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보는 나, 착각하는 너』, 박진영 지음, 시공사, 2013
나는 한국 사람이 쓴 제대로 된 심리학
대중서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사회 심리학의 최신 연구 성과를 쉽게 풀어 쓴 이 책의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의 글쓴이와 이 책에 인용된 심리학자들에게는 진화 심리학적 통찰이 부족해 보인다. 그래서 내가
나섰다. 글쓴이 박진영이 사회 심리학자와 대중 사이의 간극(gap)을
메워 보고 싶었다면 나는 진화 심리학자와 주류 사회 심리학자 사이의 간극을 메워 보고 싶다.
결국 우리는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열심히 산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의 인정이 그토록 중요하게 작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눈치보는
나, 착각하는 너』, 15쪽)
이것이 바로 진화 심리학자들이 주목하는
궁극 원인(ultimate cause) 또는 선택압(selection
pressure)에 대한 이야기다. 주류 사회 심리학에서 선택압에 대해 파고든다는 점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John Tooby 같은
진화 심리학자에 비해 어설프게 파고드는 것 같다. 이 책에 인용된 심리학자들의 글까지 직접 읽어보지
않아서 그 어설픔이 글쓴이의 문제인지 주류 사회 심리학자들의 문제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사회 심리학의 대가로 통하는 사람들도 진화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는 상당히 어설픈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 인간은 꽤나 약한 동물이다. 힘이 강한
것도 아니고 아주 빠른 것도 아니다. 스스로 생존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하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걸리고
이래저래 혼자 살기에는 어려움이 많은 동물이다. 그래서 자연은 이 혼자 두기 불안한 동물의 생존전략으로
‘집단 이루기’를 선택했다.
그리고 이 전략을 뜻대도 이루기 위한 가장 효과적이고 쉬운 방법으로 ‘소속욕구Need to Belong’라는 것을 내장시키기로 한다. 인간이라는
동물을 혼자가 되거나 소외되는 것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인정받을 때 행복을 느끼는
존재로 설정해버린 것이다. (『눈치보는 나, 착각하는 너』, 15쪽)
1. 누가 언제 유행시켰는지 모르겠지만 인간이 다른 동물에 비해 육체적으로 약하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다. 인간이 그런 육체적 나약함을 사회성이나 높은 지능으로 극복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연 선택에 의해 인간의 신체가
생존에 불리한 방향으로 진화했다는 이야기는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때 아주 이상하지 않은가? 무슨 자연
선택이 그런 식으로 작동하나?
물론 인간은 치타에 비해 매우 느리다. 하지만 나무 늘보보다는 훨씬 빠르다. 나무 늘보에게는 그 느림을
극복하기 위해 인간보다 더 강한 사회성과 지능이 필요한가? 나무 늘보는 자연 선택의 미움을 받아서 생존에
불리한 방향으로 진화해서 점점 느려진 것일까? 나는 나무 늘보의 생태에 대해 잘 모른다. 어쩌면 현재의 나무 늘보보다 더 빠른 나무 늘보는 생존에 더 불리할지도 모른다. 빠른 것이 도움이 될 때가 많지만 손해로 이어질 수도 있다. 빠르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에너지가 소진된다. 그리고 매우 느리게 움직일 때보다 포식자에게 들키기도 쉽다. 어쨌든 무엇이 생존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서 속단해서는 안 된다. 해당
종의 생태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 한다.
인간은 침팬지에 비해 힘이 엄청 약하다. 하지만 그것이 생존에 불리하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약 6백만 년 전쯤에 인간과 침팬지의 공동 조상의 경우 아마 근력이 인간보다는 침팬지에 가까웠을 것이다. 이후 인간은 힘이 약해지는 방향으로 진화한 것 같다. 그리고 그
이유는 십중팔구 그것이 번식에 더 도움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힘이 약하면 온갖 손해를 보기도 하지만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 인간의 조상은 침팬지의 조상과는 달리 나무 위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 나무 위에서 떨어지지 않고 살기 위해서는 큰 근력이 필요한데 인간의 조상에게는 그것이 덜 필요했다. 어쩌면 하렘 체제에 가까운 침팬지의 조상과는 달리 인간의 조상이 일부일처제에 가까워지면서 더 평등해졌으며 그
때문에 서열 다툼을 위한 근력이 덜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무엇이 인간의 근력이 약하게 진화하도록 만들었는지
나도 확실히는 모른다. 어쨌든 힘이 약하면 생존에 방해가 된다고 속단해서는 안 된다.
몸에 나는 털이 빈약한 것을 인간의 약점으로
꼽기도 하는데 털이 적은 것이 생존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진화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어쩌면
밀림에서 사바나로 나오면서 체온을 식히는 것이 큰 문제였으며 털이 적으면 체온을 식히는 것에 유리했는지도 모른다.
인간의 털이 사라진 이유는 나도 확실히는 모른다. 어쨌든 털이 사라지면 약해지는 것이라고
속단해서는 안 된다. 매머드와는 달리 코끼리는 몸에 털이 별로 없다.
그렇다고 코끼리가 생존에 불리한 방향으로 진화했다고 볼 수 있을까?
왜 인간의 몸이 현재의 상태로 진화했는지
아직 아무도 정확히는 모른다. 하지만 자연 선택이 인간에게만 “생존에 불리한 육체”를 만들어내도록 작동했다고
보는 것은 대단한 피해 망상이다. 자연 선택이 인간만 그렇게 미워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2. 위의 인용문에서는 집단 선택의 냄새가 난다. 그리고
아래 인용문을 볼 때 글쓴이가 집단 선택의 사고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배고픔을 느끼지 못하는 동물은 영양 부족으로 인해 멸종할 확률이 크듯 사람들이 만약
외로움과 소외감이라는 아픔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면 지금과 같은 풍성한 인간관계 속에서 살고 있지 않을 것이다.
(『눈치보는 나, 착각하는 너』, 25쪽)
자연 선택은 어떤 종의 멸종을 막기 위해
일어나지는 않는다. 만약 어떤 유전자가 그 유전자를 품은 개체의 번식에 도움이 된다면 그 유전자는 개체군
내에서 퍼질 수밖에 없다. 결국 그 유전자의 장기적 효과로 그 종이 멸종하든 말은 자연 선택은 개의치
않는다.
어떤 유전자가 배고픔을 느끼지 못하도록
만든다면 그 유전자는 개체군 내에서 점점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그 이유는 그 유전자가 그 종을 멸종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유전자를 품은 개체가 잘 번식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집단 선택의 문제점을 잘 파헤친 대중서로는
『이기적 유전자』가 있다. 그리고 진화 심리학자가 성경처럼 떠받드는 『Adaptation and Natural Selection(1966)』에서 조금 더 어렵게 이 문제를 파헤쳤다.
만약 소속 욕구라는 것이 진화했다면 그
이유는 소속 욕구가 없으면 인류가 멸종했을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소속 욕구가 없는 개인이 잘 번식하기 힘들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3.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열심히 산다”라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소속” 문제만 따진다면 이것도 문제다. 서열 또는 지위 같은 문제도 따져야 한다.
그리고 지위 문제를 따지기 시작하면 집단
또는 종 수준이 아닌 개체 수준의 선택이 좀 더 두드러져 보일 것이다. 소속의 경우에는 “소속 욕구가
강한 집단은 유대가 더 강하기 때문에 그 집단이 잘 망하지 않는다”라는 식의 집단 선택 논리를 상상해 볼 수 있지만 지위의 경우에는 어느 정도는
영합(zero sum) 게임이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상상하기 힘들다.
타인의 인정을 받아야 더 높은 지위를 차지할
수 있고 보통 더 높은 지위를 차지하면 더 잘 번식할 수 있다. 예컨대 남자에게는 더 많은 성교 기회와
더 많은 아내가 생길 수 있다. 그리고 여자가 아무하고나 성교나 결혼을 하지 않도록 진화했다면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차지하면 다른 남자는 그 여자를 차지하기 힘들다. 즉 영합 게임인 것이다.
4. 궁극 원인 또는 선택압에 대한 가설과 근접 원인 또는 근접 기제(proximate mechanism) 또는 심리 기제에 대한 가설을 되도록 명료하게 구분하는 것이 좋다. “소속 욕구”라는 개념에는 이 두 가지가 짬뽕되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너무 애매하다.
“집단에 소속되면 추방 당하거나 제 발로
탈퇴했을 때보다 더 잘 번식할 수 있으며 이것은 인류 진화에서 상당히 중요한 선택압이었다”는 선택압에 대한 가설이다. 반면 “인간에게는 소속 욕구가 진화했다”는 심리 기제에 대한 가설이다.
가능하면 “소속 욕구”와 같은 애매한 표현보다는
좀 더 명료화된 가설을 만들어내는 것이 좋다. 예컨대 “인간은 소속되지 못할 때 불안감을 느끼도록 설계되었다”, “인간은 소속되었을 때 기분이 좋아지도록 설계되었다”와 같은 심리 기제 가설이 그 후보일 것이다. 그리고 이 심리 기제가 진화한 이유에 대한 선택압 가설로는 “어떤 집단에 소속되면 더 잘 번식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기제들이 진화했다”가 될 것이다.
첫댓글 일반심리학 책은 별로 안읽어봤지만. 이책 저자의 수준이 좀 심합니다. 책은 안읽어봤비만 ㅍㅍㅅㅅ 라는 새로나온 딴지일보류의 인터넷매체의 과학코너에서 지뇽뇽 필명으로 심리학기사 쓰는데 읽으면서 으악 소리가 절로 나오고 이게 뭔소리야가 터져나오는걸 보면 말이죠. 조자가 심리학을 떠나 과학이나 논리 글쓰기 실력을 의심케 하는 글을 쑤더군요.
핸폰이라 오타작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