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 심리학에서 여자가 일부일처제에 적합하게 태어난다고 주장한단다. 그것이 대니얼 버그너의 생각이다. 적어도 아래에 인용된 기사에서는 그렇게 쓰고 있다. 도대체 버그너는 어떤 글을 읽고 진화 심리학자들이 그렇게 생각한다고 믿는 것인지 모르겠다.
미국의 과학 저술가인 저자는 ‘남성은 수시로 성욕을 느끼지만 여자는 친밀한 관계가 선행되어야 섹스를 할 수 있다’는 등 거의 상식처럼 통한 여성의 성욕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다.
저자는 ‘성과학’을 토대로 여성 성욕의 실체를 보여주고, 진화심리학의 신화를 깨트린다. 진화심리학은 여자들이 일부일처에 적합하게, 남자보다 정숙하게 태어났다고 주장해 왔다. 또 여성은 선천적으로 절제심이 더 강한 성(性)이라고 말한다.
이는 날 때부터 정해진 표준이며 그래야 정상적이라고 가르치는 것. 저자는 “흔히 여자는 선천적으로 일부일처제라는 규범에 더 협조적인 지지자이며 생물학적으로도 이 충실함에 더 적합한 성적 자아를 가졌다고 여겨 왔다. 우리는 이 동화 같은 이야기를 여전히 굳게 믿는다”며 “이런 믿음에 힘을 보태고 있는 학문이 있으니, 바로 여자와 남자를 비교한, 그 근거도 빈약한 성 이론으로 우리의 의식 전반을 지배하며 우리의 공포를 잠재우고 있는 진화심리학이다”고 일갈한다.
책에 따르면 성과학의 임상시험에 참여한 여성들은 성적 자극에 대해 남자 못잖게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다양한 조합의 성행위 영상을 보면서 즉각적으로 흥분했으며, 설문조사에서는 ‘관심이 없다’고 대답한 여성들도 몸의 반응은 달랐다. 진화심리학에서 말하는 것처럼 문화와 사회적 학습, 관습 등이 욕망을 억누르고 있지만, 여성들의 몸은 원초적인 본능에 따르며 성적 자극에 강한 반응을 보인 것이다.
“여성 性欲은 동물적…낯선 곳서 男보다 더 자극적”
욕망하는 여자 / 대니얼 버그너 지음, 김학영 옮김 / 메디치
문화일보, 김도연 기자, 게재 일자: 2013년 12월 20일(金)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3122001032630021002
진화 심리학자들은 인류의 진화에서 사냥채집 사회를 매우 중시한다. 지난 1만 년 동안에 일어난 진화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세대 수로 볼 때에는 그리 긴 기간이 아니기 때문에 진화의 폭이 별로 크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현존 사냥채집 사회에 대한 연구를 보면 사냥채집 사회에서는 일부다처제가 지배적이다. 농경 사회에서도 일부다처제가 우세했다. 명목적으로는 일부일처제라 하더라도 후처나 첩을 두는 것을 사회적으로 용인했다. 일부일처제가 실질적인 법으로 정립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따라서 특별한 다른 증거가 없다면 농경이 시작되기 전의 인류가 일부다처제 사회에서 살았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그리고 진화 심리학자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남자든 여자든 일부다처제 사회에서 진화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도 여자만 일부일처제에 적합하게 진화했다고 본다면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만약 여자가 일부일처제에 적합하도록 진화했다면 후처가 되는 것을 본능적으로 싫어할 것이다. 나는 이런 식으로 주장하는 진화 심리학자를 본 기억이 없다. 오히려 때로는 지위가 높은 남자의 후처가 되는 것이 못난 남자의 유일한 부인이 되는 것보다는 여자에게 더 적응적이라고 보는 것인 진화 심리학계의 대체적인 의견 같다.
여자가 좋은 유전자(good gene, 번식에 도움이 되는 유전자)를 얻기 위해 바람을 피우도록 자연 선택에 의해 “설계”되었다는 가설이 진화 심리학계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이것은 여자가 일부일처제에 적합하도록 “설계”되었다는 이야기와 모순된다.
여자가 자원을 얻기 위해 바람을 피우도록 “설계”되었다는 가설, 여자가 이혼에 대비하여 미래의 남편감을 마련하기 위해 바람을 피우도록 “설계”되었다는 가설도 여자가 일부일처제에 적합하도록 설계되었다는 이야기와 모순된다. 물론 이런 가설들도 진화 심리학자들이 제시한 것이다.
남자의 질투 기제의 기능 중 하나는 오쟁이지는 것 즉 다른 남자의 유전적 자식을 키우는 일을 방지하는 것이라고 진화 심리학자들은 주장한다. 만약 여자가 일부일처제에 적합하도록 태어나서 스스로 바람 피우기를 자제한다면 남자의 질투 기제는 쓸모가 없을 것이다. 여자가 바람을 피우니까 질투 기제가 필요한 것이다.
진화 심리학을 비판하고 싶다면 진화 심리학자들이 실제로 한 이야기를 비판해야 한다. 여자가 일부일처제에 적합하도록 생겨먹었다고 어떤 자칭 진화 심리학자가 주장한다고 해도 그것은 진화 심리학계에 대체적인 의견과 별로 상관이 없다.
닥치는 대로 여러 상대와 성교를 할 때 남자가 여자보다 얻는 것이 많고, 여자가 남자보다 잃는 것이 많다고 보는 것이 진화 심리학계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따라서 여자가 남자보다 성교 상대를 더 까다롭게 고르도록 진화했다고 본다.
하지만 “성교 상대를 까다롭게 고른다”에서 “일부일처제에 적합하다”로 직행하는 것은 비약이 너무 크다. “이왕 바람을 피운다면 못생긴 남자보다는 잘생긴 남자하고 바람을 피운다”와 “정숙하기 때문에 바람을 안 피운다” 사이에는 큰 간격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