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자신의 장점은 자랑하고 싶어하고 단점은 숨기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자신의 능력을 과대 광고하는 경향도 있다. 자신을 남들에게 잘 보이게 하는 방향으로 은폐, 왜곡, 과장, 부각하는 경향이 인간에게 있다는 점은 20세기의 수많은 심리학 연구가 보여주었다.
기업의 광고 전략도 대체로 이런 경향을 보인다. 광고를 할 때 자사 제품의 장점을 부각하며 때로는 과장한다. 그리고 타사 제품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는 단점을 부각한다. 자사 제품의 문제점을 은폐할 때도 많다.
1975년에 이스라엘의 진화 생물학자 자하비(Amotz Zahavi)는 핸디캡 원리(handicap principle)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다.
Zahavi, A. (1975) Mate selection: a selection for a handicap. Journal of Theoretical Biology. 53: 205-214.
http://www.eebweb.arizona.edu/faculty/dornhaus/courses/materials/papers/other/Zahavi%20sexual%20selection%20handicap%20model%20signal.pdf
당시에 핸디캡 원리는 진화 생물학계에서 웃음거리가 될 때가 많았다고 한다. 사실 이 논문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하지만 지금은 핸디캡 원리 또는 비싼 신호 이론(costly signalling theory)이 진화 생물학계에서 그때처럼 무시당하지는 않는다. 정설로 굳어지는 것 같다.
The generality of the phenomenon is the matter of some debate and disagreement, and Zahavi's views on the scope and importance of handicaps in biology remain outside the mainstream. Nevertheless, the idea has been very influential, with most researchers in the field believing that the theory explains some aspects of animal communication.
http://en.wikipedia.org/wiki/Handicap_principle
끈기 하나는 인정 받을 만하다지만 자하비의 이론적, 수학적 능력은 여전히 의심스럽다. 아래 책에서 자하비는 온갖 흥미로운 사례들을 다루고 있지만 이론적 부분은 안쓰러울 정도로 문제가 많다.
Zahavi, A. and Zahavi, A. (1997). The handicap principle: a missing piece of Darwin's puzzle. Oxford University Press.
핸디캡 원리가 이런 지위를 얻게 된 데에는 그래펀(Alan Grafen, 그레이픈?)의 기여가 크다고 한다.
「Biological signals as handicaps(1990)」
http://users.ox.ac.uk/~grafen/cv/hcapsig.pdf
「Sexual selection unhandicapped by the Fisher process(1990)」
http://users.ox.ac.uk/~grafen/cv/hcapss.pdf
「Dishonesty and the handicap principle(1993)」
http://users.ox.ac.uk/~grafen/cv/dishonest.pdf
구애하는 동물이 과장 광고를 하게 되면 구애 대상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그 과장을 간파하는 것이 번식에 도움이 된다. 과장 광고에 속아서 열등한 수컷인데도 우월한 수컷인 줄 알고 짝짓기를 하는 암컷에 비해 그런 과장 광고를 간파할 줄 아는 암컷이 더 잘 번식할 수 있다. 따라서 진화론적 무기 경쟁(evolutionary arms race)이 일어날 수 있다.
http://en.wikipedia.org/wiki/Evolutionary_arms_race
이 때 아예 정직한 신호를 보낸다면 암컷을 더 잘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핸디캡을 부과하는 것은 정직한 신호를 보내는 한 가지 방법이다. 남들이 함부로 따라 할 수 없는 핸디캡을 자신에게 부과한다면 암컷은 그것을 신뢰할 수 있을 것이다.
게임에서 실력 차이가 많이 날 경우 잘 하는 사람에게 핸디캡을 부과한다. 바둑의 경우 돌 몇 개를 못 하는 사람이 먼저 놓도록 한다. 장기에서는 잘 하는 사람의 <차>나 <포> 같은 것을 몇 개 없애고 시작한다. 100m 달리기를 할 때에는 못 하는 사람이 몇 미터 앞에서 출발하는 방법이 있다. 골프에서도 비슷하게 핸디캡을 부과하고 시작한다.
만약 핸디캡을 짊어지고 시작했음에도 비겼거나 이겼다면 실력이 상대보다 훨씬 뛰어남을 입증한 셈이다.
자하비는 수컷 공작의 크고 화려한 꼬리가 그런 핸디캡이라고 보았다. 그런 꼬리는 거추장스러워서 도망치기가 힘들고 눈에 잘 띄기 때문에 포식자에게 들킬 가능성을 높인다. 따라서 그런 핸디캡이 작거나 없는 수컷 공작에 비해 살아남기가 힘들다. 자하비에 따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가 그 수컷의 우월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얼핏 생각해 보면 쉽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상당히 골치 아픈 문제다. 핸디캡 원리의 현대판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래펀의 논문들을 읽어 보아야 할 것이다.
거짓말을 하거나 잘못을 할 때마다 얼굴이 많이 붉어지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금방 들키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기가 힘들다. 따라서 이런 사람이 하는 말은 신뢰할 수 있다.
얼굴 붉힘을 핸디캡 원리로 설명하려는 진화 심리학자들이 있다. 얼마나 검증되었는지는 확인해 보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가망성이 있는 가설로 보인다.
나는 기업에서 비슷한 광고 전략을 쓸 수 있다고 본다.
기업에서 TV 광고 등에서 자사 제품의 장점에 대해서가 아니라 단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자사 제품이 문제를 일으킨 사례들을 소개하고, 기업의 비리, 불친절한 행위, 환경을 오염시킨 사건 등에 대해서 계속 떠들어대는 것이 내가 염두에 두고 있는 광고 전략이다. 고해성사 광고 전략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알기로는 이런 광고 전략을 일관되게 추구한 기업은 없다. 하지만 비슷한 전략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정부에서 강제 리콜을 명령하지 않았는데도 기업에서 자발적으로 리콜하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하면 단기적으로 상당한 손해를 보겠지만 기업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진다. 그리고 그런 신뢰를 통해 얻는 장기적 이득이 단기적 손해를 벌충하고도 남을지도 모른다.
아무나 고해성사 광고 전략을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아무 수컷 공작이나 남들보다 더 큰 꼬리를 통해 광고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남들보다 더 건강한 수컷만 큰 꼬리를 자랑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남들보다 품질에 자신이 있고 법을 더 잘 지킬 자신이 있는 기업만 고해성사 광고 전략을 쓸 수 있다. 뒤집어 이야기하면, 남들보다 건강이 부실한 수컷이 큰 꼬리를 자랑하다가는 망할 가능성이 크듯이 남들보다 품질이 떨어지고 법을 덜 지키는 기업이 고해성사 광고 전략을 쓰다가는 망할 가능성이 크다.
만약 인간이 상당히 똑똑하다면, 또는 인간이 남의 속임수를 잘 간파하도록 설계되었다면 고해성사 광고 전략을 일관되게 쓰는 기업을 아주 신뢰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고해성사 광고를 해서 보는 손해를 벌충하고도 남을 정도로 장기적으로는 기업이 이익을 볼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아직 아무도 이런 전략을 쓰지 않았다는 점이 광고에 엄청난 도움이 될 수 있다. 대기업은 어차피 인지도를 확보하고 있지만 그렇지 못한 중소기업의 경우 고해성사 광고 전략을 쓴다는 것 자체 때문에 사회적 관심을 받을 수 있다. 사람들은 적어도 “정말 희한한 회사네”라고 한 두 마디씩 할 것이며 매스컴에 크게 탈 가능성이 높다.
고해성사 광고를 통해 당장 잃는 것이 매우 클 수 있다. 따라서 이 전략이 성공하리라는 확실한 보장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정말로 기업을 정직하게 운영할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도전해 볼 만한 모험인 것 같다. 적어도 아무도 안 쓰는 희한한 전략이기 때문에 단기간에 엄청난 인지도 상승 효과는 볼 수는 있을 것 같다.
이덕하
2013-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