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선택에는 양의 되먹임(positive feedback)의 측면도
있고 음의 되먹임(negative feedback)의 측면도 있다. 유전자의
수준에서 살펴보자. 양의 되먹임은 번식에 도움이 되는 어떤 유전자가 개체군에서 점점 퍼지는 것을 말하며, 음의 되먹임은 번식에 해를 끼치는 어떤 유전자가 개체군에서 점점 사라지는 것을 말한다. 돌연변이 중 대부분은 번식에 해를 끼치기 때문에 개체군에서 점점 사라지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소수의 돌연변이는 번식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개체군에서 점점 퍼지는 경향이 있다.
양의 되먹임이 있었기 때문에 눈이 전혀 없던 동물에서 시작하여 인간의 눈처럼 고도로 복잡한 구조가 진화할 수
있었다. 음의 되먹임이 있었기 때문에 고도로 복잡한 인간의 눈이 세대를 거듭하면서도 유지될 수 있었다. 양의 되먹임과 관련된 자연 선택을 변화 선택이라고 부르고, 음의
되먹임과 관련된 자연 선택을 유지 선택(maintenance selection)이라고 부르자. 유지 선택이라는 용어는 다른 사람의 글에서 본 적이 있으며, 변화
선택이라는 용어는 내가 만들어냈다. 온전한 설명이 되기 위해서는 변화 선택과 유지 선택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유지 선택은 인간의 눈처럼 쓸모 있는 복잡한 구조가 쉽게 퇴화하는 것을 막는다.
하지만 복잡한 구조가 절대로 퇴화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변화 선택을 통해 퇴화가
일어날 때도 있다. 빛이 사실상 없는 깊은 동굴에서 진화하면서 눈이 퇴화한 동물들이 있다. 빛이 없기 때문에 그런 동물의 눈은 쓸모가 없다. 자체 발광하는
희한한 동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기에서는 무시하기로 하자. 쓸모도 없는 눈에 에너지를 투자하는 것은
낭비다. 따라서 복잡한 눈의 발생(development)과
유지·관리에 드는 비용을 절약하도록 영향을 끼치는 유전자가 자연
선택에 의해 널리 퍼져서 결국 눈이 퇴화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으며 실제로 그런 경우가 발견되었다.
진화 심리학자들이 궁극 원인에 대한 가설을 제시할 때 변화 선택에 대해 이야기하는지 아니면 유지 선택에 대해
이야기하는지 잘 살펴보아야 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연 선택이라는 용어에서 변화 선택을 우선 떠올리지만
많은 경우 진화 심리학자들은 유지 선택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기에서 오해가 생길 수 있다.
대체로 변화 선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보다 유지 선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더 쉬운 것 같다. 이럴 때 진화 심리학자들이 우선 유지 선택에 대해 먼저 따져보는 것은 당연하다. 보통 사람들은 쉬운 문제를 먼저 해결하고 어려운 문제에는 나중에 도전하려고 한다.
유지 선택 중 특히 최근에 일어난 유지 선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가장 쉬운 것 같다. 인류의 진화 역사에서 최근이라 함은 보통 지난 수십만 년 또는 지난 수만 년 동안을 말한다. 이 때 보통 지난 만 년 동안에 일어난 일을 무시한다. 왜냐하면
지난 만 년 동안 인류가 살아온 환경이 급격하기 변했기 때문이다. 환경이 많이 변하면 선택압(selection pressure)도 변한다.
왜 최근에 일어난 유지 선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쉬운가? 그 이유는
최근의 환경에 대해 더 정확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약 10만
년 전쯤에 우리 조상들이 어떤 환경에서 살았는지 정확히 알아내는 것은 무척 어렵다. 하지만 적어도 약
천 만 년 전쯤에 우리 조상들이 어떤 환경에서 살았는지를 알아내는 것보다는 쉽다. 또한 최근의 인간에
대해 더 정확히 알 수 있다. 10만 년 전의 우리 조상들은 현재의 인류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따라서 현재의 인류를 보면 10만 년 전의 우리 조상들의 생김새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천 만 년 전의 우리 조상들은 현재의 인류와 많이 다르다.
인류의 진화를 재구성해는 작업의 규모를 생각할 때 지난 수십만 년 동안에 일어난 유지 선택에 대해 해명하는 것은
지극히 작은 일부에 불과하며 제일 쉬운 작업이다. 하지만 이것은 엄청나게 어려운 작업이다. 따라서 지난 천만 년 동안에 일어난 변화 선택을 해명하는 일은 훨씬 더 엄청나게 어려운 과업이다.
2011-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