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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사도(이한음 옮김)』 번역 비판 - 1장의 1절
『악마의 사도 – 도킨스가 들려주는 종교, 철학 그리고 과학 이야기』, 리처드 도킨스 지음, 이한음 옮김, 바다출판사,
2005
『A Devel’s Chaplain –
Reflections on Hope, Lies, Science, and Love』, Richard Dawkins, Mariner Books, 2004
Dawkins
(8쪽) : What a book a
Devil’s Chapilain might write on the clumsy, wasteful, blundering low and
horridly cruel works of nature.
이한음 (22쪽) : 자연의 굼뜨고 헤프고 서툴고 미개하고 무시무시하게 잔혹한 활동들을 책으로 쓴다면 ‘악마의 사도’라는 제목이 딱 맞지 않을까.
a. 이 문장의 정확한 뜻은 잘 모르겠지만 이한음
씨의 번역에 문제가 있는 것은 확실하다. “‘악마의 사도’라는
제목이 딱 맞지 않을까”는 엉터리 번역이다.
b. ‘clumsy’에는 ‘굼뜨고’라는 뜻이 없다.
Dawkins
(9쪽) : With what other
than condemnation is a person with any moral sense supposed to respond to a
system in which the ultimate purpose in life is to be better than your neighbor
at getting genes into future generations, in which those successful genes
provide the message that instructs the development of the next generation, in
which the message is always ‘exploit your environment, including your friends
and relatives, so as to maximize our genes’ success’, in which the closest
thing to a golden rule is ‘don’t cheat, unless it is likely to provide a net
benefit.’?
이한음 (24쪽) : 도덕관념을 가진 사람이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미래 세대에게 유전자를 물려주는 일을 이웃보다 더 잘하는 것이고, 그 성공한 유전자들이 다음 세대의 발달을 규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그
내용이 늘 ‘자기 유전자의 성공을 최대화할 수 있도록 친구와 친척까지 포함해서 자신의 환경을 활용하라’는 것이며, 성경의 황금률과 아주 흡사한 ‘손익을 따져 이익이 돌아올 것 같지 않으면 속이지 말라’는 행동 규범을
지닌 체계를 접했을 때, 보일 수 있는 반응이 비난 말고 또 있을까?
a. “성경의 황금률과 아주 흡사한 ‘손익을 따져 이익이 돌아올 것 같지 않으면 속이지 말라’는 행동 규범을
지닌”은 문제가 있는 번역이다. 여기서 황금률(golden rule)은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마태복음 7:12, 공동번역)”를 말한다. 이 성경 구절은 ‘손익을
따져 이익이 돌아올 것 같지 않으면 속이지 말라’와 “아주
흡사한” 말이 아니다. “기껏 흡사하다는 것이 ‘손익을 따져 이익이 돌아올 것 같지 않으면 속이지 말라’이다”라는 식으로 번역해야 한다.
Dawkins
(9쪽) : The most
evolution could produce would be the idea that ‘might makes right.’
이한음 (25쪽) : 진화가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옳을 수도 있다’는 개념 뿐일 것이다.
a. ‘might
makes right’는 ‘옳을 수도 있다’가 아니라 ‘힘이 곧 정의이다’이다.
Dawkins
(10쪽) : Wells’s
colleague Julian Huxley downplayed, in effect, the pessimism of the Devil’s
Chaplain as he tried to build an ethical system on what he saw as evolution’s
progressive aspects.
이한음 (26쪽) : 웰스의 동료인 줄리언 헉슬리는 진화의 진보적인 측면이라고 나름대로 생각한 것들을 토대로 삼아 윤리 체계를 세우려는
시도를 했는데, 그럼으로써 악마의 사도라는 염세주의를 사실상 경시한 셈이 되었다.
a. “the
pessimism of the Devil’s Chaplain”은 “악마의 사도라는 염세주의”가 아니라 “악마의 사도의 비관주의[염세주의]”이다.
Dawkins
(10쪽) : I prefer to
stand up with Julian’s refreshingly belligerent grandfather T. H. Huxley, agree
that natural selection is the dominant force in biological evolution unlike
Shaw, admit its unpleasantness unlike Julian, and, unlike Wells, fight against
it as a human being.
이한음 26(쪽) : 나는 쇼와 달리 생물 진화의 주된 힘이 자연선택임을 인정하고, 줄리언과
달리 그것의 불쾌함을 받아들이고, 웰스와 달리 인간으로서 그것에 맞서 싸우고자 했던 통쾌할 정도로 호전적인
인물인 T. H. 헉슬리의 관점을 좋아한다.
a. 원문에 있는 ‘grandfather’의 번역이 빠졌다.
Dawkins
(10쪽) : But at the same
time as I support Darwinism as a scientist, I am a passionate anti-Darwinian
when it comes to politics and how we should conduct our human affairs.
이한음 (27쪽) : 나는 과학자로서 다윈주의를 지지하지만 다윈주의를 정치나 인간사를 처리하는 문제에 접목시키려 할 때는 열렬한 반다윈주의자가
된다.
a. 원문에는 “다윈주의를
… 접목시켜려
할 때”라는 말이 없다. 그냥 “정치나 인간사를 처리하는 문제와 관련해서는”이다. 이한음 씨는 이 문장의 “it”가 “Darwinism”을 받는 것으로 오해한 것 같다.
Dawkins
(11쪽) : My previous
books, such as The Selfish Gene and The Blind Watchmaker, extol the
inescapable factual correctness of the Devil’ Chaplain (had Darwin decided to
extend the list of melancholy adjectives in the Chaplain’s indictment, he would
very probably have chosen both ‘selfish’ and ‘blind’).
이한음 (27쪽) : 『이기적 유전자』와 『눈먼 시계공』 같은 이전의 저서는 악마의 사도가 필연적으로 옳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찬양하고
있다(다윈이 사도라는 단어에 우울한 형용사를 덧붙이겠다고 결심했다면,
‘이기적’과 ‘눈먼’이라는 말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a. 원문에 있는 ‘factual’를 빼놓고 번역했다. 이 단어를 빼먹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도킨스는 여기서 ‘사실’의
문제와 ‘당위’의 문제를 날카롭게 구분하기 때문이다.
b. ‘indictment(비난)’를
‘단어’라는 말로 번역했다.
“사도라는”도 잘못된 번역이다. “사도의 [자연에 대한] 비난”이다.
Dawkins
(11쪽) : Yes, man can be
vile too, but we are the only potential island of refuge from the implications
of the Devil’s Chaplain: …
이한음 (28쪽) : 그렇다, 인간은 타락할 수도 있지만 악마의 사도라는 말에 함축된 의미에서
벗어날 수 있는 피난처가 될 수 있는 유일한 섬이기도 하다.
a. 여기서도 “사도라는”이 아니라 “사도의”다.
Dawkins
(11쪽) : Exult even more
that the clumsy and cruel algorithm of natural selection has generated a
machine capable of internalizing the algorithm, setting up a model of itself –
and much more – in microcosm inside the human skull.
이한음 (29쪽) : 자연선택이라는 굼뜨고 잔혹한 알고리듬이 인간의 두개골 안에 있는 미시세계 속에 자신 – 그리고 훨씬 더 많은 것들 – 의 모형을 구축함으로써 그 알고리듬을
내면화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들어낸 것은 더욱더 기쁜 일이다.
a. 여기서 기뻐하는 것은 이 문장의 앞 구절을
볼 때 사도다. 번역본에서는 기뻐하는 주체가 애매하게 처리되어 있다.
b. “and much
more”의 번역에도
문제가 있다. “자신”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의 모형을 구축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니라. “모형을 만들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c. “구축함으로써”에서 “으로써”도 이상한
번역이다.
Dawkins
(12쪽) : Man is a
product of nearly three billion years of evolution, in whose person the
evolutionary process has at last become conscious of itself and its
possibilities.
이한음 (30쪽) : 인간은 거의 30억 년에 걸친 진화의 산물이며, 진화 과정이 마침내 자신의 가능성과 스스로를 의식함으로써 나온 것이 바로 인간이다.
a. “의식함으로써”에서 “으로써”는 이상한
번역이다.
Dawkins
(12쪽) : In giving rise
to man, the evolutionary process has, apparently for the first and only time in
the history of the Cosmos, become conscious of itself.
이한음 (31쪽) : 진화 과정은 우주의 역사상 처음이자 유일하게 자신을 의식함으로써 인류를 탄생시켰다.
a. 여기에서도 “의식함으로써”에서 “으로써”는 이상한 번역이다.
Dawkins
(12쪽) : …, Stand tall,
Bipedal Ape.
이한음 (31쪽) : 두발의 유인원이며, 똑바로 서라.
a. “Stand
tall”은 “자신감을 가져라”라는 뜻이다 “똑바로
서라”하면 “똑바로 살아라”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Dawkins
(13쪽) : There is more
than just grandeur in this view of life, bleak and cold though it can seem from
under the security blanket of ignorance.
이한음 (32쪽) : 비록 무지라는 두꺼운 담요 밑에서 보면 황량하고 냉정하게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이런 생명관에는 장엄함 이상의 것이 있다.
a. “security
blanket”은
“유아가 심리적 안정감을 얻기 위해 껴안는 담요”를 뜻한다. 그냥 “두꺼운 담요”라고
번역하면 안된다. ‘위안’이라는 뜻을 어떻게든 살려 주거나
원어를 병기해야 한다.
Dawkins
(13쪽) : There is deep
refreshment to be had from standing up full-face into the keen wind of
understanding:
이한음 (32쪽) : 이해라는 살을 에는 바람을 정면으로 맞음으로써 얻은 새로운 깊은 통찰이 있다.
a. ‘refreshment(상쾌함)’에는
‘통찰’이라는 뜻이 없다.
Dawkins
(13쪽) : Safety and
happiness would mean being satisfied with easy answers and cheap comforts,
living a warm comfortable lie.
이한음 (32쪽) : 안전과 행복은 따뜻하고 편안한 상태에서 살면서 쉬운 해답과 값싼 위안에 만족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a. “live a lie(바르지 못하게 살다)”를 “… 상태에서 살면서”라고 번역하면 안된다.
Dawkins
(13쪽) : To set against
that risk, you stand to gain ‘growth and happiness’; the joy of knowing that
you have grown up, faced up to what existence means; to the fact that it is
temporary and all the more precious for it.
이한음 (32쪽) : 그 위험에 맞서려면 ‘성장과 행복’을
얻을 각오를 해야 한다. 당신이 성장해서, 존재가 무슨 의미인지
대면함으로써, 그것이 덧없는 것이며 그렇기에 더더욱 소중한 것이라는 사실에 대면함으로써 알게 되는 기쁨과
말이다.
a. “그 위험에 맞서려면 ‘성장과 행복’을 얻을 각오를 해야 한다.”는 잘못된 번역이다. 위험에 맞선 것을 성장과 행복으로 보상받는다는
말이다.
b. 성장했다는 것 그리고 대면했다는 것 자체에서
오는 기쁨이 아니라 자신이 성장했다는 것을 그리고 대면했다는 것을 아는(knowing) 것에서 오는
기쁨이다. 약간 뉘앙스가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