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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07년에 『만들어진 신』의 번역을 비판하는 글을 쓴 적이 있다. 1판 1쇄의 번역에는 오역이 많았다.
『만들어진 신(이한음 옮김)』 번역 비판 – 6장
http://cafe.daum.net/Psychoanalyse/82Xi/30
내가 비판한 문장들이 61쇄에서 어떻게 바뀌었는지 살펴보았다. 여전히 아주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지만 내가 지적한 부분 중 상당 부분이 개선되었다. 나의 번역 비판이 번역 개선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여부를 나로서는 알 수 없다.
구분선 위쪽은 (오자를 수정한 것을 제외하면, 그리고 “2007년”이라고 표시해 둔 것을 제외하면) 2007년에 내가 쓴 내용 그대로다. 구분선 아래 쪽에 61쇄의 번역문과 내 의견을 추가했다. 번역이 개선된 부분은 밑줄로 표시해 두었다.
조만간 6장 이외의 부분을 살펴보면서 번역이 얼마나 개선되었는지 따져볼 생각이다.
『만들어진 신: 신은 과연 인간을 창조했는가?』, 리처드 도킨스 지음, 이한음 옮김, 김영사, 2007년 7월(1판 1쇄).
『만들어진 신: 신은 과연 인간을 창조했는가?』, 리처드 도킨스 지음, 이한음 옮김, 김영사, 2013년 1월(1판 61쇄).
『The God Delusion』, Richard Dawkins, Houghton Mifflin, 2006.
이덕하
2013-08-04
--- 신과 선 ---
Dawkins(211쪽) : Titled ‘Burn while we laugh’ and dated 21 December 2005, the letter to Flemming reads as follows:
이한음(2007년, 319쪽) : 2005년 12월 21일자로 보낸 “우리는 웃으면서 태워버리지”라는 제목의 편지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덕하 : 플레밍(Flemming)에게 보낸 “네가 불타고 있을 때 우리는 웃고 있을 것이다(Burn while we laugh)”라는 제목의
l 편지의 내용으로 보아 ‘우리(편지를 쓴 사람을 포함한 기독교인들)’가 아니라 신이 미래에 플레밍을 불태우는 것이다. 플레밍이 무신론을 옹호하는 영화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천벌을 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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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음(2013년, 319쪽) : 2005년 12월 21일자로 보낸 “당신이 불탈 때 우리는 웃고 있을 거야”라는 제목의 편지 내용은 다음과 같다.
l 어떤 분이 이메일을 통해서 “Burn while we laugh”의 번역을 제안해 주셨다. 정확한 문구는 기억이 안 나지만 “우리가 웃으면서 말할 때 [영화 필름을] 태워라”, “좋은 말로 할 때 영화 필름을 태워 버려라”라는 취지였다. 해당 구절을 쓴 사람이 문법을 무시하고 글을 쓰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 분의 제안이 옳은 것 같다.
Dawkins(211쪽) : The writer at this point seems to come to a belated recognition that his language is not very Christian, for he goes on, more charitably:
이한음(2007년, 319쪽) : 이 부분에서 저자는 자신의 언어가 지극히 비기독교적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듯하다. 그 뒤에 더 애정 어린 어조로 이렇게 적고 있으니 말이다.
이덕하 : 글쓴이는 이 부분에서 자신의 말투가 그리 기독교적이지 않다는 것들 뒤늦게 깨달은 듯하다. 그 뒤에는 좀 더 관대하게 쓰고 있으니 말이다.
l “not very Christian”은 “지극히 비기독교적인(very unchristian)”이 아니라 “그리 기독교적이지 않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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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음(2013년, 319쪽) : 이 부분에서 저자는 자신의 언어가 그다지 기독교적이지 않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듯하다. 그 뒤에 더 애정 어린 어조로 이렇게 적고 있으니 말이다.
Dawkins(212쪽) : The best part is that you WILL suffer for eternity for these sins that you’re completely ignorant about.
이한음(2007년, 320쪽) : 가장 위로가 되는 것은 당신이 아주 무지하다는 죄로 영원히 고통을 겪을 것이라는 점이지.
이덕하 : 제일 고소한 것은 네가 죄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하는 이런 죄들 때문에 영원히 고통을 겪을 것이라는 점이지.
l 신은 무지하다고 천벌을 내리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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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음(2013년, 320쪽) : 가장 위로가 되는 것은 당신이 전혀 생각지도 못할 이런 죄들로 영원히 고통을 겪을 것이라는 점이지.
Dawkins(212쪽) : Here’s a sample(original spelling preserved) from the postbag of the Editor of the magazine Freethought Today, published by the Freedom from Religion Foundation(FFRF), which campaigns peacefully against the undermining of the constitutional separation of church and state:
이한음(2007년, 320쪽) : 여기 종교의 자유 재단(FFRF)에서 발행하는 잡지 <오늘의 자유 사상>의 편집장에게 도착한 우편물 중 하나를 사례로 골라보자. 그 재단은 교회와 국가의 분리라는, 미국 헌법 정신을 훼손하는 행위에 반대하는 평화 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덕하 : 여기에 종교로부터의 자유 재단(Freedom from Religion Foundation, FFRF)에서 발행하는 잡지 <오늘날의 자유 사상(Freethought Today)>의 편집자에게 배달된 우편물 중에서 뽑은 샘플(철자는 원래대로 두었다)이 있다. 이 재단은 교회와 국가의 분리라는 헌법의 정신을 훼손하려는 시도에 대항해 평화적으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l “original spelling preserved”을 빼먹었다.
l 저자 이름, 책 이름, 단체 이름, 잡지 이름 등은 찾아보고 싶어하는 독자들을 위해 원문을 병기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l “Freedom from Religion”은 “종교의 자유(freedom of religion)”가 아니라 “종교로부터의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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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음(2013년, 320쪽) : 여기 종교로부터의 자유 재단(FFRF)에서 발행하는 잡지 <오늘의 자유 사상>의 편집장에게 도착한 우편물 중 하나를 사례로 골라보자. 그 재단은 교회와 국가의 분리라는, 미국 헌법 정신을 훼손하는 행위에 반대하는 평화 운동을 펼치고 있다.
Dawkins(212쪽) : So you fags and dykes take it easy and watch where you go cuz whenever you least expect it god will get you…
이한음(2007년, 321쪽) : 그러니 동성애자 녀석들아, 맘 편하게 너희들이 어디로 갈지 지켜보라고. 너희가 생각하지 못했던 곳으로 신이 데려다줄 테니까…….
이덕하 : 그러니 이 호모 년놈들아, 느긋하게 너희가 어디로 갈지 지켜보라고. 너희가 생각지도 못하는 때에 신이 천벌을 내리실 테니까…
l ‘gay’를 ‘호모’로 번역하는 것도 문제지만 ‘fags and dykes’를 ‘동성애자’로 번역하는 것도 문제다. 편견이 담긴 말은 편견이 담긴 말로 번역해야 한다. 어감이 좋지 않았던 ‘queer’나 ‘dyke’ 등을 지금은 동성애자들 자신이 쓰고 있기는 하지만 여기서는 분명히 경멸이 담긴 말이다.
l “너희가 생각하지 못했던 곳으로 신이 데려다줄 테니까”는 잘못된 번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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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음(2013년, 321쪽) : 그러니 동성애자 녀석들아, 맘 편하게 너희들이 어디로 갈지 지켜보라고. 너희가 생각하지 못할 순간에 신이 천벌을 내릴 테니까…….
Dawkins(213쪽) : The following, dated May 2005, from a British medical doctor, while it is certainly hateful, strikes me as more tormented than nasty, and reveals how the whole issue of morality is a deep wellspring of hostility towards atheism.
이한음(2007년, 322쪽) : 2005년 5월에 한 영국 의사가 보낸 다음 편지는 확실히 증오로 가득하지만 내게는 불쾌하기보다는 성가시게 느껴지며, 도덕이라는 문제 전체가 무신론을 향한 적대감의 깊은 근원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덕하 : 2005년 5월에 한 영국 의사가 보낸 다음 편지는 확실히 증오로 차 있지만 내게는 비열하다기보다는 고뇌에 찬 것처럼 느껴지며 도덕성의 전체 문제가 어떻게 무신론을 향한 적대감의 깊은 근원이 되는지를 드러낸다.
l “more tormented than nasty”는 “불쾌하기보다는 성가시게”가 아니라 “비열하기보다는 고뇌에 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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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음(2013년, 322쪽) : 2005년 5월에 한 영국 의사가 보낸 다음 편지는 확실히 증오로 가득하지만 내게는 불쾌하기보다는 고뇌에 잠긴 듯이 느껴지며, 도덕이라는 문제 전체가 무신론을 향한 적대감의 깊은 근원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Dawkins(214쪽) : Those like you are never happy, or they would not try so hard to prove there is no happiness nor meaning in anything.
이한음(2007년, 323쪽) : 당신 같은 사람들은 결코 행복하지 못합니다. 아니, 행복도, 그 무엇도 아무 의미가 없다고 증명하기 위해 기를 쓰는 것이 아니라면요.
이덕하 : 당신 같은 사람들은 결코 행복하지 못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 어디에도 행복도 의미도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그렇게 기를 쓰지는 않을 것입니다.
l ‘or’를 완전히 잘못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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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음(2013년, 323쪽) : 당신 같은 사람들은 결코 행복하지 못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행복도 의미도 없다고 증명하기 위해 그렇게 기를 쓰지 않겠지요.
--- 다윈주의와 도덕의 기원 ---
Dawkins(214쪽) : Several books, including Robert Hinde’s Why Good Is Good, Michael Shermer’s The Science of Good and Evil, Robert Buckman’s Can We Be Good Without God?, and Marc Hauser’s Moral Minds, have argued that our sense of right and wrong can be derived from our Darwinian past.
이한음(2007년, 325쪽) : 로버트 힌데의 《선은 왜 선한가?》, 마이클 셔머의 《선과 악의 과학》, 로버트 버크먼의 《신이 없어도 우리는 선할 수 있는가?》, 마크 하우저의 《도덕적 마음: 자연은 옳고 그름에 대한 우리의 보편적인 감각을 어떻게 설계했는가?》를 비롯한 몇몇 책들은 우리의 옳고 그름에 대한 관념이 다윈주의에서 유래했을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l “Darwinian past”는 “다윈주의”가 아니라 “다윈주의적 과거”이다. 다윈주의라는 과학 이론이 아니라 과거 우리 조상의 진화 역사에서 선악에 대한 관념이 유래했음을 주장하는 것이다.
l 저자 이름과 책 이름은 찾아보고 싶어하는 사람을 위해 원문을 병기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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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음(2013년, 325쪽) : 로버트 힌데의 《선은 왜 선한가?》, 마이클 셔머의 《선과 악의 과학》, 로버트 버크먼의 《신이 없어도 우리는 선할 수 있는가?》, 마크 하우저의 《도덕적 마음: 자연은 옳고 그름에 대한 우리의 보편적인 감각을 어떻게 설계했는가?》를 비롯한 몇몇 책들은 우리의 옳고 그름에 대한 관념이 과거에 우리가 겪은 다윈주의적 상황에서 유래했을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Dawkins(215쪽) : The units that survive in the world will be the ones that succeeded in surviving at the expense of their rivals at their own level in the hierarchy.
이한음(2007년, 326쪽) : 세상에 살아남는 단위들은 경쟁자들을 희생시킴으로써 생존에 성공한 단위들일 것이다.
이덕하 : 세상에 살아남는 단위들은 계층 구조(hierarchy) 중 자기의 수준에서 경쟁자들의 희생의 대가로 살아남는 데 성공한 단위들이다.
l “at their own level in the hierarchy”를 빼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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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음(2013년, 326쪽) : 세상에 살아남는 단위들은 계층 구조에서 같은 수준에 있는 경쟁자들을 희생시킴으로써 살아남는 데 성공한 단위들일 것이다.
Dawkins(216쪽) : Those circumstances are now fairly well understood and they fall into two main categories.
이한음(2007년, 327쪽) : 그 상황들은 두 가지 주요 범주로 나뉜다.
이덕하 : 그 상황들은 이제 상당히 잘 이해되었으며 두 가지 주요 범주로 나뉜다.
l “are now fairly well understood”를 빼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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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음(2013년, 327쪽) : 그 상황들은 지금은 꽤 많이 이해되어 있으며, 두 가지 주요 범주로 나뉜다.
Dawkins(217쪽) : It also favours tendencies to remember obligations, bear grudges, police exchange relationships and punish cheats who take but don’t give when their turn comes.
이한음(2007년, 329쪽) : 또 의무를 기억하고, 원한을 품고, 교환 관계를 유지하고, 받기만 하는 사기꾼을 처벌하는 경향들도 선호한다.
이덕하 : 또한 의무를 기억하고, 원한을 품고, 교환 관계를 단속하고(police, 감시하여 관리하고), 받기만 하고 자기 차례가 되었을 때 주지는 않는 사취자(cheats)를 처벌하는 경향을 선호한다.
l ‘police’는 ‘유지하다’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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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음(2013년, 329쪽) : 또 의무를 기억하고, 원한을 품고, 교환 관계를 유지하고, 받기만 하는 사기꾼을 처벌하는 경향들도 선호한다.
Dawkins(217쪽) : Start out being nice, and give others the benefit of the doubt.
이한음(2007년, 329쪽) : 먼저 친절하고 남들에게 의심할 특권을 주어라.
이덕하 : 먼저 친절하게 시작하라. 그리고 미심쩍을 때에는 선의로 해석하라.
l “give others the benefit of the doubt”를 잘못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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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음(2013년, 330쪽) : 먼저 친절하고 의심이 들 때면 좋게 해석하라.
Dawkins(218쪽) : It is evolutionarily stable under some conditions in the sense that, given a population dominated by reciprocators, no single nasty individual, and no single unconditionally nice individual, will do better.
이한음(2007년, 330쪽) : 보답자들이 집단에서 우세하면 어떤 비열한 개체 하나나, 무조건적으로 친절한 개체 하나가 더 낫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미에서 그것은 진화적으로 안전하다.
이덕하 : 보답자들(reciprocators)이 집단에서 우세하면 어떤 비열한 개체 하나나, 어떤 무조건적으로 친절한 개체 하나도 더 잘하지 못할 것이라는 의미에서 그것은 어떤 조건들에서는 진화론적으로 안정적이다.
l “under some conditions”를 빼먹었다.
l ‘stable’은 ‘안전한’이 아니라 ‘안정적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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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음(2013년, 330쪽) : 보답자들이 집단에서 우세하면 어떤 비열한 개체 하나나, 무조건적으로 친절한 개체 하나가 더 낫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미에서 그것은 일부 조건에서 진화적으로 안정하다.
Dawkins(219쪽) : Individuals buy success, for example in attracting mates, through costly demonstrations of superiority, including ostentatious generosity and public-spirited risk-taking.
이한음(2007년, 332쪽) : 개체들은 관대한 척하고 공익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등 비용을 들여 우월성을 보여줌으로써 짝을 유혹하는 등 성공을 산다.
이덕하 : 개체들은 과시적인 관대함과 공익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기 등의 값비싼 비용을 들여 우월성을 보여줌으로써 짝을 매혹시키는 것 등에서 성공을 산다.
l “관대한 척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공익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척하는 것이 아님과 마찬가지다. 실제로 값비싼 비용을 들여야만 즉 실제로 관대하거나 위험을 감수해야만 자신의 우월성을 제대로 과시할 수 있다. 이것이 핸디캡 원리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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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음(2013년, 332쪽) : 개체들은 관대함을 과시하고 공익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등 비용을 들여 우월성을 보여줌으로써 짝을 유혹하는 등 성공을 산다.
l 나의 번역은 문장이 꼬였다. 2013년 이한음의 번역이 낫다.
Dawkins(220쪽) : Could it be that our Good Samaritan urges are misfirings, analogous to the misfiring of a reed warbler’s parental instincts when it works itself to the bone for a young cuckoo?
이한음(2007년, 334쪽) : 어린 뻐꾸기를 위해 정성을 다함으로써 개개비의 육아 본능이 빗나가는 것과 비슷하게, 우리의 선한 사마리아인적인 충동도 빗나갈 수 있을까?
이덕하 : 개개비(reed warbler)의 육아 본능이 오발(misfiring, 오작동)되어 어린 뻐꾸기를 위해 최대한 발휘되는 것처럼 우리의 선한 사마리아인적인 충동도 오발의 결과일 수 있을까?
l 우리의 선한 사마리아적인 충동이 빗나가서 다른 어떤 것이 되는 것이 아니라, 친족과 친구를 위한 우리의 이타성이 빗나가서(오작동해서) 선한 사마리아적인 충동(낯선 사람을 돕는 행위 등)이 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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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음(2013년, 334쪽) : 어린 뻐꾸기를 위해 정성을 다함으로써 개개비의 육아 본능이 빗나가는 것과 비슷하게, 우리의 선한 사마리아인적인 충동도 빗나간 것일 수 있을까?
Dawkins(223쪽) : Almost everybody agrees that it is immoral to push the fat man off the bridge, even though, from one point of view, the dilemma might seem parallel to Denise’s, where throwing the switch kills one to save five.
이한음(2007년, 339쪽) : 더니즈의 관점에서는
이덕하 : 어떤 관점에서 보면 이 딜레마가
l “더니즈의 관점에서는”은 잘못된 번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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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음(2013년, 339쪽) : 어떻게 보면 전철기를 조작하여 한 명을 희생시킴으로써 다섯 명을 구하는 더니즈의 궁지나 이 해결책이나 별 다를 것이 없어 보이지만, 뚱뚱한 남자를 다리에서 미는 것이 부도덕한 일이라는 데 거의 모든 사람이 동의할 것이다.
Dawkins(224쪽) : Immanuel Kant famously articulated the principle that a rational being should never be used as merely an unconsenting means to an end, even the end of benefiting others.
이한음(2007년, 340쪽) : 익히 알려져 있듯이 이마누엘 칸트는 이성적인 존재는 동의를 받지 않은 수단을 목적(설령 그 목적이 남들에게 혜택을 주는 것이라고 해도)에 사용해서는 결코 안 된다고 그 원리를 명쾌하게 설명했다.
이덕하 : 익히 알려져 있듯이 임마누엘 칸트는 이성적 존재가 동의도 없이 단순히 어떤 목적(설령 그 목적이 남들에게 혜택을 주는 것이라 해도)에 대한 수단으로 이용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는 원칙을 표명했다.
l 여기서 “이성적 존재”는 주체가 아니라 객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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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음(2013년, 340쪽) : 익히 알려져 있듯이 이마누엘 칸트는 이성적인 존재를 동의 없이 어떤 목적(설령 그 목적이 남들에게 혜택을 주는 것이라고 해도)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해서는 결코 안 된다고 그 원리를 명쾌하게 설명했다.
Dawkins(225쪽) : Denise diverts the trolley from ploughing into the five people, and the unfortunate casualty on the siding is ‘collateral damage’, to use the charmingly Rumsfeldian phrase.
이한음(2007년, 341쪽) : 더니즈가 다섯 명을 구하기 위해 화차의 방향을 돌릴 경우, 지선에 있는 불운한 희생자는 ‘부수적 피해’다.
이덕하 : 더니즈는 다섯 명에게 돌진하지 못하도록 화차를 돌렸으며 지선에서 발생한 불운한 희생은 럼스펠드식의 매혹적인 문구(charmingly Rumsfeldian phrase)를 쓰자면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이다.
l “charmingly Rumsfeldian phrase”는 럼스펠드가 이라크 전에서 미군의 폭격으로 발생한 대규모 민간인 희생자들을 ‘부수적 피해’일 뿐이라고 말한 것을 비꼰 말이다. 이것은 전쟁광 부시 정부에 대한 도킨스의 태도를 보여주는 말이다(도킨스도 알고 보면 나름대로 진보적이다). 그런데 이 구절을 빼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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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음(2013년, 341쪽) : 더니즈가 다섯 명을 구하기 위해 화차의 방향을 돌릴 경우, 지선에 있는 불운한 희생자는 잘난 럼스펠드의 말을 빌리자면 ‘부수적 피해’다.
Dawkins(225쪽) : Of particular interest for this book, Hauser also wondered whether religious people differ from atheists in their moral intuitions.
이한음(2007년, 342쪽) : 그 책에서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하우저가 종교인들과 무신론자들의 종교적 직관이 다른지 살펴본 대목이다.
l “moral intuitions”는 “종교적 직관”이 아니라 “도덕적 직관”이다. 단순한 실수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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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음(2013년, 342쪽) : 그 책에서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하우저가 종교인들과 무신론자들의 도덕적 직관이 다른지 살펴본 대목이다.
--- 신이 없다면 무엇 때문에 선하려 애쓰겠는가? ---
Dawkins(226쪽) : That’s not morality, that’s just sucking up, applepolishing, looking over your shoulder at the great surveillance camera in the sky, or the still small wiretap inside you head, monitoring your every move, even your every base thought.
이한음(2007년, 344쪽) : 그것은 하늘에 있는 거대한 감시 카메라를 돌아보면서 혹은 당신의 머리에 든 아주 작은 도청 장치에 대고 아첨하고 비위를 맞추는 것이지 도덕이 아닙니다.
l “monitoring your every move, even your every base thought(당신의 모든 움직임을, 심지어 당신의 모든 비열한 생각까지도 감시하는)”을 빼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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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음(2013년, 344쪽) : 그것은 당신의 모든 움직임, 심지어 온갖 속된 생각까지 감시하는 하늘의 거대한 감시 카메라를 돌아보면서 혹은 당신의 머리에 든 아주 작은 도청 장치에 대고 아첨하고 비위를 맞추는 것이지 도덕이 아닙니다.
Dawkins(228쪽) : I dearly want to believe that I do not need such surveillance – and nor, dear reader, do you.
이한음(2007년, 346쪽) : 나는 그런 감시가 필요 없다고 진심으로 믿고 싶다. 그리고 친애하는 독자도 그럴 것이다.
이덕하 : 내게는 그런 감시가 필요 없다고[감시를 안 해도 도덕적으로 행동할 것이라고] 또한 친애하는(dear) 독자 여러분들도 마찬가지라고 나는 간절히(dearly) 믿고 싶다.
l “그리고 친애하는 독자도 그럴 것이다”는 “친애하는 독자들도 그렇게 믿고 싶을 것이다”를 뜻하는 것 같다. 여기서는 친애하는 독자들도 착할 것이라고 도킨스가 믿고 싶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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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음(2013년, 346쪽) : 나는 그런 감시가 필요 없다고 진심으로 믿고 싶다. 그리고 친애하는 독자도 그럴 것이라고.
Dawkins(228쪽) : Perhaps I, too, am a Pollyanna to believe that people would remain good when unobserved and unpoliced by God.
이한음(2007년, 347쪽) : 아마 신이 지켜보지 않고 치안 유지도 안 될 때조차도 사람들이 선한 상태로 남아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는 점에서 나 역시 극도로 낙천주의자일 것이다.
이덕하 : 신이 지켜보지도 않고 단속하지도 않는다(unpoliced by God) 해도 사람들이 선한 상태로 남아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면 아마 나 역시 맹목적인 낙천주의자(Pollyanna)일 것이다.
l “치안 유지도 안 될”은 세속적 치안을 뜻한다. 하지만 여기서는 신에 의한 단속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l 이 문장에서 “… am … to …”가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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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음(2013년, 347쪽) : 아마 신이 지켜보지 않고 치안 유지도 안 될 때조차도 사람들이 선한 상태로 남아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는 점에서 나 역시 극도로 낙천주의자일 것이다.
Dawkins(228쪽) : Why didn’t the fear of God restrain them when earthly policemen were temporarily removed from the scene?
이한음(2007년, 347쪽) : 어째서 그들은 속세의 경찰이 잠시 눈앞에서 사라졌다고 해서 신까지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일까?
이덕하 : 세속적인 경찰들이 잠시 눈앞에서 사라졌을 때 어째서 신에 대한 두려움이 그들을 억제하지 않은 것일까?
l 엄밀히 말하면 “신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라 “신에 대한 두려움이 악행을 막지 못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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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음(2013년, 347쪽) : 어째서 그들은 속세의 경찰이 잠시 눈앞에서 사라졌다고 해서 신까지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일까?
Dawkins(228쪽) : People say we need religion when what they really mean is we need police.
이한음(2007년, 347쪽) : 사람들은 실제로는 경찰이 필요할 때 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덕하 : 사람들이 ‘우리에게는 종교가 필요하다’고 말할 때 사람들이 실제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우리는 경찰이 필요하다’이다.
l ‘religion’은 ‘신’이 아니라 ‘종교’다.
l “what they really mean”을 얼버무려서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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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음(2013년, 347쪽) : 사람들은 실제로는 경찰이 필요할 때 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Dawkins(230쪽) : Dan Dennett, in Breaking the Spell, sardonically comments, not on Harris’s book in particular, but on such studies generally:
이한음(2007년, 349쪽) : 대니얼 데닛은 《주문 깨기》에서 해리스의 책이 아니라 그런 연구 전반에 대해 야유를 보낸다.
이덕하 : 대니얼 데닛(Dan Dennett)은 《주술에서 벗어나자(Breaking the Spell)》에서 해리스(Harris)의 책을 특별히 지칭해서가 아니라 그런 연구 전반과 관련하여 냉소적으로 논평했다.
l 데닛은 그런 연구들을 비난한 것이 아니다. 아무리 연구해도 종교인들이 더 도덕적이라는 것이 입증되지 않는다는 점에 대해 냉소적으로 말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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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음(2013년, 349쪽) : 대니얼 데닛은 《주문 깨기》에서 해리스의 책이 아니라 그런 연구 전반에 대해 야유를 보낸다.
Dawkins(230쪽) : Most thoughtful people would agree that morality in the absence of policing is somehow more truly moral than the kind of false morality that vanishes as soon as the police go on strike or the spy camera is switched off, whether the spy camera is a real one monitored in the police station or an imaginary one in heaven.
이한음(2007년, 349쪽) : 가장 사려 깊은 사람들은 치안 유지 활동이 없을 때의 도덕이, 경찰이 파업을 하거나 감시 카메라가 꺼지자마자 사라지는 일종의 가짜 도덕보다 다소 더 도덕적이라는 데 동의할 것이다. 감시 카메라가 경찰서에서 운영하는 진짜 카메라든 하늘에 있는 가상의 것이든 말이다.
l “Most thoughtful people”은 “가장 사려 깊은 사람들”이 아니라 “사려 깊은 사람들 거의 대부분”이다.
l 신의 감시까지도 포괄하는 말이기 때문에 “policing”은 “치안 유지 활동”보다는 “단속”이나 “감시 감독” 등으로 번역하는 것이 낫다. 신의 감시를 “치안 유지 활동”이라고 칭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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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음(2013년, 349쪽) : 대부분의 사려 깊은 사람들은 치안 유지 활동이 없을 때의 도덕이, 경찰이 파업을 하거나 감시 카메라가 꺼지자마자 사라지는 일종의 가짜 도덕보다 다소 더 도덕적이라는 데 동의할 것이다. 감시 카메라가 경찰서에서 운영하는 진짜 카메라든 하늘에 있는 가상의 것이든 말이다.
Dawkins(231쪽) : Good is good and bad is bad, and we don’t mess around deciding particular cases by whether, for example, somebody suffers.
이한음(2007년, 351쪽) : 좋은 것은 좋은 것이고 나쁜 것은 나쁜 것이며, 우리는 예를 들어 누가 고통스러워하는지와 같은 특정한 사례를 판단할 때 머뭇거리지 않는다.
이덕하 : 선은 선이며 악은 아니다. 우리는 어떤 특정한 사례를 누군가가 고통을 당하는가 등의 기준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l 이 문장 특히 “mess around”의 정확한 뜻은 잘 모르겠다. 어쨌든 이한음 씨의 번역에는 문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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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음(2013년, 351쪽) : 선은 선이고 악은 악이며, 특정한 사례를 판단할 때 누가 고통을 겪는가 같은 것들을 고려하면서 판단을 미적거리지 않는다.
l “선은 선이고 악은 악이기에 우리는 특정한 사례에 대한 도덕적 판단을 내릴 때 예컨대 누군가 고통을 받는지 여부 같은 기준에 의존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을 수 있다.”라는 뜻으로 보인다. 신을 믿으면 예컨대 행복이나 고통의 크기로 선악을 판단하는 공리주의 같은 어설픈 기준이 아니라 신의 말씀이라는 절대적 기준으로 선악에 대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말인 것 같다. 그렇다면 “... 고려하면서 판단을 미적거리지 않는다”라는 이한음의 번역은 틀렸다고 보기 힘들다.
l Even if it were true that we need God to be moral, it would of course not make God's existence more likely, merely more desirable (many people cannot tell the difference). But that is not the issue here. My imaginary religious apologist has no need to admit that sucking up to God is the religious motive for doing good. Rather, his claim is that, wherever the motive to be good comes from, without God there would be no standard for deciding what is good. We could each make up our own definition of the good, and behave accordingly. Moral principles that are based only upon religion (as opposed to, say, the 'golden rule', which is often associated with religions but can be derived from elsewhere) may be called absolutist. Good is good and bad is bad, and we don't mess around deciding particular cases by whether, for example, somebody suffers. My religious apologist would claim that only religion can provide a basis for deciding what is good.
Dawkins(231쪽, 주) : However, the noted philosopher A. C. Grayling has plausibly argued(New Humanist, July-Aug. 2006) that, although Kant publicly went along with the religious conventions of his time, he was really an atheist.
이한음(2007년, 351쪽, 주) : 그러나 저명한 철학자 A. C. 그레일링(A. C. Grayling)은 비록 칸트가 종교 집회에 공개적으로 참석하곤 했지만 사실상 무신론자였다고 설득력 있는 주장을 펼친다(New Humanist, July-Aug. 2006)
이덕하 : 하지만 저명한 철학자 그레일링(A. C. Grayling)은 비록 칸트가 공개적으로는 당시의 종교적 관습들에 따랐지만 실제로는 무신론자였다고 그럴 듯하게 주장했다(New Humanist, July-Aug. 2006).
l 여기서 ‘conventions’는 ‘집회’가 아니라 ‘관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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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음(2013년, 351쪽, 주) : 그러나 저명한 철학자 A. C. 그레일링(A. C. Grayling)은 비록 칸트가 공개적으로는 당시의 종교 관습을 따랐지만 사실상 무신론자였다고 설득력 있는 주장을 펼친다(New Humanist, July-Aug. 2006)
Dawkins(232쪽) : Is it always wrong to make love to a member of your own sex?
이한음(2007년, 352쪽) : 동성끼리 사랑하는 것이 언제나 잘못된 일일까?
이덕하 : 동성과 성교하는 것이 언제나 잘못된 일일까?
l “make love to”는 ‘사랑’이 아니라 ‘성교’를 뜻한다.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은 동성 간의 사랑보다는 성교에 비난의 초점을 맞춘다. 성경에는 이웃(물론 동성인 이웃도)을 사랑하라는 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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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음(2013년, 352쪽) : 동성끼리 사랑하는 것이 언제나 잘못된 일일까?
Dawkins(233쪽) : A soldier who allows his own thoughts of consequentialist morality to persuade him not to go over the top would likely find himself court-martialled and even executed.
이한음(2007년, 354쪽) : 결과론적 도덕을 고심한 끝에 참전하지 않겠다고 단호히 결정한 군인은 군법회의에 설 가능성이 높고 더 나아가 처형될 수도 있다.
l “go over the top”은 “참전하다”가 아니라 “돌격하다”이다. 여기서는 이미 참전한 사람이 적군을 죽이라(돌격하라)는 명령에 불복종한 경우를 말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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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음(2013년, 354쪽) : 결과론적 도덕을 고심한 끝에 참전하지 않겠다고 단호히 결정한 군인은 군법회의에 설 가능성이 높고 더 나아가 처형될 수도 있다.
Dawkins(233쪽) : The next chapter will demonstrate that, in any case, people who claim to derive their morals from scripture do not really do so in practice. And a very good thing too, as they themselves, on reflection, should agree.
이한음(2007년, 354쪽) : 다음 장에서는 자신들의 도덕을 성서로부터 이끌어낸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실제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줄 것이다. 그들 스스로도 잘 생각해보면 그런 사실에 동의해야 할 것이다.
이덕하 : 어쨌든 다음 장에서는 자신들의 도덕을 성서로부터 이끌어낸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실천에서는 실제로 그러지 않음을 보여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매우 좋은 일이며 그들 자신들도 깊이 생각해 본 다음에는 이것이 매우 좋은 일임을 인정할 것이다.
l “a very good thing”을 빼먹었다. 기독교인이 실제로는 성경으로부터 도덕을 이끌어내지 않는 것이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라는 뜻이다. 만약 그들이 진짜로 성경으로부터 도덕을 이끌어낸다면 이웃 나라 남자들을 몽땅 죽이고 여자들을 전리품으로 챙길지도 모르니까 말이다(민수기 3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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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음(2013년, 354쪽) : 다음 장에서는 자신들의 도덕을 성서로부터 이끌어낸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실제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좋은 일이며, 그들 스스로도 잘 생각해 보면 그렇다고 동의해야 할 것이다.
l 나의 “인정할 것이다”보다는 이한음의 “동의해야 할 것이다”가 “should agree”의 더 엄밀한 번역이다.
첫댓글 이덕하 님의 위 번역 비판글에 대해 한 가지 논평을 하려고 답글 쓰기 단추를 눌렀더니 답글 쓰기 설정이 안 돼 있더군요.
또한 제 논평문의 길이와 편집 상태 때문에 이 댓글란에 그것을 그대로 써올리기도 매우 불편하군요. 다음(Daum) 측의 “카페” 댓글란 설정이 너무 조악스럽고 구시대적이기 때문입니다.
즉 글자수 설정이 너무 적고요. 웹 페이지 작성 고수가 아니면 편집을 자유자재로 할 수도 없죠. 불편하기 짝이 없는 옛날식 웹 디자인, 고칠 때가 됐는데요.
그래서 이덕하 님의 위 번역 비판에 대한 한 가지 촌평을 저기 《번역과 번역 비판》 게시판에 올리기로 하겠습니다. 독자분들께서는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1:51)
그리고 《번역과 번역 비판》 게시판에 올리는 제 논평은 이미 《아크로》(http://theacro.com)의 문화/예술/과학 게시판에 올린 것이란 사실을 알려드립니다.
이덕하 님이 위 번역 비판글을 아크로에도 올렸기 때문에 제가 그곳에 논평 댓글을 올렸던 것입니다.
이덕하 님의 그 많은 번역 비판글에 대해, 저 또한 아크로에서 (qualia라는 필명으로) 적지 않은 논평을 했었더랬습니다.
그러나 이제까지 제가 아크로에 올린 논평 댓글을 이곳 《진화심리학》에 가져와본 적은 없었었는데요.
앞으로는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마다 이곳에도 올리는 방향으로 하겠습니다. 독자분들께서는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제가 이덕하 님의 위 번역 비판글에 대해 논평한 두 번째 글을 “번역과 번역 비판” 게시판에 올렸습니다.
첫 번째 논평에서는 “조악한 번역”과 “원문의 뉘앙스를 살리지 못한 번역”에 관해서 논했는데요.
이번 두 번째 논평에서는 “원문 속의 호응 관계를 살리지 못한 번역”과 “어설픈 직역투 번역”에 관해 논했습니다. 글 제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독자분들께서는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덕하 님의 번역 비판 「개선된 『만들어진 신(이한음 옮김)』의 번역 - 6장」에 대한 논평 2 : 호응 관계 번역
http://cafe.daum.net/Psychoanalyse/NSho/1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