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세기의 온갖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고질적인 사고 왜곡 성향 또는 자기 기만 성향이 있다. 그런 성향이 너무나 광범위해서 병리적 현상이라고 치부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프로이트는 이런 현상을 쾌락 원리(Lustprinzip, pleasure principle)로 설명했다. 이제는 프로이트와 정신분석이 주류 심리학계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지만 쾌락 원리를 끌어들인 사고 왜곡에 대한 설명은 소망적 사고(wishful thinking)라는 이름으로 심리학계와 사회학계에서 널리 인정받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있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이런 설명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그들은 사고 왜곡 성향을 프로이트와는 매우 다른 방식으로 설명한다. 프로이트가 사고 왜곡이 대체로 쾌감을 주는 방향으로 일어난다고 본다면 진화 심리학자들은 사고 왜곡이 번식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일어나는 경향이 있다고 본다. 적어도 우리 조상들이 진화했던 환경에서는 대체로 번식에 도움이 되는 방향이었다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사고 왜곡과 관련하여 여러 진화 심리학자들이 선호하는 설명을 제시하고, 그것이 쾌락 원리 또는 소망적 사고를 끌어들인 설명과 어떻게 다른지 보여줄 것이다.
소망적 사고와 관련하여 나의 생각은 진화 심리학자 Robert Kurzban의 생각과 많이 비슷하다.
『Why Everyone (Else) Is a Hypocrite: Evolution and the Modular Mind』, Robert Kurzban,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0.
이 책 전체가 소망적 사고와 어느 정도 관련되어 있지만 특히 <Chapter 7. Self-Deception> 중 “Evolution doesn’t care how happy you are”에서 소망적 사고를 정면으로 다룬다.
Everything else being equal—and holding aside arguments like the ones that I’ve made in the last couple of chapters that have to do with social strategizing—when it comes to making good decisions, being right is always going to beat being wrong. As we’ve seen, being wrong is useful in certain circumstances, such as when it can help convince others of things you want to persuade them about.
But being wrong isn’t going to be useful because it makes you feel better for a very simple reasen:
Evolution doesn’t care how happy you are.
Natural selection works because of reproductive outcomes. Modules are designed to bring about outcomes that contribute to reproductive success. No modules are designed to bring about feeling good for its own sake.
(『Why Everyone (Else) Is a Hypocrite』, 137쪽)
진화 심리학의 관점에서 쓴 아래 논문도 참조하라.
This experiment, and many others to be reviewed in this article, demonstrate also that motivated reasoning is not mere wishful thinking (a form of thinking that, if it were common, would in any case be quite deleterious to fitness and would not be coherent with the present theory). If desires did directly affect beliefs in this way, then participants would simply ignore or dismiss the test. Instead, what they do is look for evidence and arguments to show that they are healthy or at least for reasons to question the value of the test.
(「Why do humans reason? Arguments for an argumentative theory」, Hugo Mercier, Dan Sperber, http://ram.mrtc.ri.cmu.edu/_media/papers/arguments_for_an_argumentative_theory.pdf)
제목은 좀 도발적으로 붙였다. 내가 소망적 사고 가설이 완전히 반증되었으며 진화 심리학 가설이 완전히 입증되었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심리학 가설이 거의 항상 그렇듯이 확실한 검증은 매우 힘들다.
내 생각에는 소망적 사고 가설 자체만 놓고 보았을 때 입증된 것과는 거리가 아주 멀어 보인다. 또한 소망적 사고 가설과 여기에서 제시하는 진화 심리학 가설을 비교해 보았을 때 오히려 진화 심리학 가설이 더 가망성이 커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망적 사고 가설이 마치 잘 검증되기라고 한 듯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이 글에서 쾌감, 불쾌감, 사고 왜곡을 아주 넓은 의미로 사용할 것이다.
우리는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나 자발적이고 안전하게 성교를 할 때 쾌감을 느낀다. 쾌감 개념을 소위 육욕에만 적용하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도덕적인 문제에도 적용할 것이다. 도덕적으로 옳은 일을 할 때 느끼는 뿌듯함, 죄를 저지른 사람을 처벌할 때 느끼는 통쾌함, 보상을 하거나 처벌을 당함으로써 죄책감에서 벗어날 때 느끼는 편안함 등도 쾌감에 포함된다. 뇌의 보상 체계(쾌감 중추)는 이럴 때에도 작동하는 것 같다.
쾌감을 느끼는 상황을 나열하자면 끝도 없다. 날씨가 더울 때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면 쾌감을 느낀다. 날씨가 추울 때에는 따뜻한 난로가 쾌감을 준다. 바둑이나 축구에서 이길 때에도 쾌감을 느끼고, 자신이 남들보다 나은 점이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에도 쾌감을 느낀다. 재미있는 게임을 할 때에도, 복권에 당첨될 때에도, 승진을 할 때에도, 자식이 원하는 대학에 합격할 때에도, 원수를 갚을 때에도, 원수가 망하는 꼴을 볼 때도, 자신이 했던 말이 옳다는 것이 드러날 때에도 쾌감을 느낀다. 맹수 때문에 공포를 느끼다가 위험한 상황에서 벗어나면서 느끼는 안도감도 일종의 쾌감이다.
불쾌감 개념 역시 육욕에도, 도덕적인 문제에도 적용된다. 아주 맛없는 음식을 먹을 때에 느끼는 것도 불쾌감이지만 죄를 지었을 때 느끼는 죄책감도 불쾌감이다. 온갖 통증도 불쾌감이며 강간 당할 때 느끼는 고통도 불쾌감이다.
불쾌감을 느끼는 상황도 끝없이 나열할 수 있다. 질투, 열등감, 실망, 공포, 불안도 불쾌감이다. 너무 덥거나 추울 때, 지루할 때, 게임에서 질 때, 원수가 잘 되는 것을 볼 때, 자식이 망할 때, 이빨 사이에 뭔가가 끼었을 때, 고약한 냄새가 날 때 불쾌감을 느낀다.
사고 왜곡 또는 인지 편향에는 자기 기만, 도덕적 충돌이 생길 때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왜곡해서 해석하는 것, 자기에게 유리한 것을 더 잘 기억하고 자기에게 불리한 것을 더 잘 망각하는 것, 무의식적 위선, 특정한 문제에서 거짓 음성 오류(false negative error)보다 거짓 양성 오류(false positive error)를 더 많이 범하는 편향이나 그 반대 편향, 실제보다 자신이 더 잘났다고 생각하는 것, 다수나 지위가 높은 사람이 생각하는 방향으로 사고를 왜곡하는 것 등이 포함된다.
하지만 의식적인 거짓말이나 의식적인 위선은 이 글에서 말하는 사고 왜곡에 포함되지 않는다.
영어 사전, 백과 사전 등에서 “소망적 사고”를 어떻게 정의하는지 살펴보자.
자신이 사실이었으면 하고 소망하는 것을 현실에 투영하는 것 또는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빈약하게 정당화하는 것(the attribution of reality to what one wishes to be true or the tenuous justification of what one wants to believe)
http://www.merriam-webster.com/dictionary/wishful%20thinking
소망적 사고란 증거나 합리성에 호소하는 대신 어떤 것이 상상하기에 기분이 좋으냐에 따라 믿음을 형성하거나 결정을 내리는 것을 말한다(Wishful thinking is the formation of beliefs and making decisions according to what might be pleasing to imagine instead of by appealing to evidence or rationality).
http://en.wikipedia.org/wiki/Wishful_thinking
소망적 사고란 사실, 보고, 사건, 지각 등을 실제 증거에 따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것에 따라 해석하는 것을 말한다(Wishful thinking is interpreting facts, reports, events, perceptions, etc., according to what one would like to be the case rather than according to the actual evidence).
http://www.skepdic.com/wishfulthinking.html
심리학에서 “소망적 사고”란 어떤 것이 사실이기를 바라는 욕망(“소망”) 때문에 그것을 믿는 것을 말한다(Psychologically, "wishful thinking" is believing something because of a desire—"wish"—that it be true).
http://www.fallacyfiles.org/wishthnk.html
소망적 사고는 일종의 사고 왜곡이다. 하지만 모든 사고 왜곡이 소망적 사고인 것은 아니다. 사고 왜곡이 자신의 소망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쾌감을 주는 방향으로 일어날 수도 있지만 자신의 소망에 반대되는 방향으로, 불쾌감을 주는 방향으로 일어날 수도 있다. 후자의 방향으로 사고 왜곡이 일어나는 경우는 소망적 사고가 아니다.
그렇다면 전자의 방향으로 일어나는 사고 왜곡이 모두 소망적 사고인가? 물론 개념은 정의하기 나름이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소망적 사고를 정의해서 쓰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의미로 쓰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런 개념은 인과론과 상관 없는 단순한 분류에 불과하다.
만약 “소망적 사고”를 그런 식으로 정의하겠다면, “반소망적 사고”라는 개념을 만들어서 “소망에 반대되는 방향으로 일어나는 사고 왜곡”으로 정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사고 왜곡을 “소망적 사고”와 “반소망적 사고”로 구분할 수도 있겠다. 원한다면 “소망 중립적 사고 왜곡” 개념도 하나 만들 수 있겠다.
소망 또는 쾌감 추구 성향 또는 불쾌감 회피 성향이 사고 왜곡의 원인일 때만 소망적 사고라고 부를 수 있다. 이것이 나의 정의이며 위에 인용한 정의들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fallacyfiles.org에서 인용한 정의에서는 “because of”가 명시적으로 들어 있다. 다른 정의에서는 “attribution”과 “according to”라는 표현이 쓰였지만 문맥으로 볼 때 “때문에(because of)”로 해석해야 할 것 같다.
만약 소망적 사고 개념을 이런 식으로 정의한다면 소망적 사고가 일어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소망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또는 쾌감을 주는 방향으로 또는 불쾌감을 줄이는 방향으로 사고 왜곡이 일어났음을 보여주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소망 또는 쾌감 추구 성향 또는 불쾌감 회피 성향이 사고 왜곡의 원인임을 보여주어야 한다. 나는 이것을 잘 입증한 연구를 본 기억이 없다. 소망 또는 쾌감의 방향과 사고 왜곡의 방향 사이의 상관 관계를 보여주는 연구만 많은 것 같다.
상관 관계와 인과 관계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소망적 사고가 일어나기도 한다고 믿는 사람들은 인과 관계까지 입증한 연구가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프로이트는 쾌락 원리와 현실 원리를 대비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마음 속에서 쾌락 원리와 현실 원리가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인간에게는 쾌감을 추구하고 불쾌감을 회피하는 성향이 있으며 현실을 고려하는 성향도 있다. 이것은 뻔한 진리다. 프로이트의 쾌락 원리 개념은 쾌감 추구 성향에 이름만 붙인 것일까? 아니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쾌락 원리 때문에 인간은 불쾌한 기억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으며, 불쾌한 기억을 잘 의식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으며, 쾌감을 늘리거나 불쾌감을 줄이는 방향으로 기억이나 사고를 왜곡하는 경향이 있다. 그는 인간의 쾌감 추구 성향과 불쾌감 회피 성향이 사고를 무의식적으로 왜곡할 정도로 강력하다고 보았다.
쾌락 원리는 현실을 무시하고 고집스럽게 쾌감을 추구하고 불쾌감을 회피하도록 만든다. 프로이트의 관점에서 볼 때 현실 원리는 합리성을 대변하며 쾌락 원리는 비합리성을 대변한다. 쾌락 원리가 현실 원리에게 승리하는 순간은 비합리성이 승리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여러 진화 심리학자들이 프로이트의 이론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고 왜곡을 설명한다. 그들이 제시하는 가설을 하나씩 살펴보자. 이 가설들이 서로 모순되는 것은 아니다. 모두 참일 수도 있다. 물론 모두 거짓일 수도 있다.
인간은 짝짓기 시장과 우정 시장에서 서로 경쟁한다. 여자가 잘난 남자와 성교하면 좋은 유전자(good gene, 번식에 도움이 되는 유전자)를 얻을 수 있다. 여자가 잘난 남자와 결혼하면 좋은 유전자를 얻을 수 있으며 자식을 돌보는 데 도움이 된다. 잘난 남자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자식에게 온갖 측면에서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여자가 착한 남자와 결혼하면 자식을 돌보는 데 도움이 된다. 착한 남자는 여자나 자식을 쉽게 저버리지 않는다.
남자가 잘난 여자와 결혼하면 자식에게 온갖 측면에 도움이 된다. 잘난 여자는 자식에게 좋은 유전자를 물려줄 수 있다. 잘난 여자는 자식을 더 잘 돌볼 수 있다. 남자가 바람기가 없는 여자와 결혼하면 남의 유전적 자식을 돌볼 가능성이 작다.
남자든 여자든 잘난 사람을 친구로 두면 온갖 이득을 볼 수 있다. 남자든 여자든 착한 사람을 친구로 두면 배신 당할 가능성이 작다.
사람들은 잘나고 착한 사람과 사귀고 싶어한다. 따라서 사람들이 자신을 잘나고 착한 사람으로 생각하도록 만들 수 있다면 이득을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자신의 인기가 올라갈수록 더 나은 사람과 사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잘나고 착하다면 사람들이 그렇게 볼 것이다. 하지만 속임수를 통해서 실제보다 자신을 더 잘나고 착한 사람으로 보이게 만들 수도 있다.
실제보다 자신이 더 잘나고 착하다고 스스로 믿는다면 남을 속이기 더 쉬울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그런 방향으로 사고 왜곡을 일으키도록 “설계”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남을 속이기 위해서 자기 기만에 빠지도록 진화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과 의견이 비슷한 사람과 어울리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의견에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사람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학자들 중에는 자기 이론의 약점을 제대로 비판해주길 진심으로 바라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지위가 높은 사람과 자신의 의견이 비슷하면 그 사람과 친해지는 데 도움이 된다. 지위가 높은 사람과 친해지면 여러 가지로 번식에 도움이 된다. 따라서 인간이 지위가 높은 사람의 의견에 동조하도록 진화했을 가능성이 있다.
다수의 의견과 자신의 의견이 사사건건 충돌하면 왕따 당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인간이 다수의 의견에 동조하도록 진화했을 가능성이 있다.
집요하게 진리를 추구하는 것보다는 때로는 다른 사람들이 믿는 것을 믿음으로써 잘 어울리는 것이 번식에 도움이 된다.
어떤 행동의 잘잘못을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고 하자. 이 때 자신 또는 자신의 가까운 친족 또는 자신의 배우자 또는 자신의 친한 친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왜곡하면 이런 논쟁에서 이길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이 그런 방향으로 사고를 왜곡하도록 진화했을 가능성이 있다.
독사인데 독사가 아니라고 생각할 때는 막대한 비용을 치르게 된다.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면 독사에게 물리기 쉬운데 그러다가 죽을 수도 있다. 반면 독사가 아닌데 독사라고 생각하면 그것을 피하기 위해 드는 약간의 에너지만 낭비하면 된다. 따라서 애매할 때에는 독사라고 생각하고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따라서 인간이 애매할 때에는 독사라고 생각하도록 진화했을 가능성이 있다.
여자가 남자에게 추파를 던졌는지 여부가 애매할 때 남자가 어떤 쪽으로 생각하는 것이 유리할까? 만약 추파를 던졌는데 안 던졌다고 생각한다면 짝짓기 기회를 날리게 된다. 이것은 막대한 손해다. 반면 추파를 안 던졌는데 던졌다고 생각한다면 약간 민망해진다. 이것은 상대적으로 작은 손해다. 따라서 애매할 때에는 추파를 던졌다는 쪽으로 생각하는 것이 번식에 도움이 된다. 따라서 남자가 애매할 때에는 추파를 던졌다고 생각하도록 진화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것들을 오류 관리 이론(error management theory)이라고 한다. 오류 관리 이론에서는 오류에 따른 비용(번식에 끼치는 손해)을 따진다. 그리고 동물이 대체로 작은 비용을 치르는 쪽으로 오류를 더 많이 범하도록 “설계”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프로이트의 현실 원리는 합리성을 추구한다. 이 때 합리성의 의미가 애매하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고전적 합리성과 생태적 합리성을 구분한다. 거칠게 말하자면 고전적 합리성의 기준은 진리이며 생태적 합리성의 기준은 번식이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생태적 합리성을 매우 중시한다. 왜냐하면 자연 선택에서 번식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고 왜곡에 대한 온갖 연구에서 사고 왜곡의 기준은 보통 고전적 합리성이다. 고전적 합리성에 비추어 볼 때 인간은 사고 왜곡을 하는 경향이 다분하다. 진화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그런 사고 왜곡이 아무렇게나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패턴이 있다. 그리고 그 패턴은 대체로 생태적 합리성에 부합한다. 인간이 진리라는 기준에 비추어 볼 때에는 사고를 왜곡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 왜곡이 대체로 과거에 번식에 도움이 되었던 방향으로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연 선택의 논리를 생각해 볼 때 당연하다. 자연 선택의 기준은 진리가 아니라 번식이다.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포괄 적합도(inclusive fitness) 개념과 유전자 복제와 관련된 온갖 복잡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 유전체내 갈등(intra-genomic conflict)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 한다. 여기에서는 그런 복잡한 사정이 있다는 것만 지적하고 그냥 제쳐두기로 하자.
세상에 대해 정확히 아는 것이 번식에 도움이 될 때가 많지만 오히려 부정확하게 아는 것이 번식에 도움이 될 때도 있다. 따라서 인간이 상황에 따라서는 사고를 왜곡하도록 진화했을 것이라고 기대할 만하다.
물론 자연 선택이 완벽한 기제를 만들어내지는 않기 때문에 생태적 합리성 개념에 비추어 볼 때에도 인간은 비합리적일 때가 있다. 예컨대 많은 현대인들이 콘돔을 사용함으로써 스스로 번식을 엄청나게 제한한다.
프로이트가 쾌락 원리 또는 소망적 사고 또는 사고 왜곡에서 비합리성만 보는 반면 진화 심리학자들은 사고 왜곡에서 비합리성(고전적 합리성에 비추어 볼 때)도 보고 합리성(생태적 합리성에 비추어 볼 때)도 본다.
동네 깡패를 만났을 때 “야, 나는 도끼파 행동대장이야. 너는 어디 소속이야”라며 허세를 부린다면 잘 하면 통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바나에서 사자를 만났을 때 “야, 작년에 내가 너보다 더 큰 사자 한 마리를 맨손으로 때려 잡았어. 죽기 싫으면 그냥 가”라고 허세를 부린다고 해서 통할 리가 없다. 말이 안 통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커다란 바위가 굴러내려 올 때 “야, 작년에 내가 더 보다 더 큰 바위한테 깔렸어도 하나도 안 다쳤어”라고 허세를 부려봤자 소용이 없다.
기만 전략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의 믿음이다. 무생물에게는 믿음이 없다. 따라서 무생물을 대상으로 기만 전략을 펼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동물에게는 믿음이 있지만 말이 (거의) 안 통한다. 따라서 자기 기만을 통해서 상대를 기만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자기 기만을 통한 기만 전략은 인간에게는 꽤 잘 통한다.
만약 자기 기만이 다른 인간을 속이기 위한 전략으로서 진화했다면 맥락에 따라 자기 기만이 일어나는 정도가 다를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무생물이나 동물을 상대해야 할 때보다 사람을 상대할 경우에 자신을 과대 평가하는 식으로 자기 기만에 빠질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반면 단지 쾌감을 얻고 불쾌감을 회피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옆에 사람이 있든, 사자가 있든, 바위가 있든 상관 없이 자신을 과대 평가하는 식으로 자기 기만에 빠지면 된다. 자신이 잘났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누군가 기만 전략을 쓰도록 진화한다면 그런 기만에 속지 않도록 하는 진화도 일어나기 마련이다. 따라서 뻥을 너무 크게 치면 들통나기 쉽다. 따라서 뻥을 너무 크게 치지 않도록 진화했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즉 남들이 속을 만큼만 자기 기만에 빠지도록 진화했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만약 단지 쾌감을 얻는 것이 목적이라면 뻥이 클수록 더 도움이 된다. 자신의 지능이 상위 10%에 속한다고 생각할 때보다 상위 1%에 속한다고 생각할 때 기분이 더 좋다. 아예 자신이 아인슈타인보다 더 똑똑하다고 생각하면 제일 기분이 좋을 것이다.
--- 오류 관리 이론과 소망적 사고: 어느 방향으로? ---
소망적 사고 가설에 따르면 사고 왜곡은 쾌감을 늘리고 불쾌감을 줄이는 방향으로 일어나게 마련이다. 반면 오류 관리 이론에 따르면 사고 왜곡은 손해를 덜 보는 쪽으로 일어나게 마련이다.
독사인지 여부가 애매한 경우 독사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안심이 된다. 이것이 소망적 사고 가설의 예측이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오류 관리 이론의 예측은 정반대다.
여자가 자신에게 추파를 던졌는지 애매한 경우 추파를 던졌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이것이 소망적 사고 가설의 예측이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오류 관리 이론의 예측도 이 경우에는 마찬가지다.
자신의 아내가 바람을 피웠는지 여부가 애매한 경우 바람을 피우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안심이 된다. 이것이 소망적 사고 가설의 예측이다. 반면 오류 관리 이론의 예측은 정반대다. 아내가 바람을 피우고 있는데 모르는 경우 남편은 남의 유전적 자식을 위해 엄청난 시간을 들이는 손해를 볼 수 있다. 반면 아내가 바람을 피우지 않았는데 피웠다고 의심하는 경우에는 그보다는 손해를 덜 본다. 따라서 애매한 경우에는 바람을 피웠다고 생각하는 것이 적응적이다.
--- 천국과 지옥 ---
어떤 기독교 사회가 있다고 하자. 그 사회에서는 천국을 엄청나게 강조하고 지옥에 대해서는 거의 무시하는 교리가 지배하고 있다고 하자. 이런 교리는 위안을 준다. 만약 왕따 당하지 않는 것이 목적이라면 사람들이 대체로 이런 교리를 받아들일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만약 쾌감을 얻고 불쾌감을 회피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사람들이 대체로 이런 교리를 받아들일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적응 가설과 소망적 사고 가설의 예측이 같다.
다른 기독교 사회에 대해 생각해 보자. 그 사회에서는 지옥을 엄청나게 강조하고 천국에 대해서는 거의 무시하는 교리가 지배하고 있다고 하자. 이런 교리는 불안하게 만든다. 만약 왕따 당하지 않는 것이 목적이라면 사람들이 대체로 이런 교리를 받아들일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만약 쾌감을 얻고 불쾌감을 회피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사람들이 대체로 이런 교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적응 가설과 소망적 사고 가설의 예측이 정반대다.
광고의 맥락에서는 자신을 과대 평가하는 것이 도움이 되지만 행동을 결정해야 하는 맥락에서는 그 상대가 인간이라 하더라도 자신에 대한 과대 평가가 재앙으로 이어지기 쉽다. 따라서 인간이 광고의 맥락에서는 자신을 상대적으로 더 많이 과대 평가하고 행동의 맥락에서는 자신을 상대적으로 더 냉정하게 평가하도록 진화했을 가능성이 있다.
싸움 능력의 예를 살펴보자. 남자가 여자들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싸움을 잘 하는지에 대해 떠벌릴 때에는 자신에 대해 어느 정도 과대 평가하는 것이 유리하다. 그것이 여자들 앞에서 잘 보이는 길이기 때문이다. 반면 일촉즉발의 순간에 실제로 다른 남자와 싸움을 할지 여부를 결정해야 할 때에는 훨씬 더 냉정하게 자신의 싸움 능력을 평가하는 것이 적응적이다. 자신보다 싸움을 잘 하는 사람에게 덤볐다가는 뼈도 못 추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만약 쾌감 추구 때문에 자기 기만이 일어나는 것이라면 그런 것을 가릴 필요가 없다. 그냥 자신이 잘났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 소망적 사고가 불쾌감의 작동을 망칠 수 있다 ---
불쾌감은 번식에 지장이 생겼을 때 그것을 해결하도록 한다.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이야기 속의 타조처럼 사고 왜곡을 통해서 불쾌감에서 벗어나면 번식에 지장을 받는다. 몇 가지 예를 살펴보겠다.
첫째, 자식이 실종되었다고 하자. 자식이 실종되었다는 사실을 직시하는 것은 괴롭다. 반면 자식이 실종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괴롭지 않다. 소망적 사고를 하는 사람은 자식이 실종되지 않았다고 믿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면 자식을 찾아 헤매는 수고를 하지 않을 것이다. 자식을 찾아 헤매지 않으면 자식이 죽거나 심하게 다칠 가능성이 커진다. 그러면 그 사람은 제대로 번식하기 힘들다.
둘째, 동굴에 곰 세 마리가 들어가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하자. 그 후 곰 두 마리가 나오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하자. 소망적 사고를 하는 사람은 이제 곰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안심할 것이다. 그리고 그 동굴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반면 냉철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곰이 적어도 한 마리는 있다고 생각하며 불안에 떨면서 그 동물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누가 더 잘 생존하겠는가? 생존하지 못하면 번식은 물 건너 간다.
셋째, 폭이 5m나 되는 구덩이가 있다고 하자. 매우 깊어서 거기에 떨어지면 심각한 부당을 당하거나 죽을 수도 있다. 만약 그것을 쉽게 뛰어넘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좋을 것이다. 다른 사람에 비해 자신이 우월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믿는 사람은 실제로 구덩이를 뛰어넘으려고 하다가 빠질 가능성이 있다. 반면 자신의 능력을 냉정하게 판단하는 사람은 공포를 느끼고 그런 무모한 짓을 안 할 것이다.
넷째, 소망적 사고를 하는 사람은 불쾌했던 경험은 쉽게 잊을 것이다. 매우 위험했던 경험을 쉽게 잊어버리는 사람과 그것을 잘 기억하는 사람을 비교해 보자. 그것을 잘 기억하는 사람은 쉽게 잊어버리는 사람에 비해 비슷한 위험을 피할 가능성이 클 것이다.
너무 극단적인 사례라서 설득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덜 극단적인 사례를 떠올려 보면 된다. 덜 극단적인 사례에서도 불쾌감의 작동을 방해하면 대체로 번식에 지장을 준다.
--- 하지만 현실 원리가 출동하면 어떨까? ---
<뻥이 너무 심하면 들통나기 쉽다>에서 쾌락 원리는 “나는 아인슈타인보다 똑똑하다”고 믿도록 밀어붙인다고 이야기했다. 과대망상과 같은 병리적 사례를 제외하면 평범한 사람이 그런 식의 엄청난 자기 기만에 빠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렇다면 소망적 사고 가설이 반증된 것일까? 아니다.
빠져나갈 구멍은 있다. 현실 원리가 출동하면 된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머리 속에서 쾌락 원리와 현실 원리가 끝없는 전쟁을 벌인다. 쾌락 원리가 “나는 아인슈타인보다 똑똑하다”는 쪽으로 밀어붙이지만 현실 원리가 그 반대 방향으로 끌어당기기 때문에 그런 엄청난 자기 기만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설명하면 된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반증될 것 같을 때마다 현실 원리가 출동한다면 반증이 불가능한 가설이 될 위험이 있다. 쾌락 원리와 현실 원리가 어떤 식으로 상호작용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기제(mechanism)를 대지 않으면 그냥 필요할 때마다 쾌락 원리와 현실 원리를 끌어들여서 그럴 듯해 보이는 설명(정확히 말하면 사이비 설명)을 제시하는 것에 그칠 위험이 있는 것이다.
이덕하
version 0.1
2013-0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