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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연장통(
『오래된 연장통: 인간 본성의 진짜 얼굴을 만나다』,
국내에도 진화 심리학자들이 쓴 책이 여러 권 출간되었다. 나는 그
중에서
내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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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주로 『오래된 연장통』의 내용을 비판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진화 심리학을 적극 지지한다. 따라서 나의 비판은 진화 심리학의 주된 명제보다는 부차적인 것들을 다루고 있다.
모니터로 보기에는 피곤할 것 같아서 책에 나오는 빨간 작은 글씨를 괄호로 묶었다.
복잡한 심리적 적응이 출현하려면 그만큼 복잡한 신경 구조가 적어도 수천 세대에서 수만 세대에 걸쳐 진화해야 한다. 그런데 인류의 조상은 침팬지 가계와 약 700만 년 전 갈라진 이후에 95퍼센트 이상의 시간을 아프리카의 사바나 초원에서 수렵-채집 생환을 하며 보냈다. 약 1억 1000년 전 시작된 농경 사회나 200년도 채 되지 않은 현대 산업 사회는 우리의 심리 구조에 유의미한 진화적 변화를 일으키기에는 턱없이 짧은 시간이었다. (36쪽)
“1억”은 “1만”의 오자임이 분명하다.
복잡한 적응이 새로 출현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복잡한 적응이 퇴화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 없다. 눈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복잡한 눈이 진화하기까지는 엄청나게 오랜 세월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에 비하면 깊은 동굴에 사는 동물들은 훨씬 짧은 기간 동안에 눈이 완전히 퇴화한다. 정교한 시계를 만드는 데에는 오랜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지만 그 시계를 망가뜨리기 위해서는 커다란 망치로 한 번 힘껏 내려치면 그만이다.
그리고 기본적인 구조가 바뀌는 것에 비하면 훨씬 짧은 기간 안에 상대적 크기 등이 바뀔 수 있다. 예컨대 지난 몇만 년 동안 인종마다 키가 상당히 다르게 진화했다.
따라서 지난 1만 년 동안 인간의 심리 구조에 유의미한 진화적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이것은 순전히 실증적으로 검증할 문제다.
마찬가지로, 인류가 진화한 환경에서는 야한 동영상은 없었다. 남성이 야한 동영상에 등장하는 여성의 모습을 감상할 때, 남성의 두뇌는 그 모습이 실제 여성이 아니라 이차원적인 점과 선이 조합된 허상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37쪽)
한편으로 야한 동영상을 보는 남자가 발기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남자의 뇌의 일부가 실제 여자와 동영상 속의 여자를 잘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야한 동영상을 보는 남자는 동영상 속의 여자와 성교를 시도하기보다는 자위 행위를 한다. 이것은 남자의 뇌의 일부가 실제 여자와 동영상 속의 여자를 잘 구분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성은 남성보다 훨씬 더 끈끈한 사회적 관계를 유지한다. (42쪽)
일반 침팬지(common chimpanzee) 수컷들은 동맹을 맺는다. 이것은 보노보와는 다른 면이다. 보노보의 경우 수컷들보다는 암컷들이 동맹을 더 잘 맺는다. 이 차이 때문에 보노보의 경우 수컷이 더 힘이 셈에도 불구하고 암컷들에게 두들겨 맞는 듯하다. 이런 면에서 인간은 일반 침팬지와 닮은 것 같다. 즉 남자들끼리 동맹을 맺는 경향이 있다. 이런 측면까지 고려하면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더 끈끈한 사회적 관계를 유지한다고 단정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셋째, 여성의 번식 성공도는 자식을 얼마나 잘 키워 내느냐에 많이 의존하므로 여성은 아이를 돌보거나 타인과의 사회적 관계를 꾸려 나가는 일에 남성보다 더 능하다. 실제로 여성들은 타인의 얼굴 표정이나 몸짓으로부터 그 사람이 어떤 감정 상태인지 더 잘 읽어 낸다. (46쪽)
남자들이 육탄전을 더 많이 벌였다. 육탄전에는 억센 근육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상대의 마음을 읽는 것도 중요하다. 예컨대 상대가 싸우려고 덤비는 듯한 표정이나 몸짓을 취할 때 허풍인지 아니면 진짜 싸우려고 드는 것인지 정확히 가릴 수 있다면 유리할 것이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공간지각력은 남자가 여자보다 낫다”라는 상식에 도전했다. 사냥을 주로 했던 남자와 채집을 주로 했던 여자가 부딪쳤던 문제들의 성격이 다르다는 점에 착안하여 공간지각력의 어떤 측면에서는 남자가 낫지만 다른 어떤 측면에서는 여자가 나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워서 어느 정도 입증했다. 예컨대 가만히 있는 물체들의 위치를 많이 기억하는 것은 여자가 더 잘하는데 이것은 채집할 식물들의 위치를 잘 기억하는 것이 여자들에게 긴요했을 것이라는 분석과 부합한다.
얼굴 표정 문제에서도 상황은 비슷할 것 같다. 싸움과 관련될 가능성이 큰 표정들의 경우 남자가 더 잘 읽을지도 모른다. 이런 방향으로 연구가 이루어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흥미 있는 결과가 나올 것 같다. 어쩌면 남자가 주로 사냥을 했기 때문에 동물의 표정이나 몸짓을 여자보다 더 잘 읽을지도 모른다.
아빠가 친자식과 유전자를 공유할 확률이 50퍼센트인 데 반해 누이가 낳은 자식과 유전자를 공유할 확률은 25퍼센트에 불과하다. 하지만, 부성 불확실성이 극심한 사회에서는(어쩌면 옆집 우유배달부의 자식일지도 모르는 녀석에게 재산을 물려주느니) 차라리 누이가 낳은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게 나을 것이다. (65쪽)
바람을 많이 피우는 문화권에서 누이의 자식과 나 사이의 평균 근친도(degree of relatedness)는 25%보다 낮을 것이다. 나와 누이의 유전적 아버지가 서로 다르다면 누이의 자식과 나 사이의 근친도는 12.5%에 불과하다. 따라서 아내의 자식이 나의 자식일 확률이 50%보다 훨씬 낮은 경우에나 누이가 낳은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게 더 적응적이다. 과연 누이의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문화권에서 아내가 바람을 그렇게 많이 피울까?
가설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아내가 바람을 피우는 정도를 평가해서 아내의 자식을 돌볼 것인지 아니면 누이의 자식을 돌볼 것인지를 선택하는 메커니즘이 남자에게 진화한 것일까? 그렇다면 한 문화권 내에서도 남자 자신의 매력도와 지위, 아내가 바람을 피웠을 것 같은 정도 등에 따라 어떤 남자들은 아내의 자식을 돌보고 어떤 남자들은 누이의 자식을 돌볼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누이의 자식을 돌보는 문화권에서는 대다수의 남자들이 아내의 자식보다는 누이의 자식을 돌보는 듯하다. 그렇다면 그것은 해당 문화권의 풍습을 그냥 따른다는 뜻이다. 물론 왜 그 문화권에서 그런 풍습이 생겼는지를 설명해야 할 것이다.
다른 지역에 살면서 그곳의 토착 병원균에 나름대로 적응한 외부인들과 함부로 접촉했다간, 전혀 새로운 병원균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도 있으니 피하는 게 상책이다. 요컨대, 병원균에 대한 심리적 방어가 외인 혐오증(xenophobia)과 자민족 중심주의(ethnocentricism)를 낳았다. (74쪽)
일반 침팬지처럼 부족간 ‘전쟁’이 더 중요한 요인이 아니었을까? 만약 ‘전쟁’이 매우 중요한 요인이었다면 사람들은 다른 집단의 여자보다 남자를 더 거부하는 경향이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전쟁’에는 주로 남자가 참여했기 때문이다. 반면 병원균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요인이었다면 남녀를 그런 식으로 차별할 이유는 별로 없다.
옛날 사냥-채집 사회에서는 아주 멀리 있는 사람을 만날 일이 사실상 없었다. 바로 옆 부족이나 조금 더 떨어진 부족만 접할 수 있었다. 바로 옆 부족과 자기 부족 사이에 병원균의 차이가 그렇게 컸을까?
진화심리학자 제이슨 포크너(Jason Faulkner)와 그 동료는 병원체와 외인 혐오증의 관계를 보여 주는 실험을 실시했다. 한 집단에는 세균이나 바이러스의 위험을 강조하는 슬라이드를, 다른 집단에는 감전사나 교통사고의 위험을 강조하는 슬라이드를 보여 주었다. 그러고서 외국인 노동자의 이주에 대한 찬반 태도를 물었더니, 병원균의 위험을 목도한 집단에서 반대가 유의미하게 더 높았다. (74쪽)
위에서 이야기한 ‘전쟁’ 가설을 고려한다면 세균 슬라이드를 보여준 집단과 전쟁 장면 슬라이드를 보여준 집단과 비교하는 것이 더 흥미로운 결과를 산출할 것 같다.
예측대로, 과거에 병원균이 득세했던 수준은 각국의 집단주의 지수와 정비례했고 개인주의 지수와 반비례했다. 덥고 습해서 병원균이 더 많았던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나라들이 춥고 건조한 북유럽이나 극지방의 나라들과 비교해서 개인보다 집단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음을 상기해 보라. (76쪽)
유럽에서 민주주의가 먼저 시작되어서 상당히 진행되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동유럽과 소련은 서유럽보다 비슷하거나 더 춥지만 집단주의가 더 강한 것 같다. 이것은 스탈린주의 독재 체제의 영향일 것이다.
과연 500년 전에도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 집단주의나 개인주의의 정도에 차이가 컸을지 의문이다. 만약 당시에는 별 차이가 없었다면 병원균 가설의 설득력이 상당히 떨어진다.
따라서 매운 음식을 먹으면 통증을 줄이기 위해 뇌에서 자연 진통제인 베타-엔도르핀(β-endorphin)이 분비되므로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기분이 좋아진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사실 ‘왜’가 아니라 ‘어떻게’에 답하는 설명이다. (113쪽)
진통제인 베타-엔도르핀이 분비되도록 하는 메커니즘이 부상 등과 같은 상황을 위해 진화한 적응이며 이것이 매운 음식을 먹을 때에도 작동한다고 보는 부산물 가설을 옹호하는 사람에게는 위에서 소개한 설명이 ‘왜’에 대한 설명이기도 하다.
향신료가 음식물의 부패를 막아 주기 때문에 요리에 쓰인다는 가설이 맞다면 다음 예측이 도출된다. 인도나 브라질처럼 무더워서 음식물이 상하기 쉬운 지역의 전통 요리법이 핀란드처럼 추운 지역의 요리법보다 더 많은 종류의, 더 독한 향신료를 요구할 것이다. ……
셔먼과 빌링이 예측한 대로, 더운 나라에서는 요리 하나에 대해 더 많은 가짓수의 향신료가 사용되었다. (114쪽)
가설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적어도 두 가지 상당히 다른 가설이 있을 수 있다. 첫째, 향신료가 부패를 막는다는 의식적 지식 때문에 더운 지방에서 향신료를 많이 쓴다는 가설. 둘째, 기온 등에 따라 매운 맛을 내는 향신료에 대한 선호를 조절하는 메커니즘이 진화했다는 가설.
사냥-채집 사회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 그곳에서도 향신료를 부패 정도에 따라 다르게 쓰나? 그렇지 않다면 매운 맛 선호 조절 메커니즘이 진화했다는 가설은 설득력을 상당히 잃는다.
넷째, 지형지물들의 고도가 다양하므로 높은 곳에 올라서서 길을 찾기 쉽다(아이들이 틈만 나면 부모에게 안아 달라고 조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124쪽)
아이들이 안아 달라고 조르는 이유는 멀리 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부모에게 붙어 있는 것이 안전하기 때문일 것이다.
고고학자들은 직립 원인(Homo erectus)이 약 100만 년 전부터 아프리카를 벗어나 전 세계 구석구석으로 이주했다고 보고 있다. 그러므로 사막이나 극지방처럼 진화적으로 낯선 서식처에서도 생존과 번식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몇몇 장소를 잘 포착하게 해 주는 심리 기제가 아울러 진화했을 것이다. (130쪽)
하지만 세계 구석구석으로 이주했던 직립 원인은 우리의 직계 조상이 아니다. 따라서 그들이 어떤 식으로 진화했는지는 현생 인류의 심리 기제와는 별 상관이 없다.
발정기에 성관계가 집중되는 다른 포유류들과 달리, 발정기가 사라져 배란이 은폐된 우리 종은 배란 주기 내내 줄기차게 성관계를 갖게끔 진화하였다. (157쪽)
배란 은폐는 사실이 아니라 가설이다. 배란은 광고할 수도 있으며, 은폐할 수도 있으며, 광고하지도 은폐하지도 않을 수도 있다. 단지 광고하지 않는 것을 은폐한다고 보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
광고 또는 은폐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암컷이 광고 또는 은폐를 위해 생리적 비용 등을 투자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나는 여자가 배란 은폐를 위해 어떤 비용을 치른다는 것을 보여준 연구를 본 적이 없다.
그러나 피가 상처가 난 당사자에게 즉시 그 강렬한 핏빛을 드러내 사태가 얼마나 위급한지 알려 준다는 것을 살피면, 피의 검붉은 빛깔은 어떤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진화했음을 쉽게 추측할 수 있다. (178쪽)
내가 지금까지 본 글에서는 피의 색을 한결같이 부산물로 설명했다. 그래서 이 구절을 보았을 때 상당히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적혈구의 생리적 구조가 피의 붉은 색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는 것일까?
피의 붉은 색이 적응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동물이 피가 선명한 붉은 색이 되도록 하기 위해 특별히 어떤 생리적 비용을 투자한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만약 피의 붉은 색이 적응이라면 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 깊은 동굴에서 오래 진화한 동물의 경우 피의 색이 우리와는 상당히 다를 것이다. 왜냐하면 어차피 보이지 않기 때문에 선명한 색을 만들기 위해 생리적 투자를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별로 효율적이지 않은” 종교가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모든 사회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어느 사회에서든지 신, 마귀, 천사, 귀신, 혼령, 도깨비, 조상신, 마녀, 요정 같은 초자연적 행위자(supernatural agent)에 의해 지배되는 반사실적 세계(counterfactual world)에 대한 믿음과 열정적인 헌신이 나타난다. (216쪽)
종교를 매우 넓게 정의하여 온갖 미신이 조금만 있어도 종교라고 본다면 모든 사회에 종교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종교 개념은 별로 쓸모가 없어 보인다.
한국인의 절반은 비종교인으로 분류된다. 이렇게 분류되는 사람들 중에 미신을 사실상 전혀 믿지 않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종교가 행위가 탐지, 민간 심리, 동맹 심리 등의 여러 진화적 적응들에 딸린 부산물이라고 보는 관점은, 마찬가지로, 인간이 종교에 쉽게 빠져드는 동물임을 암시한다. 무신론을 지키기는 어렵고 종교에 귀의하기는 쉽다.
…… 인터넷 쇼핑몰의 배송비가 사라지지 않듯, 인류 역사가 계속되는 한 종교 역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220쪽)
한국 같은 나라에서 절반 정도가 비종교인이라는 점은 종교가 사라질 수 있음을 암시한다.
필연적 부산물과 우발적 부산물을 나눌 필요가 있다. 뼈의 흰색은 필연적 부산물이며 양자 역학은 우발적 부산물이다. 인간의 뼈의 색이 다른 식으로 바뀔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양자 역학은 소수만 이해한다. 피아노 연주나 자동자 운전의 경우도 비슷하다. 그런 것이 있는 문화권에서만 배울 수 있으며 모든 사람이 배우는 것도 아니다.
요컨대, 어떤 현상이 부산물이라는 명제로부터 그 현상이 필연적이라는 결론이 나올 수 없다. 따라서 종교가 여러 심리적 메커니즘의 부산물이라는 가설이 옳다 하더라도 종교가 필연적이라는 결론이 나올 수 없다. 그런 결론을 이끌어내려면 종교가 필연적 부산물이라는 것을 우선 보여주어야 한다.
“종족 보존”(52쪽)은 “species conservation”를 말하는 듯한데 “종 보존”으로 쓰는 것이 나아 보인다. ‘종족’이라고 하면 다윈이 애매한 의미로 사용했던 ‘race’가 떠오른다.
“반수이배성(haplodiploidy)”(141쪽)에서 ‘haplo’는 ‘반(半)’이 아니라 ‘단(單)’을 뜻한다. 따라서 “단수이배성”으로 번역하는 것이 더 나아 보인다. 자세한 것은 http://cafe.daum.net/Psychoanalyse/82Xi/38 를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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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돈주고 사기는 아까워서 도서관서 빌려서 오늘 다 읽었는데요... 역시 아는 만큼 보이는 듯 합니다.
내공의 길은 참 험하고 멀도다~ 하하
'비판' 잘 읽고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배란 은폐란 용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것과, 피의 빛깔이 어떤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진화했다는 주장(내가 볼 때도 상당히 엉뚱하게 보입니다)에 대한 반박은 적절하다고 봅니다.
남극대륙에 인접한 부베섬에 서식하는 얼음물고기의 경우 피의 색깔이 투명하지만, 이것 역시 피 속에 헤모글로빈을 포함한 적혈구가 거의 없게 되어서(혈액의 점성을 낮추는 적응)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부산물 가설이 더 합당할 것입니다. 투명한 것과 붉은 것 두 가지 외에 다른 색깔의 예를 찾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저자의 주장이 (자신의 주장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기 곤란하다는 점에서) 좀 더 엉뚱해 보이지 않나 합니다.
그러나 '적응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어떤 생리적 비용을 투자한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라는 주장은 타당성이 부족해 보입니다.
예를 들어 배란을 광고하지 않거나 은폐하는 것은 엉덩이 쪽 구조에 대한 투자를 줄이는 것이기 때문에 비용절감이라고 볼 수 있고, 충수돌기의 크기가 줄어드는 것이나 혹은 고래 같은 경우 골반뼈나 뒷다리 뼈의 크기나 숫자를 줄이는 것 등도 비용이 감소하지만 적응은 증가하는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피의 색깔로 가상의 예를 만들어 보면, 붉은 색과 녹색의 헤모글로빈이 있는데, 둘 다 기능은 똑같고 그것을 만드는데 드는 비용도 같다고 하더라도 그 중의 한 가지가 더 적응적일 수 있습니다. 가령 붉은 색이 체온 유지에 더 유리하다든지, 아니면 녹색 피부색에 대한 암컷의 본래적 혹은 우발적 선호도가 더 높다든지... 설혹 두 가지를 만드는 비용이 서로 다르더라도, '어떤 것은 비용이 덜 들기 때문에 그 중 그쪽 색으로의 선택이 있었다 하더라도 적응이라고 할 수 없다'라고 말하기는 곤란해 보입니다.
이 책에 대해 추천하는 글이 있기에 그냥 사서 읽었는데... 돈이 아깝더군요... 그냥.. 후..
여담입니다만.. 경험상 미신이나 불확실한 정보에 너무 엄격하여 그를 받아들이는것과 대화의 소재로 하는것을 피하게되면 인간관계를 구축하는데 문제가 생기더군요. 그런 모든것을 제하고 나면 사실상 대화할 내용이 거의 없어집니다. 저는 말은 안꺼내도 듣기는 하니... 그나마 이정도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