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 전에 일부 정신분석가들이 자폐증에 대한 부당한 낙관론을 퍼뜨렸다. 그들에
따르면 냉담한 부모가 자폐증을 만들어낸다. 따라서 모든 부모가 냉담하지 않게 자식을 대한다면 세상에서
자폐증은 사라질 것이다. 그들은 안 그래도 자식 때문에 마음이 아픈 부모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었을
것이다.
그들은 상관 관계와 인과 관계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폐증에 대한 그런 황당한 환경 결정론에 빠졌다. 관찰자가 보기에 자폐아의 부모가 자폐아를 대할 때 냉담하게 행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자폐증의 원인이라기보다는 결과다. 자폐아의 부모가
처음부터 그러는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자폐아의 부모도 다른 부모와 마찬가지로 자식을 대한다. 하지만 몇 달 또는 몇 년이 지나도 자폐아가 통상적인 반응을 거의 보이지 않기 때문에 부모가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자폐증에 대한 그런 낙관론을 경계한다. 자폐증은 유전적 이상에
따른 선천적 장애로 보인다. 따라서 통상적인 환경만 제공하면 자폐증이 사라질 것이라는 기대는 공상인
것 같다.
정신 지체를 정의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통상적인 환경에서
자랄 때 지적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으로 정신 지체를 정의할 수도 있지만 어떤 식으로 가르치더라도 지적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으로 정의할
수도 있다.
청각 장애자는 정신 지체자인가? “통상적인 환경”을
적용한 정의에 따르면 어떤가? 과거에는 수화가 없었다. 따라서
수화가 없는 환경이 통상적인 환경이었다. 인간의 지적 활동 중 상당 부분이 언어에 의존한다. 수화가 없는 환경에서 청각 장애자는 언어를 배울 수 없었으며 따라서 정신 지체자로 분류될 수 있었다. 반면 현대 선진 산업국에서는 청각 장애자가 보통 수화를 배운다. 따라서
“통상적인 환경”을 적용한 정의에 따르더라도 현대 선진 산업국이라는 환경에서는 청각 장애자가 정신
지체자로 분류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상적인 교육 환경”을 적용한 정의에
따르면 청각 장애자는 정신지체자가 아니다. 왜냐하면 이상적인 교육 환경에는 수화도 포함될 것이기 때문이다.
Cosmides & Tooby 같은 진화 심리학자들은 대량
모듈성(massive modularity) 테제를 지지한다. 인간의
신체가 수 많은 모듈들 즉 부품들로 이루어졌듯이 인간의 뇌에 수 많은 모듈들이 있다는 것이다. 청각
장애자는 이런 부품들 중 청각과 관련된 부품이 고장 난 사람이다. 『마음 盲: 자폐증과 마음이론에
관한 과학에세이(Mindblindness: an essay on autism and theory of mind)』를 쓴 Simon Baron-Cohen은
자폐증자가 마음 읽기(mind reading) 모듈이 고장 난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청각 장애자 중에도 수화가 있는 환경에서도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정신 지체자가 있다. 하지만 대다수 청각 장애자는 정신 지체자가 아니다. 과거에 수화가
없었기 때문에 지적인 것들을 배울 수 없었을 뿐이다.
자폐증자들 중 대다수는 인간 세계와 제대로 소통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수화가 없던 시절의 청각 장애자들처럼 단지 소통의 수단 또는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환경이 없기 때문일까? 아니면 어떤 이상적인 교육 환경에서도 대다수 자폐아들은 정신 지체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일까?
만약 Baron-Cohen의 말대로 자폐증이 단지 마음 읽기 모듈만
고장 난 것이라면 낙관론이 들어설 여지가 있다. 수화가 고장 난 청각 메커니즘을 대체할 수 있듯이 고장
난 마음 읽기 모듈을 대체할 무언가를 미래에 발견하거나 발명할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2010-08-16
첫댓글 대부분의 자폐아의 지능지수가 매우 낮게 나타나는 걸(대다수가 70점 미만을 기록)로 보아 단지 '마음읽기능력'만 고장난 것은 아니고 뇌 전체의 인지적 능력이 감퇴된 것으로 보입니다.
지능지수가 70점이상이면 정의상 고기능성 자폐아로 분류합니다만 현실적으로 지능지수가 70점대라면 학교 수업을 따라가기는 아주 어렵습니다.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레이븐스 매트릭스검사에서도 지능지수가 높은 자폐아(120~130)는 아주 드문 일이라고 합니다.
아마 자폐증는 이덕하님 말씀대로 유전적 이상에 따른 선천적 장애로 보시는 것이 맞을 겁니다.
다만 대뇌가 손상되는 정도에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군요.
지능 검사는 발달의 결과를 측정합니다. 저는 자폐아가 제대로 발달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따지는 것입니다. 마음 읽기 모듈이 고장났기 때문에 지적인 면에서 제대로 발달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자폐아들은 지능 검사 등이 요구하는 규칙에 잘 따르려고 하지 않습니다. 레이븐스 매트릭스 검사에서도 점수가 낮게 나오는 것이 그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동감입니다.
자폐아들의 경우 일반인들과의 지적인 능력의 차이가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나타나며 생후 즉시 발달이상을 보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많은 수의 자폐아들은 언어나 상담자의 지시사항이 들어가 있는 웩슬러 검사보다는 비언어적이고 별도의 지시사항이 필요없는 레이븐 검사에서 더 높은 점수를 기록합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일반인들보다 점수가 떨어집니다.
마음읽기 모듈이 '고장'나서 지능지수가 떨어지는 것으로 해석할수도 있지만 자폐아의 주의 집중 능력이나 전환 능력이 일반인들에 비해 떨어지는 것으로 보아 선천적으로 지능이 낮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현재 거의 모든 지능검사에서 주의집중과 전환을 요구하는 과제를 제시하고 있고 그러한 특성은 뇌의 전두엽의 사고 능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실제로 자폐아들의 뇌는 정상 사람들과 다른 몇 가지 특징을 보이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에 대해 상당히 많은 연구 결과가 있는 것으로 압니다.
관련 글을 <퍼온 글>란에 올려 두었습니다.
자폐증 환자인 템플 그랜딘 박사에 표현에 의하면 마음 읽기 모듈이 고장난 것은 옳은 것 같습니다. 그녀는 다양한 감정이 매우 어렵다고 했거든요
자폐아들이 뇌가 비정상이라는 것은 과학적으로도 상당한 근거가 있습니다.
이덕하님의 주장과는 달리 최근 연구들은 단순히 '마음읽기능력'이 고장났다기 보다 뇌의 전반적인 인지능력의 감퇴를 의미하는 강력한 뇌신경학적 근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Simon Baron-Cohen의 주장은 학자들에게서도 별로 호응을 얻지 못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수학자들이나 공학자들이 자폐증 테스트에서 높은 점수를 얻는 것을 실제 자폐증과 연관짓는 것은 심각히 고려해 볼 필요가 없는 무가치한 의견인 것 같습니다.
전에도 그렇지만 이덕하님은 님의 개인적인 주장을 아무 근거 없이 너무 쉽게 늘어놓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개인적인 의견을 피력하는 것을 제지할 수는 없지만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 상당히 짜증이 나는 일입니다.
예전 라마찬드란의 논문들을 읽으면서, 자폐증에 대해 연구한 논문이 있었습니다. 라마찬드란 박사는 자폐증과 거울뉴런을 연관지어서 연구하려고 하였는데요.. 인간의 두뇌에서 손을 움직이도록 하는 전운동피질이 있는데, 이 피질은 자신이 손을 움직일 때 뿐만이 아니라,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손을 움직일 때에도 발화됩니다.
뭐 윤리적 문제 때문에 직접 두개골을 열지는 못하구요.. 간접적인 방법으로 연구를 한게.. 대개의 사람들은 자신이 손을 움직일 때는 물론이고 상대방이 손을 움직이는 것을 보았을 때, 뇌파 중 뮤파가 차단되게 된다고 합니다.
이 것을 바탕으로 자폐증 어린이와 보통 어린이에게 각자 손을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주고 뇌파를 측정하였는데, 보통 어린이의 두뇌에서 뮤파가 차단되었다면, 자폐증 어린이의 두뇌에서는 뮤파가 차단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단순히 자폐증의 원인이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은 듯 싶습니다. 라마찬드란 박사의 논문에서 밝힌 것이, 거울 뉴런 외에도 다른 문제도 있다고 지적하였지요.
게다가 자폐증이 전적으로 유전에 의해 '결정'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 자폐증의 유전율은 100이 안되는 것으로 압니다.(정확한 수치는 기억나지 않는군요.) 즉, 일란성 쌍둥이가 있을 때 한쪽이 자폐증이면, 다른 한쪽은 자폐증이 아닐수도 있다는 것이
지요. 이를 통해서 보면.. 유전적 요인은 자폐증에 큰 영향을 미치지만, 그렇다고 유전적 요인만이 자폐증을 일으키지는 못한다고 보는게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치 페닐케톤뇨증이란 유전병이 페닐알라민이란 단백질을 섭취하지만 않으면 발현되지 않는 것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