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에크에 따르면 사회주의가 한 약속은
달성이 불가능하다.
If such a morality pretends to be
able to do something that it cannot possibly do, e.g., to fulfill a
knowledge-generating and organisational function that is impossible under its
own rules and norms, then this impossibility itself provides a decisive
rational criticism of that moral system. It is important to confront these
consequences, for the notion that, in the last resort, the whole debate is a
matter of value judgements and not of facts has prevented professional students
of the market order from stressing forcibly enough that socialism cannot possibly
do what it promises.
(『The Fatal Conceit: The
Errors of Socialism』, 8쪽, http://www.libertarianismo.org/livros/fahtfc.pdf)
7쪽에서 한 이야기를 볼 때 여기서 말하는 약속이란 “생산력 해방”을 뜻하는 것 같다.
『치명적
자만(하이에크)』 비판:
002. 사회주의자가 생산력에만 목숨을 거나?
http://cafe.daum.net/Psychoanalyse/KtJp/2
마르크스의 역사적 유물론에 따르면 생산력이
발전하면서 노예제적 생산 관계, 봉건적 생산 관계, 자본주의적
생산 관계 등은 생산력에 대한 족쇄가 된다. 생산 관계가 생산력에 대한 족쇄가 될 때 계급 투쟁이 일어나며
계급 투쟁 덕분에 생산 관계가 바뀐다. 바뀐 생산 관계 속에서 생산력은 (적어도 일시적으로) 해방된다. 최종적인
생산 관계인 사회주의 하에서 생산력은 자본주의보다도 더 해방된다.
나는 마르크스의 역사 이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 이유 중 하나는 핵심 이론 중 하나가 인과론이 아닌 목적론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생산 관계가 생산력에 대한 족쇄가 될 때 그런 족쇄를 풀기 위해 계급 투쟁이 일어난다는 식이다. 이것은 자유를 촉진하기 위해 “역사의 간지”가 개입한다고 보는 헤겔의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마르크스는 헤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마르크스는 왜 생산 관계가 생산력에 대한
족쇄가 될 때 계급 투쟁이 격화될 수밖에 없는지를 인과론으로 설명하지 못한 것 같다. 노동자들이 “자본주의적
생산 관계가 생산력에 대한 족쇄가 되었군. 생산력을 해방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열심히 싸워야 한다”라는
식으로 생각해서 계급 투쟁에 나선단 말인가? 그것이 아니라면 생산력의 신이 있어서 은밀히 역사에 개입한단
말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어떤 인과론인가?
역사적 유물론의 생산력이 자연 선택의 번식력과
상응하는 면이 있다. 둘 다 목적론 같아 보인다. 생산력이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역사가 전개되고 번식력이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진화가 일어난다는 식이다.
하지만 자연 선택 이론은 인과론이다. 생물이 의식적으로 “번식을 최대화해야겠군”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번식력의
신이 있어서 은밀히 진화 역사에 개입하는 것도 아니지만 번식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진화가 일어날 수 있다.
유전자 수준에서 고찰해 보자. 어떤 유전자자리(locus)에 대립유전자(allele) A와 B가 있다고 하자. 평균적으로 A가 B에
비해 번식에 더 도움이 된다면 세대를 거듭할수록 유전자 풀(gene pool)에서 A의 상대적 비중이 대체로 커지게 마련이다. 따라서 A의 방향으로 진화가 일어난다. 결국 번식력이 더 나아지는 방향으로
진화가 일어난 것이다. 이런 인과론에는 “역사의 간지”에 해당하는 “진화의 간지” 같은 초월적인 개입이
필요 없다.
마르크스나 그의 후예들은 자연 선택의 인과론에
필적할 만한 인과론을 제시한 적이 없는 것 같다. 생산력 최대화라는 “역사의 목적”을 헤겔의 역사 이론만큼이나
애매하게 제시했을 뿐이다.
어쨌든 “사회주의 체제는 자본주의 체제에
비해 생산력을 더 해방한다”는 과학의 교권에 속하는 사실 명제다. 마르크스가 사회주의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으며 많은 사회주의자들이 이 명제를 받아들인 것 같다.
하지만 사회주의자들이 생산력 해방을 위해
사회주의 운동에 나선 것일까?
전제 (가치 명제): 생산력 해방이 지상 목표다
전제 (사실 명제): 사회주의 체제는 생산력을 해방한다
결론 (가치 명제): 사회주의를 추구해야 한다
그들이 위와 같은 삼단 논법을 받아들였을까? 그들이 다른 사람들을 사회주의 운동으로 끌어들일 때 “생산력 해방이 지상 목표다”라는 말부터 시작했을까?
아니다.
사회주의자들이 주로 약속한 것은 경제적 평등, 정치적 자유, 국가간 평화 등이었다.
따라서 아무리 마르크스와 일부 후예들이
“사회주의 체제는 자본주의 체제에 비해 생산력을 더 해방한다”라는 사실 명제를 애지중지했다 하더라도 그 명제가 무너진다고 해서 사회주의가 결정적인
타격을 받는 것이 아니다.
사회주의와 관련된 논쟁에는 가치 판단과
관련된 문제들이 개입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생산력 해방” 또는 “지식과 부의 생산 최대화”를 유일한
지상 목표로 삼은 사회주의자는 사실상 없었던 것 같다. 그런 가치를 별로 중시하지 않은 사회주의자들이
더 많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