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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역 없는 세상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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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착한 사람도 있고 악한 사람도 있다. 이것은 번역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한편에는 돈을 별로 벌지 못함에도 더 좋은 번역서를 내려고 고심하는 번역가와 편집자가 있다. 다른 한편에는 대리 번역을 일삼는 교수, 엉터리로 번역하고 번역가, 번역가를 무시하는 편집자가 있다. 어떤 사람이 더 많은지를 따지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어 보인다. 어쨌든 한국에 엉터리 번역이 대량 생산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런 것이 이슈가 될 때마다 나오는 “착하게 살자”는 식의 말들이 있다. “교수들이여 대리 번역은 양심을 저버리는 일이니까 하지 말자”, “번역가들이여 오역을 줄이도록 최선을 다하자”, “편집자들이여 간판보다는 실력을 보고 번역가를 고용하자”, ……
세상을 바꾸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공상적 사회주의자들(Utopian Socialists, 유토피아 사회주의자들)은 자본가들을 설득하려고 한 반면 마르크스는 자본가들을 비판(말을 이용한 비판과 무기를 이용한 비판)하려고 했다. 나는 마르크스의 방식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이해관계가 걸려있을 때에는 잘 설득되지 않는다.
나는 “착하게 살자”는 식의 공염불보다는 이해관계 분석에 바탕을 둔 해결책을 제시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따라서 내가 제시하는 해결책의 핵심에는 설교가 아니라 비판이 있다. 번역 비판이 번역계의 악습을 없애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이 나의 믿음이다.
번역으로 돈을 벌기 힘들기 때문에 정작 번역을 해야만 하는 전문가들은 번역을 안 한다. 나는 번역가들이 경제적으로 더 많은 대우를 받기를 바라지만 뚜렷한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다. 정부 차원에서 거금을 들여서 대규모 번역 사업을 하는 것이 해결책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한국 번역계의 실태를 볼 때 그 거금으로 엉터리 번역만 양산할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내가 제시하는 해결책 중에는 한국의 현실을 고려해 보았을 때 너무 이상적인 것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무엇이 이상적인지도 알아야 하며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토론이 필요하다.
이 글에서는 출판 번역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것은 순전히 내 개인적인 이유 때문이다. 나는 출판 번역을 하고 있으며 출판된 번역을 비판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번역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번역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절실히 느끼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사실 모든 사람들이 번역의 중요성을 느끼고 있다면 한국의 번역 현실이 이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한국 사람들이 번역가들을 만만하게 보는 것으로 보아 번역이 얼마나 힘든 지를 잘 모르는 것 같다. 번역은 외국어에 대한 해박한 지식, 외국 문화에 대한 백과사전적 지식, 한국어 구사력(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전문 서적의 경우에는) 해당 분야에 대한 전문 지식 등을 요구하는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물론 엉터리로 번역하려고 하면 번역만큼 쉬운 일도 없다.
사람들이 번역의 중요성과 어려움을 통감하지 못하는 이유는 한편으로는 자신이 오역으로 얼마나 피해를 보았는지를 모르기 때문인 것 같다.
또한 보통 사람들은 우리가 얼마나 번역서에 의존하는지를 잘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우리가 배우는 지식의 대부분은 결국 외국에서 온 것이며 어떤 식으로는 번역을 거친 것이다.
엉터리 번역은 엄청난 비효율로 이어진다. 이것은 고속도로나 철도를 놓을 때 길을 일부러 지그재그로 만들어 놓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엉터리 번역 때문에 공부하는 사람들은 외국의 과학이나 사상을 매우 더디게 그것도 수많은 오해와 함께 배우게 된다. 길을 잘못 만들어 놓으면 사람들이 길을 지나갈 때마다 비효율을 양산하듯이 번역을 한 번 잘못 해 놓으면 그 책은 직접 읽는 사람과 그 책의 내용을 간접적으로 접하는 사람마다 피해를 본다.
나는 20 여권의 번역서를 비판하여 인터넷에 올렸다. 다음은 번역을 본격적으로 비판한 글들이다.
교수신문 엮음, 『최고의 고전 번역을 찾아서 - 우리말로 옮겨진 고전, 무엇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교수신문 엮음, 『최고의 고전 번역을 찾아서 2 - 우리말로 옮겨진 고전 무엇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로쟈, 로쟈의 저공비행(http://blog.aladdin.co.kr/mramor)
나는 공산주의자이며 자본주의적 경쟁 중 많은 부분이 사라지길 바란다. 하지만 정말 필요한 경쟁이 있다. 공직자는 선거 즉 경쟁으로 뽑아야 하며, 과학 이론들은 서로 경쟁을 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번역서의 경우에도 경쟁이 있는 것이 좋다.
다른 모든 분야가 그렇듯이 독점한 쪽은 배째라는 식으로 나올 수 있다. 만약 한 회사가 비누를 독점적으로 생산한다면 “우리 회사 비누를 사든지 씻지 말고 살든지 알아서 해라”라고 버틸 수 있다. 마찬가지로 독점 번역한 출판사는 “우리 출판사의 번역서를 사든지 원서를 사서 읽든지 알아서 해라”라고 버틸 수 있다. 이것은 외국어에 능통한 사람이 극히 적은 한국에서는 통할 수밖에 없다.
먼저 용어를 정리해 보겠다. 번역의 독점권과 관련하여 세 가지 체제가 있을 수 있다. 독점 번역, 과점 번역, 완전 경쟁 번역. 독점 번역이 스펙트럼의 한쪽 끝이라면 완전 경쟁 번역은 다른 쪽 끝이다. (과점 번역, 완전 경쟁 번역이라는 용어는 내가 만들어낸 것이다.)
독점 번역의 경우에는 일단 한 출판사와 번역 계약을 맺으면 다른 출판사에서 그 책을 번역 출판할 수 없다. 내가 알기로는 저작권이 살아 있는 책의 경우에는 모두 독점 번역이다.
완전 경쟁 번역의 경우에는 독과점이 완전히
배제된다. 저작권 자체가 만료된 경우에는 당연히 완전 경쟁 번역이다.
누구든 그 책을 번역 출판할 수 있다. 이론상으로는 저작권이 살아 있는 경우에도 완전 경쟁
번역이 있을 수 있다. 원저자(또는 책의 저작권을 관리하는
회사)와 출판사가 번역 계약을 맺을 때 독점 또는 과점 조항을 넣지 않으면 된다. 이 때 원저자는 자기 마음대로 다른 출판사와 번역 계약을 맺을 수 있다. 따라서
하나의 책이 수많은 출판사에서 출판될 수 있다.
과점 번역의 경우에는 원저자가 한 나라의
출판사와 한정된 숫자의 번역 계약을 맺을 수 있다. 그 수를 첫 번째 계약을 할 때 명시한다. 예컨대 “이 책은 과점 계약으로 출판되었다. 한국에서는 세 곳의 출판사에서만 한국어로 이 책을 번역 출판할 수 있다”는
식으로 말이다. 이런 식으로 계약을 했다고 치자. 그러면
이 책은 한국에서 세 출판사에서 번역 출판할 수 있다. 네 번째 출판사가 이 책의 번역 출판에 뛰어들려고
해도 과점 번역 계약 때문에 그럴 수 없다.
출판사의 입장에서는 물론 독점 번역을 하고 싶을 것이다. 그래야 자기만 팔아먹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원저자의 입장에서는 완전 경쟁 번역이 더 좋다. 왜냐하면 그래야 더 좋은 번역서가 나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저작권료의 경우 어떤 체제가 원저자에게 유리할지는 애매하다. 한편으로 독점 번역을 하면 출판사에서 상대적으로 더 높은 인세를 지불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 완전 경쟁 번역을 하면 번역의 질이 더 나아져서 책이 더 많이 팔릴 수 있다. 또한 완전 경쟁 번역으로 계약을 하면 계약할 때마다 선인세 등을 챙길 수 있다.
물론 인기가 없을 것 같은 책의 경우에는 독점 번역이 아니라면 출판에 나설 출판사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엄청나게 인기 있을 것 같은 책이라면 완전 경쟁 번역을 한다 해도 덤벼들 출판사가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저자 측에서 과점 번역이나 완전 경쟁 번역 체제를 선호하지 않는 이유를 나는 이해할 수 없다. 내가 보기에는 원저자 측에서 번역의 질이 어떻게 되든 신경을 안 쓰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원저자들이 가능하면 완전 경쟁 번역에 가깝게 계약했으면 한다. 경쟁이 붙어야 더 좋은 번역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저작권이 없는 책의 경우에는 나중에 나온 번역본의 번역의 질이 상당히 나은 경우가 많다. 반면 독점 번역의 경우에는 엉터리 번역이라도 고치지 않거나 고치는 흉내만 내는 경우가 많다.
나는 저작권과 관련된 법이나 협정에 대해서는 자세히 모른다. 만약 법이나 협정 때문에 독점 번역을 할 수밖에 없다면 법과 협정을 고쳐야 할 것이다.
번역가가 억울한 경우가 많다. 자신은 제대로 번역했는데 편집자가 임의로 고쳐서 오역이 되는 사례가 부지기수다.
번역서의 최종 책임자는 번역가여야 한다. 편집자는 조언자의 역할에 만족해야 한다. 번역서의 표지에는 편집자가 아니라 번역가의 이름이 나온다. 번역 문장에 대한 최종 결정권은 번역가에게 있어야 하며 당연히 번역에 대한 최종적인 책임도 번역가가 져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많은 편집자들이 자기 맘대로 문장을 고친다. 그리고 번역가에게 그것을 보여 주지도 않고 출판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번역 원고를 편집자가 직접 고치는 관행에 반대한다. 편집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문장에 표시를 해 두고 “이렇게 고쳤으면 좋겠네요”라는 식으로 메모를 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번역가가 편집자의 그런 메모를 보고 편집자의 권고대로 고칠지 아니면 (문장이 어색하더라도 원문의 뉘앙스를 살리기 위해) 그대로 둘지를 결정하는 방식이 좋을 것이다. 번역가와 편집자 사이에 의견 차이가 있다면 물론 토론이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토론으로 합의에 이를 수 없다면 최종 결정권은 번역가에게 있어야 한다.
번역가들은 이 권리를 얻어내기 위해 싸워야 한다. 번역 계약을 할 때 번역문의 최종 결정권이 자신에게 있음을 명확히 하고, 책 표지에 자신의 이름이 나와야 함을 명확히 해야 한다. 물론 이런 식으로 버팅기다 보면 번역 기회를 잃을 가능성이 있다. 나는 많은 번역가들이 번역가로서의 자존심과 번역의 질을 위해 돈을 어느 정도 포기하길 바란다.
대리 번역을 해서 엉터리 번역서를 만들어낼 때, 출판사가 독점 번역이라는 것을 믿고 엉터리 번역서를 만들어낼 때, 번역가가 고심해서 번역한 것을 편집자가 자기 마음대로 고칠 때, 출판사가 실력보다는 간판과 인맥을 보고 번역가를 뽑을 때 그것을 응징할 필요가 있다.
응징을 위해서는 객관적이고 날카로운 공개적 번역 비판이 필요하다.
대리 번역의 관행에 대해 살펴보자. 나는 대리 번역을 해준 힘없는 번역가들이 모두 양심 선언을 해 주길 바란다.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기는 매우 힘들다. 내부 고발이 없으면 어떤 번역서가 대리 번역으로 탄생했는지 여부를 알 수 없다. 공공연한 비밀이라 하더라도 소문만 가지고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번역 비판은 가능하다. 잘나가는 대학의 교수가 자기 전공 분야의 책을 번역했는데 번역이 엉터리라면 번역이 엉터리임을 보여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 교수는 자기 전공 분야의 책도 엉터리로 번역하는 무능력한 교수임을 인정하거나 대리 번역을 한 양심 없는 교수임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학생들은 능력 있고 양심 있는 교수로부터 배울 권리가 있다. 날카로운 번역 비판은 학생 또는 학교 당국이 교수를 비난할 근거를 제시할 것이다.
제품의 하자가 심각할 때에는 리콜을 하는 경우가 있다. 엉터리 번역서의 경우에도 소비자는 리콜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정확한 번역 비판이 선행되어야 한다.
대리 번역을 했든 안 했든 교수라는 간판을 믿고, 또는 번역계의 인맥 등을 믿고 엉터리 번역을 양산하는 사람들이 있다. 신랄한 번역 비판으로 이런 사람들을 번역계에서 추방해야 한다. 위에서 권력을 차지하고 있는 엉터리 번역가들이야 말로 물을 흐리는 주범이다.
나는 경쟁하는 출판사들이 서로 상대 출판사의 번역을 비판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많은 이들이 이것을 비열한 상술이라고 여기는 것 같다. 하지만 자기 회사의 제품의 질을 널리 알리고 경쟁 회사의 제품의 하자를 널리 알리는 것이야말로 제대로 된 광고 방식이다. 이런 방식이 유명 연예인을 이용한 이미지 광고(사실상 사기다)보다 훨씬 낫다.
나는 국가가 큰 돈을 들여서 번역 비판 사업을 진행하기를 바란다. 번역 사업을 벌이는 것보다 이것이 차라리 낫다. 국가가 벌이는 대규모 번역 사업은 엉터리 번역을 국고를 축내면서 양산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적어도 엉터리 번역 관행이 상당 부분 뿌리뽑을 때까지는 국가도 나서야 한다.
많은 번역가들이 공개적인 비판보다는 조용한 비판이 낫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오역이 있으면 인터넷에 올리거나 책으로 내기 보다는 해당 번역가나 출판사에게 조용히 알리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조용히 알리는 것으로는 뻔뻔스러운 대리 번역 등을 퇴치할 수 없다. 엉터리 번역서를 출판하는 출판사는 몰라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그런 식으로 출판사를 운영하는 것이 돈을 버는 손쉬운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위에서 번역가의 권리(최종 결정권)에 대해 이야기했다. 권리가 있으면 책임이 뒤따르는 것은 당연하다. 번역가들의 작업이 매우 중요한 만큼 번역가들은 두려움 속에서 번역해야 한다. 즉 누군가가 자신의 번역을 정밀 검토하여 공표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번역해야 한다.
과학자들의 자부심은 이런 감시에서 나온다. 과학자들이 어떤 이론을 제출했을 때 다른 과학자들이 벌떼같이 달려들어서 약점을 찾아내려고 한다. 이것이 과학과 사이비과학의 차이다. 과학자들이 ‘동업자 정신’을 발휘하여 남의 이론에 있는 허점을 묵인했다면 과학이 어떻게 되었겠는가?
또한 과학자들이 서로 매우 적대적인 비판만 하는 것은 아니다. 엉터리 이론을 고칠 생각도 하지 않는 사이비과학에 대해서는 매우 적대적이며 경멸로 숨기지 않지만, 열심히 연구하는 실력 있는 과학자의 연구 성과에 대해서는 매우 호의적으로 비판하기도 한다. 번역 비판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과학자들이 논문을 공개하고 논문에 대한 비판도
공개적으로 하는 이유는 공개적 토론이 더 나은 결론을 이끌어내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번역 비판도
마찬가지다. 어떤 문장이 오역인지 여부를 놓고 또는 어떤 식으로 문장을 만드는 것이 최선인지를 놓고
번역가와 비판자 사이에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런 경우 그 문제를 놓고 공개적으로 토론하는 것이 좋다.
또한 공개적으로 비판해야 독자들이 책을 선택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여러 종의 번역서가 있는 경우, 어떤 번역이 나은지를 독자들이 알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독점 번역의 경우, 번역서를 볼 지, 원서를 볼 지, 아니면 그 책을 보는 것을 포기할 지를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번역을 비판할 때에는 원서와 번역서에 있는 해당 문장을 함께 옮겨 적는 것이 좋다. 그래야 객관성이 확보된다. 원문과 대조하지 않은 번역 비판은 별로 쓸모가 없다. 번역문의 문장이 이상하다고 비판했는데 원문의 문장이 원래 이상했다면 어쩔 것인가? 또한 자신의 번역도 적어 놓고 왜 기존의 번역이 문제가 있는 번역인지를 되도록 자세히 쓰는 것이 좋을 것이다.
만약 어떤 책의 번역의 질을 평가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한 장(chapter) 전체 또는 그에 준하는 양을 비판해야 한다. 그래야 한쪽 당 오역의 수를 추산할 수 있다. 책 전체에서 오역 10 개를 지적하고 엉터리 번역이라고 비난한다면 별로 설득력이 없다. 왜냐하면 지적한 10 개 말고는 오역이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300쪽에서 오역이 10 개(30쪽에 오역이 1개니까 한쪽 당 오역의 수는 0.033 개)라면 엉터리 번역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만약 어떤 책의 번역이 엉터리임을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라면 한 장(chapter) 전체에 있는 명백한 오역을 몽땅 지적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그리고 당장은 이런 매우 적대적인 번역 비판이 시급하다.
물론 번역이 매우 양호한 책도 비판(또는 비평)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뉘앙스를 더 잘 살릴 수 있는지, 어떤 문장이 더 매끄러운 한국어 문장인지를 두고 논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훌륭한 번역서를 소개하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것은 번역 비평가의 권위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어떤 책의 번역이 엉터리임을 보여주기는 쉽다. 오역들을 지적하면 되니까 말이다. 하지만 어떤 책의 번역이 훌륭함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는 권위 있는 번역 비판(비평)가들이 먼저 있어야 한다. 즉 번역 비판(비평) 문화가 활성화 되어 있어야 한다.
제대로 된 번역 비판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전문가들이 나서야 한다. 전문 번역가나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 나서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그렇지 못하다.
전문 학술 서적의 경우에는 해당 분야의 대학원생들, 박사들, 교수들이 번역을 비판하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번역을 비판하는 학자(또는 학자 지망생)는 거의 없다. 왜냐하면 유명 교수의 번역을 비판했다가는 앞길이 막힐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번역가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어떤 출판사의 번역을 비판했다면 앞으로 그 출판사와 계약하기가 힘들어질 것이다.
게다가 번역 비판으로 돈을 버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런 면에서 번역 비판 잡지가 탄생한다면 매우 좋을 것이다. 정부가 나서서 이런 잡지 하나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물론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 잡지나 인터넷 사이트를 만드는 것도 좋을 것이다.
번역 비판에 위험이 따르는 것도 사실이지만 번역 비판은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쉽게 말해서 유명인의 번역을 비판했다가 학계나 번역계에서 왕따를 당할 수도 있지만 번역 비판으로 유명세를 탈 수도 있다. 번역 비판은 자신의 번역 실력을 남에게 알릴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번역가를 꿈꾸는 사람들은 이런 전략을 한 번 고려해 보길 바란다. 또한 번역 비판은 번역을 공부하는 하나의 길이기도 하다.
첫댓글 정말 동감하는 글입니다. 한국어의 언어구조와 어휘는 일본어를 제외한 다른 어떤나라와 동일하지 않으므로 문맥이나 전체적인 내용의 이해없이 무턱대고 번역하는것은 (즉 단지 사전적 의미만 따라서) 상당히 위험한 일이죠.
그러나 독점번역을 하지 않는다면 전체 생산되는 번역의 양 자체가 줄어들 가능성이 있을 것입니다. 독점번역이 아니라면, 후발 번역자들이 항상 유리한 이득을 누리게 됩니다. 예를 들어 생짜로 번역을 하는 데는 3달이 걸리는 책도 다른 사람이 미리 번역해 놓은 책을 보고 오역을 찾아내는 식으로 번역을 하고 윤문을 좀 하면 3주일 안에도 번역을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책이 대중 베스트셀러라면 완전 경쟁 번역이나 과점 번역에서도 출판사 주도로 번역이 이루어지겠지만, 학술서적의 경우에는 힘들여 번역해보았자 그 번역을 기반으로 나오는 후발주자의 더 깔끔한 번역이 인세의 대부분을 가져가므로 유인이 많이 떨어질 것입니다. 최근에
번역했던 책이 절판되었는데도 출판사에서 알려주지 않아서 다른 출판사가 판권을 인터셉터 해버렸고, 저를 찾지 않고 다른 사람을 새 역자로 찾아서 번역을 시켰는데 그 출판사가 판권을 산 지 3주만에 번역이 다 끝났답니다. 참 어이가 없습니다. 그게 번역을 하려면 한 달 정도 매일 8시간 해야 되는 분량이고, 또 그 번역을 한 사람은 교수로 자기 직업이 있는 사람이어서 매일 2시간도 못낼텐데 3주만에 번역을 다 했다니. 그런데 번역의 경우에는 저작권이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저작이 동일하기 때문에 문장 표현이 같아도 저작권 위반으로 걸기가 어렵습니다. 사실 후발주자가 윤문만 조금해서 내는 경우에도 뭐라고 하겠습니까
제 생각에는 세월의 시험을 이겨낸 고전이 아닌 경우에는 독점 번역 체제는 불가피한 것 같고, 번역 비판을 공공재로 보고 일정한 룰을 만들고 이 룰을 지켜 참가하는 사람에게는 국가가 돈을 주는 방식이 바람직하지 않을가 생각합니다. 현재 출판계에는 국가 지원 각종 책 선정 사업이다 뭐다 해서 많은 돈이 흘러가고 있는데, 그 돈이 정말로 공공재로서 역할을 하는지 의문입니다. 번역 비판에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게 하고, 돈이 안되는 문제를 국가지원으로 해결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안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과학자의 예는 약간 다른 것이, 과학자 역시 다른 사람의 논문을 그대로 참조하면서 문장 몇군데만 손보고 자기 이름을 달아 논문을 낼 수 있는 자격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독점 번역이 아니면 아무래도 출판사 측에서는 번역 출판을 꺼릴 것입니다. 특히 독점 번역을 해도 손익분기점을 간신히 넘을 것으로 보이는 책의 경우에 그럴 것입니다. 하지만 인기 작가의 책의 경우에는 그래도 번역 출판하겠다고 나서는 출판사가 있습니다.
지적하신 것처럼 나중에 번역하는 사람이 훨씬 유리합니다. 하지만 먼저 출판해서 얻는 이득도 있습니다. 먼저 팔아 먹을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런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독점으로 인한 폐해보다는 더 작은 문제로 보입니다.
독점과 과점이 혼재하는 상태가 독점만 있는 현재 상태보다 더 나아보입니다.
오늘날 거의 대부분의 인문사회과학 서적은 독점 번역을 해도 손익분기점을 간신히 넘깁니다. 2000부-3000부 팔리는 책들입니다. 이런 책들을 꾸준히 내면 그래도 출판사 운영이 됩니다. 독자들로서도 이런 책들이 중요합니다. 이덕하님 말씀대로 하자면 결국 인기작가의 책만 번역이 되고 나머지는(지금 나오는 책들의 95%이상) 번역되지 않는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이 문제는 어떻게 하실런지요?
저는 바로 위의 댓글에서 "독점과 과점이 혼재하는 상태가 독점만 있는 현재 상태보다 더 나아보입니다"라고 썼습니다. 인기 있는 책은 과점 번역(몇 개의 출판사에서 번역 출판)을 하고 인기가 별로 없는 책은 독점 번역하는 방식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기가 별로 없는 책을 과점 번역 방식으로 출간한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큰 영향이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인기가 없다면 이미 다른 출판사에서 번역 출판한 책을 다시 번역해서 출판하겠다고 나서는 출판사가 거의 없을테니까요.
인기 있는지 없는지는 시장에 나와 보기 전에는 모르는 것입니다. 아무도 인기가 없다고 생각해서 별 기대하지 않고 냈는데 인기를 끄는 것이야말로 출판시장을 움직이는 동력입니다. 이덕하 님의 제안은 법률화될 수 있는 구체적인 제안으로서의 틀이 잡혀 있지 않습니다. 법에는 '인기있는 책은 과점을 강제하고 인기 없는 책은 독점을 강제한다?'라고 규정할 것인지요? (번역 판권 시장은 독점이 더 수익이 높다고 이미 결정하고 있으므로 시장 행위자들에 대한 제안으로서는 의미가 없습니다) 더군다나 위와 같은 법률은 번역자나 출판자의 권리가 아니라 주되게는 외국 저자의 권리(계약권)을 제한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외국과의 공조
가 없으면 실행 불가능하는 것입니다. 지금 출판계에 지원되고 있는 자원 중 상당부분을 번역 비판 작업에 돌리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간명한 대안입니다. 여기에는 국내외 저작권법의 큰 틀을 바꾸는 조정이 수반되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번역 비판이 된 것을 수용하는 출판사에도 인센티브를 주고, 번역 수정을 한 사람을 책 날게에도 실어주는 정책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또한 인기 없는 책을 과점 번역 방식으로 출간할 때 영향이 있을 것 같지 않다는 것도 출판계의 현실을 모르는 것입니다. 현재 출판계는 거대 공룡들에서부터 들쥐같은 포유류까지 그 유통망이나 광고 능력 등이 다양합니다. 첫째로, 작은 포유류 같은 출판사가 좋은 번역서를 내었지만 출판사 규모의 한계를 별로 인기를 끌지 못하였는데, 거대 출판사가 윤문만 살짝 살짝 하고 오역 몇군데 고쳐서 번역을 해서 내면서 광고를 때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둘째로, 아마존 등에서 인기 있는 베스트셀러는 거대 공룡들이 모두 독식해 버립니다. 작은 출판사가 그나마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은, 그러한 베스트셀러는 아니지만 좋은 책을 발굴해서
출판하는 것에 있씁니다. 그런데 작은 출판사가 좋은 책을 발굴해서 이제 막 팔리기 시작하자(보통 책 출간 후 3주 정도면 분위기가 감지됩니다), 큰 출판사가 추가로 2-3주만에 번역을 해서 추세를 따라잡으면 작은 출판사는 대박을 칠 만한 좋은 번역서를 내는 족족 모두 큰 출판사에 다 빨릴 것입니다. 이덕하님께서는 전체적인 시장의 수익성과 행위자들의 인센티브를 고려하지 않고, 단지 고정된 단일한 하나의 원고만을 상정하고 경쟁이 번역서의 질을 낫게 할 것이라는 방식으로 사고를 진행하시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저는 출판에 대한 법(또는 국가간 협정)을 잘 모릅니다. 조금 찾아보다가 포기했습니다. 현재의 법 또는 협정에서도 "저작권이 있는 책은 항상 독점번역한다"는 식의 문구는 없는 것 같습니다.
즉 원저작자가 독점이 아닌 과점 번역을 원하면 그렇게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원저작자가 되도록 과점 번역 쪽으로 계약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현재 원저작자들은 한국 번역서의 질에 신경을 아예 안 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작권이 만료된 책의 번역 출판 같은 경우에는 완전 경쟁 체제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저작권이 만료된 책들이 완전히 사장되지는 않았습니다. 라이트 님 말씀대로라면 저작권이 만료된 책이 번역 출간되는 일은 별로 없겠죠.
그리고 저 역시 독점 번역이 아닌 방식으로 바꾸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현재의 한국 출판계가 돌아가는 꼴을 볼 때 국가가 번역 비판에 대폭 투자해서 언론에 대대적으로 알리는 것이 만약 실현된다면 가장 나은 대안이라고 봅니다.
저작권이 만료된 책들은 대체로 세월의 시험을 견뎌낸 고전입니다. 스테디 셀러임이 보증이 되었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 책은 대체로 최초의 번역을 한 사람들이 충분한 시간 동안 독점권을 누렸습니다. 이것과 이제 시장에 막 발을 디딘 책은 같은 선상에 두고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번역 원고 역시 독립된 저작물이어서 법률상으론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그러나 번역원고는 원래의 저술원고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저작권 위반을 따지기가 실무상 거의 불가능합니다. 보통 저작물의 표절 여부는 그 아이디어, 논증의 흐름, 표현의 유사성 등에 기초해서 파악합니다. 그런데 번역 원고는 원래의 원고가 같다보니 윤문만 좀하
게 되면 저작권 위반을 알아내는 것이 사실상 매우 어렵습니다. 지금은 이 부분에 관련된 번역물이 저작권이 만료된 몇몇 책들에 한정되어 있어서 별 문제가 안되지만 이것이 모든 번역물로 확대되면 큰 문제가 될 것이 분명합니다. 제 생각에 독점계약을 하는 이유는 원저자로서 독점계약이 더 이윤이 남기도 하지만(그래야 판권 경쟁에 불이 붙기 때문입니다) 번역서의 그러한 특징 또한 감안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말씀하셨듯이 어떤 사회 문제의 해결책이 원저자에게 촉구하는 형태라면, 그것은 이미 사회적인 대책 방안이라고 할 수가 없어 보입니다.
좋은 글이네요. 원서와 번역본의 차이, 번역본과 번연본간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최근에야 느꼈습니다. 번역에 대해 과학자들이 논문을 비판하듯 활발하고 공개적으로 비판되야 한다는 말에 공감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