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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ational optimist: how prosperity evolves』, Matt Ridley, 2010, HarperCollins, 280~281쪽.
A constant drumbeat of pessimism usually drowns out any triumphalist song of the kind I have vented in this book so far. If you say the world has been getting better you may get away with being called naive and insensitive. If you say the world is going to go on getting better, you are considered embarrassingly mad. When the economist Julian Simon tried it in the 1990s, he was called everything from imbecile and Marxist to flat-earther and criminal. Yet no significant error came to light in Simon’s book. When Bjørn Lomborg tried it in the 2000s, he was temporarily ‘convicted’ of scientific dishonesty by the Danish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with no substantive examples given nor an opportunity to defend himself, on the basis of an error-strewn review in Scientific American. Yet no significant error has come to light in Lomborg’s book. ‘Implicit confidence in the beneficence of progress’ said Hayek, ‘has come to be regarded as the sign of a shallow mind.’
If, on the other hand, you say catastrophe is imminent, you may expect a McArthur genius award or even the Nobel Peace Prize. The bookshops are groaning under ziggurats of pessimism. The airwaves are crammed with doom. In my own adult lifetime, I have listened to implacable predictions of growing poverty, coming famines, expanding deserts, imminent plagues, impending water wars, inevitable oil exhaustion, mineral shortages, falling sperm counts, thinning ozone, acidifying rain, nuclear winters, mad-cow epidemics, Y2K computer bugs, killer bees, sex-change fish, global warming, ocean acidification and even asteroid impacts that would presently bring this happy interlude to a terrible end. I cannot recall a time when one or other of these scares was not solemnly espoused by sober, distinguished and serious elites and hysterically echoed by the media. I cannot recall a time when I was not being urged by somebody that the world could only survive if it abandoned the foolish goal of economic growth.
The fashionable reason for pessimism changed, but the pessimism was constant. In the 1960s the population explosion and global famine were top of the charts, in the 1970s the exhaustion of resources, in the 1980s acid rain, in the 1990s pandemics, in the 2000s global warming. One by one these scares came and (all but the last) went. Were we just lucky? Are we, in the memorable image of the old joke, like the man who falls past the first floor of the skyscraper and thinks ‘So far so good!’? Or was it the pessimism that was unrealistic?
Let me make a square concession at the start: the pessimists are right when they say that, if the world continues as it is, it will end in disaster for all humanity. If all transport depends on oil, and the oil runs out, then transport will cease. If agriculture continues to depend on irrigation and aquifers are depleted, then starvation will ensue. But notice the conditional: if. The world will not continue as it is. That is the whole point of human progress, the whole message of cultural evolution, the whole import of dynamic change—the whole thrust of this book. The real danger comes from slowing down change. It is my proposition that the human race has become a collective problem-solving machine and it solves problems by changing its ways. It does so through invention driven often by the market: scarcity drives up price; that encourages the development of alternatives and of efficiencies. It has happened often in history. When whales grew scarce, petroleum was used instead as a source of oil. (As Warren Meyer has put it, a poster of John D. Rockefeller should be on the wall of every Greenpeace office.) The pessimists’ mistake is extrapolationism: assuming that the future is just a bigger version of the past. As Herb Stein once said, ‘If something cannot go on forever, then it will not.’
“said Hayek” 앞에 쉼표가 없는데 실수인 듯하다.
반드시 아래 단계들을 모두 거친 후 다음 쪽을 읽도록 하자.
1. 사전과 인터넷을 찾아보면서 원문을 정독한다.
2. 초벌 번역을 한다.
3. 원문을 덮어 놓고 번역문을 정독한다. 그리고 수정할 곳을 찾아 밑줄을 쳐 놓는다.
4. 원문과 번역문의 모든 문장을 하나하나 대조하면서 수정한다.
5. 다시 원문을 덮어 놓고 번역문을 정독한다. 그리고 수정할 곳을 찾아 밑줄을 쳐 놓는다.
6. 밑줄 쳐 놓은 문장만 원문과 대조하면서 수정한다.
『이성적 낙관주의자: 번영은
어떻게 진화하는가?』, 매트 리들리 지음,
비관주의의 끊임없는 북소리는 지금까지 내가 이 책에서 표현해 온 승리주의의 모든 노랫소리를 들리지 않게 만든다. 혹시 당신이 세상은 점점 좋아져왔다고 말한다면, 순진해빠졌고 둔감한 사람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만일 세상이 지금까지와 같이 앞으로도 점점 좋아질 거라고 말한다면 당황스러울 정도로 ‘미친 사람’ 취급을 당할 것이다. 실제로 경제학자 줄리언 사이먼은 1990년대에 이렇게 말했다가 온갖 비난을 받았다. 우둔한 자, 마르크스주의자,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자, 범죄자…… 하지만 그의 저서에서 심각한 오류가 밝혀진 바는 전혀 없다.
2000년대 같은 시도를 한 비요른 롬보르Bjørn Lomborg는 한때 덴마크 국립 과학아카데미로부터 과학적으로 부정직하다는 유죄 평결을 받았다. 실질적인 증거는 없었지만 당사자가 스스로를 변호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평결의 근거는 오류로 점철된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의 서평이었다. 하지만 롬보르의 저서에서도 심각한 오류는 전혀 밝혀지지 않았다. “진보의 은혜를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것은 당신이 천박하다는 증거로 여겨지게 되었다.” 하이에크의 말이다.
반면, 파국이 임박했다고 말한다면 당신은 맥아더천재상이나 심지어 노벨평화상을 기대할 수도 있다. 서점들은 비관주의의 신전에 깔려 신음하고 있으며 공중파 방송은 파멸의 소식으로 초만원을 이룬다.
내가 성인이 된 후로 줄곧 들어온 확고한 예측은 다음과 같다. 빈곤의 증가, 다가오는 기근, 사막 확대, 악성 전염병 발발 임박, 곧 일어날 물전쟁, 피할 수 없는 석유 고갈, 광물자원 부족, 정자 수 감소, 엷어지는 오존층, 산성비, 핵겨울, 광우병 대유행, Y2K 컴퓨터 버그, 살인벌떼, (공해로 인해) 성별이 바뀐 물고기, 지구 온난화, 대양의 산성화, 심지어 지금의 행복한 막간을 끔찍한 종말로 이끌 소행성 충돌…… 냉철하고 진지한 유명 엘리트들이 이 같은 위협들 중 어느 하나를 공식적으로 지지했고, 언론은 이를 광적으로 증폭해 퍼뜨렸다. 내가 기억하는 한 이런 히스테리가 이어지지 않은 시기는 한 차례도 없다.
“인류는 경제 성장이라는 어리석은 목표를 포기할 때에만 비로소 살아남을 수 있다.” 누군가가 이런 주장으로 나를 설득하고자 하지 않은 시기는 내가 기억하는 한 결코 없다.
비관해야 할 이유는 유행에 따라 달라졌지만 비관주의는 언제나 지속됐다. 1960년대에는 인구 폭발과 세계적 기근이 목록의 가장 위에 있었다. 1970년대에는 자원 고갈이, 1980년대에는 산성비가, 1990년대에는 세계적인 유행병이, 2000년대에는 지구 온난화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이런 위협들은 하나씩 차례로 대두되었다가 (마지막 하나만 제외하고는 전부) 사라졌다. 단지 우리가 운이 좋았기 때문이었을까? 여기서 오래된 농담이 하나 떠오른다. 마천루 꼭대기에서 추락한 사람이 2층을 지나치면서 생각한다. ‘지금까지는 문제 없군!’ 우리는 이 농담 속 사람과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실제로 현실감각이 없는 것은 비관주의 쪽일까?
이제 논의를 시작하면서 공평하게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자 한다. 비관주의자가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은 타당한 주장이다. “만일 세계의 상황이 지금과 같이 지속된다면, 모든 인류가 재앙을 맞는 것으로 끝나고 말 것이다.” “만일 모든 수송수단이 석유에 의존하고 석유가 고갈된다면, 수송은 중단될 것이다.” “만일 농업이 앞으로도 계속 관개에 의존하고 대수층이 고갈된다면, 기아사태가 발생할 것이다.”
하지만 조건에 주목하라. “만일…….” 세계는 지금과 똑같은 상태로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는 인류 진보의 핵심이자 문화 진화가 보내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이며, 역동적 변화의 가장 큰 취지이고, 이 책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다. 진정한 위험은 변화의 속도를 늦추는 데서 온다.
내가 제시하는 명제는 이렇다. 인류는 집단적인 문제 해결 기계가 되었으며, 이 기계는 수단을 변경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한다. 이는 발명을 통해 수행되며, 발명의 동력은 종종 시장에서 나온다. 희소성은 가격을 상승시키고, 이는 대안 개발과 능률 향상을 촉진한다. 역사에서 이런 일은 자주 일어났다. 고래 기름이 희소해지자 석유가 대신 기름의 원료로 쓰였다(워런 마이어Warren Meyer의 표현대로, 그린피스의 사무실마다 존 록펠러의 포스터가 빠짐없이 붙어 있어야 한다).
비관주의자의 오류는 외삽법에 있다. 미래가 단지 과거의 확대판이라고 상정하는 것이다. 일찍이 허브 스타인Herd Stein이 말한 대로, “무언가가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면 그것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
<번역 검토>를
읽기 전에 원문과
그리고
원문에서는 인용한 부분이 4 개의 문단으로 되어 있다. 반면 번역문에서는 무려 11 개의 문단으로 나누어 놓았다. 문단 나누기에도 글쓴이의 의도가 녹아 있는데 번역자가 마음대로 바꾸어서는 안 된다. 나는 가독성을 위해 가끔은 한 문장을 두 문장으로 나누어서 번역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문단의 경우에는 철저하게 원문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Matt Ridley: A constant drumbeat of pessimism usually drowns out any triumphalist song of the kind I have vented in this book so far.
“표현”보다는 “표출”이 “vent”의 어감을 더 잘 나타내는 것 같다.
“usually”를 빼 먹었다.
번역문만 보면 “나의 노랫소리”만 압도당한 것 같다. 원문을 보면 “나와 비슷한 주장을 담은 노랫소리”도 압도당했다는 뜻이다. “of the kind”를 제대로 번역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Matt Ridley: If you say the world has been getting better you may get away with being called naive and insensitive.
“당신”보다는 “여러분”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Matt Ridley: If you say the world is going to go on getting better, you are considered embarrassingly mad.
바로 전 문장과 이 문장에서 “If you say the world”가 반복된다. 그런데 “혹시 당신이 세상은”과 “하지만 만일 세상이”로 다르게 번역했다. 이 책이 시집은 아니지만, 이런 반복을 가능하면 살려주는 것이 좋다. 반복되는 부분을 반복되게 번역해도 의미 전달에 문제가 없다면 반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Matt Ridley: When the economist Julian Simon tried it in the 1990s, he was called everything from imbecile and Marxist to flat-earther and criminal.
원문에는 “실제로”에 대응하는 단어가 없다.
이 문장을 굳이 둘로 나누지 않아도 가독성에 큰 문제가 없다.
가능하다면 “from”과 “to”도 번역해주는 것이 좋다.
Matt Ridley: Yet no significant error came to light in Simon’s book.
“significant”는 “심각한”보다는 “중대한”으로 번역하는 것이 나아 보인다.
Matt Ridley: When Bjørn Lomborg tried it in the 2000s, he was temporarily ‘convicted’ of scientific dishonesty by the Danish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with no substantive examples given nor an opportunity to defend himself, on the basis of an error-strewn review in Scientific American.
“given”을 “주어지다”로 번역했는데 “주어지다”는 많은 이들에게 기형적인 표현이라는 지탄을 받고 있다. 나는 가능하면 그렇게 욕을 많이 먹는 표현을 쓰지 않으려고 한다.
원문은 “convicted”를 작은 따옴표로 묶었는데 번역문에서는 무시했다. 따옴표로 묶은 이유는 법원에서 내리는 진짜 평결이 아니기 때문인 것 같다.
Matt Ridley: Yet no significant error has come to light in Lomborg’s book.
Matt Ridley: ‘Implicit confidence in the beneficence of progress’ said Hayek, ‘has come to be regarded as the sign of a shallow mind.’
“sign”은 “증거”보다는 “징후”로 번역하는 것이 나아 보인다. “증거”는 의미가 너무 강하다.
“~하는 것은”과 같은 거추장스러운 표현은 되도록 안 쓰는 것이 좋다.
원문에도 없는 “당신이”를 굳이 삽입할 필요가 있을까?
“be regarded”의 수동태를 “여겨지게”와 같은 식으로 굳이 살려줄 필요는 없어 보인다.
Matt Ridley: If, on the other hand, you say catastrophe is imminent, you may expect a McArthur genius award or even the Nobel Peace Prize.
Matt Ridley: The bookshops are groaning under ziggurats of pessimism. The airwaves are crammed with doom.
원문은 두 문장이다. 복잡한 한 문장을 두 개로 나누어 번역할 때에는 가독성이라는 핑계라도 있다. 왜 멀쩡한 두 문장을 하나로 합치는지 모르겠다. 가능하면 문체도 살려서 번역해야 한다.
한국의 번역가들은 “~ism”을 무턱대고 “~주의”로 번역하는 경향이 있다. “비관주의”보다는 “비관론”이 낫지 않을까?
Matt Ridley: In my own adult lifetime, I have listened to implacable predictions of growing poverty, coming famines, expanding deserts, imminent plagues, impending water wars, inevitable oil exhaustion, mineral shortages, falling sperm counts, thinning ozone, acidifying rain, nuclear winters, mad-cow epidemics, Y2K computer bugs, killer bees, sex-change fish, global warming, ocean acidification and even asteroid impacts that would presently bring this happy interlude to a terrible end.
문장이 길긴 하지만 그리 복잡하지 않기 때문에 별 무리 없이 한 문장으로 번역할 수 있다. 굳이 두 문장으로 나눌 필요가 없는 것이다.
“implacable”은 “확고한”보다는 “무자비한”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
“presently(즉시)”를 번역하지 않았다. 또는 “지금의”로 잘못 번역했다.
Matt Ridley: I cannot recall a time when one or other of these scares was not solemnly espoused by sober, distinguished and serious elites and hysterically echoed by the media.
국어사전에서는 “저명”과 “유명”을 거의 비슷하게 정의한다. 하지만 현재 언중이 쓰는 어감은 약간 다르다. 몹쓸 짓을 하거나 우연히 유명해진 사람에게는 보통 “저명”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 대단한 업적 때문에 이름을 널리 알려진 사람에게 보통 “저명”이라는 단어를 쓴다. 따라서 “distinguished”를 “저명”으로 번역하는 것이 나은 것 같다.
여기서 “solemnly”는 “공식적으로”보다는 “엄숙하게”라는 뜻인 것 같다.
“media”는 “언론”보다 더 폭넓은 개념이다. 따라서 “대중 매체”로 번역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예컨대 TV의 오락 프로그램이나 상업 광고는 “언론”은 아니지만 “대중 매체”에는 포함된다.
“hysterically”를 “광적으로”와 “히스테리”로 이중으로 번역했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런 식으로 이중으로 번역하지 않는 것이 좋다.
Matt Ridley: I cannot recall a time when I was not being urged by somebody that the world could only survive if it abandoned the foolish goal of economic growth.
원문에는 따옴표가 없다. 따옴표 없이 충분히 번역할 수 있다면 굳이 따옴표를 집어넣지 않는 것이 좋다. 되도록 원문의 사소한 형식까지도 그대로 살려주는 것이 좋다.
원문에서는 “I cannot recall a time when”가 반복되고 있다. 그런데 번역문에서는 “내가 기억하는 한 ... 한 차례도 없다”와 “내가 기억하는 한 결코 없다”로 약간 다르게 번역했다. 산문에서도 똑 같은 구절의 반복은 약간이라도 운율 효과가 난다. 이런 것들도 살려서 번역할 수 있다면 살리는 것이 좋다.
Matt Ridley: The fashionable reason for pessimism changed, but the pessimism was constant.
Matt Ridley: In the 1960s the population explosion and global famine were top of the charts, in the 1970s the exhaustion of resources, in the 1980s acid rain, in the 1990s pandemics, in the 2000s global warming.
별 어려움 없이 한 문장으로 번역할 수 있을 때에는 굳이 두 문장으로 나누지 않는 것이 좋다.
Matt Ridley: One by one these scares came and (all but the last) went.
Matt Ridley: Were we just lucky?
Matt Ridley: Are we, in the memorable image of the old joke, like the man who falls past the first floor of the skyscraper and thinks ‘So far so good!’?
“memorable image”를 번역하지 않았다.
Matt Ridley: Or was it the pessimism that was unrealistic?
Matt Ridley: Let me make a square concession at the start: the pessimists are right when they say that, if the world continues as it is, it will end in disaster for all humanity.
“are right”를 딱딱하고 장황하게 “타당한 주장이다”로 번역했다. 그냥 “옳다”라고 번역해도 충분하다.
원문의 한 문장을 따옴표까지 추가하여 두 문장으로 나누었다. 가능하다면 이런 식으로 원문의 형식을 바꾸지 않는 것이 좋다.
Matt Ridley: If all transport depends on oil, and the oil runs out, then transport will cease.
여기에서 원문에는 없는 따옴표를 굳이 삽입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Matt Ridley: If agriculture continues to depend on irrigation and aquifers are depleted, then starvation will ensue.
Matt Ridley: But notice the conditional: if.
Matt Ridley: The world will not continue as it is.
Matt Ridley: That is the whole point of human progress, the whole message of cultural evolution, the whole import of dynamic change—the whole thrust of this book.
“whole”이 똑같이 반복되고 있다. 되도록 똑같이 반복되도록 번역하는 것이 좋다. “whole”을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of this book”을 “이 책 전체에서”라고 번했는데 원문에는 “전체”를 뜻하는 단어가 없다.
Matt Ridley: The real danger comes from slowing down change.
Matt Ridley: It is my proposition that the human race has become a collective problem-solving machine and it solves problems by changing its ways.
“way”는 “수단”보다는 “방식”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
Matt Ridley: It does so through invention driven often by the market: scarcity drives up price; that encourages the development of alternatives and of efficiencies.
Matt Ridley: It has happened often in history.
Matt Ridley: When whales grew scarce, petroleum was used instead as a source of oil. (As Warren Meyer has put it, a poster of John D. Rockefeller should be on the wall of every Greenpeace office.)
엄밀히 말하자면 “고래 기름이 희소해지자”가 아니라 “고래가 희소해지자”다. 원문 그대로 번역해도 문제가 없다면 굳이 바꿀 필요가 없다.
Matt Ridley: The pessimists’ mistake is extrapolationism: assuming that the future is just a bigger version of the past.
Matt Ridley: As Herb Stein once said, ‘If something cannot go on forever, then it will not.’
끊이지 않는 비관론의 북소리가 이 책에서 지금까지 내가 표출해온 것과 같은 종류의 승리주의의 노래를 보통 모두 압도한다. 만약 여러분이 세상이 점점 좋아졌다고 말한다면, 순진하며 둔감하다는 이야기를 용케 듣지 않을지도 모른다. 만약 여러분이 세상이 계속 점점 좋아질 것이라고 말한다면 여러분을 아주 미친 사람으로 생각할 것이다. 경제학자 줄리언 사이먼(Julian Simon)이 1990년대에 그런 시도를 했다가, 바보(imbecile)와 마르크스주의자에서 평평한-지구론자와 범죄자에 이르기까지 온갖 딱지가 붙었다. 하지만 사이먼의 책에 있는 중대한 오류가 하나라도 폭로된 적은 없다. 2000년대에 비요른 롬보르(Bjørn Lomborg)가 그런 시도를 했다가 덴마크 국립 과학 아카데미(Danish National Academy of Sciences)로부터 과학적으로 부정직하다는 ‘평결’을 일시적으로 받았는데 그것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Scientific American)≫에 실린 오류가 널린 서평에 바탕을 둔 것이었으며 실질적인 예를 제시하지도 않았고 자신을 변호할 기회도 없었다. 롬보르의 책에 있는 중대한 오류가 하나라도 폭로된 적은 없다. “진보의 은혜에 대한 절대적 확신은 천박함의 징후로 통하게 되었다.”라고 하이에크(Hayek)는 말했다.
반면, 재앙이 임박했다고 말한다면 여러분은 맥아더 천재상(McArthur genius award)이나 심지어 노벨 평화상도 기대할 수 있다. 서점은 비관론의 신전(ziggurats) 아래에서 신음하고 있다. 공중파는 파멸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나는 어른이 된 이후에 빈곤의 증가, 다가오는 기근, 사막 확대, 임박한 역병(plagues), 곧 일어날 물 전쟁, 불가피한 석유 고갈, 광물 부족, 정자 수 감소, 엷어지는 오존층, 산성비, 핵 겨울, 광우병 대유행, Y2K 컴퓨터 버그, 살인 벌떼, 성전환된 물고기, 지구 온난화, 대양 산성화, 심지어 이 행복한 막간을 즉시 끔찍한 종말로 바꿀 소행성 충돌 등 온갖 무자비한 예측들에 대해 들어왔다. 멀쩡하고 진지한 저명 엘리트들이 이런 위협들 중 하나 또는 다른 하나가 진짜라고 엄숙하게 이야기하고 대중 매체가 이를 히스테리처럼 증폭하는 일이 없었던 시기가 내 기억에는 없다. 경제 성장이라는 어리석은 목표를 버려야만 인류가 생존할 수 있다고 누군가가 나에게 촉구하지 않았던 시기가 내 기억에는 없다.
비관해야 할 이유는 유행에 따라 바뀌었지만 비관론 자체는 지속되었다. 1960년대에는 인구 폭발과 세계적 기근이, 1970년대에는 자원 고갈이, 1980년대에는 산성비가, 1990년대에는 세계적 유행병이, 2000년대에는 지구 온난화가 목록의 꼭대기에 있었다. 이런 위협들은 하나씩 나타났다가 (마지막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사라졌다. 단지 우리가 운이 좋았던 것일까? 오래된 농담의 인상적인 장면을 떠올려 보자. 우리는 마천루에서 떨어지다 2층을 지나치면서 “지금까지는 괜찮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비슷한 것일까? 아니면 비현실적 쪽은 오히려 비관론이었을까?
우선 한 가지는 분명히 인정하겠다. 만약 세계가 지금의 상태처럼 계속된다면 인류 전체가 재앙을 맞는 것으로 끝나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라면 비관론자들이 옳다. 만약 모든 운송이 석유에 의존하고 석유가 고갈된다면 운송은 중단될 것이다. 만약 농업이 계속해서 관개에 의존하고 대수층이 고갈된다면 기아가 뒤따를 것이다. 하지만 “만약”이 들어간 조건문이라는 점에 주목하자. 세계는 지금과 같은 상태로 계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이 인류 진보의 핵심 요점이자, 문화적 진화의 핵심 메시지이자, 역동적 변화의 핵심 함의이며, 이 책의 핵심 취지이다. 진짜 위험은 변화의 속도를 늦추는 데서 온다. 인류가 집단적 문제 해결 기계가 되었으며 방식을 바꿈으로써 문제들을 해결한다는 것이 나의 명제다. 그것은 발명을 통해 이루어지며 시장이 발명을 추동하는 일이 자주 있다. 희소성은 가격이 오르게 하며, 오른 가격은 효율적인 대안이 개발되도록 부추기는 것이다. 역사에서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났다. 고래가 희소해지자 기름의 원료로 석유가 대신 쓰였다. (워런 마이어(Warren Meyer)가 말했듯이 존 록펠러(John D. Rockefeller) 포스터가 모든 그린피스 사무실 벽에 있어야 한다.) 비관론자들의 오류는 외삽(extrapolationism) 즉 미래가 과거의 확대판에 불과하다는 가정에 있다. 일찍이 허브 스타인(Herb Stein)이 말했듯이, “만약 무언가가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면 그것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
이제
2011-10-04
첫댓글 “you may get away with being called naive and insensitive”에 대해서는 아래 글을 참조하십시오.
http://cafe.daum.net/livingbytrans/1mlW/1858
글의 주제로부터는 벗어나나, 궁금한게 있는데.. 이성적 낙관주의자나, 이기적 유전자 이타적 유전자. 확장된 표현형... 이런 책들은 교양서적으로 분류 하면 될까요?
<확장된 표현형>은 상당히 어렵습니다. 나머지는 교양서적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습니다.
답변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