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 김구는
테러리스트가 아니다?
이덕하
2008-12-30
이외수
씨의 분노.. 1
terrorism의 여러 의미.. 2
terrorism은 올바른 저항 방식이 아니다.. 3
이외수 씨는 자신의 홈페이지(http://www.oisoo.co.kr)에 올린 <수정된 교과서-애국애족 대신 매국매족을?>라는 글에서
“김구선생을 테러분자라고 가르치는 세상이 왔으니
머지 않아 이순신장군을 살인마라고 가르치는 세상도 오겠네”
라고 썼다. 이외수 씨가 문제삼은 문장은 “이후
한인애국단을 조직하여 항일테러활동을 시작하였다”이다. 수정된 교과서에 대한 이외수씨의
이런 비난은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는 듯하다.
이외수 씨는 <물어 보겠다(수정본)>라는 글에서
“특히
지금은 세계적으로
테러가 사전적
의미를 벗어나 범죄의 의미로 통용되고 있는 시대다
독립투사들을
테러범이라고 규정하는 시각은
분명 친일파적인
시각이거나 반한국적인 시각이다”
라고 썼다. 이외수 씨도 terrerism이
여러 의미로 쓰이고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백과사전(http://en.wikipedia.org/wiki/Terrorism)에는
terrorism에 대해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Terrorism is the systematic use of terror especially as a means of
coercion. At present, there is no internationally agreed definition of
terrorism. Common definitions of terrorism refer only to those acts which are
intended to create fear (terror), are perpetrated for an ideological goal (as
opposed to a lone attack), and deliberately target or disregard the safety of
non-combatants.
나는 줄곧 김구가 테러리스트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김구를
테러범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테러범이라는 번역어는 terrorist라는
단어 자체에는 없는 ‘범죄’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외수 씨는 “항일테러활동”이라는
표현을 비판하면서 수정된 교과서가 김구를 “테러범”이라고
규정했다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정확한 비판이 아니다. “항일테러활동”은
나름대로 긍정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지만 “테러범”이라는 단어는 매우 부정적이다. 나는 뉴라이트를
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적을 비판할 때에도 정확하게 해야 한다.
공산주의자들은 1878년에 Theodore
Trepov를 쏜 베라 자술리치(Vera Ivanovna Zasulich, Вера Ивановна Засулич, 1849-1919, http://en.wikipedia.org/wiki/Vera_Zasulich)를
테러리스트라고 불러왔다. 당시에 일군의 혁명가들은 러시아의 지독한 왕정에 저항하는 하나의 방편으로 지배자들을
암살하려고 했다. 레닌의 형은 당시의 왕을 암살하려고 하다가 사형을 당하기도 했다.
테러활동(terrorism)의 사전적 정의는 무장하지 않은 사람(들)을 죽임으로써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이것은 19세기의 러시아의 혁명가들, 20세기 초의 조선의 독립운동가들, 20세기 후반에 이스라엘에 맞서
싸운 아랍인들처럼 힘없는 자가 힘있는 자에게 저항하는 수단 중 하나였다. 물론 미국을 등에 업은 이스라엘처럼
힘있는 자가 힘없는 자에게 사용하기도 한다. 팔레스타인의 민간인 거주 지역을 폭격하는 이스라엘의 행태도
일종의 테러활동이다. 하지만 나는 보통 이스라엘의 폭격을 테러활동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왜냐하면 “학살”이라는 단어가 더 적절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외수 씨는 “지금은 세계적으로 테러가 사전적 의미를 벗어나 범죄의 의미로 통용되고 있는 시대”라고
말했다.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terrorism이라는 단어는 쓰는 사람마다 다르게 쓴다. 좌파는
힘없는 자의 terrorism에서 저항이라는 의미를 주로 떠올리며 미국 지배자들은 범죄라는 의미를 주로
떠올린다. 물론 지금 세상은 미국 지배자들과 그들의 동맹자들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쓰는 의미가
더 널리 퍼져 있다. 그렇다고 진보주의자들이 그들의 의미를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이외수 씨는 이런 생각은 해 보지 못한 듯하다.
사람들은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 أسامة بن محمد بن عوض بن لادن)과 김구가 동일시되는 것에 분노하는 것 같다. 한국의 보통 사람들이 두 사람을 동일시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편으로,
사람들은 미국 지배자들의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이고 있다.
미국 지배자들에 따르면 오사마 빈 라덴은 사악한 범죄자일 뿐이며 그의 주요 범죄는 테러활동이다.
다른 한편으로,
사람들은 김구를 잘못한 일이 거의 없는 영웅으로 생각한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한국의 지배 계급은 이승만의 적이었으며 이승만에 의해 암살당한 김구를 민족 영웅으로 가르쳤다.
오사마 빈 라덴도 테러리스트고 김구도 테러리스트다. 둘 모두 힘없는 자들의 울분을 대변하고 있다.
오사마 빈 라덴은 미국 제국주의와 이스라엘에 당하고 있는 아랍인들의 울분을 대변하고 있고,
김구는 일본 제국주의에 당하고 있던 조선인들의 울분을 대변했다.
물론 차이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베라 자술리치와 김구는 주로 적의 수뇌부 인사들을 암살하려고 한 반면 오사마 빈 라덴은 적이라고 생각되는 나라(이스라엘과 미국)에 사는 보통 사람들까지 무차별적으로 죽였다. 아마 이것이 19세기 말 러시아와
20세기 초 조선의 테러리스트에 비해 20세기 후반의 아랍 테러리스트들이 인기가 없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며 매우 중요한 차이기도 하다.
한국 대중들은 한편으로는 미국 지배자들의 이데올로기에 놀아나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의 김구 영웅화 교육에 놀아나고 있는 것이다. 둘 사이의
차이는 요인 암살이냐 불특정 다수를 죽이느냐는 것 빼고는 별로 크지 않다. 둘 모두 억압된 자들의 울분의
표출이라는 면에서 같으며, 대중적인 저항보다는 소수의 테러활동에 골몰했다는 점에서 같다.
미국 지배자들은 사악한 오사마 빈 라덴과 이슬람교라는 황당한 종교에 의해 조종당하는 불쌍한 테러리스트들이라는
이미지를 퍼뜨리고 있다. 실제로 자기 목숨을 걸고 테러활동을 하는 아랍인들에게 이슬람교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한 정당한 분노가 없었다면 그들이 자기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테러활동을 했을 것 같지 않다.
김구, 윤봉길, 이봉창, 안중근의 의도와 희생정신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테러활동은 잘못된 방식이었다. 첫째, 사악한 인간이라고 하더라도 인권이 있기 때문에 무장하지 않은 개인을 죽이는 것은 잘못이다. 둘째, 그런 테러활동은 보통 저항 활동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저항의 불씨가 되는 경우보다 오히려 탄압의 빌미를 제공하여 악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더 많다. 이명박이 아무리 싸가지 없다 하더라도 지금 이명박을 암살하는 것은 지극히 현명하지 못한 행동이다. 셋째, 테러활동보다는 다수가 움직일 수 있도록 다수를 설득하는 것이
더 낫다. 결국 시위, 파업 등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그렇다고 내가 무력 저항 방식에 대해 모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무장한 적에 대한 군사적인 저항인 게릴라전을 반대하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