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에 대한 제안 2 – 학년제를 폐지하자
이덕하
2006-02-16
천편일률적인 초∙중∙고등학교.. 1
영재학교와 우열반.. 2
대학교의 교육.. 3
학년제와 학교의 구별을 없애자.. 3
대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학생들은 (남녀의 차이, 문과∙이과의 차이 등이 있긴
하지만) 같은 학년이면 똑 같은 교과서로 똑 같은 수업을 듣는다. 그리하여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첫째,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수업은 악몽이 된다. 그들은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들으면서 조용히 있어야 한다. 이것은
사실상 인권유린이다. 많은 고등학교에서 수업시간에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아먹지 못하는 학생들이 90%에 육박한다.
둘째, 이런 수업은 뒤떨어지는 학생들에게 수업을 재미없게 할 뿐 아니라
그들에게 학습의 권리를 빼앗는다. 그들이 그 시간에 자신들의 능력에 맞는 수업을 듣는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이미 다 알고 있는 학생들에게도 그 지겨움은 만만치 않다.
넷째, 앞서가는 학생들도 이 지겨운 수업 때문에 시간을 빼앗긴다.
다섯째, 모든 학생들이 천편일률적으로 수업을 듣게 된다. 사람마다 능력이 다를 뿐 아니라 선호도 다른데 학생들에게 선택권은 없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이미 도입한 것이 영재학교이고 앞으로 도입하려고 하는 것이 우열반이다. 앞서가는 학생들과 뒤떨어지는 학생들을 완전히 갈라 놓겠다는 발상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여러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열등반(또는 소위
똥통학교)에 배정된 학생들은 열등감에 시달려야 한다.
둘째, 우등반(또는 영재학교)에 배정된 학생들과 열등반(또는 소위 똥통학교)에 배정된 학생들은 서로 분리된다. 영재학교 출신 학생들은 귀족이라는
의식이 생길 것이고 그것은 평민에 대한 경멸로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영재학교에는 투자가 집중된다.
셋째, 어떤 사람이 영어는 평균보다 잘하지만 수학은 평균보다 못한다면
그 학생은 어느 반에 들어가야 할까?
넷째, 우등반에서도 우열은 나뉘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곳에서도 위에서 언급한 문제가 발생한다.
다섯째, 학생이 자신의 선호에 따라 선택을 할 수 없다는 점은 우열반이나
영재학교에서도 비슷하다.
반면 대학교에서는 다른 해결책을 채택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선택권이
있다. 예컨대 대학에는 독일어 초급반, 독일어 중급반, 독일어 고급반이 있어서 만약 독일어를 잘 한다면 1학년이 고급반을
들어도 이상할 것이 없으며 독일어 초보자라면 4학년이 초급반을 들어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프랑스어 고급반을 들으면서 독일어 초급반을 들어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또한 자신이 선택한 과에 따라서 자신의 선호에 맞는 수업을 선택할 수 있다.
학년제와 학교의 구별을
없애자
나는 대학교의 이런 방식이 공교육의 처음부터 끝까지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예 학년제 자체 그리고 더 나아가 학교의 분할(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도 사라져야 한다고 본다.
초등학교도 대학교도 아닌 그냥 학교가 있는 것이다. 그 학교에는 수학
과목이 예컨대 1 과정(초급반)에서 20 과정(박사과정)까지 있어서 누구든 능력이 된다면 들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다른
과목도 물론 마찬가지이다.
물론 학생에게 완전한 자유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수학 1 과정도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이 원한다고 수학 20 과정에 참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자신이 그 과정에 적응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할 것이다. 학기가 시작하기 전에 시험을 보아서 입증하든 아니면 시험적으로 수업을 1 개월
동안 들어보고 적응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든 그것은 상황에 맞게 하면 될 것이다.
또한 대학에 필수과목이 있듯이 어느 정도 가이드라인이 있어서 심한 편식(예컨대
음악만 공부하고 다른 과목은 전혀 거들떠보지 않는 것)을 막아야 할 것이다.
이런 제한을 제외하면 학생은 완전히 자유롭게 자신이 듣고 싶은 수업을 선택할 수 있다. 그러면 수학 영재를 위해 따로 영재학교를 만들 필요가 없다. 10 살짜리
수학영재는 주로 20 살이 넘는 학생들로 이루어진 수학 고급 과정에 참여하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아직 한글을 배우지 못한 할머니가 있다면 8살짜리와 같이 국어
초급반에서 수업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하면 아주 많은 것들이 동시에 해결된다. 위에서 언급한 문제점들이
해결되는 것만이 아니다. 대학 입시 같은 것도 필요없어지며 일류대학 열풍도 사라진다.
물론 그래도 어떤 사람은 수학도 못하고, 영어도 못하고, 음악도 못하고, 체육도 못해서 열등감에 빠질 수 있겠지만 이런 문제는
달리 해결할 도리가 없는 비극인 것 같다. 그리고 이런 혁명적 변화를 위해서는 엄청난 재원이 들어갈
것이고 국민적 합의도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변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어떤 것이 이상에 가까운지를
이야기해야 한다.