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 심리학 vs. 가부장제 이론: 1. 어설픈 유기체론

[이덕하]

『Theorizing Patriarchy』, Sylvia Walby, Blackwell, 1997(초판: 1990)

『가부장제 이론』, 실비아 월비 지음, 유희정 옮김,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1996. 한국어판이 절판되어서 구하지 못했다. 그래서 영어판을 인용했다.

급진적 페미니즘은 성 불평등을 분석할 때 하나의 집단으로서 남자들이 하나의 집단으로서 여자들을 지배하며 여자들을 예속시킴으로서 남자들이 주된 수혜자가 된다고 본다는 점에서 다른 조류들과 구분된다.

Radical feminism is distinguished by its analysis of gender inequality in which men as a group dominate women as a group and are the main beneficiaries of the subordination of women. (『Theorizing Patriarchy』, Sylvia Walby, 3쪽)

가부장제 이론가는 모든 남자들로 이루어진 가상의 집단을,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모든 자본가들로 이루어진 가상의 집단을, 기능론적 사회학자들은 사회 전체를 하나의 유기체로 보려는 경향을 보일 때가 많다. 어떤 이론가들은 노골적으로 유기체론을 펴며 어떤 이론가들은 그런 유기체론이 엉터리 목적론으로 이어진다고 경고하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유기체론에 빠져든다.

남자들 전체가 하나의 집단을 이루어서 똘똘 뭉칠 리가 없다. 어떤 부족의 어떤 남자에게는 적대적 관계에 있는 다른 부족의 남자들보다 자신의 어머니, 딸, 여동생, 아내가 더 소중하다. 자본가 계급 전체를 위해 자기 희생을 하는 자본가, 남자들 전체를 위해 자기 희생을 하는 남자, 사회 전체를 위해 자기 희생을 하는 개인은 망하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남자들이 여성 차별 문제가 나올 때에는 어느 정도 의견 통일을 보이는 것일까? 그것은 남자들이 남자들 전체로 이루어진 어떤 가상의 집단을 위해서 행동하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 행동하기 때문인 것 같다.

논의의 단순화를 위해 남자의 친족만 따져보자. 남자에게는 어머니, 딸, 여동생 같은 여자들이 매우 소중하며 그런 여자들의 이해관계는 곧 자신의 포괄 적합도(inclusive fitness)로 이어진다. 하지만 남자에게는 아버지, 아들, 남동생 같은 남자 친족들도 있다. 대체로 남자와 여자의 수가 비슷하기 때문에 한 남자의 남자 친족들과 여자 친족들의 수는 평균적으로 볼 때 비슷하다. 따라서 한 남자의 입장에서 볼 때 그 남자의 남자 친족들의 이해관계와 여자 친족들의 이해관계는 상쇄된다. 그러면 그 남자 자신의 이해관계가 남는다. 그러므로 남녀 대결의 양상이 벌어질 때 남자가 남자의 편을 드는 것이 포괄 적합도라는 기준으로 볼 때 이익인 것이다. 이런 논리는 여자에게도 똑 같이 적용된다.

수 많은 세포들이 모여서 하나의 유기체를 구성하며 하나의 유기체의 각 부분들은 고도로 협동한다. 남자들 전체가 모여서 그런 유기체를 구성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남자들은 물질적 자원, 지위, 여자 등을 두고 서로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에서 말한 논리 때문에 일반적인 이데올로기 논쟁에서 남녀 대결이 벌어졌을 때 남자는 남자의 편에 드는 것이 대체로 유리하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이 바로 남자이기 때문이다.

가부장제 이론은 여성 차별을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일부 극단적인 기능론적 사회학자들보다는 조금 낫다. 인간이 자신의 이해 관계를 팽개치고 사회 전체를 위해 살아갈 것이라고 보는 것은 진화론적으로 말이 안 된다. 남자의 이해관계와 여자의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가 있다는 것을 지적한 점에서 가부장제 이론은 극단적인 기능론적 사회학보다는 일보전진인 것이다.

하지만 가부장제 이론 역시 기능론적 사회학의 고질병인 엉터리 유기체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기능론적 사회학에서 사회 전체를 유기체로 본다면 가부장제 이론은 남자들 전체를 유기체로 본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이것은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이해관계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마르크스주의가 기능론적 사회학보다 일보전진이지만 여전히 비슷한 오류에 빠질 때가 많은 것과 비슷하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본가 계급 전체가 유기체라고 보는 경향이 있다.

2010-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