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적으로는
라마르크(Lamarck)의 용불용설을 다윈의 자연선택설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인 사례로 기린의 목이 긴 이유는 높은 나무에 달린 열매를 따먹기 위해서라는 등의 잘못된 이야기들이다.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 14쪽, 최종덕)
아직까지 기린의 목이 매우 길어진 이유를 확실히 밝혀낸 것 같지는 않다. 나는
“높은 나무에 달린 잎이나 열매를 따 먹기 위해서”, “짝짓기를 위한 싸움에서
목을 사용하기 위해서”, “공작의 긴 꼬리처럼 긴 목을 자랑해서 짝짓기를 많이 하기 위해서”와
같은 그럴 듯한 설명들을 본 적이 있다. 짝짓기를 위한 무기 또는 짝짓기를 위한 뽐내기의 경우에는 보통
수컷이 암컷에 비해 두드러진다. 무기로 쓰이는 사슴의 뿔도 수컷이 암컷에 비해 크고, 뽐내기에 쓰이는 공작의 꼬리도 수컷이 암컷에 비해 더 길고 화려하다. 하지만
기린의 목의 경우에는 암수의 차이가 별로 없다. 이런 면에서 높은 곳에 있는 먹이를 위한 것이라는 가설이
더 그럴 듯해 보인다.
최종덕이 “높은
나무에 달린 열매를 따먹기 위해서”라는 설명이 왜 잘못된 이야기라고 말하는지 모르겠다.
“목이 더 길었던 기린이 높은 나무에 달린 열매를 더 잘 따먹었기 때문에 더 잘 번식했으므로 기린이 목이 길어지는 방향으로
진화했다”라는 설명은 자연선택을 적용한 설명이다. 이런 장황한 설명을 진화 생물학자들은
흔히 “높은 나무에 달린 열매를 따먹기 위해서”라고 줄여서 말한다. 이런 표현이 초보자에게
오해의 소지가 있긴 하지만 잘못된 이야기라고 볼 수는 없다.
과거에는 영장류
중에서 침팬지 계통과 호모사피엔스가 엄청난 차이가 나는 줄 알고 있었죠. 유인원 중에는 침팬지와 고릴라, 보노보, 오랑우탄이 있는데, 알고
봤더니 보노보와 침팬지 사이의 DNA 차이보다 보노보와 인간 사이의 DNA
차이가 더 적은 거예요. 신의 창조물로서 인간의 존엄성을 주장하는 분들은 이런 결과에 대해
분노를 터뜨리지만 이건 엄연한 사실이죠. 그러니까 종과 종 사이의 구분이라는 게 무의미해지는 거예요.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 60쪽, 최종덕)
일반 침팬지(common chimpanzee, 그냥 침팬지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와 보노보(bobono chimpanzee)는
약 3백만 년 전쯤에 갈라졌다. 침팬지와 인간은 약 6백만 년 전쯤에 갈라졌다. 따라서 “보노보와
침팬지 사이의 DNA 차이보다 보노보와 인간 사이의 DNA 차이가
더 적”다는 말은 상당히 이상하다. 유전체(genome)의
특정 부분만 보면 그런 경우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전체적으로 비교한다면 그런 일은 없을 것 같다.
단순한 실수일까? “고릴라와 침팬지
사이의 DNA 차이보다 침팬지와 인간 사이의 DNA 차이가
더 적”다고 이야기하려고 했던 것인데 실수를 한 것일까? 아니면 이번에도 진화론에 대한
최종덕의 무식이 활개를 친 것일까? 아니면 진짜로 그런 연구가 있었던 것일까?
그건 그렇고, 도대체 그런 이야기에서 왜 “종과
종 사이의 구분이라는 게 무의미해”진다는 이야기가 튀어나오는 것일까? 생물학적
인종 개념이 성립할 수 없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종 구분이 무의미해진다는 말은 처음 들어보는 것 같다. 이번에도
무언가 다른 말을 하려고 했는데 말실수를 했을 뿐인가?
‘벌은
과연 아주 조화로운 공동체를 이루면서 사는가?’ 그럴 것 갈지는 않더군요. 벌집 안에서 안전하게 사는[‘자는’의 오자인 듯] 벌이 있는 반면, 벌집 밖에서 불안정하게 자는 벌도 있잖아요. 저는 곤충학자는 아니지만
그 무리에도 명령을 내리는 녀석이 따로 있는 것 같아요. 어떤 커뮤니케이션이든 명령체계는 다 있을 거예요. 그런 체계가 없으면 사회를 이루고 살 수 없을 테니까요. 제 이야기의
요점은 제가 관찰한 벌들의 생물학적 체계를 설명하려는 게 아니라 단지 인간의 기존 관념들을 곤충에 대입해서 사람들 마음대로 곤충사회를 설명하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는 겁니다.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 85~86쪽, 임지현)
인간의 경우 남남 사이에서 이해관계가 많이 충돌한다. 따라서 명령과
명령을 뒷받침하는 힘이 없다면 어떤 일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벌의 경우에는 상황이 매우
다르다. 여왕벌이 여러 마리인 복잡한 상황도 있지만 많은 경우 하나의 벌집에 있는 벌은 모두 하나의
여왕벌의 자식들이다. 즉 한 가족이다. 게다가 예외도 없지는
않지만 번식은 여왕벌이 도맡아 한다. 따라서 일벌의 입장에서는 여왕벌이 잘 번식할 수 있도록 돕는 길이
곧 자신의 포괄 적합도(inclusive fitness)를 최대화하는 길이다. 여기서 벌의 단수배수성(haplodiploidy) 이야기까지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임지현은 인간 사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벌 사회에 투영하고 있다. 진화 생물학을 잘 모르는 임지현의
입장에서는 일벌이 자발적으로 “벌집 밖에서 불안정하게 자는” 것이 이해가 안 될 것이다. 웃기는 것은 그러면서 “제
이야기의 요점은 제가 관찰한 벌들의 생물학적 체계를 설명하려는 게 아니라 단지 인간의 기존 관념들을 곤충에 대입해서 사람들 마음대로 곤충사회를
설명하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는 겁니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2010-09-12
첫댓글 궁금한 것이 있는데, 이덕하님께서는 진화론 관련 분야에 대한 책들이 나오면 대부분 구입하시는 편이신가요?
읽고 싶은 책은 사서 봅니다. 진화론 관련 책을 다 사기는 힘듭니다. 아마 수천 권 또는 수만 권이 넘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