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경쟁은 진화론의
승리 이후 극히 자명한 사실로 간주되어 왔고, 오늘날까지도 ‘경쟁 지상(至上)주의자들’과 ‘무한경쟁
반대론자들’ 간에 이를 둘러싸고 치열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169쪽~170쪽)
생존 경쟁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번식 경쟁은 자연 선택 이론 즉 과학 이론의 문제다. 이것은 과학의 교권에 속한다. 반면 경쟁 지상주의는 경제 체제의
문제로 결국 도덕 철학의 교권에 속한다. 박성관은
이 두 가지를 구분하지 못할 지도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연 선택 이론을 받아들이면서 경쟁 지상주의에 반대할 수 있다. 박성관도 자연주의적 오류라는 말은
들어보기는 했을 것 같은데……
현대의 생물학자들은
대부분 자연환경의 변화를 중심으로 진화를 이해한다. 생물은 기본적으로 자연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는데, 이것이 정태적인 결과 대신 역동적인 진화로 계속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자연환경 자체가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다윈의 접근법은 이런 태도와는 매우 다른 것이다. 우선
첫째로 자연환경의 변화 자체는 진화에 있어서 거의 의미를 생산하지 못한다. 다윈이 여러 차례 강조했듯이, 환경의 직접적 작용은 생물에게 미미한 변화만을 야기할 수 있다. 둘째, 그 외의 자연환경이란 실은 어떤 생물이 다른 생물들과 맺는 관계와 분리될 수 없다. 한 생물의 환경에는 무기적 환경도 있지만 수많은 동식물들이 조성하는 다양한 생태계야말로 매우 중요한 환경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셋째, 진화에서 가장 중요한 측면은 외적인
자연환경보다는 한 생물이 같은 종 내의 개체들이나 다른 종의 개체들과 맺는 관계다. 이런 몇 가지 점에서
다윈은 외적인 환경을 중시하는 기존의 창조론적 과학자들 및 진화론자들과 결정적으로 갈라졌다. 다윈의
이러한 진화관과 현대 생물학의 진화관 중 어느 것이 더 적합한지는 차치하고, 우선은 양자가 기본적인
관점에서 크게 다르다는 점만 기억해 두기로 하자. (176쪽, 주12)
박성관은 현대 생물학자들이 무생물로
이루어진 외적 환경만 중시한다고 믿는 모양이다. 웃기는 얘기다. 치타가
영양 같은 동물을 잡아 먹기 위해 빨라졌다는 설명, 기린이 높이 있는 잎을 먹기 위해 목이 길어졌다는
설명, 남자가 강간을 하는 것에 대한 방어로 강간을 당하면 괴로워하도록 여자가 진화했다는 설명, 기생 생물과 숙주 사이에서 벌어지는 공진화, 친족 선택 이론, 상호적 이타성 이론, 핸디캡 원리,
빨간 왕비 효과(red queen effect), …… 금방 나열한 이 모든 설명들은 모두 같은 종이든 다른 종이든 어떤 생물들이 다른 생물의 진화에 끼친 영향을 고려한다. 현대 생물학자들이 유기적 환경을 고려한 사례는 수도 없다. 오직
박성관의 머리 속에서 서식하는 현대 생물학자들만 그것을 무시한다.
기이하게도 다윈은
평균적으로 보아 가장 부모를 닮지 않은 개체들, 상궤에서 벗어난 개체들, 다시 말해 가장 이상(異常)한
개체들이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단기적으로 보면 부모를 많이 닮을수록 생존과 번식에서 유리할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결국 부모를 가장 덜 닮은 극단적인 개체들이 생존과 번식에서 승리를
거둔다는 것이 다윈의 생각이었다. (178쪽)
박성관 말대로라면 다윈은 기형아들이
가장 잘 번식할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내가 다윈의 저작을 많이 읽어보지는 않아서 다윈이 그런 이야기를
안 했다고 장담은 못한다. 하지만 그런 기이한 이야기를 했을 것 같지는 않다. 다른 곳에서는 지겹도록 다윈의 말을 직접 인용하던 박성관은
기이하게도 이 대목에서는 다윈의 말을 전혀 인용하지 않고 있다. 다윈의 어떤 말을 위와 같이 기이하게
해석하는 것일까? 아니면 순전히 박성관의
기이한 창작인가?
우리는 이 논쟁에서
어느 한쪽을 택하기 전에, 과연 개체에서 출발하는 것이 자연스러운가를 따져 봐야 한다. …… 단적으로 말해 식물이 광합성을 하지
않으면 대부분의 생물이 한시라도 살 수 없는 것 아닌가! …… 우리에게는 ‘함께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깊은 성찰이 많이 부족한 게 아닐까! 특히 개체 간의 경쟁, 나아가 유전자들 간의 경쟁을 핵심적 설명원리로
삼고 있는 현대 생물학은 그러하다. (182쪽)
여기서 박성관은 가이아 가설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뒤에 <이 책을 쓰면서 만난 책들>이라는 곳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생명도 중요하지만
지구 자체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도 소중하다. 그리고 이 분야라면 역시나 제임스 러브록이다. 오래전에 나온 그의 책 『가이아: 지구의 체온과 맥박을 체크하라』(김기협 옮김, 김영사, 1995)가
좋은데, 도서관에서나 빌릴 수 있는 상황이다. 현재 시판
중인 책으로는 『가이아의 복수』(이한음 옮김, 세종서적, 2008)가 좋다.
(908쪽)
실제로 박성관이 가이아 가설까지
지지하는지 여부는 내가 읽지 않은 이 책의 나머지 부분을 읽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진화 생물학에
대한 쓰레기 같은 박성관의 책에 가이아 가설만큼 어울리는 쓰레기 가설도
없어 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내가 그런 것까지 알아내는 수고를 할 생각은 없다. 지금까지 이 쓰레기 같은 책을 읽고 비판하는 데에 낭비한 시간도 너무 아깝다.
이젠 진짜로 이 쓰레기와 싸우는 일을 그만해야 할 것 같다.
2010-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