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헌 WANNA 편집장, 이택광 경희대 교수, 칼럼니스트 박권일은 금기를 깨려는 심리로 일베 현상을 설명하고 있다.
벽에 작은 틈이 나 있다. 그 위에 쪽지가 붙어 있다. “들여다보지 마시오” 당신이라면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금기는 욕망을 더욱 자극한다. 보지 말라는 말에 꼭 보게 되는, 다른 곳에서 말하지 말라고 하면 괜히 더 퍼트리고 싶은 탈 금기의 심리를 인간은 가지고 있다. 자의나 타의에 의해 규정된 규칙을 지키며 자신을 붙들어 매는 한편으로 어디선가는 그 금기를 깨부수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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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베스트저장소 이용자들은 탈금기를 추구하는 대표적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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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을 사회 불안 세력이라 할 수는 없다. 차라리 일방적으로 규정된 ‘정의’라는 금기를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이 극대화된 채 온라인 상에서 표출된 것이라 봐야 할 것이다.
[홍준헌의 20’s Navi] 일베의 탈규범 문제, ‘금기’를 없애보자
http://www.nspna.com/news/?mode=view&newsid=62203
사회·심리 전문가들은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의 성격을 보수·우익이라기보다는 기성세대의 금기를 깨는 데 쾌감을 느끼는 반사회적 집단으로 봤다. 일베 회원의 대다수는 민주정부 10년 동안 성장기를 거친 10~30대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과 88만원 세대의 좌절감이 결합하면서, 민주정부가 표방한 진보적 가치에 대한 모든 것에 반발심을 가지게 됐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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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수[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이들의 행동을 “민주정부 10년 동안 청소년기를 겪은 88만원 세대의 불만과 좌절”로 해석했다. 이들의 좌절이 보이지 않는 자본 혹은 현실 권력에 대한 반발로 이어지기보다 노무현 대통령이라는 특정 개인에 대한 분노로 극대화됐고 더 나아가 진보적 가치에 대한 반발, 기성세대의 모든 금기를 부정하는 것으로 변이됐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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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 세대>의 공동 저자인 칼럼니스트 박권일씨는 공격적인 성향의 글과 행동이 일베의 ‘놀이문화’로 굳어지고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그는 “일베는 사회적인 금기를 계속 건드리고 자극하는 것에 치중하며 가학적인 즐거움만 찾고 있다”고 말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폄훼에 기성세대가 반발하면, 그 반응을 보고 즐거워하는 것이 하나의 놀이문화가 돼버렸다는 것이다. 일베 회원들의 분노가 이 같은 쾌락으로 소비되고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일베 현상은 좌절한 젊은 세대가 금기 깨는 가학적 놀이”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5220600055&code=940202
일베 현상뿐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금기를 깨려는 심리로 온갖 심리 현상과 사회 현상을 설명해 왔다.
그들은 금기를 깨려는 심리가 인간 본성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그런 심리가 어떻게 진화할 수 있었을까?
어떤 유전자가 금기를 깨는 것 자체에서 쾌감을 느끼도록 영향을 끼친다고 하자. 그러면 그 유전자는 유전자 풀(gene pool)에서 퍼질 수 있을까?
별로 그럴 것 같지 않다. 부족의 규범을 조롱하거나 어기면 부족에서 추방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규범을 어기는 것 자체를 즐기는 사람은 우정 시장이나 짝짓기 시장에서도 성공하기 힘들어 보인다.
홍준헌은 “들여다보지 마시오”라는 금지가 보고자 하는 욕망을 부추긴다고 이야기한다. 이 때 금지 자체가 보고자 하는 욕망을 부추긴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오히려 “들여다보지 마시오”라는 글을 보고 “저기에 뭔가 흥미로운 것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에 보고 싶어지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보고자 하는 욕망을 부추기는 것은 금지 자체가 아니라 흥미로운 것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일 것이다.
사람들이 금기를 깨뜨릴 때가 많다. 하지만 금기를 깨는 것 자체가 쾌감을 주기 때문에 그러는 것 같지는 않다.
강간 금지 규범을 깨는 강간범은 성 충동 때문에 금기를 깨는 것 같다. 배고픈 사람이 빵을 훔쳐 먹는 경우에는 배가 고프기 때문인 것 같다. 뇌물을 받는 이유는 돈이 탐나기 때문인 것 같다. 여기서 성 충동, 식욕, 돈에 대한 욕망이 있기 때문에 규범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금기를 깨는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이 단지 규범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깨고 싶어한다는 설명보다 더 그럴 듯해 보인다.
진화론적으로 생각해 볼 때 성교를 하거나, 음식을 먹거나, 자원을 얻거나, 높은 지위를 얻기 위해 즉 번식에 도움이 되는 어떤 것을 위해 때로는 금기를 깨는 것은 그럴 듯한 전략이다. 금기를 깸으로써 잃는 것을 보상하고도 남을 이득을 금기를 깨는 행위를 통해서 얻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기를 깨는 행위를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는 전혀 생각해 보지 않고 금기를 무작정 깨려고 하는 것은 바보 같은 전략이다.
일베에서 “기성세대의 모든 금기를 부정”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많은 일베 회원들이 “빨갱이를 족쳐야 한다”라는 규범을 받아들이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이것은 젊은 세대보다는 기성 세대에서 더 많이 받아들이는 규범이다.
외국인 노동자나 이민자에 대한 적개심은 국수주의적 규범과 연결시킬 수 있다.
전땅크(전두환) 찬양은 국가주의적 규범과 연결시킬 수 있다. “반공이나 경제 발전을 위해 개인의 인권을 어느 정도 무시해도 된다”는 1987년 이전까지 한국 사람들이 여러 경로를 통해 주입 받았던 규범이다.
일베는 기성 세대의 규범을 부정한다기보다는 젊은 세대와는 다른 기성 세대의 규범을 극단화한다. 온갖 여론 조사가 보여주듯이 한국 사회는 젊은 세대와 나이든 세대의 의견이 크게 갈리고 있다.
공산주의자가 자본주의적 규범을 조롱하는 것을 두고 금기를 깨려는 심리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보다는 오히려 그들의 어떤 목표(노동 해방이든 전 인류의 행복이든 공정한 사회든)를 위해 자본주의를 전복하려고 한다고 보는 것이 더 그럴 듯해 보인다.
대체로 일베 회원들이 공산주의 활동가들보다 진지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에게 규범이 없다고 보면 안 된다. 사람들이 농담을 할 때에도 규범은 뇌 속 어딘가에서 자리잡고 있다.
정신병질자(psychopath) 같은 예외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규범을 내면화하도록 자연 선택에 의해 “설계”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특별한 욕망이 없다면 대체로 그 규범을 자발적으로 지키고 살도록 “설계”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