사음이나 재담이 갖은 커다란 의미에 관해서는 휴고 빙크러의 저서에 자세히 논의되어 있다.
예로부터 전해 오는 꿈점의 가장 대표적인 예는 언어의 익살에서 기인한다. 알테미도로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나 아리스탄드로스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르에게 준 꿈점은 매우 훌륭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알섹산드르가 튀로스를 포위하고 있을 때 아무래도 해결이 나지 않아 불쾌해서 몹시 우울해하고 있었다. 그때 그는 자기의 방패 위에서 사튀로스 신이 춤을 추는 꿈을 꾸었다. 때마침 아리스탄드로스는 시리아 원정에 나선 왕을 수행하여 튀로스 부근에 있었다. 그런데 아리스탄드로스는 사튀로스라는 말을 ‘사’와 ‘튀로스’로 분해하여 왕으로 하여금 포위 공격을 한층 더 강화토록 하였다. 그리하여 알섹산드르 왕은 드디어 이 도시를 함락시켰다(사튀로스의 튀로스는 ‘너의’라는 뜻).
어쨌든 꿈이란 언어 표현에 아주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으므로,
어느 나라 언어에도 고유한 꿈이 언어가 있다고 한 페렌치의 말은 옳다. 일반적으로 꿈은
다른 나라의 언어로 번역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이 책도 역시 번역하기가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는데, 뉴욕의
A. A. 브릴 박사를 필두로 다른 나라 사람들이 이 《꿈의 해석》의 번역에 성공하고 있다.
[6] W. 옌젠의 소설《그라디바》 속에서 나는 우연히 몇 가지 인공적 꿈을 발견하였다. 이것은 마치 픽션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이 꾼 꿈같이 아주 잘 묘사되어 있어서 정말 꿈처럼 생각된다. 내가 물었더니 옌젠은 나의 꿈 이론을 전혀 모른다고 확인해 주었다. 그래서
나로서는 나의 연구와 이 시인의 창작과의 사이의 이 우연의 일치를 나의 꿈 해석이 옳다는 증거로 보고자 하는 것이다(W. 옌젠의 《「그라디바」에 있어서의 망상과 꿈》, 내가 편찬한 《응용심리학
연구논총》 제 1권, 《전집》 제 7권에 실림).
[7]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최고의 꿈 해석가는 유사점을 잘 파악하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꿈의 영상은 물에 비친 물건의 모습처럼 움직임에 따라서 일그러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그러진 모습 중에서 참된 것을 가려낼 수 있는 사람이 바로 꿈을 가장 잘 맞힌다.
[8] 아마 2세기 초엽에 태어났으리라고 믿어지는 달디스의 아르테미도로스는
그리스·로마의 세계에서 가장 완전하고도 자세히 꿈 해석의 모습을
후세에 전한 사람이다. Th. 곰펠츠가 지적했듯이 아르테미도로스는 꿈 점에서
관찰과 경험에 의거할 것을 중요시하고, 자신의 꿈 해석법을 다른 수상쩍은 것과 엄격히 구별하였다. 그의 꿈 해석법의 원리는 곰펠츠에 의하면 마술과 같은 연상의 원리이다. 꿈에
나오는 것은 사람에게 어떤 일을 시키는 것을 뜻하고 있다. 오해를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꿈을 해석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상기하게 만드는 어떤 것이다! 그러나
그 꿈의 요소는 해석자에게 여러 가지 잡다한 것을 상기시킬 뿐더러, 또 사람에 따라 상기하는 것도 다르기
때문에 거기에는 어쩔 수 없는 자의(恣意)와 불확실성이 생긴다. 내가 다음에 설명하는 방법이 고대의 방법과 결정적으로 틀리는 것은 다음의 점에서이다. 즉 나의 방법은 해석 작업을 꿈꾼 사람 자신에게 시키는 점이다. 나의
방법은 꿈 해석자가 꿈의 요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고려하지 않고, 꿈꾼 사람이 스스로 그 요소에 대해
생각할 것을 중요시하려는 것이다. – 선교사 트프잉그드지트의 최근의 보고에 의하면(《안트로포스》, 1913년), 동양의 현대 몽점사(夢占師)도 역시 꿈꾼 본인의 협력을 중요시하고 있다는 것이며, 이 증인은
메소포타미아의 아랍 사람들 간의 몽점사에 관해 이렇게 보고하고 있다. 『능숙한 몽점사는 꿈을 바르게
판단하고 해석하기 위해 훌륭한 해석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사항은 모두 상대편으로부터 듣는다……. 요컨대
몽점사들은 모든 사정을 상대방에서 찾고, 듣고 싶은 것을 죄다 들은 뒤가 아니고는 요구된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이런 질문 속에는 가족(부모·아내·아이들)에 관한
자세한 자료나 『어제밤 자기 전이나 오늘 아침에 동침하였느가?』라는 전형적인 질문의 공식이 반드시 있다. - 『꿈 점에 있어서의 주요한 관념은 꿈을 그 반대물에 의해서 해명하는 일이다.』
[9] 알프레드 로비제크 박사는 우리들의 빈약한 모방에 지나지 않는 동양의 꿈해석 책이 꿈 요소의 해석을 대체로 말의
음의 동일성이나 유사성에 따라 해석하고 있다는 것을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그러나 이런 친근성을 유럽
말로 번역하면 부득이 그 뜻이 사라지게 되므로 일종의 번역인 유럽의 통속적인 <꿈 해석 책>의 불가해성이 생겼을 것이다. – 고대 동양 문화권의 말의 비슷한 음이나 재담이 갖는 큰 뜻에 관해서는 휴고 빙크러의 저서에 의해 알아보면 될
것이다. 예부터 전해오는 꿈 점의 가장 훌륭한 예는 말의 익살에 기인한다. 아르테미도로스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255면). 『그러나 아리스탄드로스가 마케도니아의
알섹산드로스에게 준 꿈 점은 참으로 훌륭한 것이었다고 나에게는 생각된다. 즉 알렉산드로스가 튀로스를
포위하고 있을 때, 아무리 기다려도 해결이 나지 않아 불쾌해서 몹시 우울해하고 있을 때 자기의 방패
위에서 사튀로스 신이 춤을 추는 꿈을 꾸었다. 때마침 아리스탄드로스는 시리아 원정에 나선 왕을 수행하여
튀로스 부근에 있었다. 그런데 아리스탄드로스는 사튀로스라는 말을
<사>와 <튀로스>로 분해함으로써 왕으로 하여금 포위 공격을 한층 더 강화시키는 데에 성공하여 드디어는 이 도시를 함락시켰다』(사튀로스는 <튀로스는 너의 것>이라는
뜻) – 어쨌든 꿈이란 언어 표현에 아주 밀접하게 결부되고 있으므로 페렌지가 어느 나라 말에도 고유한
꿈의 말이 있다고 한 것은 옳다. 꿈은 일반적으로 다른 나라 말로 번역하기 어려우므로 이 책도 역시
번역하기 어려우리라고 생각했는데, 뉴욕의 A. A. 브릴 박사가 처음으로, 그리고 그에 이어서 다른 나라 사람들이 이 《꿈의 해석》의 번역에 성공하고 있다.
[10] (1909년에 첨가한 각주) 나는 빌헬름 옌젠Wilhelm Jensen의 중편 소설 『그라디바Gradiva』에서 우연히 몇 개의 인위적인 꿈을 발견했다. 이
꿈들은 나무랄 데 없이 완벽하게 구성되어 있으며,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실제 살아 있는
사람이 꾼 것처럼 해석할 수 있었다. 내가 문의하자, 시인은
내 꿈-이론을 읽어 보지 못했다고 확인해 주었다. 나는 내
연구와 이 작가의 창작 사이의 이러한 일치를 내 꿈 분석이 옳다는 증명으로 평가했다(「빌헬름 옌젠의
『그라디바』에 나타난 망상과 꿈」[프로이트 전집 14, 열린책들], 프로이트 편 『응용 심리학 논총Schriften zur angewandten Seelenkunde』 제1권[1907]) – 원주.
[11] (1914년에 추가한 각주)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가 최고의 꿈 해석가는
유사점들을 가장 적절히 파악하는 사람이라고 말한 바 있다. 꿈-형상들은
물에 비친 영상들처럼 움직임에 따라 일그러져 있으며, 일그러진 형상에서 진실한 것을 인식할 수 있는
사람이 가장 잘 파악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뷕센쉬츠B. Büchsenschütz, 『고대의
꿈과 꿈-해석Traum und Traumdeutung im Altertum』,
1868) – 원주. 아리스토텔레스의 『꿈의 예언』 참조.
[12] 아르테미도로스의 『해몽서』 참조
[13] (1914년에 첨가한 각주) 우리의 시간 계산법에 따라 2세기 초 출생했다고 추정되는 달디스의 아르테미도로스가 그리스·로마 세계에서 가장 완벽하고 주도면밀한 꿈-해석을 후세에 남겨 주었다. 테오도르 곰페르츠Theodor
Gomperz가 『꿈-해석과
마법Traumdeutung und
Zauberei』(1866)에서 강조했듯이, 그는
직접 관찰하고 경험한 사실을 토대로 꿈을 해석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으며, 자신의 방법을 다른 속임수와
엄격하게 구분지었다. 곰페르츠의 글에 따르면 그의 해석술 원칙은 마술과 일치하는 연상 원칙이었다. 꿈속의 사물은 그것이 상기시키는 것, 좀더 자세히 말하면 해몽가에게
상기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자의성과 불확실성이 따르는 이유는, 꿈-요소가 해몽가에게 여러 가지 사물을 상기시킬 뿐 아니라 또한
해몽가마다 다른 것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내가 다음에 설명할 분석 기술은 꿈꾼 사람에게 직접 해석
작업을 부과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고대의 기술과 차이를 보인다. 그것은 해당 꿈-요소와 관련해 꿈 해석가가 아니라 꿈꾼 사람에게 떠오르는 것을 고려한다. 선교사
트핑크디J. Tfinkdji(『메소포타미아의 꿈과 꿈의 해석(해몽) 기술에 대한 에세이』, 1913)가 최근 보고한 글에 따르면, 근세 동양의 꿈 해석가들도 꿈꾼 사람의 협력을 많이 요구한다고 한다. 그는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아랍 인들 사이에서 활동하는 해몽가들에 관해 증언한다. <꿈을 정확하게 해석하기
위해 능숙한 꿈 해몽가들은 올바른 해명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모든 상황을 자문을 구한 당사자로부터 알아낸다…….
간단히 말해 이 꿈 해몽가들은 단 한 가지도 놓치려 들지 않으며, 원하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다 듣기 전에는 해석을 해주지 않는다.> 이러한 질문 중에는 가까운 가족 성원(부모, 아내, 자녀)에 대한 자세한 문의 및 다음과 같은 상투적 질문이 빠지지 않는다. <어젯밤
꿈꾸기 전이나 꿈꾸고 나서 아내와 자자리를 같이 했습니까?> <꿈을 해석하는 중심적인 방법은
그 꿈을 반대로 설명하는 것이다> - 원주.
[14] (1909년에 추가한 각주) 나는 알프레트 로비체크(Alfred
Robitsek) 박사에게 힘입어 동양의 꿈 해몽서들이 대부분
낱말 음운의 일치나 유사함에 따라 꿈-요소들을 해석한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되었다. 사실 우리의 해몽서들은 그것들을 서투르게 베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언어로 번역하면 그러한 유사성이 소실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널리 읽히는 우리의 대중적 『해몽서』들에서 그렇게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
많는 것이다. (1911년에 추가한 각주) 고대 동양 문화의
말장난과 낱말 유희의 특별한 의미에 관해서는 후고 빙클러Hugo Winclker(유명한 고고학자)의 글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고대에서부터 전해 내려온 가장 아름다운
꿈-해석 사례는 낱말 유희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아르테미도로스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나는 아리스탄드로스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아주 훌륭한 해석을
해주었다고 생각한다. 알렉산드로스 대왕는 《티로스Tyros》를
포위하고서 쉽사리 함락이 되지 않아 불쾌하고 우울한 기분이었을 때, 자신의 방패 위에서 《사티로스Satyros》가 춤추는 꿈을 꾸었다. 아리스탄드로스는 우연히 티로스
근처에서 시리아 인을 공격하는 왕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는 사티로스라는 말을 사sa와 티로스tyros로 분석함으로써,
왕이 포위를 더 힘차게 몰아부쳐 그 도시의 주인이 되도록 했다>(그리스 어에서 사
티로스sa tyros는 <티로스가 너의 것이다>라는 의미이다). 그 밖에도 꿈은 언어 표현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 따라서 모든 언어는 자신만의 고유한 꿈 언어를 가진다는 페렌치의 말은 백번 옳다. 일반적으로 꿈은 다른 언어로 번역할 수 없으며, 그 때문에 나는
이 책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1930년에 추가한 각주) 그런데도
뉴욕의 브릴A. A. Brill 박사가 최초로 시도한 이후 그의 뒤를 이은 다른 사람들도 『꿈의 해석』
번역에 성공하고 있다 – 원주. 페렌치의 『꿈의 정신분석Die Psychoanalyse der Träume』(1910) 참조.
[15] W. 옌젠의 소설 《그라디바》 속에서 나는 우연히 몇 가지 인공적인 꿈을 발견했다. 그것은 마치 허구가 아니라 실제로 사람이 꾼 꿈같이 아주 잘 묘사되어 있어서 정말 꿈처럼 생각된다. 내가 직접 그를 방문하여 물어보았더니, 옌젠은 나의 꿈 이론을 전혀
모른다고 했다. 그래서 나로서는 나의 연구와 이 시인의 창작 사이의 이 우연의 일치를, 나의 꿈 해석이 옳다는 증거로 삼고자 하는 것이다(W. 옌젠의 《그라디바에
있어서의 망상과 꿈》, 내가 편집한 《응용심리학 연구 논총》 제1권, 1907년, 1924년 제3판, 《전집》 제7권에 실림).
[16]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말했다. “최고의 꿈 해석가는 유사점을 확실히 파악하는 사람이다. 꿈의 영상은 물에 비친 물건의 모습과 같이 움직임에 따라 일그러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그러진 모습 중에서 참된 것을 가려낼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꿈을 가장 잘 알아맞춘다.”
[17] 아마 2세기 초엽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달디스의 아르테미도로스는 그리스·로마 세계에서 가장 완전하고도 꼼꼼하게 꿈 해석의 양상을 후세에 전한 사람이다. 그는 꿈 점(占)을 관찰과 경험에 근거를 둠을 중요시하고 자신의 꿈 해석법을 다른 것과 엄격히 구별했다. 그의 꿈 해석법의 원리는 곰펠츠에 의하면 마술과 같은 연상의 원리다. 꿈은 사람에게 어떤 것을 상기시킨다. 오해를 해서는 곤란하다. 그것은 꿈을 해석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상기하게 만드는 어떤 것이다. 그런데 그 꿈의 요소는 해석자에게 여러 가지 잡다한 것을 상기시킬 뿐더러, 또 사람에 따라서는 상기하는 것도 다르기 때문에 거기에는 어쩔 수 없는 자의(恣意)와 불확실성이 생긴다. 내가 다음에 설명하는 방법이 고대의 방법과 다른 것은 다음의 점에서다. 즉 나의 방법은 해석 작업을 꿈을 꾼 사람 자신에게 시키는 것이다. 나의 방법은 꿈 해석자가 꿈의 요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고려하지 않고, 꿈을 꾼 사람이 스스로 그 요소에 대해서 생각할 것을 중요시하는 것이다 – 선교사 트프잉그드지트의 보고에 의하면(《안트로포스》, 1913년), 동양의 현대 해몽가들도 역시 꿈을 꾼 사람의 협력을 중요시하고 있다는 것이며, 그 증인은 메소포타미아의 아라비아인들간의 해몽가에 관해 이렇게 보고하고 있다. “능숙한 해몽가는 꿈을 올바르게 판단하고 해석하기 위해서 훌륭한 설명을 하는 데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사항은 모두 상대방의 입을 통해서 듣는다…… 요컨대 이들 해몽가들은 모든 사정을 상대방에서 찾아내고, 듣고 싶어하는 것을 모두 듣고 나서야 비로소 판단을 내린다.” 그러한 질문 속에는 가족(부모, 아내, 아이들)에 대한 자세한 데이터나 “어젯밤 자기 전에나 오늘 아침에 동침했는가” 하는 전형적인 질문의 공식이 반드시 있다 – “꿈 점에 있어서 중요한 개념은 꿈을 그 반대물에 의해서 해명하는 일이다.”
[18] 알프레드 로비젝크 박사는 우리의 빈약한 모방에 지나지 않는 동양의 해몽책이 꿈 요소의 해석을 대체로 음의 동일성이나
유사성에 따라서 해석하고 있다는 것을 나에게 가르쳐주었다. 그러나 이런 친근성을 유럽어로 번역하면 그
뜻이 사라져버리기 때문에 일종의 번역인 유럽의 통속적인 ‘해몽책’의 불가해성이 생겼을 것이다 – 고대 동양 문화권의 말의 비슷한 음이나 재담이 갖는 큰 뜻에 대해서는 휴고 빙크러의 저서에 자세히 논의되어 있다. 고대로부터 전해 오는 꿈점의 가장 대표적인 예는 말의 익살에 근거하는 것이다.
아르테미도로스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255쪽). “그러나
아리스탄드로스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에게 준 꿈점은 매우 훌륭한 것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즉 알렉산드로스가
튀로스를 포위하고 있을 때 아무리 기다려도 해결이 나지 않아 불쾌해서 몹시 우울해 하고 있을 때, 자신의
방패 위에서 사튀로스 신이 춤을 추는 꿈을 꾸었다. 때마침 아리스탄드로스는 시리아 원정에 나선 왕을
수행하여 튀로스 부근에 있었다. 그런데 아리스탄드로스는 사튀로스라는 말을 ‘사’와
‘튀로스’로 분해함으로써 왕으로 하여금 포위 공격을 한층 더 강화시키는 데 성공하고 마침내
이 도시를 함락시켰다(사튀로스는 ‘튀로스는 너의 것’이란 뜻)” – 어쨌든 꿈이란 언어 표현에 아주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으므로, 페렌치가
어느 나라 말에도 고유한 꿈의 말이 있다고 말한 것은 옳다. 꿈은 일반적으로 다른 국어로 번역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이 책도 역시 번역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뉴욕의 A. A. 브릴 박사가 최초로, 그리고 그 뒤를 이어서 다른 나라 사람들이 이 《꿈의 해석》의 번역에 성공하고 있다.
[19] 시인 W. 옌젠의 소설 <그라디바> 속에서 나는 우연히 많은 허구의 꿈을 발견하였다. 이것들은
마치 참된 꿈과 같이 묘사되고 참된 꿈과 같이 해석된다. 시인이 고안한 것이 아니라 실제의 사람이 꾼
꿈과 같이 그려져 있다. 이 시인은 처음부터 나의 꿈에 관한 이론을 전혀 모른다고 밝혔다. 나는 나의 연구와 시인의 창작과의 우연한 일치를 나의 꿈 분석의 정당성에 대한 증거로 삼았다(W. 옌젠의 <그라비다>
속의 ‘망상과 꿈’, 나의 간행물 <응용 심리학 논고> 제 1권, 1906년, 제 2판 1912년).
[20]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말한다. 최고의 꿈 해석가는 비슷한 점을 가장
잘 파악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꿈에 나오는 여러 가지는 물에 비친 물건의 모습과 같이 움직임에 따라서
이그러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그러진 것 속에서 참된 것을 가리는 사람은 가장 올바르게 꿈을 해석할
수 있다(뷔크젠쉬츠, p. 65).
[21] 아마 2세기 초엽에 탄생했으리라고 믿어지는 달디스 출신 아르테미도로스는
그리스·로마의 세계에서 가장 완전하고도 자세히 꿈 해석의 모습을
후세에 전한 사람이다. Th. 곰페르츠가 강조하듯이 그는 관찰과 경험에 의거해서
꿈점(店)을 치는 것을 중요시하고 자기의 꿈 해석을 다른
사이비 해석들과 엄격히 구별하였다. 그의 꿈 해석 원리는 곰페르츠에 의하면 마술과 같은 연상원리(聯想原理)에 있다. 꿈에
나오는 것들은 기억한 것이다. 그것은 꿈 해석자에게 무엇을 생각나게 하는 것이다. 꿈에 나오는 것들은 해석자에게 여러 가지를 생각나게하고 사람에 따라 생각하는 것이 천차만별하기에 거기에 제멋대로의, 그리고 확실치 않은 것이 생긴다. 내가 아래에서 취하는 방법은 옛날의
방법과는 다음의 점에서 결정적으로 다르다. 즉 나의 방법은 꿈을 해석하는 사람이 어떤 꿈의 내용을 듣고
생각해 내는 것을 무시한다. 거꾸로 그 꿈을 꾼 사람이 스스로 꿈의 내용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을 중요시한다. 선교사 트핑크드지트(안트로포스,
1913)의 새로운 보고에 의하면 동양의 최근의 몽점사(夢占師)도 꿈을 꾼 본인에 크게 협력한다고 한다. 그는 메소포타미아의 아랍
사람들의 몽점사를 이렇게 보고한다. “훌륭한 몽점사는 꿈을 올바르게 판단하고 해석하기
위해서, 훌륭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모든 것을 상대편으로부터 듣는다. 요컨대 이 몽점사는 모든 사정을 상대방에서 찾고, 듣고 싶은 것을
모두 들은 뒤에 요구된 판단을 내린다.” 이런 질문 속에는 반드시 (부모·아내·아이들 등의) 가족에 관한 자세한 테마나 “어젯밤 자기 전에나 오늘 아침에 동침하였는가?”란 전형적인 질문이 있다 – “꿈점(占)에서의 주요한 관념은 꿈을 그 반대물에 의해서 해명하는 일이다.”
[22] 알프레드 로비체크 박사는 우리들의 빈약한 모방인 동양의 꿈책이 대체로 말의 음의 동일성이나 유사성에 따라서 해석하는
것을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그러나 이런 유사성은 유럽언어로 번역하면 그 뜻을 잃을 수밖에 없으므로, 유럽의 통속적인 꿈점의 번역책의 몰이해가 생겼는지 알 수 없다. – 고대 동양 문화권의 언어의 익살이나 희롱을 알려는 사람은 휴고 빙크러의 서적을 조사하면 좋을 것이다. 옛부터 전해 오는 꿈점의 훌륭한 한 실례는 언어의 익살에 기인한다. 아르테미도로스는
이렇게 쓰고 있다.(p. 255) “그러나 아리스탄드로스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에게 준 꿈점은 대단히 훌륭한 것으로 나에게는
생각된다. 즉 알렉산드로스가 튜로스를 포위하고 언제나 기분이 좋지 않아서 있을 때에 자기의 방패 위에
샤튜로스 신(神)이 춤추는 꿈을 꾸었다. 아리스탄드로스는 샤튜로스라는 말을 ‘샤’와 ‘튜로스’로 분해해서 왕을
움직여 포위 공격을 강화시키는 데에 성공하고 드디어는 이 도시를 함락시켰다”(샤튜로스는 ‘튜로스는 너의 것이다’의 뜻) – 여하튼 꿈이란 언어 표현에 대단히 밀접하게 결부되고
있으므로 페렌치가 “어느 나라의 말에도 그 고유한 꿈의 언어가 있다”고 한 것은 옳다. 꿈은 대체로 다른 나라의 말로 옮기기에 대단히 어렵다. 그러므로
이 책도 번역되지 않으리라고 나는 생각하였으나 처음으로 뉴욕의 A. A. 브릴 박사는 <꿈의 해석>을 영어로 번역(런던: 1913 조지 알렉 출판사)하는
데 성공하였고, 계속 홀로스 박사와 페렌치 박사, 정신 분석학자들은
헝가리어로 번역하였다.(1918년)
[23] 나는 우연히 Wilhelm Jensen이 쓴 Gradiva에서 고안된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 의하여 정말 꿈꾸어진 것같이 구성되고 또한 해석될 수
있는 인위적인 꿈들을 발견했다. 저자는 나의 물음에 나의 꿈에 관한 이론을 전혀 아는 바가 없다고 대답했다. 나는 나의 연구와 이 저자의 작품 사이의 일치가 나의 꿈의 분석의 올바름을 증명하는 것으로 본다.
[24] Aristoteles는 유사성을 가장 잘 파악하는 사람이 훌륭한 해몽가라 하였다. 왜냐하면 꿈의 모습은 철렁이는 물 속에 비친 모습과 같이 모습이 흐트러지는데,
이러한 모습에서 참된 모습을 찾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25] 아마 서기 2세기 초에 태어난 것으로 보이는 Daltis의 Artemidoros는 희랍-로마 시대에
관행되던 꿈의 해석에 관한 가장 완벽하고 자상한 연구를 남기고 있다. Theodore Gomperz가
지적했듯이, 그는 꿈의 해석을 관찰과 경험에 입각시키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자신의 해몽술과 허위적인
다른 해몽술들을 엄격히 구별했다. Gomperz에 의하면 그의 해몽술의 원칙은 마술, 즉 연상의 원칙과 동일하다. 꿈에서의 사물은 이것이 회상시키는 것을
뜻한다. 이것이 꿈을 해석하는 사람에게 무엇을 회상시키는가 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러나 꿈의 요소가 해석자에게 여러 가지를, 그리고 해석자에 따라
다른 것들을 회상하게 하는 상황에서 자의와 불확실성이라는 극복될 수 없는 어려움이 생긴다. 내가 다음에
설명하는 기법은 꿈꾼 사람 자신에게 해석을 맡긴다는 점에서 고대의 방법과는 본질적인 면에서 다르다. 이
기법은 해당되는 꿈의 요소에 관하여 해몽하는 사람의 마음이 아니라 꿈꾼 사람의 마음에 무엇이 떠오르는가를 고려한다. – 선교사인
Tfinkdjit(Anthropos 1913)의 최근의 보고에 의하면 동양의 근대적인 해몽자들도 꿈꾼
사람의 도움을 요구한다. Mesopotamia의 아랍인들의 해몽자에 관하여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꿈의 정확한 해석을 위하여 가장 기술이 뛰어난 꿈을 해석하는 점쟁이들은 조언을 구하는
사람들로부터 올바른 설명에 도달하는 데 필요한 모든 사정들을 찾아낸다. … 간단히 말해서, 이
꿈을 해석하는 점쟁이들은 하나도 놓치지 않고 필요한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완전히 얻은 다음에 해석을 한다. 이러한
질문들에는 관행적으로 꿈꾼 사람의 가까운 가족관계 – 부모, 부인, 자녀들 – 에 관한 질문과 꿈꾸기 전후에 부인과 성행위를 가졌느냐와 같은 물음이 포함된다. – 꿈의
해석에 있어서의 주된 생각은 꿈을 그 반대로 설명하는 것이다.
[26] Alfred
Robitsek 박사는 나에게 동양의 해몽책들이(우리의 것은 이것을 빈약하게 모방한 것들인데) 꿈의 요소의 해석을
대부분 단어들과 발음의 유사성에 근거하고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이 유사성은 우리의 언어로
번역될 때 사라져야 하는 까닭에 여기서 우리들의 통속적인 ‘해몽책’의 내용에서 동양에서 옮겨 놓은 것들의 난해성이 생긴다.
– 고대 동양문화의 言戲와 단어의 놀음에 관하여는 Hugo Winckler의 저작을 참고로 할 수 있다. 고대로부터 전달되어
온 꿈의 해석의 가장 좋은 예는 언어의 놀음에 근거한 것이다. Artemidoros는 말하기를(p. 255) : “나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가 Tyros(Τύρος)를 포위하고 이를 공략하고 있었으나 공략에 시간이
걸려 근심에 차 있을 때 Aristander가 훌륭한 해몽을 알렉산더에게 해준 것으로 생각한다. 알렉산더는 그의 방패 위에서 Satyr(Σα-Τύρος)가 춤추는 것을 꿈꾸었다. Aristander는 시리아에서 싸우고 있는 왕을 수행하여 이때
우연하게 Tyros의 인근에 있었다. Satyr라는 단어를
σα와 Τύρος로 나눔으로써 그는 왕이 포위를 강화하고 공격에 박차를 가하여 그 도시의 주인이 되도록 고무했다.”(Σα -
Τύρος = Tyros는 당신의 것이다.) – 사실, 꿈은 언어적인 표현과 그다지도 관계가 깊은 까닭에 Ferenczi는 모든 언어가 자체의 꿈의 언어를 지니고 있다고까지 표현했다. 꿈은
통상적으로 다른 언어로는 번역이 불가능하며 바로 이 책도 나는 같은 것으로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욕의 A. A. Brill 박사와 그 뒤의 다른 사람들이 『꿈의 해석』을 번역하는 데 성공하였다.
[27] 이 논문(책)의 제목은 “Die Traumdeutung”이다. Traumdeutung은 해몽 또는 꿈풀이를 뜻하는 단어다. 좀 더 과학적으로 들리는 Traumanalyse(꿈분석)라는 단어도 아주 가끔은 쓰지만 프로이트는 독일어에서 원래 미신적 해몽을 뜻하던 Traumdeutung이라는 단어를 주로 썼다. 영역자들은 보통 “The Interpretation of Dreams”라고 번역하는데 어쩌면 좀 더 미신적으로 들리는 “Dream Reading”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꿈의 해석”보다는 “해몽”이 더 나은 번역어일지도 모른다. – 국역자주
[28] 83쪽 이하. – 영역자주
[29] [1909년에 추가됨 - 영역자] 나는 우연히 빌헬음 옌젠Wilhelm Jensen이라는 작가의 노벨레Novelle(story) “그라디바Gradiva”에 인위적인 꿈이 몇 개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꿈들은 창작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이 꾼 것처럼 아주 정확하게 만들어져 있었으며 해석할 수도 있었다. 내가 물어보니 그 작가는 내 꿈이론을 모르고 있었다고 확인해주었다. 나는 나의 연구와 이 작가의 창작 사이의 이 일치를 나의 꿈분석의 올바름에 대한 증거로 이용한 바 있다. (“Der Wahn und die Träume in W. Jensens ‘Gradiva’”, erstes Heft der von mir herausgegebenen “Schriften zur angewandten Seelenkunde”, 1907, dritte Auflage 1924. Ges. Werke, Bd. VII) – 원주
See Freud, 1907a. – 영역자주
노벨레는 특이한 사건과 극적인 구성을 갖춘 중․단편 분량의 소설을 말한다. – 국역자주
[30] [1914년에 추가됨 - 영역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De divinatione per somnum, II(Trans., 1935, 383) - 영역자]는 이에 대해 가장 훌륭한 꿈해석자Traumdeuter(interpreter of dreams, 해몽가)는 유사성을 가장 잘 파악하는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꿈형상Traumbilder(dream-pictures)은 물 속에 있는 형상처럼 움직임 때문에 일그러지며 일그러진 형상에서 진실을 인식할 수 있는 사람이 가장 잘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Büchsenschütz, [1868, - 영역자] p. 65). – 원주
[31] [1914년에 추가됨 - 영역자] 아마도 서기 2세기 초에 태어난 달디스의 아르테미도로스는 그리스․로마 세계의 꿈해석에 대해 가장 온전하고 세심한 저작을 남겼다. 테오도르 곰페르쯔Theodor Gomperz[1866, 7f. - 영역자]가 지적했듯이 그는 꿈해석을 관찰과 경험에 기반하는 것을 중요시했으며 자신의 기술Kunst(art)과 기만적인 다른 기술들을 엄격히 구분했다. 곰페르쯔에 따르면 그의 해석 기술의 원리는 마술과 동일한 연상의 원리이다. 꿈 속의 사상事象은 그것이 상기시키는 어떤 것을 뜻한다. 물론 그것이 꿈해석자에게 상기시키는 것을! 꿈요소가 한 해석자에게 상이한 사상을 상기시킬 수 있으며 각각의 해석자들에게 다른 것들을 상기시킬 수 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임의성과 불확실성이 생긴다. 내가 앞에서 설명할 기법은 본질적인 점 즉 해석 작업을 꿈꾼 사람 자신에게 맡긴다는 점에서 고대의 기법과 구별된다. 나의 기법에서는 꿈의 해당 요소에서 꿈해석자가 연상한(einfallen) 것이 아니라 꿈꾼 사람이 연상한 것을 고려한다. 그런데 선교사 트핑크지트Tfinkdjit(Anthropos 1913[516-17 and 523 - 영역자])가 최근에 보고한 바에 따르면 동양의 현대 꿈해석자들도 꿈꾼 사람의 협력을 많이 요구한다. 이 정보 제공자는 메소포타미아의 아랍인 중에 있는 꿈해석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정확한 꿈해석을 위해 가장 솜씨 좋은 몽점사夢占師들은 올바른 설명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여기는 모든 본질적인 상황들에 대해 상담 받으러 온 사람에게서 알아낸다. ... 간단히 말해, 이 몽점사들은 한 가지도 빼놓지 않고 필요한 질문에 대한 모든 답을 완전히 들은 다음에야 해석을 내놓는다.” 이런 질문들에는 아주 가까운 친족(부모, 부인, 자식)에 대한 상세한 질문과 다음과 같은 상투적 질문이 언제나 포함된다: 전날 밤에 또는 꿈을 꾼 다음에 부인과 동침했나요? - “꿈해석에서 주된 착상은 꿈을 그 반대로 설명하는 것이다.” - 원주
[32] Oneirocritica. – 영역자주
[33] 역암은 암편(암석 조각)들로 이루어진 퇴적암이다. 잡동사니 암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각 암편의 유래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각 암편을 따로따로 분석해야 하는 것이다. – 국역자주
[34] [1909년에 추가됨 - 영역자] 알프레트 로비체크Alfred Robitzek 박사는 동양의 해몽서들 - 우리의 것들은 이것들을 서투르게 모조했다 - 에서 해석이 대개 같은 발음이나 비슷하게 생긴 단어에서 유래했음을 나에게 알려주었다. 우리의 언어로 번역하면 이런 유사성이 상실되기 때문에 우리의 통속적 “해몽서들”에서의 대체[꿈요소를 그것이 상징하는 것으로 대체하는 것]가 불가해하게 보이는 것이다. 동양의 여러 고대 문화에서 말놀이Wortspiel(punning)와 말장난Wortspielerie(verbal quibbles)이 차지하는 이런 이례적인 중요성에 대해서는 [유명한 고고학자archaeologist인 - 영역자] 후고 빙클러Hugo Winckler의 저작들을 참조할 수 있을 것이다. [1900년에 추가됨 - 영역자]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아주 훌륭한 꿈해석의 한 예는 말장난에 기반하고 있다. 아르테미도로스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p. 255): “나도 아리스탄드로스Aristandros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Alexandros(Alexander)에게 아주 적절한glücklich(happy) 해석Auslegung(interpretation)을 해주었다고 생각한다. 알렉산드로스는 Tyros를 포위 공격하고 있을 때 시간이 너무 지체되자 언짢아하고 우울해했는데 [꿈에서] Satyros가 자신의 방패에서 춤을 추는 것을 보았다. 우연히 아리스탄드로스는 시리아인을 공격하고 있는 왕을 수행하며 Tyros 근처에 있었다. 그는 Satyros라는 단어를 σα와Τύρος로 분해함으로써 왕이 포위 공격을 단호하게 하도록 만들어서 그 도시의 지배자가 되도록 했다.” (σα - Τύρος = Tyros는 너의 것이다.) - 하여튼 꿈은 언어적 표현과 너무나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페렌찌Ferenczi[1910 - 영역자]가 올바로 말했듯이 모든 언어에는 자기 자신만의 꿈-언어가 있다. 일반적으로 꿈을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마찬가지 이유로 이 책도 번역이 불가능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1930년에 추가됨 - 영역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욕에 있는 브릴A. A. Brill 박사를 시작으로 다른 사람들도 “꿈의 해석”의 번역에 성공했다. – 원주
Satyros는 반인반수의 주색을 좋아하는 숲의 신이다. - 국역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