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능 개념에 대해서는 아래 글을 참조하라.
「기능론: 목적론과 인과론」
http://cafe.daum.net/Psychoanalyse/NSiD/400
절대적 빈곤과 상대적 빈곤이 클수록 하층민의 불만이 크게 마련이다. 이것은
진화론의 논리와 부합한다. 절대적 빈곤 하에서는 건강하게 생존하기 힘들다. 따라서 인간이 절대적 빈곤을 싫어하도록 “설계”되었을 것 같다. 번식 경쟁은 상대적 경쟁이다. 내가 잘 번식하더라도 남들이 나보다
더 잘 번식하면 결국 내가 지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상대적으로 뒤쳐지는 것을 싫어하도록 “설계”되었을
것 같다.
복지 제도는 절대적 빈곤과 상대적 빈곤을 줄인다. 따라서 하층민의
불만이 줄어든다. 다른 요인들이 같다면, 불만이 줄수록 체제가
안정화한다. 복지 제도가 체제 안정화라는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그럴 듯하다.
문제는 일부 좌파가 체제 안정화를 복지 제도의 기능이라고 주장한다는 데 있다.
그들에 따르면 체제 안정화를 위해 복지 제도가 존재하게 되었으며 복지 제도가 유지되는 이유도 체제 안정화를 위해서다.
자본가를 위한 헤겔식 “이성의 간지”가 작동해서 복지 제도가 들어섰다고 명시적으로 주장하는
좌파는 사실상 없어 보인다. 이것은 “자본가의 신”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로밖에
안 들린다. 신이나 간지가 복지 제도를 만들 것이 아니라면 어떤 기제(mechanism)가
체제 안정화라는 기능을 위해 복지 제도를 만들었단 말인가? 나는 좌파 이론가가 이 질문에 시원스럽게
답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좌파에 따르면 자본주의 체제에서 체제 안정화로 이득을 보는 쪽은 자본가 계급이다. 어느 날 자본가들이 모두 모여 “복지 제도를 도입하면 이러저러해서 체제가 안정화하는 효과가 있다. 우리는 체제 안정화를 원한다. 그러니까 복지 제도를 도입하자”라고
작당한 것일까? 즉 복지 제도는 체제 안정화라는 목적을 위해 자본가들이 설계한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복지 제도의 기능(공학적 의미의 기능)은 체제 안정화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20세기의 복지 제도는 이런 식으로 정착되지 않았다.
일종의 문화적 집단 선택으로 복지 제도를 설명하는 좌파도 없어 보인다. “복지
제도와 체제 안정화”라는 테마로 문화적 집단 선택론을 펴자면 이런 식이 될 것이다. 여러 우발적인
요인들에 의해 어떤 나라는 복지 제도가 있고 어떤 나라는 없다. 복지 제도가 없는 나라는 체제가 불안정해져서
결국 망했다. 그래서 복지 제도가 있는 나라들만 살아 남았다. 역사에
대해 조금이라도 공부해 본 사람은 이런 식의 집단 선택론이 터무니 없다는 것을 금방 깨달을 것이다.
실제 역사는 어떻게 진행되었나? 임금 인상이든, 1인1표제든, 표현의
자유든, 노동조합의 권리든, 복지 제도든 먼저 요구한 쪽은
보통 노동자들 또는 노동자의 편을 든 지식인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체제 안정화를 위해 그런 것들을
요구한 것이 아니다. 노동자들은 더 풍요롭게 살고 싶었기 때문에 임금 인상이나 복지 제도를 요구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투쟁이 거세질 때 자본가들은 임금 인상이나 복지 제도를 도입하는 식으로
양보했다. 물론 자본가들이 이런 양보를 할 때 “양보를 하지 않으면
체제를 안정화하기 힘들다”는 식의 고려도 했을 것이다. 따라서 “복지 제도의 기능
즉 목적은 체제 안정화다”라는 명제에 조금이라도 일리가 있긴 하다. 하지만 이것은 투쟁에 대한 반응일 뿐이다. 투쟁을 추동한 것은 체제 안정화라는 자본가들의 욕망이 아니라 풍요로운 삶이라는 노동자들의 욕망이었다.
어떤 경우에는 좌파 정당의 집권을 막기 위해 우파 정당에서 이전보다 좀 더 복지 지향적인 정책을 추구한다(적어도 말은 그렇게 한다). 2011년의 한나라당이 그 예다. 이 때 자본가 계급을 대변하는 한나라당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들이
당장 원하는 것은 민주당에게 정권을 빼앗기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왜 정권을 빼앗기고 싶어하지 않나? 복지 제도의 측면에서 볼 때, 민주당이 하려는 것보다는 복지 제도를
작게 만들기 위해서다.
한나라당에서는 지금 약간이라도 복지라는 떡밥을 뿌리는 것이 득표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 듯하다. 하지만 그들이 장기적으로 원하는 것은 복지 제도 확대를 통한 체제 안정화가 아니라 복지 제도를 작게 만들어서(적어도 민주당이 원하는 것보다는) 자본가들의 세금을 깎아주는 것이다.
복지 제도가 체제 안정화 효과를 발휘한다면 그것은 복지 제도의 기능이라기보다는 부작용(side effect)이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체제 안정화가 복지
제도의 기능이라고 볼 만한 약간의 이유가 있긴 하다. 하지만 복지 제도의 주된 추진력은 노동자의 욕망과
투쟁에 있다.
애매한 구조론(구조주의)은
신비주의에 빠지기 쉽다. 구조론도 결국 방법론적 개인론(개인주의)을 바탕으로 구성해야 한다. 인간의 경우 생각하고 욕망하는 주체는
사회 또는 체제 또는 계급이 아니라 개인이다. 노동자 개인과 자본가 개인의 욕망과 믿음에서 출발하여
복지 제도의 기원에 대해 그럴 듯하게 설명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좌파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체제 유지 욕망”이 있기라도 한 듯이 이야기하는 것 같다(기제를
제시하지 않는 그들의 기능론을 다른 식으로 어떻게 해석한단 말인가?)
진화 심리학이 빵글로스(『깡디드』에 나오는 인물로 코의 기능은 안경을
받치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적 엉터리 기능론을 편다는 비판을 기성 사회 과학자들로부터 많이 받고 있는데
오히려 그런 오류를 많이 범하는 쪽은 기성 사회 과학자들인 것 같다.
첫댓글 적절한 비유인지 모르겠는데 그럼 이덕하 님께서는 영유아가 부모에게 신호를 보내지 않으면 부모는 그 아이를 적극적으로 돌보려 하지 않는다는 의견이신지요?
부모는 자식을 적극적으로 돌봅니다. 근친도가 무려 0.5나 되니까요.
반면 자본가와 노동자는 대체로 남남입니다.
오오 그럼 자본가가 부모드립 하면서 가족경영 운운하는건 나름 조직 구성원(노동자)들에게 어필하는건 꽤나 효과적인 조직운영 방법이네요. 일본식 종신고용제가 많은 비판에도 그동안 효과적이었던 것은 나름 납득이 가는 사항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