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 - 진화론은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진화했는가』, 임지현, 최종덕, 전방욱, 강신익, 김시천
지음, 휴머니스트, 2010.
왜 국가가 이렇게까지
자기 나라에 사는 주민들의 교양과 소양에 관심이 많을까? 정말 국민의 문화적 수준을 높이려는 것일까? 제가 볼 때 그 답은 간단합니다. 국가의 명령이나 이데올로기가 사람들에게
소통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국민교육이 필요한 거죠. 그러지 않으면 로마 시대처럼 그림이나 조각을 통해서
황제의 의도나 업적 등을 보여줄 수밖에 없는데, 그런 전달방식은 한계가 있거든요. 우선 모든 사람들이 글을 읽을 줄 알고 최소한의 인지수준이 갖춰졌을 때 국가의 명령이 국민에게까지 전달될 수
있겠죠. 그렇게 국가와 국민의 커뮤니케이션 경로가 필요하기 때문에 국민교육 같은 것이 이뤄졌다고 봅니다.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75쪽, 임지현)
대다수 국민이 문맹인 로마 시대에도 누구나 말은 할 줄 알았다. 따라서
말로써 황제의 의도나 업적 등을 보여줄 수 있었다. 글이 매우 효과적인 의사소통 수단이라는 점은 명백하지만
그림이나 조각 운운하는 것은 침팬지에게나 통하는 이야기다. 인간의 음성언어는 매우 강력하다.
임지현은 “정말
국민의 문화적 수준을 높이려는 것일까?”라고 수사적으로 질문함으로써 지배자들이 국민의 문화적
수준에는 관심이 없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내 생각은 다르다. 의무교육을 도입했던 모든 나라의 지배 계급은 다른 나라와의 학문적, 문화적, 경제적, 군사적 경쟁을 염두에 두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다른 나라를 압도하기를 바랐으며 적어도 뒤쳐지지 않고자 했다. 국민의
교육 수준이 높아지면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은 당시에도 명백히 보였을 것이다.
문맹률이 낮아지면 지배 이데올로기를 글로 써서 사람들에게 퍼뜨릴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불온한 사상에 접할 기회도 늘어난다. 의무 교육을 도입할 당시 여러 나라 지배 계급이 이런
걱정을 심각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아마 다른 나라와의 경쟁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면 이런 걱정 때문에
지배 계급이 의무 교육에 훨씬 소극적이었을지도 모른다.
만약 가난한 사람들이 의무 교육에 미온적이었거나 심하게 저항했다면 의무 교육이 그렇게 빠르게 정착되기 힘들었을
것이다. 일본 식민지 치하에서 일본어만 쓰는 학교에 조선 사람들이 가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식민지와 같은 예외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경우 가난한 사람들이 자식을 학교에 보내고자 했다. 왜 그랬을까? 그 답은 뻔하다. 학교에
더 많이 다닐수록 출세길이 더 크게 열리기 때문이다. 의무 교육은 공짜 교육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이것은 매우 반가운 소식이었을 것이다.
임지현은 의무 교육의 온갖 효과들
중 단 하나가 의무 교육의 유일한 원인이었던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의무 교육은 지배 이데올로기 전달에도
유용하지만, 불온한 사상이 퍼지는데 일조할 수도 있다. 국가
차원에서는 다른 국가와 경쟁할 때 유용하지만 개인 차원에서는 출세에 유용하다. 그 외에도 또 다른 효과가
있을 것이다.
임지현은 지배 계급이 전지전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지배 계급은 강력하지만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의무 교육이 빠르게 정착된 것은 가난한 사람들이 적극 협조했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의무 교육에 적극적으로 협조한 이유는 자신의 자식의 출세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지 지배 이데올로기 전달에 효과적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요컨대 의무 교육은 다른 나라와의 경쟁에서 이기고 싶어하는 지배 계급의 이해 관계와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이해 관계 모두에 부합했기 때문에 빠르게 정착할 수 있었다. “지배
이데올로기 퍼뜨리기”라는 요인이 작용했겠지만 오히려 다른 요인보다 부차적이었던 것 같다.
2010-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