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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현상 A의 원인이 B라고 하자. B의 원인은 C라고 하자. C의 원인은 D라고 하자. 이렇게 원인을 계속 거슬러 올라가면 어떻게 될까? 옛날부터 이런 것들에 관심이 있던 사람들이 있었으며 어떤 사람은 인과 사슬이 과거로 무한히 뻗쳐 있다고 보았고 어떤 사람은 어딘가에서 끝에 도달할 것이라고 보았다. 그 끝을 궁극 원인(ultimate cause)이라고 불렀다. 유일신을 믿는 사람들은 유일신이 궁극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물체를 계속 쪼개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어떤 사람은 아무리 쪼개도 계속 쪼개길 것이라고 보았고 어떤 사람은 결국 결코 쪼개지지 않는 궁극적인 입자에 이른다고 보았다. 이런 궁극적인 입자를 원자(atom)이라고 불렀다.
근대 화학이 정립될 무렵에 화학자들이 원자라는 단어를 쓰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는 궁극적인 입자라고 믿었기 때문에 원자라고 불렀던 것 같다. 하지만 이후에 원자가 전자와 핵으로 이루어졌으며, 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루어졌으며, 양성자와 중성자는 쿼크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밝혀졌다. 하지만 부적절한 용어임을 잘 알면서도 과학자들은 여전히 원자라는 용어를 쓴다.
진화 생물학계에서 궁극 원인이라는 용어가 흔히 쓰인다. 이 용어는 궁극적인 원인을 뜻하지 않는다. 이런 면에서 원자론의 원자라는 용어만큼이나 부적절하다. 나는 누가 왜 하필이면 궁극 원인이라는 용어를 진화 생물학에 도입했는지도 모르며, 이 용어가 왜 널리 쓰이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진화 생물학자들은 부적절하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여전히 궁극 원인이라는 용어를 쓴다. 어떤 사람들은 대신 먼 원인(distal cause)이라는 용어를 쓰는데 궁극 원인이라는 용어가 부적절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듯하다.
궁극 원인이라는 용어가 부적절하지만 전문 진화 생물학자들은 누구도 이런 부적절함 때문에 헷갈리지 않는다. 이것은 전문 물리학자나 화학자들이 원자라는 용어 때문에 핵과 전자로 이루어진 원자를 궁극적인 입자라고 착각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원자라는 물리학·화학 용어는 일반인에게도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지금은 일반인도 헷갈리는 일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궁극 원인이라는 진화 생물학 용어는 그리 널리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진화 생물학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 헷갈리는 일이 종종 있다.
궁극 원인은 근접 원인(proximate cause)과 대비되는 용어다. 오해의 소지는 있지만 아주 쉽게 이 두 개념을 소개해 보겠다. 우리는 왜 밥을 먹는가? “배가 고파서”라고 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라고 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둘 다 옳은 말이다. 이 때 “배가 고파서”는 근접 원인을 가리키며,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는 궁극 원인을 가리킨다. “위해서”가 목적론을 암시하기 때문에 오해의 소지가 있다. 목적론과 궁극 원인의 관계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다룬다.
인간에게는 배고픔을 조절하는 생리적 기제(mechanism)가 있다. 위가 비거나 혈당이 떨어지면 배가 더 고프다. 인간이 배고픔을 느끼는 이유는 이런 생리적 기제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근접 원인에 대한 설명이다.
그렇다면 그런 생리적 기제는 왜 존재하는 것일까? 진화 생물학자들은 배고픔과 관련된 기제들이 자연 선택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아주 거칠게 이야기하자면, 배고픔을 느껴서 먹을 것을 찾아 먹었던 조상이 배고픔을 느끼지 않아서 먹을 생각도 하지 않았던 조상에 비해 더 잘 번식했기 때문에 배고픔을 조절하는 기제들이 진화했거나 유지된 것이다. 이것은 진화 역사에 대한 설명이며 궁극 원인에 대한 설명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것은 철학자들이 말하는 궁극 원인이 아니다. 진화가 일어나려면 생명이 탄생해야 하며, 생명이 탄생하려면 우주가 있어야 한다. 우주는 빅뱅으로 생겼는데 빅뱅의 원인은 무엇인가? 현대 철학자가 궁극 원인을 따진다면 결국 빅뱅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것 같다. 진화 생물학자들이 궁극 원인이라는 용어를 쓰기는 하지만 이렇게 오래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지는 않는다.
근접 원인과 근접 기제(proximate mechanism)는 거의 비슷한 말이다. 심리학의 영역에서는 근접 기제와 심리 기제는 거의 비슷한 말이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궁극 원인을 밝히려고 할 만큼 욕심 또는 호기심이 왕성하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욕심 때문에 진화 심리학의 설득력이 많이 떨어진다고 주장한다. 근접 원인에 대해 밝히는 것만 해도 어려운데 궁극 원인까지 밝히는 것은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이다. 궁극 원인은 진화 역사를 다루기 때문에 아주 먼 과거를 다룬다. 아주 먼 과거에 대한 지식은 현재에 대한 지식에 비해 훨씬 불확실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궁극 원인에 대한 가설은 근접 원인에 대한 가설보다 검증하기가 훨씬 어렵다는 이야기다. 결국 진화 심리학자들은 이런 무모한 과업에 뛰어들었기 때문에 그럴 듯한 이야기(just so story)를 만들어내는 데에만 골몰하고 제대로 검증하지는 못한다는 비판이다.
나는 과거 진화 역사를 재구성하는 것이 보통 엄청나게 어렵다는 것을 인정한다. 따라서 궁극 원인에 대한 가설을 검증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때가 많다는 것도 인정한다. 하지만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 왜 어려운 것에 대해서는 호기심을 품어서는 안 되는가? 물리학자들이 육안으로 직접 관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아원자(sub-atomic) 세계에 대한 가설을 만들고 검증하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물리학이 발달할 수 있었을까? 과학과 공학의 역사는 무모해 보이는 야망의 역사이기도 했다. 분자조차도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현대 물리학자는 분자를 구성하는 원자를 구성하는 양성자를 구성하는 쿼크에 대해서도 연구한다. 백 년 전만 해도 달나라 여행은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불가능해 보였다.
“인간이 왜 밥을 먹는가?”라는 질문에 “배고프니까”로만 답한다면 그것은 온전한 답이 아니다. “인간은 왜 배고픔을 느끼는가?”까지 설명해야 더 온전한 설명이 된다. 훨씬 어렵다고 하더라도 더 온전한 설명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과학자로서 훌륭한 태도다. 그리고 잠시 후에 살펴보겠지만 궁극 원인에 대한 연구는 일을 어렵게만 만드는 것이 아니다.
궁극 원인에 대한 이야기를 가설로 취급할 수도 있지만 어림짐작법(heuristic, 발견법)으로 써 먹을 수도 있다.
우리가 상상해낼 수 있는 모든 가설들을 모아 놓은 것을 가설 공간(hypothesis space)이라고 하자. 심리학의 영역에서도 가설 공간을 무한하다. 가설 공간이 무한하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인간 본성에 대한 지극히 쓰잘데없는 가설들을 보여주겠다.
l 인간에게는 짝수 날에는 오른쪽 눈이 더 잘 보이고 홀수 날에는 왼쪽 눈이 더 잘 보이도록 하는 선천적 기제가 있다.
l 인간에게는 3의 배수인 날에는 오른쪽 눈이 더 잘 보이고 3의 배수가 아닌 날에는 왼쪽 눈이 더 잘 보이도록 하는 선천적 기제가 있다.
l 인간에게는 4의 배수인 날에는 오른쪽 눈이 더 잘 보이고 4의 배수가 아닌 날에는 왼쪽 눈이 더 잘 보이도록 하는 선천적 기제가 있다.
l 인간에게는 5의 배수인 날에는 오른쪽 눈이 더 잘 보이고 5의 배수가 아닌 날에는 왼쪽 눈이 더 잘 보이도록 하는 선천적 기제가 있다.
상상력만 조금 발휘하면 이런 쓰잘데없는 가설들을 무한히 많이 만들 수 있다.
가설을 검증하려면 우선 가설을 만들어내야 한다. 이 때 아무렇게나 가설을 만들면 가망성이 사실상 없는 쓰잘데없는 가설을 만들기가 십상이다. 따라서 가설 만들기를 위한 어림직잠법이 긴요하다. 심리학 가설을 만들 때에 여러 가지 어림직잠법을 쓸 수 있다.
세상에 떠도는 상식에서 출발해서 가설을 만드는 것도 훌륭한 방법이다. 왜냐하면 상식이 틀릴 때도 많지만 옳을 때도 많기 때문이다. 적어도 상식에 기반해서 가설을 만들면 무작위로 만들 때보다 훌륭한 가설을 만들 가능성이 더 크다.
인간 본성에 대한 자신의 직관에서 출발해서 가설을 만드는 것도 훌륭한 방법이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궁극 원인에 대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하여 가설을 만드는 것도 훌륭한 어림짐작법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어떤 심리 기제가 있으면 과거에 더 잘 번식할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면 그것을 바탕으로 과거 진화 역사에 대한 그럴 듯한 이야기를 만든다. 그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인간에게는 이런 심리 기제가 있을 것이다”라는 가설을 만든다.
여기에서 궁극 원인에 대한 그럴 듯한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이론이 탄생한 것이 아니라 가설이 탄생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제대로 된 진화 심리학자라면 “궁극 원인에 대한 이야기가 그럴 듯하니까 그로부터 나온 가설은 검증할 필요도 없이 확실하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가설은 검증되어야 한다. 진화 심리학 가설이 검증되는 방식은 행동주의 심리학이나 인지 심리학에서 쓰던 방식과 근본적으로 다를 이유가 없다.
궁극 원인에 대한 이야기에서 출발하여 가설을 만들면 좀 더 가망성이 큰 가설이 무엇인지 짐작하는 데 도움이 된다. 번식에 도움이 될 것 같아 보이는 심리적 특성에 대한 가설이 아무래도 번식에 방해가 될 것 같아 보이는 심리적 특성에 대한 가설에 비해 대체로 더 가망성이 크다. 물론 무엇이 번식에 도움이 되는지를 따지는 것이 쉽지 않으며 진화 생물학에 대한 과학자의 내공과 과거 진화 역사에 대한 지식에 의존한다.
궁극 원인에서 출발하면 아직까지 아무도 생각해내지 못했던 가설을 만들기도 한다. 다른 글에서 구체적인 사례를 다룬다.
궁극 원인을 가설로 취급하면 할 일이 더 생긴다. 즉 근접 원인에 대한 가설도 입증해야 하고 궁극 원인에 대한 가설도 입증해야 한다. 따라서 입증이 더 어려워진다. 하지만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궁극 원인을 어림짐작법으로 사용하면 근접 원인에 대한 가설을 더 잘 만드는 것에 만족할 수 있다. 이럴 때에는 일을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근접 원인을 밝히는 일을 더 쉽게 만든다.
상황에 따라 진화 심리학자들은 궁극 원인에 대한 이야기를 어림짐작법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만족할 때도 있고 가설로 취급해서 검증하려고 할 때도 있다. 예컨대, 궁극 원인에 대한 이야기를 어림짐작법으로 사용해서 근접 원인에 대한 가설을 만들었는데 그 가설이 그럴 듯하게 입증되었다고 하자. 그러면 진화 심리학자가 욕심을 더 낼 것이 뻔하다. 이번에는 어림짐작법으로 사용했던 궁극 원인에 대한 이야기를 가설로 승진(?)시켜서 입증하려고 할 것이다. 또한 이미 근접 기제에 대한 잘 검증된 이론이 있다면 그 이론에서 출발하여 궁극 원인에 대한 가설을 만들어서 입증하려고 할 것이다.
궁극 원인을 어림짐작법으로 볼 때에도 가설로 볼 때에도 과거에 대한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그것도 대체로 아주 먼 과거에 대한 이야기다. 보통 역사학자들은 수천 년 이상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다. 반면 인간 진화의 역사에서는 수십 만 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일도 아니다. 수백 만 년 또는 수천 만 년을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대체로 과거로 더 멀리 거슬러 올라갈수록 과거에 대한 지식은 점점 불확실해진다. 이런 이유 때문에 궁극 원인에 대한 가설의 검증 가능성을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아주 먼 과거라 할지라도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들이 아주 많다. 수백만 년 전에도 “2 더하기 2”는 4였다. 1억 년 전에도 광학 법칙은 지금과 똑 같이 작동했다. 빅뱅 직후에는 물리 법칙도 달랐다는 이야기가 있긴 하지만 진화 심리학자는 기껏해야(?) 40 억 년까지만 거슬러 올라간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천만 년 전에도 우리 직계 조상에게는 암컷과 수컷이 있었다. 그리고 암컷이 임신을 했으며 수유를 했다. 백만 년 전에도 인간은 체내 수정을 했으며 따라서 수컷은 어떤 암컷의 자식이 자신의 유전적 자식인지 여부를 확실히 알아내기가 힘들었다. 반면 어떤 암컷의 뱃속에서 나온 자식은 그 암컷의 유전적 자식임이 확실하다. 아주 오래 된 과거에 대한 사실상 100% 확실한 이런 지식을 수도 없이 나열할 수 있다.
소심한 진화 심리학자라면 이런 확실한 과거 지식에 바탕을 두고 궁극 원인에 대한 가설들을 만들면 된다. 물론 대담한 진화 심리학자라면 과거에 대한 훨씬 불확실한 지식에서 출발하여 가설을 만들려고 할 것이다. 나는 대담한 진화 심리학자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좀 더 입증 가망성이 큰 가설에 매달리는 사람도 있고 큰 대박을 터뜨리기 위해 무모해 보이는 가설에 매달리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때로는 무모해 보이는 시도가 성공을 거두기도 한다. 모험을 하든 말든 그것은 과학자의 자유다. 입증 절차만 충실히 따르면 된다.
많은 사람들이 시계처럼 어떤 기능을 위해 잘 설계된 것처럼 보이는 것을 볼 때에는 특별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이것을 설계의 논거(argument from design)라고 부른다.
진화 생물학계에서는 인간이나 오징어의 눈이 대표적인 사례다. 진화 생물학자들은 인간의 눈은 너무나 정교하기 때문에 자연 선택이 아닌 다른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을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과거 진화 역사에 대해 설사 완전히 무지하다 하더라도 단지 현재 상태의 눈만 보고 “눈은 자연 선택의 결과 즉 적응이다”라는 결론을 이끌어낸다.
설계의 논거를 유효한 입증 방식이라고 받아들인다면, 눈처럼 정교한 구조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만 하면 과거에 대해 잘 몰라도 궁극 원인에 대한 가설이 입증된다. 그리고 많은 진화 생물학자들이 설계의 논거를 인정한다. 적어도 눈처럼 오묘한 구조에 대해서는 인정한다. 진화 심리학에서도 이런 설계의 논거를 적용할 수 있다. 적어도 시각 기제에 적용할 때에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는 것 같다. 보기 위해서는 눈도 필요하지만 망막에 맺힌 정보를 뇌에서 처리해야 한다. 눈도 지극히 정교하게 생겼지만 뇌에 있는 시각 처리 기제들도 지극히 정교하게 생겼다. 따라서 눈이 자연 선택의 산물인 것과 마찬가지로 뇌에 있는 시각 처리 기제들도 자연 선택의 산물이다.
만약 질투 기제나 근친 상간 회피 기제가 눈에 버금갈 정도로 기가 막히게 생겨 먹었다는 점만 보여준다면 설사 인류의 과거 진화 역사에 대해 전혀 모른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자연 선택의 산물임이 입증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