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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이어바흐에 대한 테제
칼 마르크스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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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1845년, 원본]: 「Thesen über Feuerbach」, Karl Marx, http://www.mlwerke.de/me/me03/me03_005.htm
원문[1888년, 엥엘스Engels의 편집본]: 「Thesen über Feuerbach」, Karl Marx, http://www.mlwerke.de/me/me03/me03_533.htm
참고한 영역본: 「Theses On Feuerbach」, translated by W. Lough, http://www.marxists.org/archive/marx/works/1845/theses/theses.htm
참고한 영역본: 「Theses On Feuerbach」, translated by Cyril Smith 2002, based on work done jointly with Don Cuckson, http://www.marxists.org/archive/marx/works/1845/theses/index.htm
참고한 국역본: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들」, 칼 맑스 지음,
참고한 국역본: 「포이에르바흐에 관한 테제」, http://www.marxists.org/korean/marx/theses-feuerbach/index.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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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845년, 원본]
(포이어바흐Feuerbach의 것을 포함하여) 지금까지의 모든 유물론의 주된 결함은 대상, 현실, 감각을 감각적 인간 활동(sinnlich menschliche Tätigkeit)으로서, 실천으로서, 주체적으로 파악하지 않고, 객체의 또는 관조의 형식으로만 파악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활동적(tätig, 능동적) 측면에 대해서는 [그런 측면을 무시하는] 유물론과는 대조적으로 관념론 – 관념론은 당연히 현실적, 감각적 활동 그 자체는 인정하지(kennen) 않는다 – 에서 추상적으로 [의견을] 개진했다. 포이어바흐는 사고-객체(Gedankenobjekt)와 진짜로 구분되는 감각되는 객체(sinnliches Objekt)를 원했다.[1] 그러나 그는 인간의 활동 자체를 객관적(genenständlich) 활동으로 파악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는 “기독교의 본질(Wesen des Christenthums)”에서 이론적 태도만 진정으로 인간적이라고 본 반면 실천은 더럽고-유대적인(schmutzig-jüdisch) 발현 형태로만 파악하고 고정했다(fixieren, 정의했다). 따라서 그는 “혁명적”, “실천-비판적(praktisch-kritisch)[2]” 활동의 의의를 깨닫지 못했다.
1 [1888년, 엥엘스의 편집본]
(포이어바흐Feuerbach의 것을 포함하여) 지금까지의 모든 유물론의 주된 결함은 대상, 현실, 감각을 인간의 감각적 활동(menschliche sinnliche Tätigkeit)으로서, 실천으로서, 주체적으로 파악하지 않고, 객체의 또는 관조의 형식으로만 파악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활동적(tätig, 능동적) 측면에 대해서는 [그런 측면을 무시하는] 유물론과는 대조적으로 관념론에서 [의견을] 개진하는 일이 벌어졌다. 하지만 관념론이 당연히 현실적, 감각적 활동 그 자체는 인정하지(kennen) 않기 때문에 추상적으로만 개진했다. 포이어바흐는 사고-객체(Gedankenobjekt)와 진짜로 구분되는 감각되는 객체(sinnliches Objekt)를 원했다. 그러나 그는 인간의 활동 자체를 객관적(genenständlich) 활동으로 파악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는 “기독교의 본질(Wesen des Christenthums)”에서 이론적 태도만 진정으로 인간적이라고 본 반면 실천은 더럽고-유대적인(schmutzig-jüdisch) 발현 형태로만 파악하고 고정했다(fixieren, 정의했다). 따라서 그는 “혁명적”, 실천-비판적(praktisch-kritisch) 활동의 의의를 깨닫지 못했다.[3]
2 [1845년, 원본]
인간의 사고가 객관적 진리를 얻을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한 문제는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적 문제다. 인간은 실천 속에서 진리를, 즉 현실성과 힘[4], 자신의 생각의 현세성을 입증해야 한다. 실천과 유리된 사고를 두고 현실성이 있느니 없느니 논쟁을 벌인다면 그것은 스콜라철학적(scholastisch, 공리공론적) 문제다.
2 [1888년, 엥엘스의 편집본]
인간의 사고가 객관적 진리를 얻을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한 문제는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적 문제다. 인간은 실천 속에서 진리를, 즉 현실성과 힘, 자신의 생각의 현세성을 입증해야 한다. 실천과 유리된 사고를 두고 현실성이 있느니 없느니 논쟁을 벌인다면 그것은 스콜라철학적(scholastisch, 공리공론적) 문제다.
3 [1845년, 원본]
상황(Umstand, 환경)과 교육의 변화에 대한 유물론의 교의는 인간이 상황을 바꾸며 교육자 자신이 교육 받아야 함을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사회를 두 부분 – 그 중 한 부분은 사회를 초월해 있다 – 으로 [나누어서] 연구할 수밖에 없다.
상황 바꾸기와 인간의 활동 바꾸기 또는 자기변화 사이의 일치는 혁명적 실천으로서만 파악하고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3 [1888년, 엥엘스의 편집본]
인간이 상황(Umstand, 환경)과 교육의 산물이며 따라서 다른 상황과 변화된 교육으로 인간이 변화한다고 보는 유물론의 교의는 바로 인간이 상황을 바꾸며 교육자 자신이 교육 받아야 함을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사회를 두 부분 – 그 중 한 부분은 사회를 초월해 있다 – 으로 나누게 된다. (예컨대, 로버트 오웬Robert Owen.)
상황 바꾸기와 인간 활동 바꾸기 사이의 일치는 전복적(umwälzend, 체제 전복적, 변혁적) 실천으로서만 파악하고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4 [1845년, 원본]
포이어바흐는 종교적 자기 소외라는 사실에서, 즉 세계가 종교적 세계와 세속적 세계로 이원화한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세속적 토대를 바탕으로 종교적 세계를 해명한 것이 그의 작업의 핵심이다. 하지만 세속적 토대가 자기 자신과 대조를 이루며 구름 속에서 독립된 왕국으로 고정된다는 점은 이 세속적 토대의 자기분열과 자기모순으로만 설명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세속적 토대를 ...... 그것의 모순(Widerspruch, 갈등)을 고려하면서 이해해야 할 뿐 아니라 실천적으로 이 세속적 토대에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5] 따라서 예컨대 지상의 가족이 신성한 가족(heilige Familie)[6]의 비밀임이 드러난 이상 이제 지상의 가족 자체를 이론적으로 실천적으로 파괴해야 한다.
4 [1888년, 엥엘스의 편집본]
포이허바흐는 종교적 자기 소외라는 사실에서, 즉 세계가 종교적, 상상적 세계와 현실 세계로 이원화한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세속적 토대를 바탕으로 종교적 세계를 해명한 것이 그의 작업의 핵심이다. 그는 이 작업을 완료한 다음에도 중요한 일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 세속적 토대가 자기 자신과 대조를 이루며 구름 속에서 독립된 왕국으로 고정된다는 사실은 바로 이 세속적 토대의 자기분열과 자기모순으로만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선 이 세속적 토대를 그것의 모순을 고려하면서 이해해야 하며, 그 다음에는 그 모순을 실천적으로 제거하는 혁명을 이 세속적 토대에 일으켜야 한다. 따라서 예컨대 지상의 가족이 신성한 가족(heilige Familie)의 비밀임이 드러난 이상 이제 지상의 가족 자체를 이론적으로 비판하고 실천적으로 전복해야 한다.
5 [1845년, 원본]
포이어바흐는 추상적 사고로 만족하지 못하고 관조(Anschauung, 관찰)를 원하지만[7] 감각(Sinnlichkeit)을 실천적인 인간의-감각적 활동(menschliche-sinnliche Tätigkeit)으로 파악하지 않는다.
5 [1888년, 엥엘스의 편집본]
포이어바흐는 추상적 사고로 만족하지 못하고 감각적 관조(sinliche Anschauung, 감각적 관찰)에 호소하지만 감각(Sinnlichkeit)을 실천적인 인간의-감각적 활동(menschliche-sinnliche Tätigkeit)으로 파악하지 않는다.
6 [1845년, 원본]
포이어바흐는 인간의 본질을 바탕으로 종교의 본질을 분석한다. 하지만 인간의 본질은 한 개인에 내재하는 추상(Abstraktum)이 아니다. 현실 속에서 그것은 사회적 관계들의 협주(das ensemble der gesellschaftlichen Verhältnisse)다.
이런 현실의 존재에 대한 비판에 착수하지 않은 포이어바흐는 불가피하게
1. 역사적 과정을 도외시하였으며(abstrahieren, 추상하였으며), 종교적 심성을 그 자체로 고찰했으며, 추상적 – 고립된 – 인간 개인을 가정하였으며,
2. 따라서 본질을 “종류(Gattung)”로만, 내적이고, 잠자코 있으며(stumm), 많은 개인들을 자연적으로 결합하는(verbindend)[8] 보편성으로만 파악할 수 있었다.
6 [1888년, 엥엘스의 편집본]
포이어바흐는 인간의 본질을 바탕으로 종교의 본질을 분석한다. 하지만 인간의 본질은 한 개인에 내재하는 추상(Abstraktum)이 아니다. 현실 속에서 그것은 사회적 관계들의 협주(das Ensemble der gesellschaftlichen Verhältnisse)다.
이런 현실의 존재에 대한 비판에 착수하지 않은 포이어바흐는 불가피하게
1. 역사적 과정을 도외시하였으며(abstrahieren, 추상하였으며), 종교적 심성을 그 자체로 고찰했으며, 추상적 – 고립된 – 인간 개인을 가정하였으며,
2. 따라서 인간의 본질을 “종류(Gattung)”로만, 내적이고, 잠자코 있으며(stumm), 많은 개인들을 순전히 자연적으로 결합하는(verbindend) 보편성으로만 파악할 수 있었다.
7 [1845년, 원본]
따라서 포이어바흐는 “종교적 심성” 자체가 사회의 산물이며 그가 분석한 추상적 개인이 현실에서는 특정한 사회 형태에 속해 있다는 점을 보지 못했다.
7 [1888년, 엥엘스의 편집본]
따라서 포이어바흐는 “종교적 심성” 자체가 사회의 산물이며 그가 분석한 추상적 개인이 현실에서는 특정한 사회 형태에 속해 있다는 점을 보지 못했다.
8 [1845년, 원본]
모든 사회적 삶은 본질적으로 실천적이다. 이론이 신비주의에 빠지게 만드는(veranlassen, 유도하는) 모든 신비는 인간의 실천 속에서 그리고 이 실천을 이해함으로써 합리적으로 풀 수 있다.
8 [1888년, 엥엘스의 편집본]
사회적 삶은 본질적으로 실천적이다. 이론이 신비주의에 빠지게 만드는(verleiten, 유혹하는) 모든 신비는 인간의 실천 속에서 그리고 이 실천을 이해함으로써 합리적으로 풀 수 있다.
9 [1845년, 원본]
관조적 유물론(anschaunder Materialismus), 즉 감각을 실천적 활동으로 파악하지 않는 유물론은 기껏해야 개별 개인들과 시민 사회(bürgerliche Gesellshaft)를 관조할 수 있을 뿐이다.
9 [1888년, 엥엘스의 편집본]
관조적 유물론(anschaunder Materialismus), 즉 감각을 실천적 활동으로 파악하지 않는 유물론은 기껏해야 개별 개인들과 “시민 사회(bürgerliche Gesellshaft)”를 관조할 수 있을 뿐이다.
10 [1845년, 원본]
낡은 유물론의 발판은 시민 사회이며, 새 유물론의 발판은 인간다운 사회(menschliche Gesellschaft) 또는 사회적 인간다움(gesellschaftliche Menschheit, 사회적 인류)이다.
10 [1888년, 엥엘스의 편집본]
낡은 유물론의 발판은 “시민” 사회이며, 새 유물론의 발판은 인간다운 사회(menschliche Gesellschaft) 또는 사회적 인간다움(gesellschaftliche Menschheit, 사회적 인류)이다.
11 [1845년, 원본]
철학자들은 세계를 여러 가지로 해석해왔을 뿐이다. 세계를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11 [1888년, 엥엘스의 편집본]
철학자들은 세계를 여러 가지로 해석해왔을 뿐이다. 하지만 세계를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1] “Gedankenobjekt”는 “생각 속에 있는 객체” 즉 “머리 속에 있는 표상”을, “sinnliches Objekt”는 “인간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인간이 감각을 통해 접합 수 있는 객체”를 뜻하는 것 같다. --- 옮긴이
[2] 시위, 파업, 봉기와 같이 행동을 통해 비판하는 것을 말하는 듯하다. --- 옮긴이
[3] http://www.mlwerke.de/me/me03/me03_533.htm 에 있는 원문에는 <praktisch-kritisch>가 따옴표로 묶이지 않았는데 실수가 있었던 듯하다. --- 옮긴이
[4] 진리에는 힘이 있다. 만약 어떤 의학 지식을 실천 즉 의술에 응용했는데 강력한 치유력을 발휘한다면 진리로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 옮긴이
[5] Diese selbst muß also in isch selbst sowohl in ihrem Widerspruch verstanden als praktisch revolutioniert werden.
“isch”는 온전한 단어가 아니다. 마르크스의 악필을 제대로 해독하지 못한 듯하다. --- 옮긴이
[6] “heilige Familie”는 성모 마리아, 요셉, 아기 예수로 이루어진 가족을 뜻한다. 여기에서는 종교를 말하는 것 같다. “지상의 가족”은 종교가 생기도록 한, 모순에 찬 세속적 토대를 말하는 것 같다. --- 옮긴이
[7] 세상에는 생각 밖에 없다고 믿는 관념론자와는 달리 유물론자인 포이어바흐는 인간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물질이 있고 그 물질을 감각을 통해 관찰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었다는 이야기인 것 같다. --- 옮긴이
[8] 여기서 “결합”은 유기적 결합이 아니라 분류를 뜻하는 것 같다. 토끼의 보편적인 자연적 속성들을 보이는 많은 토끼들을 “토끼”라는 종류로 묶듯이 인간의 보편적인 자연적 속성들을 보이는 많은 인간들을 “인간”이라는 종류로 묶는다는 이야기인 것 같다. --- 옮긴이
첫댓글 "isch"는 "sich"의 오타입니다.
http://durl.me/d63kz (에이치ttp://www.marxists.org/deutsch/archiv/marx-engels/1845/thesen/thesfeue-or.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