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능 개념에 대해서는 아래 글을 참조하라.
「기능론: 목적론과 인과론」
http://cafe.daum.net/Psychoanalyse/NSiD/400
부모는 대체로 엄청난 노력을 들여서 자식을 정성껏 기른다. 그러면
그 자식들 중 대다수는 노동자가 된다. 즉 자본가들이 그렇게 자란 자식들을 노동자로 부려먹을 수 있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적 여성주의자들이 이것을 가족의 기능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내가 보기에는 이것은 가족의 부작용(side effect)일 뿐이다.
부모가 자식을 낳아서 기르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러 가지가 개입되지만
세 가지만 살펴보자.
첫째, 인간에게는 타고난 자식 사랑 기제가 있다. 이 기제의 기능(진화 생물학적 의미의 기능) 즉 목적은 무엇인가? 유전자의 수준에서 보면 자식 사랑 기제 덕분에
부모 안에 있는 유전자가 더 잘 퍼질 수 있다. 그리고 개체의 수준에서 보면 자식 사랑 기제 덕분에
부모는 더 잘 번식할 수 있다. 자식을 매우 사랑해서 잘 돌보았던 우리 조상들이 자식을 낳는 족족 국
끓여 먹었던 우리 조상들에 비해 더 잘 번식했기 때문에 자식 사랑 기제가 퇴화하지 않은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이런 자식 사랑 기제 때문에 자식들이 쉽게 죽지 않고 살아남아서 노동자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자식 사랑 기제는 자본가를 위해 진화한 것이 아니다. 자식
사랑 기제가 열심히 진화할 때에는 자본가가 아예 없었다.
둘째, 인간에게는 타고난 성 충동 기제가 있다. 이 기제도 결국은 유전자 복제 또는 번식 이득을 위한 것이다. 이
성 충동 기제가 작동하여 부부가 성교를 할 때가 많다. 그리고 효과적인 피임 수단과 낙태 수단이 없던
시절에는 잦은 성교는 대체로 임신으로 이어졌다. 일단 자식을 낳으면 자식 사랑 기제가 작동하여 보통은
열심히 돌보게 된다. 그리하여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노동자가 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성 충동 기제 역시 자본가를 위한 것이 아니다.
셋째, 효과적인 피임 수단이 있는 문화권에서는 많은 부부가 자식을
낳을지 여부를 의식적으로 결정한다. 이 때 어떤 요인들이 작용하는가?
어떤 사람은 옆집에 있는 아이가 너무 예뻐서 자신도 그런 아이를 낳고 싶었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자식 낳기가 의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자신이 못 이룬 꿈을 자식이 이루기 바랬기
때문에 자식을 낳기로 결정했을 것이다.
“자본가를 위해 노동력을 제공하자”라는 생각 때문에
자식을 낳기로 결정하는 부부가 있을까? 자식을 낳기로 하는 부부 중에 “어서
자식을 많이 낳아 길러서 자본가를 위해 뺑이 치게 만들자”라고 생각하는 비율이 얼마나 될까? 내가
보기에는 거의 없다.
여기서 살펴본 세 가지 요인 모두 “자본가를 위한 노동력 제공”과는 상관이 없다. 부부가 자식을 낳아서 기르는 것은 궁극 원인(진화론적 원인)의 수준에서 보든, 근접 기제(심리
기제)의 수준에서 보든 “자본가를 위한 노동력 제공”을 위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노동력 제공”은 가족의 기능이라고 이야기할 수 없다. 그것은 가족의 부작용일 뿐이다.
이 글을 읽은 마르크스주의적 여성주의자들이 “나도 대충 다 아는 이야기다. 내가 그런 것도 모를 바보 같냐?”라고 응수할지도
모르겠다. 다 아는 이야기라면 왜 “효과” 또는 “부작용”이라는 좋은 용어를 쓰지 않고 “기능”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일까? 기능과 효과는 서로 명백히 구분되는 개념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일까? 기능론적 사회학이 엉터리 기능론 또는 엉터리 목적론이라고 비판 받아왔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